<참 좋은 시절>의 결코 작지 않은 막장과의 도전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20%에서 30% 사이를 오간다. 이전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물론 낮은 수치다. 하지만 이 단순한 시청률 수치의 비교만으로 <참 좋은 시절>이라는 드라마의 도전을 평가절하 하긴 어렵다. 이 드라마는 지금껏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어온 막장의 코드들과 일대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출생의 비밀. 불륜. 이런 막장에서 흔히 보던 소재들은 그 소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미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지금까지 고전적인 드라마들 속에서 이 소재들은 끊임없이 사용되어 왔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소재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다. 막장이 이들 소재를 쓰는 방식은 자극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형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출생의 비밀 코드는 복수극 설정으로 사용되거나, 인물의 인생역전 스토리로 반복 사용되는 식이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대목에는 여지없이 코드화된 영상 연출이 들어간다. 긴박하고 자극적인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인물들의 경악하는 표정이 클로즈업 되는 식이다. 불륜도 마찬가지다. 발각된 불륜은 파탄난 가족의 모습을 극화하기 마련인데 주인공이 집기를 부수거나 집어던지는 장면은 대표적인 클리쉐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다면 <참좋은 시절>은 어떨까. 이 드라마에는 유독 많은 출생의 비밀이 들어가 있다. 먼저 장소심(윤여정)과 함께 사는 세컨드 하영춘(최화정)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다. 그녀는 사실 강동희(택연)의 친모로 그를 장소심의 집에 맡기고 떠났던 인물이다. 강동희 또한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동생으로 길러진 강동주(홍화리)와 강동원(최권수)은 사실 그의 자식들이다.

 

중요한 건 이 출생의 비밀이 풀어지는 과정이다. 강동주와 강동원에게 자신이 진짜 아빠임을 말하는 강동희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기보다는 따뜻한 부성애를 드러낸다. 물론 이 가난한 아빠가 아이들의 인생역전을 시켜줄 리 없다. 이것은 하영춘이 강동희의 친 엄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좋은 시절>이 말하는 출생의 비밀은 자극이 아니라 가족애다. 잘못이 있어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서로를 껴안는 이야기.

 

태섭(김영철)을 남편으로 둔 하영춘과 첩 장소심의 사이를 보면 이 드라마에서 바라보는 남다른 불륜의 코드를 읽을 수 있다. 보통의 막장드라마에서 이런 설정은 본처가 첩을 핍박하거나, 거꾸로 첩이 안하무인격으로 본처를 핍박함으로써 극성을 올리는 장치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장소심을 존경하고 무조건 따르는 하영춘과, 그런 하영춘을 보듬고 챙기는 장소심의 돈독한 관계를 보여준다. 본처와 첩이라는 관계를 넘어 인간애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불륜 코드를 뒤집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장드라마에서 그토록 흔하디흔한 복수극 설정은 어떻게 활용될까. 검사로 금의환향한 강동석(이서진)은 차해원(김희선)과 과거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로 뒤얽혀 있지만 두 사람은 그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사랑은 과거의 대립과 반목을 뛰어넘는다.

 

혹자는 20% 언저리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참 좋은 시절>을 그 시청률로만 평가하려 한다. 또 이 드라마가 그저 너무 착하기만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함을 전면에 내세워 이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들이 그토록 해왔던 자극적인 클리쉐들과 결코 쉽지 않은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자극으로 가득 채워 40%, 50%를 내는 막장드라마들보다 인간의 선한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20%를 내는 <참 좋은 시절>이 훨씬 가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삶이란 출생의 비밀이든 불륜이든 복수든 무수한 질곡과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대립을 자극으로 뽑아내기 보다는 참 좋은 시절로 바라보는 이 드라마의 따뜻한 시선이 좋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약해빠진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것보다 강한 비판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시선이다.

<빅맨>, 강지환의 복수 아닌 반전을 기대하는 이유

 

선의는 어째서 보상받지 못하고 악용될까. KBS 월화드라마 <빅맨>의 김지혁(강지환)은 강동석(최다니엘)과 그의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인물이다. 회사의 비리를 모두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고용된 깡패들에게 끌려가 바다에 던져진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아마도 배신의 아픔이었을 게다. 그가 바란 건 겨우 가족 하나뿐이었지 않은가.

 

'빅맨(사진출처:KBS)'

하지만 고아로 자라며 그토록 간절했던 가족에 대한 애착은 오히려 그가 희생양이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강동석이 연출한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오히려 동생 강동석을 걱정했다. 그를 찾아와 부모인 양 살가운 척 하는 강동석의 부모들 앞에서 그는 행복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지혁의 착각이 못내 안타까우면서도 어떤 공감대를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을 거의 그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늘 저들은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며 지지를 호소하곤 했다. 그래서 순수한 선의로 아낌없이 지지를 보낸 후엔 어떻게 되었는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들을 만들었고, 사지에 몰린 서민들은 고통의 바다 속에 던져졌다.

 

김지혁이 바란 것이 그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프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명예와 출세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하지만 이 소박하고 순수한 꿈은 어쩌면 너무 소박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악용된다.

 

동생으로 알고 있는 강동석을 위해 자신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김지혁의 말이나, 또 동생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선선히 보내주는 김지혁의 행동에 강동석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보통 사람의 마음이라면 가슴 먹먹함을 느껴야 할 일이지만 애초부터 사람보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우선인 그들에게 김지혁의 인간적인 행동들은 그저 우스운 일로 치부된다. 무감한 그들은 소시오패스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김지혁의 선의가 악용되는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선의를 믿고 시장 부지를 내놓았던 시장 사람들도 악용된다. 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가게를 팔아 시장상인들에게 내놓는다. 서민들의 편에 섰던 김지혁의 불행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도 이어진다. 이것이 과연 낯선 풍경일까. 우리는 무수한 정치 현장에서, 선거 속에서 이런 풍경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돌아온 김지혁의 복수극은 그래서 지금 우리네 현실의 무게감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대중들이 그의 제대로 된 복수를 꿈꾸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실이 어른거린다. 그가 제 아무리 맨발로 야구방망이 하나를 들고 현성그룹을 찾아간다고 해도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대한 건물 앞에 맨발로 선 그는 그저 초라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화수(장항선)라는 더 강력한 악이다. 악을 더 큰 악으로 대항하려는 것. 선의가 그 순수한 힘으로 악과 대항할 수 있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시장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선 김지혁의 복수극은 서민들을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더 큰 악을 불러오는 복수에 머물지 않고 상황의 반전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선의가 선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은 여전히 요원한 걸까.

다른 듯 같은 94<서울의 달>2014<유나의 거리>

 

1994년 김운경 작가가 쓴 <서울의 달>은 파격적인 드라마였다. 상류층의 삶을 주로 다루던 당시 드라마 분위기에서 달동네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드라마가 상류층 삶의 선망에 머물던 것을 서민들의 현실 공감으로 바꾸어주었던 것이 <서울의 달>에 시청자들이 열광한 이유. 당시 이 드라마는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나의 거리(사진출처:JTBC)'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4, 김운경 작가는 또다시 서민들의 이야기, <유나의 거리>로 돌아왔다. <서울의 달>이 달동네 하숙집을 배경으로 했다면, <유나의 거리>는 다세대주택이 배경이다. 각자 떠돌다가 어찌 어찌 흘러들어와 한 공간에 머물게 된 이들이 엮어가는 따뜻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20년 차를 가진 두 드라마의 공통된 주요 스토리다.

 

김운경 작가 스타일 그대로, <유나의 거리>는 특별히 자극적인 설정 없이 마치 본격 소설을 읽는 듯한 잔잔한 흐름을 보여준다. 막장드라마들이 주로 하는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이나 억지 스토리 같은 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유나의 거리>의 매력은 보는 이들을 푸근하게 만드는 인물의 캐릭터에 있다.

 

소매치기를 소매치기하는 유나(김옥빈)는 감옥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버지처럼 배운 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가끔씩 길거리의 행인들 지갑을 넘본다. 본인은 벗어나고 싶지만 마치 중독처럼 거리로 이끌린다. 그 단점을 빼고 나면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건실하지만 집도 없이 살아가게 된 설명하자면 긴딱한 사정을 가진 청년 김창만(이희준)을 챙겨줄 정도로 정이 많다.

 

유나가 사는 다세대주택의 주인 한만복(이문식)은 과거 잘 나갔던 건달이지만 지금은 한 풀 꺾인 콜라텍 사장이다. 여전히 건달 행세지만 한때 자신이 모셨던 낭만건달 장노인(정종준)을 여전히 모실 정도로 정은 있는 인물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를, 그저 사람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그래도 한 때는 쌍도끼로 불렸던 장노인이 돕는다. 후배의 개업식에 건달의 역사를 운운하며 계보를 나열하고,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일본인에게 문신을 해서 쌍도끼산토끼문신으로 바뀐 장노인은 기막힌 코믹 캐릭터를 보여준다.

 

김창만은 유나의 소개로 이 다세대주택에서 비관 자살한 여자의 빈 방으로 입주한 인물로 별로 잘 하는 게 없어 보이지만 뭐든 척척 해내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이 다세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이 어떤 사건 속에서 서로를 도와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훈훈한 느낌을 전한다. 여기에 김창만과 유나의 심상찮은 멜로가 덧붙여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진짜 삶, 이를테면 유나의 소매치기 습관 같은 것들이 하나의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운경 작가의 <서울의 달>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를 20년이 흐른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20년이 흘러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서민들의 신산한 삶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한다는 건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남긴다. <유나의 거리> 첫 회에 잠깐 보여지는 서울의 달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여전히 쓸쓸하고 처연한 그 느낌. <유나의 거리>를 보며 <서울의 달>을 보던 20년 전 그 가슴 한 구석에 느껴지던 그 따뜻함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니.

배우도 작가도 곤란케 만든 경영자 마인드

 

사실상 무산된 거나 마찬가지다. <대장금2>에 대해 조심스럽게 나오는 관측이다. 그 촉발점은 마치 이영애가 최종적으로 출연을 고사한 사실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영애가 출연하느냐 아니냐는 <대장금2> 제작의 관건이었다. 그러니 이영애가 빠진 <대장금2>가 과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건 이영애가 아니라 방송사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만들어낸 문제다.

 

'대장금(사진출처:MBC)'

여기에 대해 MBC측은 여전히 <대장금2> 제작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MBC이영애 측과 상호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마련한 <대장금> 리메이크 드라마 제작 등 후속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한류 콘텐츠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한류 드라마를 개발하고 제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MBC의 굽히지 않는 의지만으로 <대장금2>가 제작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작자인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2> 집필의 전제조건으로 몇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이영애의 출연이고 두 번째는 리메이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두 조건이 모두 깨진 셈이다. 이영애의 출연은 무산됐고, 그럼에도 MBC가 검토 중이라는 리메이크는 애초에 김영현 작가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사안이다.

 

MBC측의 일방적인 <대장금2> 밀어붙이기는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큰 건 이것이 작가나 배우 같은 실질적인 현장의 요구에 의해 추진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사장이 일방적으로 <대장금2> 제작 발표를 했고, 새로 취임한 김종국 사장도 이를 거듭 공표했다.

 

출연을 곤란해 하던 이영애를 설득하려 노력했고 역시 집필을 고사하던 김영현 작가를 힘겹게 설득했다. 김영현 작가는 결국 본래 5월 방송 예정이었던 <파천황>을 연기하면서 <대장금2> 집필에 들어가게 되었다. 애초부터 이영애도 김영현 작가도 그다지 원치 않는 <대장금2>였지만 MBC 경영진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어쩔 수 없이 진행되어 왔던 것.

 

이영애와 김영현 작가가 모두 곤혹스러워 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영애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엄마 역할로 나오고 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장금2>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미 서장금의 그 젊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이영애가 이제는 나이 들어 한 발 뒤로 물러난 입장에 서는 모습을 굳이 보여준다는 것은 배우로서는 그다지 원치 않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칫 <대장금>이 그녀에게 만들어준 이미지를 스스로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현 작가의 곤혹스러움은 작가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시즌2에 대한 부담감은 전편의 성공이 크면 클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대장금>이 거둔 성과를 떠올려보면 섣부른 시즌2 제작은 그 성과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한없이 커져 있는 기대감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요구한다. 사실상 작가로서 얻을 건 별로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선택이 되는 셈이다. 물론 상업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겠지만 이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작가에게는 좋을 것이 없다.

 

또한 한류를 위해서 <대장금2>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대장금2>가 작품으로서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대장금2>는 워낙 <대장금> 본편의 열풍이 거셌던 만큼 작품의 성패를 쉽게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1편을 뛰어넘는 속편은 거의 열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 아닌가. 이것은 또한 리메이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합병원>이나 <허준>의 최근 리메이크 성적표를 보면 이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속편은 1편이 만들어낸 한류의 열풍까지 꺼버릴 위험성도 있다.

 

결국 <대장금2> 제작으로 이득을 얻어가는 건 MBC뿐이다. 제작한다는 것 자체로 가져갈 수 있는 해외의 투자 등의 수익이 그렇고 이를 성과로 내세워 경영진이 가져갈 수 있는 정치적인 이익이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제작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경영진들의 일방적인 의욕일 뿐이다.

 

경영자적인 마인드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긴 어렵다. 오히려 좋은 콘텐츠가 우선되어야 나머지 경영적인 이득이 성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제작자들의 창작 분위기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 경영이 해야 할 일이다. 경영진의 욕심으로 배우도 작가도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사실상 무산될 상황에 놓인 <대장금2>의 사례는 본말이 전도된 콘텐츠 제작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