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이방인><빅맨>,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

 

완전히 다른 소재와 다른 장르를 추구하는 드라마지만 때로는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 이방인>KBS 월화드라마 <빅맨>이 그렇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이종석)은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북한에서 의사로 성장하게 되고 탈북해 다시 남한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빅맨>의 김지혁(강지환)은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란 건달이지만 어느 날 재벌 그룹의 장남이 되어 현성유통을 꾸려가는 사장이 된다.

 

'빅맨'과 '닥터이방인'(사진출처:KBS,SBS)

여기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세계에서 모두 낯선 공간에 들어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에게는 남한의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수술 끝에 사망하게 된 수현(강소라)의 어머니를 두고 책임을 추궁하는 재준(박해진)과 대립하는 박훈에게는 살릴 수 있는 환자만 살리겠다는 식의 남한 병원의 체계가 낯설게 다가온다. 의사라면 뭐든 최선을 다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병원의 수술성공률 같은 자본의 논리 따위가 아니라.

 

<빅맨>의 김지혁에게는 현성유통이라는 회사나 재벌가라는 환경이 낯설다. 그들은 툭하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김지혁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돌아온 동석(최다니엘)이 대뜸 돈 가방을 내밀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외친다. 시장통에서 외롭게 자라난 김지혁은 시장 사람들을 아빠, 엄마, 이모로 부르며 살아왔다. 김지혁의 가족에 대한 갈증은 현성그룹 재벌가 사람들의 돈이면 생명도 살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흥미롭게도 두 드라마에는 주인공의 이런 낯선 모습에 빠져드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닥터 이방인>에서 박훈과 재준이 대립할 때 박훈의 편을 들어주는 수현이 그렇고, <빅맨>에서 동석의 애인이었지만 차츰 지혁의 따뜻한 마음에 이끌리는 소미라(이다희)가 그렇다. 수현과 소미라는 모두 재벌가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 세계에 편입되어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수현은 명우대학병원 이사장 오준규(전국환)의 서녀이고, 소미라는 평범한 집안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저들 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은 낯선 세계에서 온 박훈이나 지혁 같은 이방인들에게 끌린다.

 

<닥터 이방인>의 명우대학병원이나 <빅맨>의 현성그룹 재벌가는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징하는 공간들이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온 박훈과 동석 같은 낯선 이들은 그 현실과 부딪쳐 대결하는 색다른 영웅들이다. 그들은 서민들의 편에 서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이 낯선 세계와 싸워 나간다. 수현과 소미라가 이들에게 갖게 되는 마음은 어찌 보면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중들의 지지와 맞닿아 있다. 그 지지는 이들의 멜로를 희구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낯선 인물들이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우리네 현실에 들어와 보여주려는 건 뭘까. 그것은 결국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전하기 위함이다. <닥터 이방인>에서 탈북하며 손을 놓아버린 재희(진세연)를 찾기 위해 체면치레나 굴욕 따위조차 아랑곳 않는 박훈의 순애보는 또한 의사로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확장되어 보여지고, <빅맨>에서 자신을 이용하고 심지어 음해하려는 재벌가 앞에서 여전히 가족을 의심하지 않는 지혁의 인간애는 에둘러 비정한 자본의 세계를 비판한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과 <빅맨>의 김지혁. 낯선 그들에게 동화되고 공감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마치 수현과 소미라가 그렇게 느끼듯이 점점 그들이 낯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드라마가 이처럼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간보다는 돈이 우선인 세상. 우리는 얼마나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 낯선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우리네 현실이다.

<밀회>, 사랑과 욕망의 완벽한 변주곡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스스로 죗값을 치르러 교도소를 선택한 오혜원(김희애)이 이선재(유아인)에게 건네는 이 말은 <밀회>라는 드라마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가 드러난다. 그것은 사랑과 욕망의 완벽한 변주곡이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오혜원의 법정 최후진술 속에는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욕망의 끝단을 달렸던 자의 참회가 들어 있다. 그녀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마저 접어버렸고 대신 상류층의 삶에 동화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런 그녀 앞에 이선재가 나타났고 그가 들려준 피아노와 사랑의 속삭임은 그녀를 욕망으로부터 깨어나게 했던 것.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모든 욕망을 털어낸 후 그녀는 비로소 진짜 사랑과 자기 자신의 삶을 얻었다.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 한 귀퉁이에 기대 있는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곤 떨어지는 햇살 한 조각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작은 행복이지만 그것은 욕망의 것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밀회>격정멜로라는 수식어로 시작했지만 치정극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욕망으로 변질되는 치정극들은 넘쳐나지만, 거꾸로 욕망 속에 있던 인물이 사랑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이 과정에서 상류층의 부조리나 추악한 욕망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다뤄질 수 있었다. 비리로 점철된 학교 재단의 이야기는 마치 치열한 사회극을 보는 듯 했지만, 그 비리를 부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순수의 힘이었다.

 

피아노와 음악은 사랑과 순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비리로 얼룩진 음대에서는 음악도 일종의 거래처럼 이용되었고 전시되었다. 학교로부터 버려진 친구들과 함께 이선재가 5중주를 준비하고 굿바이콘서트를 하는 에피소드는 그래서 리히테르가 말했듯 음악은 허영이 아닌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선재의 표현대로 끝까지 즐겨주는 것그것이 장땡인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해부해내면서, 동시에 스무 살 차이 연인의 미세한 심리적 변화와 떨림을 포착해내고, 또 그 위에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예술의 진정한 맛을 드라마 한 편 속에 모두 담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정성주 작가의 놀라운 필력과, 조명의 농담과 피아노 선율만으로도 인물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그 위에서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성적으로 울리거나 이성적으로 깨우는 드라마들은 많지만 이처럼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드라마는 흔치 않다. 섣부른 해피엔딩을 말하는 드라마나 충격적인 새드엔딩을 말하는 드라마는 많지만 그 둘 다를 아우른 희비극은 많지 않다. <밀회>는 욕망의 끝장이라는 새드엔딩을 그리면서 동시에 사랑의 시작이라는 해피엔딩을 담아냈다. 욕망을 벗어버리고 사랑으로 가게 하는 힘. 그것은 어쩌면 예술의 힘인지도 모른다. <밀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래도 우리가 <빅맨>을 꿈꾸는 까닭

 

업무 도중 사망한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가불해 그 가족을 먼저 도와주고,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회사 차량에 새겨 고인을 기억하며, 가족을 찾아가 그 자식에게 이제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말하는 사장. 회사의 쇼핑센터를 짓기 위한 시장 부지 매입에서도 먼저 시장 상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장. 무엇보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처럼 챙기는 사장...

 

'빅맨(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빅맨>은 서민들의 판타지다. 이런 사장이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그래서 서민들은 그런 사장을 더더욱 꿈꾸는 지도 모른다. 부유한 재벌가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나고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 머리도 좋고 배운 것도 많은 현성그룹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 고아로 자라오며 시장통에서 시장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잔뼈가 굵은 김지혁(강지환)은 그래서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현성그룹 사람들은 김지혁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려 들지만, 김지혁은 현성그룹 사람들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졸지에 현성유통 사장이 된 김지혁이, 가짜 가족 행세를 하며 그를 곤란에 빠뜨리려는 현성그룹 사람들의 음모를 뛰어넘는 건 그의 사람이 우선인 사고방식 덕분이다. 돌아온 강동석(최다니엘)이 김지혁에게 건넨 것이 돈이라면, 김지혁은 그런 강동석에게 가족으로서의 손을 내민다.

 

왕자가 된 거지의 이야기는 그 안에 가난한 자들이 공유하는 소중한 가치의 의미를 부여한다. 김지혁이 졸지에 사장이 되어 보이는 일련의 행보들은 그 자체로 지금껏 가진 자들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의 처우 따위나 시장 같은 골목 상권 따위는 아랑곳 않는 재벌가의 행태. 패션쇼를 모델들이 아닌 실제 옷을 입는 시장통 사람들을 통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판타지를 드러낸다.

 

이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의 리더 김지혁이 환기시키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리더를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 같은 골목 상권을 상인들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쇼핑센터를 지으려는 모습은 마치 파괴되는 생태계는 고려치 않고 무작정 진행된 지난 정권의 4대강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의 문제와 비정규직의 죽음에 대해 국민을 가족처럼 생각한 권력을 가진 리더가 있었던가. 세월호 침몰과 그로 인해 무너져 버린 신뢰는 먼저 제 한 몸 살자고 도망친 선장처럼 리더 없는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한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리더십이 지워버린 것이 사람이 먼저라는 고귀한 가치다. <빅맨>의 김지혁이라는, 세상에 없는 리더의 판타지는 그래서 우리를 가슴 뛰게 하면서도 슬프게 만든다. 저런 리더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과 저런 리더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때가 되면 빅맨을 꿈꾼다.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서민들의 편에서 서민들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줄 빅맨. 이 배운 것 없고 변변한 학벌도 집안도 없는 김지혁이라는 리더를 굳이 빅맨이라 지칭하는 건, 진정한 빅맨이란 그럴 듯한 간판이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워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빅맨을 꿈꾼다.

<정도전>,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역심인가 민심인가. 썩어 빠진 조정을 쇄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정도전(조재현)이 오로지 생각하는 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서 잘못된 나라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민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역성혁명이기도 하다.

 

'정도전(사진출처:KBS)'

충심인가 타협인가. 한편 정도전과 맞서는 정몽주(임호)는 그래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은 하되 그 개혁 또한 나라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 역성혁명이란 민심을 빙자한 정치적인 야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에 대한 충심이기도 하지만 또한 타협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도전이 혁명을 위해 꺼내놓은 카드는 사전을 혁파하겠다는 전제 개혁이다. 가진 자들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려는 것. 이것 때문에 스승인 이색(박지일)과 그는 날선 대결을 벌인다. 결국 이색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를 반대하는 정몽주와 철회는 없다는 정도전이 다시 맞선다.

 

삼봉은 지금 정치를 포기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소임은 절충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을 서슴지 않는 것은 야만이란 말입니다(정몽주).” “정치의 소임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수백 년 간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밥버러지들과 절충이라뇨. 야합이고 불의이며 백성들에 대한 배신입니다(정도전).”

 

KBS 주말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과 정몽주가 대립하는 이 장면들은 무려 6백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역사지만 지금 현재 우리네 현실과 고스란히 맞닿아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낸다.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배고픈 걸인들의 모습이 과거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도전이 그 걸인들과 길바닥에 앉아 만두를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것이 그토록 대중들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 것은 현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은 어느 순간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몇몇 가진 자들의 배만을 불리게 해주며 거짓말을 일삼으니 국민이 국가를 국가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도전>은 끝까지 고려를 선택하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 정몽주와, 국가가 아닌 백성을 선택해 조선을 세운 정도전을 대립시킨다. 이 둘의 설전은 그래서 지금 현재 국가냐 국민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을 환기시킨다. 한쪽에서는 그래도 애국을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힘겨운 현실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국민을 말한다.

 

역사책을 열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극화한 정통사극 <정도전>이 이토록 대중들의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막힌 과거와 현재의 조우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결국 현재에 의미 있는 과거를 찾아내는 일이 아닌가. 국가인가 국민인가를 묻는 <정도전>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도전인가 정몽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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