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드라마의 악역, 돈으로 귀결되는 까닭

 

결국은 돈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대부분이 추악한 돈의 문제를 다룬다. 새롭게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 김석주(김명민)는 돈이 된다면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됐던 분들의 고통도 나 몰라라 하고 일본 기업의 편에 서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법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돈 있는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나갈까만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로펌을 이끌고 있는 차영우(김상중)는 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죄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야. 그가 죄가 있어도 죄를 입증시키지 못했다는 뜻이지.” 이 드라마 속 변호사들은 결국 돈의 생리를 따라간다.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고 없으면 유죄가 되는 것. <개과천선>은 그 대표격인 김석주라는 변호사의 말 그대로의 개과천선을 다루는 드라마. 세상에서 필요한 건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라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드라마다.

 

KBS <골든크로스>는 경제를 움직이는 0.001%의 집단이 벌이는 추악한 범죄를 다룬다. 마치 과거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드라마는, 돈이 된다면 멀쩡한 은행도 부실로 만들어 헐값에 외자에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고위 경제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이야기 한다. 이 과정에서 강도윤(김강우)의 집안은 파탄이 나 버린다. 여동생은 살해당하고 그 여동생 살해의 용의자로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이른바 골든 크로스라는 집단이고 그 뒤에는 결국 돈이라는 절대 악역이 자리해 있다.

 

SBS <쓰리데이즈> 역시 남북 간의 긴장관계를 만들어 그걸 통해 무기거래 같은 이익을 보려는 팔콘이라는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팔콘의 개가 된 김도진(최원영)은 이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조차 무감하게 받아들인다. 또 이를 막으려는 이들을 한 명 한 명 제거하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제거하려 한다. 팔콘이라는 조직이 뒤에 놓여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본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돈이면 전쟁도 불사하는 그들이다.

 

KBS에서 월화드라마로 새로 시작한 <빅맨> 역시 이 자본이 가진 더러운 본질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고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살던 김지혁(강지환)이 갑자기 재벌가 2세가 되는 이면에는 그의 심장을 필요로 하는 재벌가 자제가 숨겨져 있다. 결국 심장이식을 위해 숨겨진 자식인 척 가장하는 것. 이 이야기에는 돈이면 사람 생명도 제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자본의 무시무시한 자만이 들어가 있다.

 

최근 드라마들이 다양한 장르물들을 시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절대 악역으로서 등장하는 자본의 문제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는 어째서 이토록 대중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양극화가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이들 드라마들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게다. “난 무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쓴 게 그게 죄냐?”하고 말하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처럼, 지금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은 스스로를 무죄라고 말 할 만큼 뻔뻔해져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듯 돈의 문제는 인명 앞에서조차 이제 모든 걸 결정하는 최종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비통한 상황이다. 하지만 돈이면 과연 다 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는 선택은 과연 온전한 무죄일까. 나의 선택이 타인의 고통이 되지는 않을까. 지금 드라마들이 자본을 절대 악역으로 출연시켜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엔젤아이즈>,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는 이유

 

SBS 주말드라마 <엔젤아이즈>의 첫 회 시청률은 6.3%(닐슨)로 미미했다. 하지만 일주일마다 <엔젤아이즈>2%씩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다음주 8.8%를 기록한데 이어 그 다음 주에는 무려 11%를 넘어섰다. 3주만에 두 배 가까이 시청률이 급상승한 것. 도대체 <엔젤아이즈>의 그 무엇이 이런 급부상을 만들어냈을까.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처음 시청률이 미미했던 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SBS 주말드라마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주중드라마는 SBS가 단연 선두를 이끌고 있지만 주말드라마는 KBSMBC에 밀려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SBS 주말드라마는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막장 없는 착한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가족드라마 틀을 과감히 벗어나겠다는 것.

 

<엔젤아이즈>는 주말드라마 답지 않게 본격 멜로에 119 구급대원, 의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적 성격을 접목했다. 시작부터 보여준 터널 사고 장면은 블록버스터의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 주말드라마로서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멜로에 초점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엔젤아이즈>는 장르물적 성격을 떼어놓고 보면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첫 사랑이 있고, 엇갈린 운명에 의해 헤어지고 12년 후 다시 만나 과거 추억의 장소를 더듬으며 그 때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퀀스들이 그렇다. 결국 남녀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12년이라는 공백이 만들어낸 두 사람의 다른 상황은 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어린 시절 겪은 사건들 배후에는 이들 부모들의 숨겨진 비밀이 놓여져 있어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에도 불구하고 <엔젤아이즈>는 여기에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적 설정들과 새로운 주제의식 등을 덧붙임으로써 훨씬 풍부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거기에는 119 구급대원과 의사라는 직업의 디테일들이 에피소드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적인 세련됨이 있고, 이들 직업들이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 머물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동주(이상윤)의 어머니 유정화(김여진)는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가족애 그 이상의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사고로 눈이 먼 어린 수완(남지현)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결국 그녀에게 눈을 주고 저 세상으로 떠난 인물이다. 가족과 멜로를 뛰어넘는 이러한 휴머니즘은 드라마를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인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한편 수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유정화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동주를 자식처럼 키워내는 수완의 아버지 윤재범(정진영)도 복합적인 인물이다. 사적인 선택과 공적인 죄책감이 뒤섞인.

 

이처럼 <엔젤아이즈>는 평범할 수 있는 사적인 멜로의 틀을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적인 영역을 투영시켜 사회적 멜로로 확장시킨다. 아마도 소방관과 응급실 의사라는 위급상황이 주는 인물들의 절절함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희구하게 된 생명에 대한 포기 없는 노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먼저 간 유정화의 묘소 앞에서 그녀가 주고 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수완의 모습은 타인이라도 가족처럼 눈물 흘리게 되는 이번 참사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엔젤아이즈>라는 드라마 한 편이 이 거대한 비극을 온전히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전해주는 타인에 대한 휴머니즘과 확장된 가족애는 이번 비극을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게 해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귀한 죽음은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준다. 그 눈은 이제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입체적인 복합 캐릭터, 이 시대의 얼굴이 된 까닭

 

정은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내시의 얼굴이다. MBC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과 짝패를 이뤄 했던 연기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정은표의 일면밖에 모르는 얘기다. 사실 그는 꽤 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결의 얼굴들을 보여준 바 있다.

 

'<쓰리데이즈>와 <신의 선물 14일> 사진출처 SBS'

MBC <구암 허준>에서 그가 한 임오근이라는 역할은 허준(김주혁)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유의태의 제자이면서 한때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를 배신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SBS <돈의 화신>에서는 황장식이라는 변호사 역할로 이 복마전 같은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고, SBS <싸인>에서는 김완태라는 국과수 연구사로 등장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가 맞는 역할들은 복합적이면서 입체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가 가진 얼굴이 꽤 다양한 야누스의 변신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 14>에서의 기동호 역할은 그 정점처럼 여겨진다. 기동호에게서는 세 가지 얼굴이 동시에 보인다. 그것은 살인자의 얼굴과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의 얼굴 그리고 한없이 순박한 형의 얼굴이다.

 

지능이 조금 낮은 모습은 그가 진짜 살인자인지 아니면 그저 착하기만 한 형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은 <신의 선물 14>의 후반 반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은 동생 기동찬(조승우)이 살인을 저지른 줄 알고 그걸 자신이 뒤집어쓰려 했다는 것. <신의 선물 14>에서 정은표가 동시에 보여주는 이 세 가지 얼굴의 연기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백미이면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다.

 

한편 SBS <쓰리데이즈>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김도진 회장 역할의 최원영 역시 이 복합적인 얼굴의 연기를 보여준다. 최원영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건 아마도 MBC <백년의 유산>에서 미워할 수 없는 마마보이 김철규 역할을 소화해냈을 때일 것이다. 그는 이 역할을 통해 전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SBS <상속자들>에서 최원영은 제국그룹의 비서실장으로서의 철두철미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찬영(강민혁)의 프렌디(friend+ daddy)로서의 따뜻함과 RS인터내셔널 대표인 이에스더(윤손하)와의 강렬한 밀당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얼굴을 보여주었던 것.

 

<쓰리데이즈>의 김도진 회장은 젠틀한 신사의 외관에 잔인한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살인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사람 목숨 따위는 쉽게 거둘 수 있는 그런 인물. 대통령을 좌지우지 하는 인물로서 이 드라마에서 김도진 회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다. 드라마의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한 역할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복합적인 연기는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은표와 최원영이 심지어 한 캐릭터에서도 보여주는 야누스의 얼굴은 작품의 결과 방향성을 다양하게 변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새삼 느껴진다. 단순한 일면적 캐릭터는 어쩌면 이 복잡한 시대에는 구시대의 산물이 된 지도 모른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그것이 이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얼굴이다.

<쓰리데이즈>, 달라진 대통령상이 말해주는 것

 

난 무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쓴 게 그게 죄냐?” 재신그룹 김도진 회장(최원영)의 이 한 마디는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오로지 돈이 된다면 뭐든 정당화되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그것이 바로 김도진이 아닌가.

 

'쓰리데이즈(사진출처:SBS)'

<쓰리데이즈>는 대통령을 저격하려는 총성에서부터 시작되는 드라마다. 지금껏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대통령이라면 그래도 말 한 마디로 문제를 척척 해결해내는 최고 권력자였다. 하지만 <쓰리데이즈>에서의 대통령을 보라.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의 총구를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인물이다.

 

또한 대통령이라 하면 과거의 도덕성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인물로 그려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쓰리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손현주)는 한때 팔콘의 개였던 인물이다. 그는 무기거래를 위해 북한에 거액의 돈을 건네고 남한 양진리에 남파 공작원들을 침투하게 만든다.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킨 후, 무기거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도진 회장은 이동휘의 인명 피해는 없게 해 달라는 요청을 어기고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다. 그 정도의 사건이라야 무기거래까지의 성사가 일사천리로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이동휘에게 김도진은 대통령직을 제안한다. 결국 대통령도 자본의 힘에 의해 세워지는 세상이다.

 

그러니 자본이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이제 남은 건 경호원들의 특별한 직업정신뿐이다. 저격사건이 벌어질 때 일반인들은 몸을 피하는 게 상식이지만 이들은 총을 향해 몸을 던져 대신 총알을 받아내도록 훈련받은 인물들이다. 이 직업정신은 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다.

 

하지만 그것마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호실장 함봉수(장현성)는 김도진 회장이 이동휘의 과거를 폭로하자 경호해야할 대통령에게 총구를 돌린다. 그리고 부하 경호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원죄의식처럼 대통령의 과거는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이처럼 <쓰리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는 여러모로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대통령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거기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깔려 있다. 권력자들이 때로는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무고한 양민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것. 이것은 지금 현재 양극화의 길로 들어선 우리네 경제가 힘없는 서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 같은 일부 권력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위에 존재하는 자본의 생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쓴 게 죄냐는 말 속에는 그래서 한때 경제만 살리면 다 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나를 상기시켜준다. 자본은 그 생리상 부를 축적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그게 죄가 아니라고?

 

<쓰리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는 그래서 지금 자신이 한때 잘못 생각했던 것들을 되돌리기 위해 속죄의 길을 걷는 중이다. 경호관의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저격범들의 총구 앞에 세워 놓는다. 하지만 이런다고 자본의 생리가 바뀔까.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자본의 힘. <쓰리데이즈>는 어쩌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속죄와 희생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러한 자본의 생리를 모든 이들이 인지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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