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만에 30% <참 좋은 시절>이 말해주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새로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짜증 가득한 불쾌함을 종영까지 보여주었던 반면, <참 좋은 시절>은 이제 단 2회 밖에 안했지만 벌써부터 가슴 가득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경주의 작은 마을로 15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검사 강동석(이서진). 그가 15년 만에 귀향하게 된 것은 경주로 발령이 나면서다. 어린 시절 식모살이하던 엄마와,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세 지능에 멈춰버린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강동석의 배다른 동생으로 엇나가버린 남동생 강동희(택연)... 강동석에게 고향이란 잊고 싶은 아픈 과거로 남은 곳이다.

 

<참 좋은 시절>은 고향으로 돌아온 대쪽 같은 성격의 검사 강동석이 그간 없는 듯 치부하며 살아왔던 가족을 찾아와 그 온기와 정을 다시 찾아가는 드라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강동석이 집을 찾아와 마음에 앙금과 죄송함이 함께 남아있는 어머니 장소심(윤여정)을 만나는 장면이나, 손자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를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강동석 앞에 놓여진 가족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 헤쳐지고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집주인과 식모의 자식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에 힘겨움을 겪었던 해원(김희선)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공식과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드라마의 시작이란 문제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강동석이 경주로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동석과 해원의 사랑이야기는 차라리 멜로드라마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런 구성이나 이야기는 같은 시간대의 전작이었던 <왕가네 식구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처럼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을 반복하는 클리쉐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단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참 좋은 시절>은 완성도 면에서나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나 여러 모로 완성도 높은 착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드라마라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극성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내고 개연성 있는 인물에 공감시켜 풀어내느냐가 그 차이인 셈이다.

 

심지어 막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왕가네 식구들>이 줄곧 내세웠던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좋으니 좋은 드라마라고 했던 것. 하지만 어디 그럴까. 시청률은 막장을 거둬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2회 만에 참 좋은느낌을 선사하면서도 30%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래서 이 주말드라마 시간대의 시청률이 가진 허상을 거꾸로 말해준다.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잣대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얻어내는 30%의 시청률과 온갖 짜증과 분노를 자극해 얻어내는 30% 시청률이 같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참 좋은 시절>이 거둬가는 30% 시청률은 그래서 <왕가네 식구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시청률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완성도 높고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소위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드라마가 아니고.

<세결여>, 시청자 목소리 담은 임실댁의 촌철살인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확실히 초반부와는 다른 드라마의 색깔을 보이고 있다. 초반에는 이혼 후 결혼하면서 아이와는 떨어져 지내는 은수(이지아)를 보여주면서도 그 자극적인 설정보다는 오히려 결혼생활을 탐구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시청률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제 아무리 김수현 작가라도 일단 시청자들이 봐야 그 안에 결혼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도 보이기 마련이니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그래서 생겨난 강한 캐릭터가 바로 채린(손여은)과 다미(장희진). 다미는 은수의 남편 준구(하석진)와의 불륜을 끝내지 못하는 캐릭터로 은수의 불행에 관여한다. 물론 다미보다 더 나쁜 캐릭터는 준구다. 그는 거의 부부강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는 인물인데다, 이제 아빠가 될 인물이면서 여전히 불륜 행각을 저지르는 인물이고, 게다가 불륜의 대상인 다미에게조차 좋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극도로 자기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인물로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결혼이라는 틀에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채린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하기에는 너무도 미성숙한 인물. 그녀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런 그녀가 계모로서 의붓딸까지 거둔다는 것은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채린이 그녀의 의붓딸 슬기(김지영)에게 독설을 퍼붓고 함께 우는 장면은 채린의 정신연령이 슬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잘못한 게 뭐예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도대체 이집에서 나를 제대로 대접하는 사람이 누구에요. 어른들이 나를 우습게 아니까 애까지 나를 깔보는데. 깔보다 못해 깜찍하고 앙큼하게 나를 속이기까지 하는데. 분에 피가 거꾸로 도는데 그까짓 녹음기가 뭐라고. 상속 날아갔다니까 그 순간 얼굴 바꾸신 시어머니. 바로 몇 시간 전 자기가 한 말 뒤집고 여우같은 시누이 불러내 나를 부채질 아이까지 나를 조롱하는데 어떻게 참아.”

 

그녀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에게 게임만 하다가 바보 될래? 너 바보 돼. 바보 될 거야.”라고 말한다거나 내가 니 엄마야 잊어버리지 마 너도 나도 팔자니까 어쩔 수 없어. 또 한 번만 싹수없는 짓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발가벗겨 내쫓을 거야.” 같은 말은 단순히 계모 본색이라 말하기에는 너무 심한 그녀의 무개념을 보여준다. 그녀는 거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에 가깝다.

 

친엄마가 녹음해준 동화를 몰래 듣는다고 그걸 빼앗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발로 밟아 부숴버리는 그런 행동을 하는 채린은 그래서 조금 밋밋했던 이 드라마에 강한 조미료 역할을 해준다. 마치 아침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캐릭터. 하지만 이런 자극이 들어가면서도 이 드라마가 어떤 균형을 맞춰주려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그녀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임실댁(허진)이다.

 

아이가 울면서 채린이 저지른 일들을 토로하자 채린은 거짓말이라며 극구부인하지만 그 옆에서 감초처럼 한 마디를 집어넣는 인물이 바로 임실댁. “야가 없는 말을 하는 아이는 아녀 응?” 이런 대사는 다분히 이 모든 채린의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시청자의 답답한 마음이 임실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속 시원히 터지고 있는 것.

 

남편 정태원(송창의)조차 질책을 당하고 집을 나가버린 채린을 찾아나서는 임실댁에게 최여사(김용림)찾아 나설 것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임실댁의 대사가 기가 막히다. “그래도 한 솥밥 먹고사는 디 그러면 인심 어디 쓰겄쓰라우... 이웃에서 알고 지들끼리 소곤거리면 뭣이 좋겄소. 저 집 며느리 또 내쫓을라구 그러는갑다 그럴 거 아니요.” 이것은 채린의 행동에 덧붙여 최여사가 그간 은수에게 했던 행동들을 꼬집는 말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임실댁 어록이 흘러나올 정도다. “사람 무시하지 마소잉. 내가 나이를 갑절은 더 먹은 사람이요.”하고 가사도우미로 있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며, “새 사람 들어와두 줄어드는 일은 없구...나도 염색 장갑끼구 안 태났소.”하며 은근히 채린을 다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밥이 체한 게 아니라 욕심이 체했지잉. 욕심이 욕심. 그란디 김치국물이 욕심도 삭힐랑가는 모르겄네잉.”하며 바른 소리를 해대는 인물.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달라지고 있는 결혼 세태에 대해 탐구하듯 접근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드라마다. 이제 남편의 불륜행각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두 번째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한 은수가 그렇고,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자기 생각밖에 못하는 미성숙한 채린 때문에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는 태원이 그렇다.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기 싫다며 동거를 선언한 은수의 언니 현수(엄지원)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니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깨치고 나오는 인물이 다름 아닌 임실댁이다. 그녀는 특유의 혼자 중얼거리는 짧은 논평(?)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고 있다. 물론 많이 배우지는 못한 인물로 또 가사도우미로 살아가는 서민적인 인물이지만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많이 배웠다는 인물들과 그럴 듯한 화려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부자들보다 그녀는 훨씬 인간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드라마가 어떤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최고 캐릭터로 등극했다.

<별그대> 새드엔딩 가능성 희박한 이유

 

<별에서 온 그대>의 엔딩은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그 결과는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흘러온 흐름을 통해 들여다보면 조심스럽게 그 결과의 가능성들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 <별에서 온 그대>가 그린 것은 궁극적으로 그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모든 것을 빼앗은 소시오패스 이재경(신성록) 같은 인물이 들어있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또 그의 위협을 받는 천송이(전지현)를 초능력으로 보호해주는 도민준(김수현)이 있어 슈퍼히어로물의 판타지가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장르는 멜로,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다.

 

천송이와 도민준의 밀고 당기는 감정 놀이가 그 중심에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판타지적인 즐거움을 목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새드엔딩은 이 작품이 흐름 상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것이 지금껏 이 작품에 몰입해온 시청자들의 흥취를 깨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일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는 또한 두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이재경 같은 소시오패스의 위협이나 이휘경(박해진) 같은 애정의 라이벌은 겉으로 드러난 장애물일 뿐 근본적인 장애물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이 두 사람이 외계인과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과거 <ET> 같은 외계인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질적인 존재들의 우정이나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뱀파이어와 소년의 사랑을 그린 <렛미인>이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같은 여러 종족이 뒤엉킨 사랑이야기를 다룬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같은 부류.

 

과거 제거되어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이 사랑의 대상으로 고민되는 것은 지금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에 돌입해 있다는 징후다. 다른 존재들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다양성으로 존중된다. 그러니 <X> 같은 존재들도 어떻게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며 공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궁극적으로 이 이질적인 존재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또 장애를 극복하거나 혹은 감수하는가를 보여준다. 인간과의 신체접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도민준이 천송이와 키스를 하고, 또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위험에도 떠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 사랑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도민준은 그래서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이 결국은 희생을 전제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외계인과 인간으로 극화되어 있지만 사실 이건 우리네 인간들의 사랑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 각각의 인간들은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정부분을 희생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도민준은 이미 그 희생을 보였고 그 희생의 대가로서 일어날 수 있는 징후들을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그는 점점 능력을 상실해간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천송이가 도민준에게 자신을 다시 초능력으로 띄워달라고 요구하지만 도민준은 그녀를 띄우는 걸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물론 그 장면은 마치 남자의 성적 능력 상실을 패러디한 것처럼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사랑이 가진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늙어 간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눈을 감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사랑이다. 도민준이 살아온 4백년의 시간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낼 무한한 시간들 속에서 그와 그녀가 만난 그 짧디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이 없었다면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은 실로 양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질적인 개념이다.

 

그러니 도민준이 <ET>처럼 천송이와의 이별을 고하고 제 별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렛미인>처럼 훗날 어떤 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걸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 속에 담겨진 비극적인 요소는 그래서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더욱 삶이 누군가의 사랑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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