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작지 않은 질문

 

현재의 미래(윤은혜)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가 이길 것인가. <미래의 선택>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관점은 사뭇 새롭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들이 주로 주인공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 드라마는 그것이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명적으로 결정된 대로 이뤄진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다룬다.

 

'미래의 선택(사진출처:KBS)'

그래서 <미래의 선택>이라는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현재의 주인공인 미래(윤은혜)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의 의미와 말 그대로 ‘미래의 선택’ 즉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긍하며 살아갈 것인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전자가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능동적인 입장을 말해준다면 후자는 운명론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는 현재를 바꿔 미래 또한 바꾸려는 능동적 입장처럼 보이지만 이 판타지적인 설정에는 이미 운명론이 개입되어 있다. 즉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미래에서 온 미래가 바꾸려는 선택이 남편감이라는 점은 그 운명론적인 입장을 잘 말해준다. 그녀는 한 여자의 앞날이란 어떤 남편을 만나는가에 달려 있다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미래(윤은혜)는 생각이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서른두 살이 먹도록 꿈같은 건 접어둔 채 콜센터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 그녀의 절박함이 들어있다. 늦은 나이지만 그녀는 방송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나이도 많고 학벌도 변변찮은데다 집안도 그저 그런 그녀의 스펙과 그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작금의 취업난을 겪는 청춘들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나이 먹고 앵커자리에서 좌천되어 아침방송 진행자가 된 김신(이동건)과 이 방송국을 소유한 이미란 회장의 손자이지만 이 아침방송의 막내 VJ로 일하는 박세주(정용화)라는 캐릭터 역시 이 운명론과 미래 개척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김신은 과거에 얽매여 있어 여전히 자신이 앵커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방송을 위해 물벼락을 맞을 각오도 되어 있는 현실 개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박세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벌2세라는 위치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방송 말단직을 하며 현실을 알려고 한다.

 

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은 그들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단순한 멜로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에서 온 미래(최명길)는 운명론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재의 미래(윤은혜)는 비로소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삶 대신 보다 나은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삶을 선택한다.

 

과거에 얽매여 있던 김신에게 미래는 현실을 알려준다. 아침방송의 진행자면 거기에 맞게 망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신은 그 말에 수긍하고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인다. 박세주는 팍팍한 방송 생활에 지친 미래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한편, 그녀를 통해 재벌가의 2세로 있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치열한 샐러리맨들의 삶을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관계는 멜로로 엮여있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다.

 

잘 나가는 리포터인 서유경(한채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떻게든 방송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PD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인물. 하지만 그녀에게 박세주가 “당신은 이미 방송을 할 때 멋진 프로다”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괜스레 눈물을 흘린다. 윗선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던 그에게 박세주가 어떤 변화의 동인을 제공한 셈이다.

 

물론 <미래의 선택>은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의 정서를 충분히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만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어딘지 허허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게다. 사실 요즘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치열해진 현실 속에서 멜로니 결혼이니 하는 얘기는 때로는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미래의 선택>이 괜찮은 드라마라는 건 바로 이 현실적인 문제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제대로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 이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태생적으로 이미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가 주는 그 암담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미래의 운명을 보기 위해 점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결국 그 점집 문을 나서면서 다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래가 어떻든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실컷 살아보는 건 어떤가. 즉 미래란 결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가 하나하나 쌓여 생기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선택>은 이 결코 작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임성한 월드의 농단

 

사실 <오로라공주>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를 비평하는 게 직업이지만 처음 몇 회를 보고는 또 다른 임성한 월드의 반복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임성한 월드에서는 끝없는 잡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임성한 월드에서 비상식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비상식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건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으레 임성한 월드는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눈치다. 눈에서 레이저가 안 나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자기 드라마에 자기 친조카를 연거푸 출연시켰다는 것은 임성한 월드의 뻔뻔한 권력적 구조를 잘 말해준다. 백옥담이라는 예명을 가진 임성한의 조카는 <아현동 마님>, <신기생뎐>에 이어 <오로라공주>까지 출연했다. 흔히들 작가와 배우의 사단을 얘기하면서 ‘패밀리’ 운운하지만 진짜 패밀리가 이렇게 계속 캐스팅 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오로라공주>에서는 중요한 배역도 아니면서 주연급 못지않은 분량을 할애 받았다고 한다.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다.

 

반대로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하차를 거듭했다고 한다. 오로라(전소민)의 오빠 역할을 연기한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를 비롯해 김정도, 송원근 등 무려 8명의 배우가 하차했다는 것. 무슨 전쟁드라마나 호러물도 아닌데 이렇게 주요배역들이 갑작스럽게 외국으로 떠나는 식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항간에는 ‘서바이벌 드라마’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드라마는 물론 작가가 구상해 내놓는 세계지만 일단 캐릭터와 관계가 주어져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나면 작가도 맘대로 해서는 안되는 세계다. 이것은 작가가 이미 캐릭터를 선보였을 때 대중들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즉 갑자기 캐릭터를 하차시키거나 심지어 죽이거나 하는 건 드라마를 통한 대중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이다. 무려 9명이나 하차시킨 임성한 작가는 그 행위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횡포를 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로라공주>에서 하차하게 된 손창민은 YTN라디오에서 “황당하다”고 하차의 소감을 전했다. 물론 임성한 작가를 콕 집어 비판한 건 아니지만 그의 진술은 하차 과정조차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어저께 밤까지 녹화를 하고 새벽에 끝났는데 그 다음날 12시쯤에 방송사의 간부가 전화를 해 '이번 회부터 안 나오게 됐다'고 하더라. '이유가 뭐냐, 명분이 뭐냐'고 물었지만 '없다, 모른다'고 하더라.”

 

출연료 문제가 아니었냐고 묻는 앵커의 질문에 손창민은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아마 모든 이번 일의 키포인트는 오로지 한 사람이다”라고 답한 후 “내가 지적을 안 해도 다 아실 거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드라마 대본 전개를 통한 하차이기 때문에 손창민 말대로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 모든 문제가 임성한 작가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한 보도매체에 의해 <오로라공주>의 미리보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임성한 작가의 요청 때문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도대체 왜 드라마의 홍보에도 도움이 되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굳이 제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관계자 측의 말로는 “미리보기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작가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미리보기는 오히려 논란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

 

사실 임성한 작가에게 중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수로 보면 분명 드라마계의 선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있는 작가가 이렇게 드라마를 제 맘대로 농단해도 과연 괜찮은 걸까. 임성한 작가의 비상식적인 일련의 행동들도 문제지만 이것을 아무런 제재나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는 방송사의 문제는 더 크다고 보인다.

 

결국 방송사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으로 그 신뢰를 유지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이토록 자신만의 세계에서 제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작가를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건 방송사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혹 이것은 임성한 월드의 권력이 방송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시청률도 결국은 시청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논란들만 쏟아져 나오는 임성한 월드에 그 누가 권력을 부여한단 말인가.

<비밀>, 왜 이토록 폭발력 있나 봤더니...

 

무고한 자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KBS2 수목드라마 <비밀>의 여주인공 강유정(황정음)이 그렇다. 사랑하는 남자가 성공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심지어 검사가 된 그를 위해 뺑소니 사고를 온전히 뒤집어쓰고 감옥에 대신 가는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트렌디한 인물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희생적인 인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밀(사진출처:KBS)'

즉 <비밀>은 겉모습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트렌디한 멜로나 치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강유정이라는 무고한 인물이 처하게 되는 고통을 통해 그 불행의 원인을 사회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보여주는 드라마다. <비밀>의 전반부는 그래서 강유정이 하게 되는 일련의 선택들이 그녀를 얼마나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가를 바닥 끝까지 보여준다.

 

그녀는 뺑소니 사고의 진짜 범인인 남자친구 안도훈(배수빈)에게 법정에서 심문을 받고 5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간다. 힘겨운 감옥 생활 속에서 안도훈의 아이까지 낳아 기르지만 결국 아이를 학대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아이까지 빼앗기며 그 과정에서 그녀는 화상을 입고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게 된다.

 

세월이 지나 출소하지만 비극은 계속된다. 아이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고 빚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나게 된 데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는 결국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된다. 그녀의 손에 달랑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죽은 아이를 뿌린 강변의 모래 한 줌이 전부다. 도대체 그녀가 그렇게 절망의 진창으로 굴러 떨어진 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두 인물이 관여되어 있다. 그녀의 애인인 안도훈과 그의 뺑소니 사고에 연인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재벌2세 조민혁(지성)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건 가해자와 피해자인 이 두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점점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점이다. 조민혁은 그녀를 철저히 망가뜨리기 위해 안도훈과 강유정의 사랑마저 시험에 들게 만든다. 안도훈은 생존 혹은 야망 때문에 조민혁의 ‘유혹’에 흔들리게 된다.

 

<비밀>의 스토리가 괜찮다는 것은, 안도훈 같은 과거 신파극에 전형적으로 등장할만한 악역 캐릭터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파극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남자의 변심을 이 드라마는 (남자는 다 그래 하는 식으로) 단순하고 막연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검사가 되려던 그 초심을 지키려 해도(이것은 강유정과의 순정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쥐고 있는 시스템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검사가 되어도 제대로 수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수사를 하다가도 윗선의 지시로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며, 그 일을 빌미로 검찰 내부에서 감찰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쥐고 흔든 후에 권력은 협박에 가까운 손을 내민다. 같이 일해보자고. 안도훈이 제 아무리 강유정과의 순정(초심)을 지켜나가려 해도 생존해야 하는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심은 안도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로 보인다.

 

안도훈처럼 야망을 가진 인물이 그저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재벌2세인 조민혁 역시 단순한 악역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애인을 잃게 된 조민혁은 마치 피해자처럼 그려지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재력을 통해 강유정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복수를 한다. 복수를 위해 부자인 그가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복수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고 연인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채 죽었다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는 강유정이 끝없이 처한 불행을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조민혁이라는 캐릭터는 모든 걸 가진 자의 사랑 역시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결혼을 M&A 정도로 치부하는 재벌가에서 사랑이란 동정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도 모르고 대신 죄책감을 갖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안도훈처럼 신분상승을 꿈꾸는 인물이나, 조민혁처럼 이미 경제적인 부를 세습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모습을 보고나면, 강유정처럼 시스템 바깥에 내던져진 인물이 처하게 되는 불행의 근원을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강유정의 비극은 안도훈과 조민혁이 의도치 않게 공조함으로써 빚어낸 사건들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시스템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민혁은 부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하고, 안도훈은 부자들의 잘못된 시스템과 싸우다가 그 거대한 벽을 느끼고는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에 조금씩 무너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시스템의 피해자를 대변하는 강유정이라는 인물의 변화다. 그녀는 부지불식간에 시스템이 교육시킨 대로 타인의 잘못조차 자신의 잘못으로 내면화하며 살아온 인물. 이것은 어찌 보면 선량하고 착한 서민들의 모습 그대로다.

 

강유정은 입만 열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안도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빠가 왜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건데.”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빚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 그녀는 왜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스스로 미안하다며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비밀>의 폭발력은 강유정의 불행을 작금의 서민들이 처한 불행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강유정이 그랬듯이 우리가 언제 가난해지고 싶었던가. 또 불행한 삶을 살고 싶었던가. 대학을 가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 같은 공포에 대학을 가지만 막상 나오고 나면 취직은커녕 등록금 빚더미에 않게 되는 그런 삶.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도 언제 잘릴 지 알 수 없는 삶. 뼈 빠지게 일해 낸 세금이 말도 안 되는 사업에 흥청망청 쓰여지고 부자들의 배만 불리게 해주는 그런 삶. 누가 이런 삶을 원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자꾸만 스스로 잘못한 것처럼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우리들의 모습. 강유정이라는 캐릭터에서는 바로 그 서민들의 선량하지만 안타까운 얼굴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강유정의 끝단에 놓인 비극을 바라본 연후에는 그녀가 진짜 비극의 이유를 바라보고 거기에 대항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어찌 그저 단순한 멜로나 치정복수극으로 읽을 수 있겠는가. 무고한 자의 고통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그 진짜 고통을 준 자들은 따로 있다는 ‘비밀’과 대면하게 하는 드라마. 이것이 <비밀>의 실로 비밀스런 폭발력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이상우의 캐릭터가 매력이 없는 이유

 

잘 생겼다. 얼굴은 미소년이지만 몸매는 짐승남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에는 유독 그의 벗은 몸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여지없이 그 드라마의 홍보 포인트로 잡혀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상우는 꽤 괜찮은 드라마에 다수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로서 그다지 확고한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번 그가 출연하고 있는 <결혼의 여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의 여신(사진출처:SBS)'

<결혼의 여신>에서 그가 연기하는 김현우라는 캐릭터는 초반에만 해도 송지혜(남상미)와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서 거의 주연으로서의 분명한 비중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드라마 상황을 보면 그를 더 이상 주연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13일에 방영된 32회만 보면 그가 출연한 분량은 강태욱(김지훈)이 무릎을 꿇고 그에게 집안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하는 장면이 거의 다다. 단 몇 분도 되지 않는 방송 분량의 그는 이제 거의 조연(그것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김현우라는 캐릭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김현우만큼 답답하게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도 드물다. 그는 송지혜에게 연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한세경(고나은)과의 결혼을 부정하지 않는 인물이다. 심지어 한세경이 그와 송지혜의 관계를 알게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한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틀에서 확실한 선을 긋지 않아 주변을 괴롭게 만드는 인물. 이른바 민폐 캐릭터다.

 

흥미로운 건 지금껏 이상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대부분 이 김현우라는 캐릭터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신들의 만찬>에서 그는 최재하(주상욱)와 고준영(성유리)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김도윤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마의>에서도 강지녕(이요원)을 사이에 두고 백광현(조승우)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캐릭터 이성하를 연기한 바 있다. 주연급인 것은 분명하지만 메인이라기보다는 주연들 사이의 멜로에 갈등을 만들어내는 보조적 역할이었던 것.

 

애초부터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 있는 캐릭터는 두 가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하나는 너무 전면에 서게 되면 주연급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그렇다고 뒤로 빠지게 되면 전혀 존재감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상우의 경우에는 <신들의 만찬>이 전자이고 <마의>나 <결혼의 여신>이 후자다. <신들의 만찬>에서는 갑자기 고준영과 김도윤의 멜로가 급물살을 타면서 주인공인 최재하와 상황이 역전되는 관계를 만들었고, <마의>나 <결혼의 여신>에서는 초반에 어느 정도 존재감을 보인 캐릭터가 뒤로 갈수록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도대체 이상우라는 연기자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늘 비슷한 캐릭터만이 그에게 주어지고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연기의 양상도 비슷비슷하게만 보여지는 것일까. 주인공들의 멜로를 방해하거나 그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역할로 이상우의 연기 역할이 규정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연기자로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주었던 게이 역할이 그나마 주목되지만 이것 역시 그의 잘 생긴 얼굴과 잘 관리된 몸이 규정하는 역할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상우는 지금 현재 그의 역할이 대부분 그의 외모와 결부된 캐릭터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과 단단한 몸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연기자로서 그것이 하나의 캐릭터로 점점 굳어지는 것은 피해야 마땅한 일이다. 마치 데드마스크를 쓴 인물처럼 자신 속에 있는 새로운 얼굴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연기자. 그가 연기하는 김현우라는 캐릭터가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연기의 전부처럼 보인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상우는 늘 이렇게 비슷한 캐릭터에 머물게 된 것일까. 이것은 그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를 작품에서 늘 비슷하게 소비해온 작가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를 연기자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소속사의 직무유기일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일인지는 몰라도 연기자로서의 성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 이상우는 스스로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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