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액션 드라마에서 멜로가 필요할까

우리나라에서 액션 드라마는 힘든 것일까. 1회 시청률 22%로 기분 좋게 시작한 '아테나'의 시청률이 18%까지 떨어졌다. 액션을 즐기는 시청자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하강곡선이다. 수애의 니킥과 차승원과 추성훈의 불꽃 액션이 1회부터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면, 2회에서는 007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태리에서의 액션 신이 압권이었다. 3회는 비첸차에서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는 걸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정우성의 액션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렇게 점점 액션은 흥미진진해지는데 왜 시청률은 거꾸로 떨어지는 걸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멜로 라인이 빨리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액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네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다. 그만큼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는 그네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과 상황이 부여되어야 몰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 상황을 '아테나'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 이미 '아이리스'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애와 정우성을 캐스팅한 것도 그런 의도가 깔려있다. 여성 시청자들에게 수애는 꽤 분위기가 있는 괜찮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작품 속에서 수애가 하는 윤혜인은 풋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함을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여자다. 물론 정우성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에 세워두어도 화보가 되는 이 마성의 배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아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멜로 라인이 빨리 서지 않고 있다. '아이리스'는 초반부에 일찌감치 이병헌과 김태희를 일본으로 보내, 이른바 '사탕 키스'를 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 확실한 멜로 라인 위에서 김소연의 역할도 살아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액션 장면들 속에서 시청자들이 멜로를 읽어내게 했다는 점이다. 이병헌과 김태희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본 것은 액션의 강렬함과 멜로의 안타까움이다.

'아테나'의 액션은 시선을 확 끌만큼 강렬하고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드라마로서 계속 흘러가야 하는 스토리 속에서 액션은 그저 강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액션과 액션 사이의 연결고리가 감정적으로 이어져야 시청자들은 몰입하게 된다. 이것은 확실히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뭐든 자유롭게 하면서 보게 되는 TV 드라마의 차이다.

과거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멜로는 마치 독인 것처럼 회자되었다. 이유는? 본래 보여주려던 전문직의 디테일과 장르적인 재미가 상쇄되고 멜로만 남는 상황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멜로를 세우면서 나머지를 소홀하게 했기 때문이지 멜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아테나' 같은 긴박감이 넘치는 액션 드라마일수록 멜로는 더더욱 필요하다. 그 끈끈한 관계는 자칫 복잡하게 정신없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드라마에 어떤 감정적인 몰입을 하게 만들고, 또 어떤 경우에는 좀 더 편안한 시청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테나'에 멜로적인 장면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우성과 이지아의 베드신이 그렇고, 수애와 정우성의 키스신이 그렇다. 하지만 멜로는 액션이 아니다. 볼거리가 아니라 좀 더 감정적인 고리가 연결되어야 한다. '아테나'의 액션은 더없이 훌륭하다. 이제 액션의 바탕으로서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할 때다.

'아테나', 수애와 정우성의 액션 멜로 역학관계

'아테나'는 정우성이 아니라 수애와 차승원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윤혜인(수애)이 정보 요원의 뒤를 쫓다가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플라잉 니킥을 선보이는 액션은 그녀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인지시켰다. 또 화장실 변기와 유리 등이 마구 부서져버리는 추성훈과 차승원이 화장실에서 벌이는 사투 장면을 통해 손혁(차승원)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부각됐다. 하지만 정우성은 달랐다. 그가 연기하는 이정우는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일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상대적으로 이정우(정우성)가 1회에 약하게 그려진 것은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들이다. 어딘지 빈 구석을 만들어놓아야 혜인과의 멜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테나'가 가진 재미의 핵심이 이정우와 혜인이 벌이는 팽팽한 액션과 멜로의 뒤섞임이라고 볼 때, 이정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힘 조절(?)은 필수적이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이정우의 초반 캐릭터는 '아이리스'에서 김현준(이병헌)이 그랬던 것처럼 혜인과의 어떤 계기를 통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나'는 그저 액션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흐름 속에 심리적인 고려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폭풍처럼 흘러가는 액션의 연속은 시청자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때론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망명한 북한의 핵물리학자를 구출하려는 권용관(유동근) 국장이 요원들을 끌어 모아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손혁과 혜인이 요원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교차 편집된 장면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연출에 있어서도 단지 그림을 찾기보다 심리적인 고려를 한다는 얘기다.

폭풍 액션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이정우가 용의자(박철민)를 취조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배치한 것도 이런 심리적인 고려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숨을 돌린 후에 드라마는 멜로 설정으로 들어간다.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이정우가 혜인을 만난 후, 다시 국정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동시에 손혁과 혜인과의 관계도 노출시킨다. 이들의 멜로적인 관계 속에 대결구도 역시 고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속을 알 수 없는 혜인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정우와 손혁 양쪽에 걸쳐진 멜로는 이중스파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이리스'가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본 아이덴티티'의 영상을 끌어냈다면, 2회의 첫 도입부 20분 간을 장식한 이탈리아에서의 액션신은 007 시리즈를 오마주한 듯한 영상을 선보인다. 클래식과 록이 배경음악으로 교차되면서 우아함과 강렬함이 뒤섞이고, 긴박한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까지 구사하며 총을 쏠 때는 사정을 두지 않는 냉혹함을 보여주는 이정우는 숀 코네리 시절의 007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액션이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카메라의 과도한 흔들림을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성이 덧붙여진 액션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탈리아 액션 장면들이 이정우의 꿈이라는 설정 역시 의도적이다. 확실한 이정우의 액션 질감을 보여준 후, 다시 본래 목적이었던 혜인과의 멜로구도로 회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전반적으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굴러가지만 전반의 폭풍 액션과 후반부의 멜로 구도를 병치하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액션과 멜로의 교집합. 이것은 '아테나'라는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액션이 앞에서 강렬하게 끌고 나간다면 멜로는 그 강렬함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면서 부드러움을 집어넣는다. 정우성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수애와 차승원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그 후에 정우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과정은, 바로 이 멜로와 액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와 액션의 병치는 다분히 우리네 드라마 시청 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너무 지나친 마니아적 액션들은 고른 시청층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테나'의 성패는 바로 이 액션과 멜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그 열쇠는 그래서 이 둘 사이에서 변화할 정우성에게 다시 돌아간다.

'괜찮아 아빠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괜찮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만큼 슬픈 말이 있을까. 자신은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일 것이다.

'괜찮아 아빠딸'의 아버지 기환(박인환)이 그렇다. 그는 딸들의 결혼에만 목매는 아내 숙희(김혜옥)와 철없이 명품백 타령이나 하는 채령(문채원), 어른스럽지만 아직은 아버지의 그늘을 찾는 애령 그리고 만년백수로 소심한 빨대(?) 하나 들고 "2만원만"을 연발하며 허풍만 떨며 살아가는 처남 만수(유승목)까지 모두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자식의 허물조차 자신의 죄라며, "이건 내 잘못이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냐."하고 말하는 기환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표상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 땅에 그냥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인 아들 딸들의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좀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그저 신파적인 아버지의 애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기환이라는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는 자신과 오래 동고동락한 직원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만인의 아버지며,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해코지를 하려한 덕기(신민수)를 용서하며 "너도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그를 감복시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인물, 그가 바로 기환이다.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이 모두 기환과 같은 건 아니다. 혁기(최진혁)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툭하면 손찌검을 하는데다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그걸 통해 돈이나 뜯어내려는 부성애를 상실한 아버지다. 진구(강성)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병원장이지만 망나니 자식 때문에 골치를 썩는 아버지고, 종석(전태수)의 아버지는 변호사지만 심지어 자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아버지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은 그렇게 늘 손만 벌리면 뭐든 쥐어주는 아버지들을 당연한 듯 잊고 사는 세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사회에서 어떤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 같다. 즉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삶은 이 드라마에서는 '정의'와 연결된다. 가지고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또 사회적인 위치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기환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환이 어느 날 갑자기 휘말리게 되는 사건 속에서 누군가의 누명을 벗겨 주어야할 법은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어주거나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이용된다. '괜찮아 아빠딸'은 그래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 사회극의 단서들을 집어넣는다. "괜찮아 아빠딸"이라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저 가족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기환이 그렇게 말할 때, 공감과 함께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의 정의를 지켜주고픈 마음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추진력이다.

수애의 니킥 한 방이 만들어낸 '아테나'에 대한 기대감

한 배우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들까. 물론 몇 년이 걸려도 쉽지 않은 게 이미지 변신이다. 게다가 여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수애가 그런 배우다. 꽤 오랫동안 단아한 이미지에 고정되어 있던 자신을 깨뜨리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가진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이미지 변신에 드는 시간은 단 몇 초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아테나'의 예고 동영상에서 수애가 플라잉 니킥을 날리는 장면이 그렇다. 한껏 날아올라 무릎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가격하는 그 시원스런 니킥 한 방은 그녀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꾸어놓았다. 그 니킥은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산산이 부서뜨릴 만큼 파괴적이었다.

물론 수애의 변신은 이미 영화 '심야의 FM'에서 예고된 바 있다. 그녀는 마치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것처럼 처음에는 우아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라디오를 듣는 대중들을 사로잡다가 아이들을 인질로 그녀를 조종하려는 스토커와 맞서면서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여배우로서, 그것도 수애처럼 단아한 기품이 하나의 아우라로 고정되어버린 여배우로서 그 껍질은 그녀에게 너무나 무거웠을 것이다. '가족'에서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그 가녀린 이미지로 고정되어버리고는, '그 해 여름', '님은 먼 곳에'까지 그녀는 주욱 그런 이미지였다. '님은 먼 곳에'는 작정하고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군인들 속에서 얇은 슬립 같은 차림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해도 거기에서는 슬픔이 먼저 느껴졌다. 그런 그녀는 '심야의 FM'을 통해 비로소 변신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 노력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으로 보상받았다.

바로 이런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수애가 날린 니킥 한 방이 영화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수애의 재발견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전쟁의 여신'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아테나'에서 수애의 잔상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아테나'에서 수애가 연기할 윤혜인이라는 캐릭터는 따뜻한 미소로 시작해서 섬뜩한 잔인함과 차가운 냉철함으로 변해가는 인물이다. 이 이중적인 이미지는 그녀가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 방긋 웃거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히면 한없이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면서도, 액션 속에서는 강인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수애라는 연기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드레 수애도 고맙지만 이젠 액션 수애로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그만큼 새로운 이미지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그녀의 변신이 기대된다. 그것은 또한 '아테나'라는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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