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에 대한 정계와 대중들의 온도차, 왜?

정치를 다뤄서일까. '대물'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대단히 민감하다. 초반 작가와 연출자가 교체된 것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물론 그건 하나의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만큼 '대물'이 다루는 정치 소재들을 현실 정치가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대물'의 서혜림(고현정)을 박근혜 전 대표와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서혜림이 박근혜 전 대표와 닮았다며 '대물'의 인기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실제로 극 중에 서혜림이 선거 유세 중 테러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가 의식을 회복하고는 "유세장은요?"하고 말하는 대사는 비슷한 일을 겪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게 한다.

'대물'에서 부정부패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집권당 민우당의 이름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쳐놓은 듯 하다는 의견 때문에 민주당측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지나치게 당리당략에만 빠져있는 모습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대물'의 하도야(권상우) 검사의 돈키호테 같은 행동이 인기를 끌자,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여야 의원 11명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검찰이 '대물' 때문에 그렇게 기가 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선으로 정치권은 악으로 그려지는 '대물'의 대결구도 때문에 검찰의 수사에 대중들은 마치 하검사가 조배호 대표(박근형)를 수사하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물' 만큼 정계의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2'라는 점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슈퍼스타K2'에서 최종 우승자가 된 허각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키도 작고 출신도 별 볼일 없는 허각씨에게 평범한 국민이 하나 둘씩 관심을 갖고 130만 표까지 모아 줬다"며 "이것이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측근들에게는 “허각씨 같은 사람이 우승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공정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슈퍼스타K2'를 빗대 박근혜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슈퍼스타K2'의 장재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 세미나에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가 대표가 최근 진보진형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라며 한 얘기다. 즉 초반에 1위를 달리다가 결국 허각과 존박에게 1,2위를 넘겨주고 3위로 떨어진 장재인처럼 박근혜 전 대표도 차기대선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계가 이처럼 '대물'에 민감한 반면, 대중들의 반응은 사뭇 상반된다. '대물'이 그리고 있는 정치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서혜림이 하는 정치의 모습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공감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드라마 제작진들은 다시 이 약화된 서혜림 캐릭터를 다시 공감 있는 캐릭터로 세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정작 대중들은 '대물'을 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 왜 정계에서는 이 작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대중들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대중문화를 보는 식견이 높아서일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물'에서 조배호 대표가 실제 민생정치와는 상관없이 이미지 정치를 하는 것처럼, 작금의 정계가 그만큼 이미지 정치에 민감하다는 반증은 아닐까. 제 논에 물 대듯, 뜨고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정계의 반응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작가, 배우, 연출자, 삼박자를 이룬 '닥터챔프'

이토록 건강한 드라마가 있을까. 독기서린 대사와 과장된 설정이 난무하는 요즘 드라마들 사이에서 '닥터챔프'는 이례적인 드라마였다. 잔잔하지만 보는 이를 충분히 매료시키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노지설 작가는 이 작품의 첫 번째 발견이다. SBS특집극 '깜근이 엄마'로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선보였던 노지설 작가는 '닥터챔프'를 통해 드라마가 자극적인 설정이나 대사 없이도 충분히 우리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지설 작가가 6개월 간 밀착취재한 태릉선수촌의 갖가지 소재들은 김연우(김소연)와 이도욱(엄태웅)이 만나는 수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풍부하게 했다. '닥터챔프'는 김연우와 이도욱, 그리고 박지헌(정겨운)과 강희영(차예련)이 엮어가는 4각 멜로를 틀로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갖고 있는 직업의 두 세계, 즉 태릉선수촌 주치의와 국가대표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두 개의 전문분야를 한 작품 속에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노지설 작가는 그러나 이를 훌륭하게 봉합해냈다.

무엇보다 노지설 작가가 보여준 군더더기 없는 상황 전개와 대사는, 엉성하게 짜여진 구성과 사족처럼 덕지덕지 붙여진 대사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에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단 한 마디를 던져도 충분히 감정이 이입되게 만드는 그 집중력은 드라마에 어떤 여운의 미학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또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멜로가 가능하고, 그 속에 따뜻한 인간의 체온을 넣을 줄 알며, 또 사회적인 이야기까지 그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은 노지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물론 이런 작가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연기를 통해 보여준 배우들이 없었다면 '닥터챔프'는 그렇게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닥터챔프'가 발견한 두 번째는 주연에서부터 조연까지 아우르는 배우들의 재발견이다. 정겨운은 그간 타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졌던 '도련님 이미지'를 단번에 지워버렸고, 대신 그 위에 때론 귀엽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강인하면서도 때론 부드러운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면모를 세웠다. 박지헌은 정겨운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여했다.

이미 '아이리스'의 여전사에서 '검사 프린세스'의 엉뚱 발랄녀를 연기하며 그 연기 영역을 넓혀왔던 김소연은 이 작품을 통해 확실한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재확인시켜주었다. 조금은 무신경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김연우라는 캐릭터는 김소연을 통해 100% 소화되었다. 이것은 '선덕여왕'을 통해 일찍이 강인한 이미지를 보였던 엄태웅에게도 마찬가지다. 엄태웅은 어딘지 비뚤어진 듯 보이지만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이도욱을 입술을 약간 비트는 얼굴만으로도 표현해냈다. 또 이도욱의 상대역으로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 차예련도 빼놓을 수 없다.

'닥터챔프'는 무엇보다 조연들의 발견이 많은 드라마다. 유도팀 감독인 오정대 역할을 소화한 마동석은 최근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듯 이제 외면적인 연기를 넘어서 내면 연기가 물이 올랐다. 유도선수로서 박지헌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유상봉을 연기한 정석원이나 신예이지만 강인한 인상을 남긴 고범 역할의 임성규, 아이돌 가수지만 연기를 잘 소화해낸 강우람 역할의 신동 등등, '닥터챔프'는 짧은 연기에도 굵직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들을 발견해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노지설 작가가 만들어낸 공감 가는 캐릭터들 덕분이지만, 이를 깔끔한 영상으로 만들어낸 박형기 PD의 공이기도 하다. 전작인 '칼잡이 오수정'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박형기 PD는 '닥터챔프'를 통해 스포츠의 세계와 의학의 세계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그 속에 따뜻한 사람들이 보이는 드라마를 그려냈다. 담담하면서도 감정의 밀도를 프레임 속에 잡아넣는 힘은 박형기 PD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작품의 편성 시간대로 인해 그다지 큰 시청률을 얻지 못했지만 '닥터챔프' 만큼 '발견'을 많이 하게 만든 작품도 드물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노지설 작가와 정겨운, 김소연, 엄태웅, 차예련, 마동석, 정석원, 임성규 같은 배우들, 그리고 무엇보다 박형기 PD 같은 건강한 감독의 발견은 그 어떤 시청률보다 더 값진 성과라고 생각된다. '닥터챔프'는 우리에게 하나의 '발견'이었다.

막장만 문제? 독한 드라마도 문제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는 새로 들고 나온 '웃어요 엄마'의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는 절대 막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막장은 아니고, 엄마들의 삶을 조명하는 가족극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제목은 진짜 가족극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첫 회부터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2회에서는 여배우가 되려는 딸이 강간당할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성공을 위해 이를 묵이하려는 비정한 엄마 이야기가 등장했다. 3회에서는 궁지에 몰린 엄마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딸을 술 시중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물론 작가의 말대로 이런 자극적인 설정이 그 자체로 그 드라마를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지나치게 감정과잉의 경향을 보인다. 이 작품은 마치 연극의 독백처럼 인물들의 혼잣말이 잦다. 상황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자연스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인물들이 자꾸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는 것. 그만큼 얼개가 느슨하고 우연적 요소도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김순옥 작가가 "막장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것은 아마도 최근 등장한 막장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몇몇 작품들 때문으로 보인다. '제빵왕 김탁구'는 국민드라마 반열에 들어섰지만 초반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해 막장드라마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막장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말극인 '욕망의 불꽃'은 언니 자리를 빼앗기 위해 강간을 방조하는 동생의 모습이라든가, 뺑소니로 위장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방영되었다. 거의 악마처럼 보이는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뭐든 거침없이 해버리는 장면들은 매우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막장은 아니다.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순옥 작가는 아마도 이런 작품들과 자신의 작품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욕망의 불꽃' 같은 작품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 사실 막장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TV라는 매체적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불륜이니 살인이니 하는 소재들은 이미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등장했던 단골소재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이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과 드라마로 보여지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드라마가 가진 연속극적인 속성 때문이다. 드라마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다. 매주 조금씩 끊어져서 보여지기 때문에 사실상 전체적인 완성도나 주제의식은 마지막회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된다. 20부작 드라마에서 19부가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메워지고 나머지 1부가 착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드라마는 없다.

게다가 드라마는 특성상 매번 챙겨보지 않는 시청자들도 많다. 그러니 한두 번의 자극적인 장면들도 사실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막장이 아니라고 해도 독한 설정들의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치 시청자를 자극하겠다고 작정한 듯한 드라마들의 그 의도성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비판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시크릿 가든', 앓이는 벌써 시작됐다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가 또 일을 낼 모양이다. '연인 3부작'을 거치면서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한 축을 그려내고 '온에어'와 '시티홀'을 통해 로맨스가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 구축을 모색했던 김은숙 작가는 이제 '시크릿 가든'이라는 판타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꿈꾼다. 그 곳은 피가 철철 나도 몸이 부서져라 살아가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이 사는 공간이면서 백화점 사장으로 중세 귀족들이 살 법한 판타지 속의 왕자님 김주원(현빈)이 사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크릿 가든'은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엇갈림이라는 로맨스 위에 무술감독이면서 길라임을 보호해주고 챙겨주는 임종수(이필립), 그리고 어딘지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바람둥이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를 겹쳐놓는다. 대저택에서 살아가며 뭐든 하고 싶은 것은 척척 할 수 있는 김주원에게 현실은 지나치게 시시한 것이다. 반면 대역배우로서 카메라 속 판타지 공간에서는 휙휙 날아다니며 멋진 액션을 선보이지만 컷 사인과 함께 카메라 밖으로 나오면 주인공 배우에게 모욕을 당하며 깨진 몸을 추스르는 길라임에게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어떤 기대감을 만들어낸다. 눈 앞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길라임의 현실은 김주원에게 시시하게만 보이던 현실을 바꾸어놓고, 판타지 같은 건 없다 여기던 길라임에게 김주원이라는 남자와 그가 가진 것들은 조금씩 그녀를 꿈꾸게 한다. 카메라 밖으로 나와 김주원의 스포츠카를 마치 영화를 찍듯 엄청난 속도로 모는 길라임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현실과 판타지의 만남을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길라임과 김주원의 현실과 판타지가 순간적으로 공존한다.

무엇보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드라마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하지원과 현빈이 가진 독특한 이미지 덕분이다. 하지원은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모습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보이쉬한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성적인 매력 또한 갖고 있는 배우다. 한편 현빈은 엉뚱하고 가벼운 코미디 속에서조차 어떤 진지함이 느껴지는 눈빛을 갖고 있는 배우다. 이 둘의 조합은 그래서 '시크릿 가든'을 가능하게 하고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 임종수와 오스카가 가세하면,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꽃미남 판타지의 구도가 세워진다. 한 남자와 여자가 엮어가는 로맨스가 있고, 그 여자를 남몰래 사랑하며 보호하는 보디가드가 있으며, 늘 친구처럼 분위기를 돋궈주는 멋진 남자가 있다. 이것은 '꽃보다 남자'에서부터 최근 '성균관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계보가 된 꽃미남 콘텐츠(?)의 구도를 그려낸다. 하지만 이런 전형적인 구도 속에서도 이 드라마를 새로운 설렘으로 채우는 건 역시 하지원과 현빈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 덕분이다.

하지원이라 가능하고, 현빈이어서 돋보이는, '시크릿 가든'. 이제 주말 밤 이들에 대한 '앓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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