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대한 강박이 완성도를 망치다

뭐가 그리도 급했던 걸까. 이 폭주기관차 같은 '천사의 유혹'이라는 드라마는 도대체 왜 그리도 달리고 또 달렸던 걸까. 만일 속도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의 완성도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복수극에 복수극을 넣고, 그 속에 가족관계와 연인관계를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이 드라마는 만일 속도를 조금 줄여, 감정선을 충분히 살려놓고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다면 꽤 괜찮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한 여인이 갖게 된 불륜과 아이에서 비롯된 이 불운한 가족사는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결국 그 칼날은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상투적이지만 고전적인 주제를 향해 달려간다. 신우섭(한진희)의 아내인 조경희(차화연)는 남편 몰래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주아란(이소연)의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는 그 가책으로 주아란의 동생인 윤재희(홍수현)의 후원자가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조경희의 아이였던 남주승(김태현)은 자신을 버린 모친에게 복수하려 하고, 주아란 역시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반면 윤재희는 조경희의 아들인 신현우(배수빈)와 가까워지면서 주아란과 반대편에 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멜로가 엮어지게 되자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가족관계와 원수지간, 그리고 멜로관계(여기서 멜로 역시 복수를 위한 것으로 위장되기도 한다)가 엮이면서 복수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즉 주아란은 신현우와 그 가족을 파탄내려 하지만, 신현우와 연인관계이자 그녀의 친동생인 윤재희는 그것을 막으려한다. 또 주아란이 조경희를 죽이려고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연인인 남주승은 자신의 어머니인 조경희의 죽음을 막으려고 나선다. 이것은 신현우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주아란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언니이고, 또 남주승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누군가를 위한 복수는 결국 관계라는 줄을 타고 그 칼날이 자신에게도 돌아오게 된다.

이 드라마가 결국 복수의 끝을 자살로 끝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모든 관계의 갈등은 누가 응징을 하고 당하는 것으로 끝내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일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조경희와 주아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복잡한 관계그물 속의 문제들이 해결된다. 지나치게 엮어놓은 점이 없잖아 있지만, 그 관계그물이 꽤 잘 짜여진 것 역시 사실이다. 복수극으로서는 그 특유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의 묘미는 이 복잡한 그물 속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드라마의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인물들은 조급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섣불리 모든 것을 결정하고 오해하는데, 이것이 결국에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이 된다. 즉 비극적인 끝없는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물들이 쉬지 않고 오해의 상황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다. 극적 장면에 대한 강박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지 않고 인위적인 손길(작가의 손길이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늘 극적 장면이 저 앞에 달려가고 있는데, 인물들의 감정은 저 뒤편에서 뒤늦게 따라오는 격이다.

결국 속도와 극적 상황에 대한 강박은 인위적인 작가의 개입을 만들고 이것이 결국 개연성을 망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천사의 유혹'은 속도감이 장점으로 내세워지지만 결국 그 속도감에 대한 강박이 단점으로 작용했다. 드라마에 있어서 속도감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속도를 마구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속도감이란 군더더기가 없는 선에서 이루어져야지, 아예 속도를 위해 살까지 발라내는 것은 결국 완성도에 문제를 일으킨다.

만일 속도를 조금 늦추고(그렇다고 질질 끌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에 디테일을 살렸다면 '천사의 유혹'은 꽤 괜찮은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가족과 엮어지는 복수극이라는 소재는 상투적일 수 있지만, 그 복수극에 복수극을 섞어서 그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또 다른 시도가 될 수도 있었다. '천사의 유혹'의 종영에 즈음에 아쉬운 점은 바로 그것이다.

'선덕여왕', 결국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

지난 5월 봄에 시작한 '선덕여왕'은 12월 겨울에 끝이 났다. 마지막에서 덕만(이요원)이 "스산하다"고 말하고 유신(엄태웅)이 "곧 봄이 올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은 마치 이 '선덕여왕'의 처음과 끝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만 같다. 죽기 직전 덕만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꿈속에서 어린 덕만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던 여인. 덕만은 죽음 앞에서 바로 그녀가 성장한 덕만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장한 덕만은 어린 덕만에게 앞으로 있을 시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사실 가진 건 없을 거야."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그래도 "견뎌 내"라는 것이었다.

이 엔딩 장면은 지금껏 봄부터 겨울까지 달려온 '선덕여왕'이 한 인물의 생에 있어서의 봄부터 겨울까지를 그려내고 있다는 걸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야기는 꿈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린 덕만이 그녀의 앞에 놓여진 길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 사극은 끝이 나지만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어린 덕만의 이야기로 다시 이어지면서 순환되는 것이다. 삶이란 이처럼 가진 것 같지만 가진 것 없이 사라지는 것이며, 그럼에도 견뎌 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꿈이다.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이 있어 어린 덕만은 한 치 앞에 놓여진 시련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다시 반복된다.

'선덕여왕'은 결국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미실(고현정)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서 절망적으로 그 벽을 두드리고, 그것이 오히려 희망이 되던 젊은 시절의 덕만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그것을 현실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다. 결국 미실이 가고 여왕의 자리에 오른 덕만은 그러나 함께 꿈을 꾸었던 자들과 부딪치게 되고 그 자리가 주는 천형처럼 가까운 이들을 하나씩 잃게 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긍정하게 된다. 봄의 희망과 여름의 열정을 거쳐 정점에 오르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씩 정리해야 하는 가을과 겨울의 조락이라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꿈으로 이어져 있어 다시 봄은 오고야 만다는 것을 이 사극은 보여주었다.

여성사극의 정점, 추리극적인 장치를 활용한 연출, 미실이라는 전무후무한 거대한 캐릭터 등등. '선덕여왕'에 대한 화려한 수사들은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자잘한 외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덕여왕'의 마지막 몇몇 장면들은 말해준다. 이 사극이 보여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꿈과 그 꿈을 향해 하나씩 달려 나가 성취했지만 결국은 다시 돌려줘야 하는 우리네 삶을 제대로 포착해내고 있다. 사극이 시간을 다룬다면 이러한 반복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극이 결국에는 도달해야 할 길이 아닐까.

봄에서 겨울 사이, 이 사극 속에서 어떤 이는 대업을 꿈꾸었고 어떤 이는 작은 행복을 꿈꾸었으며 어떤 이는 권력을 탐하였고 어떤 이는 사랑을 꿈꾸었다. 시간이라는 도저한 물결 위에서 그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우리는 결국 '불가능한 꿈' 속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설레고 누구에게나 두렵고 누구에게나 아픈 이 길 위를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이 사극은 "견뎌 내"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힘이 된다. 드라마가 반짝 반짝 빛나는 순간은 이처럼 삶의 한 자락을 잡아내 "삶은 다 그런 것"이라며 우리네 힘겨운 어깨를 두드려줄 때이다. 이 사극이 있어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우리는 설레는 꿈을 꿀 수 있었다.

 메시지보다는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 '아이리스'

'아이리스'가 종영했다. 단 20부작으로 두 달여 정도의 여정이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크다. 아마도 그 빈 자리는 한 동안 우리의 뇌리 한 구석에 남아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현장 속에서 흔들리며 짧게 짧게 편집된 숨 가쁜 영상들이 만들어낸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드라마 체험은 우리에게 그토록 새로운 것이었다. 감정선에만 깊게 박혀있던 우리네 드라마의 두 발은 '아이리스'를 통해 저 미드들이나 하는 것이라 치부했던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경험이 단지 실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리스'가 보여주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아이리스'가 취한 철저한 오락드라마로서의 자세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아이리스'는 어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드라마라고 보기 어렵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남북한이 공조해 국가를 뛰어넘는 아이리스라는 새로운 주적에 대항한다는 정도. 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리스'는 메시지를 추구하기보다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갖추어야할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드식의 스파이액션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르적 재미를 우리 드라마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고, 그것에 우리네 드라마가 갖는 멜로적 감성을 잘 버무림으로써 이 이국의 콘텐츠를 우리 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다. 스토리는 많은 장르들 속에서 이미 본 듯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냉전시대가 지나면서 스파이 액션물들은 사라져 갔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한 분단국가가 우리나라라는 점은 여전히 이 장르가 유용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연출은 스파이액션물이라는 오락 장르가 가진 문법에 충실하다. 시종일관 긴장감이 유지되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며 이야기는 계속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여기에 다른 점이라면 우리 식의 멜로가 적절히 포진한다는 점이다. 최승희(김태희)와 김현준(이병헌)이 일본의 아키타현에서 만들어낸 멜로의 힘은 드라마 전반에 걸쳐 흐르면서 급박한 액션 사이 사이를 채워 넣는다. 겉으로 드러난 멜로와 자신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 지도 모르는 최승희나 김현준 그리고 진사우(정준호)의 액션은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조직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사적인 멜로와 부딪칠 가능성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 숨겨놓은 조직의 비밀은 이 드라마가 움직이는 추동력이 된다.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액션의 상황 속에 들어가는 이유가 비밀에 붙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액션에 빠져들면서도 궁금증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해간다. 그리고 이 아이리스라는 조직의 비밀은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성에 김현준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김현준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멜로는 여전히 남았고, 아이리스라는 조직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한 재미를 주었지만 거의 출발선 상에 다시 서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대로 시즌2를 만든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비밀에 싸인 조직이라는 추동력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고, 그 위를 달려 나갈 새로운 인물들과 그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아이리스'는 계속해서 시즌을 이어갈 수 있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라고 하면 지나치게 결과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과보다는 과정의 재미에 충실하다. 결과에 치중하는 드라마가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과정에 충실한 드라마는 순간순간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장르 영화가 갖는 사고방식이다. 몇 시간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장르적 즐거움을 충실하게 제공하는 것. '아이리스'는 이것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시즌2를 통해 그 즐거움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인간애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설렘의 순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 라인은 꽤 복잡한 편이다. 황정음과 이지훈(최다니엘)은 서로 사사건건 다투고 싸우면서 멜로가 이어진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레지던트 3년차 이지훈과, 서운대라는 자격지심에 늘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황정음은 외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바로 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황정음은 이지훈 앞에서 늘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술을 마시고 떡실신녀가 된다거나, 서운대생이라는 게 들통 나 그것을 감추려고 생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좀 더 완벽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지훈은 정반대다. 완벽하다 못해 건조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는 오히려 빈틈을 많이 보이는 황정음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재한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 찾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가 발전해 결국 키스라는 사건(?)으로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술이라는 매개체다. 술은 황정음이 이지훈에게 마구 들이대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데, 그녀는 그것이 술 때문이라며 핑계를 댄다. 이지훈은 또 그럴 때마다 황정음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그녀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한다. 저게 멜로일까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상황은 흔한 멜로가 갖는 직접적인 사랑고백 방식의 상투성을 살짝 벗어나게 해준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따뜻한 마음 정도로 처음에는 인식되다가 차츰 그 인간애가 사랑으로 변해가는 식이다.

이것은 이지훈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멜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관계에서 이지훈은 신세경의 어려운 삶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신세경의 휴대폰을 사주고 요금을 대신 내준다거나, 그녀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계속 하라고 조언해주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따뜻한 인간의 순수한 호의로 다가온다. 그런 호의에 신세경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손수 짠 목도리 같은 정성으로 보여준다. 즉 이 멜로에서도 그저 말이나 몸으로 전해지는 직접적인 남녀 간의 사랑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인간애의 모습이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매개물로 전해질 뿐이다.

한편 황정음과 신세경, 그리고 정준혁(윤시윤)이 엮어가는 멜로는 실로 그 전파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신세경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녀의 학업을 도와주려는 정준혁은 자신이 그럴 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성적을 올리고 싶어하고 황정음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정음은 자신을 누나라 부르지 않고 실제로 자신의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주는 정준혁을 내심 마음에 둔다. 그런 마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잠까지 설쳐가며 정준혁의 시험을 도와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올라가자 정준혁은 신세경을 찾아가 그걸 자랑하고, 황정음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낀다.

즉 이 세 사람 사이에 매개로 끼는 것은 바로 공부가 된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이 관계 속에서 그것이 흔한 멜로가 보여주는 질투와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서로가 서로의 학업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이들의 사랑과 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정음, 신세경, 이지훈, 정준혁이 보여주는 멜로는 직접적이지 않고 그 사이에 어떤 매개물을 넣음으로써 세련되면서도 훈훈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 매개물은 때론 술이 되기도 하고, 때론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물질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때론 학업을 도와주는 식의 무형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한 인간 대 인간의 정으로 보인다.

이 시트콤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렇게 네 사람이 엮어가는 멜로가 인간의 정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이 오고가는 것을 볼 때,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흡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음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떤 거리두기가 가능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애에서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알아가는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는 바로 그 지점, 거리두기가 가능한 인간애의 차원에서, 이제 막 거리가 좁혀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곳의 설렘과 떨림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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