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는 불평등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 남자가 꽤 감성적이고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행동할 것 같은 자상함을 가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틀렸다. 요리하는 남자라고 꼭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요리사라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요리는 어쩌면 전쟁과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파스타라는 요리를 소재로 삼는 드라마 '파스타'는 이런 편견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 트릭에 동원된 배우는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격인 이선균이다. 그러니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터져버린 비닐봉지에서 떨어진 금붕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유경(공효진)의 두 손을 모아 그 위에 금붕어로 놓고 물을 부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최현욱(이선균)은, 바로 그런 요리하는 남자가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상함과 감성을 지닌 존재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한껏 푸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남자. 절대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남녀평등? 그런 건 자신의 주방에서는 꺼내지도 못하게 할 위인이다. 그렇게 부드럽게 보였던 이 남자는 이제 막 개점 시간이 되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마초적이고 제멋대로인 남자로 돌변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가 나왔을 때는 거침없이 접시째로 깨버린다.

처음에는 이 부드러운 쉐프가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조화로울 것이라 착각했지만, 점차 그 장면은 군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행동처럼 변모한다. 그는 요리를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몇 분만 더 지체되면 야수로 돌변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맞춰 척척 대응해내지 못하면 곧 죽을 것 같은 자세로 요리하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감성보다는 신속함을 담보해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이 전쟁터에 여성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그는 연인이자 라이벌이었던 성공한 요리사 오세영(이하늬)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요리사라는 자리를 그에게서 빼앗은 오세영은, 그에게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했고, 최고요리사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방에 여성이란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법적으로도 위배되는 사항이고, 명백하게 심각한 성차별이다. 맞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애초부터 겉으로는 부드러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마초가 맞다. 오세영의 배신은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남자가 봐도 참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끝으로 몬다. 특히 여성인 서유경에게 하는 짓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최현욱이란 캐릭터에게서 시청자들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마초적인 인간에게서 심지어 여성들마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것이 짐승 같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소리 지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마초라고 불리는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다. 마초라고 하면 늘 남성우월주의에 차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성희롱을 자행할 것 같지만, 그것은 상상속의 그림일 뿐이다. 마초도 부족하지만 인간이다. 아직 여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전쟁으로만 여기는 그래서 싸워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불쌍한 인간.

최현욱은 주방을 나서는 그 순간, 즉 요리라는 일과 떨어지는 순간, 마초에서 보통의 남자로 돌아간다. 그는 일의 세계 속에서 비뚤어져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평범해진다. 이것은 어떤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의 존재가 여성성을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말단 요리사인 서유경의 성장드라마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최현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또한 최현욱의 마초적인 모습은 물론 여성들을 모두 주방에서 내몰았지만, 거기 남아있는 남성들이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넘어서 한 조직 내에서의 상사와 조직원 간의 관계로 확장된다. 조직의 그런 권위적인 상사에 대한 경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갖고 있는 것들이다. 남성 시청자가 서유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남녀평등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에 여전히 존재하는 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서유경이 바로 그 권위적인 모습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 우리는 남녀를 떠나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일찍이 전문직과 멜로드라마가 만났을 때, 불평등이 다루어지던 방식이다. 불평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투쟁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 그리고 투쟁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는 바로 이 '파스타'와 연결고리를 갖는 드라마들이다. 그들은 모두 각각의 전문직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지만 모두 여성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멜로를 통해 여성성을 알아가는 존재로 변모해간다.

물론 이것은 분명 전문직과 함께 멜로를 다루는 드라마가 갖는 한계일 것이다. 왜 그들은 꼭 멜로로 그 마초적인 남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데 만족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또한 멜로라는 장르로서는 그나마 평등이라는 가치를 생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는 본래 남과 여 사이에 끼어들어 이를 방해하는 사회적 관습을 다루고, 그 관습을 뛰어넘어 남과 여가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이 목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그 관습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것이 남자가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관 혹은 세계관이다. '파스타'도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제중원, '공부의 신', '파스타'가 그리는 세 가지 성공

'제중원'의 황정(박용우)은 그 신분이 백정이다. 하지만 그가 쥐고자 하는 건 소 잡는 칼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칼이다. 백정에서 의사가 되고자하는 그 지난하고도 먼 길. 신분의 벽을 넘어야 하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야 하고, 서양의학이라는 벽을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 멀고도 험한 길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제중원'이다.

한계를 넘어 성장해나가는 황정이라는 인물. 이 드라마틱한 성장드라마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그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 중에도 언급되지만 본래 서양의사들의 시작은 칼을 잘 다루는(?) 이발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아직 서양의학이 도입되기 전인 구한말의 상황에 서양의 이발사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직종은 백정이다. 칼을 잘 다루고, 바느질도 잘 하는 데다, 무엇보다 생명에 칼을 댈 수 있는 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 의료교육기관이었던 제중원이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을 때, 박서양이라는 인물이 백정의 아들로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일곱 명 중의 한 명으로 졸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의 격동기에 백정의 아들에서 의사라는 길까지 걸어간 박서양이라는 인물의 성장 이야기가 '제중원'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공부의 신'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학교인 병문고의 오합지졸 학생들이 최고의 명문이라는 천하대에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현(유승호)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집마저 쫓겨나게 된 상황이지만 강석호(김수로)의 도움으로 천하대 특별반에 들어와 공부를 하게 된다. 풀입(고아성)은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고, 찬두(이현우)는 춤과 노래에 빠져있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다. 봉구(이찬호)는 부모의 방임으로 스스로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이 학생들이 꾸는 꿈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이 드라마는 굳이 '꿈을 꾸라'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천하대에 들어가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바로 이 점은 우리 시대의 성장에 대한 양면적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천하대라는 특정 일류대에 가는 것이 현실적인 성장이 되는 사회, 하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성장(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은 잠시 보류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담겨져 있다. "저게 현실이야"하고 긍정하다가도, "그래도 저건 좀"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바로 이 성장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파스타 요리사가 되기 위한 서유경(공효진)의 성장드라마다. 그녀는 3년이나 이태리 음식점 라스페라에서 보조로 일해오지만 드디어 프라이팬을 잡게 된 순간, 새로운 쉐프 최현욱(이선균)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현욱은 "자신의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외치는 인물. 그러니 이 성장드라마에서 서유경의 장벽은 바로 최현욱이다.

그런데 이 최현욱이라는 버럭남은 묘한 매력을 갖는다. 따라서 서유경이 요리사라는 직업으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 최현욱은 부딪치고 깨지고 넘어서야 할 인물이지만, 그저 한 여성으로서 멜로적인 판타지를 갖게도 하는 인물이다. 서유경의 성장드라마와 그녀의 최현욱과의 멜로드라마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레시피처럼 드라마 속에서 녹아든다. 직업적 성취와 사랑의 쟁취를 성장의 두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파스타'라는 드라마는 맛을 낸다.

신년 벽두부터, 이처럼 드라마들은 모두 성장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구한말이라는 과거의 시제로 날아가기도 하고, 지금 이 땅의 교육현실로 돌아오기도 하며, 라스페라라는 자그마한 조리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꿈을 꾸는 이들이 모두 백정, 열등생, 주방보조라는 측면은 이 사회의 낮은 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꿈꾸게 한다. 이것이 성장드라마가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실이 갑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꿈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현실이 그만큼 꿈꾸기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지붕킥'의 이순재,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

많은 연기자들이 있지만 지금 우리네 아버지를 대변하는 연기자 둘을 찾으라면 단연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순재와 최불암. 이 둘은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이 겪는 두 가지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캐릭터 이미지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마음 속의 아버지를 가늠하게 한다.

먼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를 통해 전 세대로 그 공감대를 넓힌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순재로 돌아와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기자, 이순재. 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아버지들이 적응해 나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야동순재'에서 중요한 것은 '야동'이 의미하는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야동'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이다.

이순재는 단지 야한 걸 봤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게 아니라, 어색하지만 바로 그 인터넷 문화로 파고들어온 아버지와의 공감대가 순식간에 세대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 와서는 이제 잠깐 젊은이들의 문화를 어깨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문화를 노년에도 똑같이 누리려 한다. 로맨스 그레이를 연기하는 그가 김자옥을 위해 각종 이벤트를 하고, 줄리엔의 김자옥에 대한 호의에 질투하는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똑같은 연애 감정을 표현한다.

이순재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것은 이처럼 젊은이들의 문화와 소통하기 위해 과거 고압적이었던 아버지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자옥 앞에서 방귀를 참다가 결국 장례식장에서 그가 폭발하듯 방귀를 꾸는 순간, 우리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이순재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여전히 사위와 딸에게 고압적인 아버지지만 그것은 늘 시트콤이라는 틀 속에서 그 이면을 드러내며 무너져 내린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은 정반대의 위치에서 우리네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최불암이 연기하는 강만복이라는 캐릭터는 지나간 아버지 시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아침에 일어나 국민체조를 하는 이 아버지는 '돈보다 귀한 것은 인연'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쥐고 달라진 현 세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귀한 인연' 때문에 과거 자신과 가족들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회장님의 아들, 서정길(강석우)이 흥청망청 사업에 실패하자, 그를 거두어 사람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달라진 세태 속에서 아버지의 이 안간힘은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서정길은 '인연보다는 돈'에 휘둘려 자식까지도 거래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이 한 세대를 거쳐 강만복이라는 아버지와 작금의 서정길이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달라진 모습은, 이 드라마가 풍자하려는 세태를 잘 보여준다.

강만복이라는 아버지는 그래서 혼자 남은 듯한 쓸쓸함에 노년을 보내지만 그래도 이 부족한 이들을 모두 가족이라 생각하며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돈 때문에 평생의 인연이 끊어지는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혼자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삼키는 강만복의 모습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달라진 세태 속에서 자꾸만 잊혀져가는 아버지의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강만복이고, 최불암은 어쩌면 허허 웃은 그 웃음 속에 담긴 수만 가지 뉘앙스로 그걸 가장 잘 연기해내고 있는 연기자라고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이제 이 권위 없는 시대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시대는 늘 젊은이들의 것이고, 아버지는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그 세계를 기웃거리거나, 달라진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과거의 가치를 향수하며 잊혀져 간다. 이순재와 최불암은 바로 그 아버지들의 모습을 대변해내는 연기자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 어른거리는 루저와 남자

언제부턴가 남자와 '루저'라는 단어가 만나면 폭발적인 반향이 일어나는 사회가 되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여대생이 건드린 이 '루저'라는 뇌관은 그잖아도 힘겨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김혜수와 유해진의 연애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이 단어는 다시 등장했다. 외모와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연애담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의 열기를 띄었다. 그 기저에는 루저와 위너라는 남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담겨진 불씨가 들어 있었다.

실제 사회 속에서 우리네 남자들의 상황은 그다지 썩 좋지 않다. 남자들은 여전히 가장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으면서도, 여성성의 사회 속에서 조금씩 여성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청년실업이니 조기퇴직 같은 사회 분위기는 물론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힘겨운 현실로 어깨를 짓누르지만 문화적인 콘텐츠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편향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방송에 있어서 여성 편향은 두드러져 왔다. 그것은 TV의 주시청층이 중년여성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현실에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와 막 TV를 켰을 때, 거기 존재하는 판타지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실로 돌아갔을 때도 어떤 힘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드라마의 캐릭터는 현실에 부재한 것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작년 '아이리스'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것이 가진 남성적인 코드 때문에 성공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성공했다. 이병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액션과 멜로 양면을 잘 섞어내는 연기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남성적인 코드는 물론이고 여성적인 코드도 잘 맞춘다는 이야기다.

'아이리스'에 이어 방영된 '추노', 이 두 드라마는 장르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지만, 묘하게도 비슷한 점들이 있다. 먼저 '추노' 역시 마초적인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길(장혁)과 태하(오지호)의 멋진 몸이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어떤 이야기나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것은 '아이리스'의 이병헌이 연기한 김현준이라는 캐릭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두 드라마는 모두 드라마로서는 보기 힘든 영화적 연출 장면들을 선보였다. 즉 영화적으로 연출된 장면 속에서 강한 남성들이 아름다울 정도로 멋지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추노'는 그 캐릭터들의 면면을 통해 이 현실의 남성들의 억눌린 감성을 건드린다. '추노'는 양반가의 외아들이었다가 멸문하고 도망친 노비를 쫓는 추노꾼이 된 대길, 조선 최고의 무장이었으나 도망노비가 되어버린 태하, 그리고 그 사이에 서서 쫓는 자의 첫사랑이자 쫓기는 자의 마지막 사랑이 된 언년이(이다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대길은 아마도 현재 우리들의 입에 붙어버린 '루저'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겉으로 보면 인간 말종의 '루저'처럼 보이는 대길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멋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고 보면 작년 한 해, 드라마보다 예능 프로그램이 그토록 약진을 했던 데는 이런 루저와 위너라는 두 단어를 가슴 한 구석에 불씨처럼 품고 살아가는 남성들의 시선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최고 히트 예능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은 모두 남성들을 캐릭터로 세우고 있고, 그 캐릭터들은 저 '무한도전'이 일찍이 세워두고 성공시킨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주창(?)하고 있다. 그 평균 이하가 열심히 하는 모습 속에서 공감과 감동과 웃음을 주었던 것이다.

'추노'의 남자들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평균 이하의 위치에 서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짐으로써 현실에 치여 답답한 남성들의 가슴 한 구석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마초적으로 보이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드라마 속 남자들이 돈과 배경 같은 권력을 통해 매력을 보이려 했다면, 이 남자들은 오로지 노동으로 단련된 멋진 몸뚱아리 하나로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여성성으로만 포장된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 가요계에 '짐승남' 같은 마초적인 아이돌들이 등장하고, 드라마에서 '버럭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추노'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으면서, 이른바 루저와 남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억눌린 감정을 터트리는 남성 캐릭터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추노'의 성공은 어쩌면 여성 편향적으로만 되어왔던 드라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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