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꽃말 하나를 남기고 향미(손담비)는 떠났다. 박복한 삶에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 새 삶을 꿈꿨던 그지만, 연쇄살인범 까불이에 의해 속절없이 그 삶은 꺾였다. 하지만 그 꺾인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동백(공효진)은 까불이가 남긴 쪽지를 통해 향미가 자기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알고는 돌변했다. 참지 않겠다는 것. 용식(강하늘)은 호수에서 떠오른 사체 앞에서 넋을 잃었다. 향미에게 협박을 받아왔던 노규태(오정세), 또 죽여 버리겠다고 향미에게 차를 몰았던 제시카(지이수)마저 자신이 그를 죽인 건 아닌가 죄책감에 빠졌다.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다. 물망초의 기원처럼 향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바로 이 향미를 바라보는 방식 그대로다. 어느 마을 이름도 잘 모를 법한 부평초 같은 삶을 살다 간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향미의 존재감이 그 누구보다 빛나게 된 건 바로 이런 시선 때문이다.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왔던 동백과, 동백의 삶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던 엄마 정숙(이정은)을 드라마는 누가 잘 했고 못 했고를 떠나 똑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드라마가 이런 따뜻하고도 공평한 시선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건, 우리 모두가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동백은 혼자 버려져 세상을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엄마의 시선이 늘 닿는 위치에 있었다. 까불이에게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기적 같은 우연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 따위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가 있었다.

 

동백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아빠 없는 아이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해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뒤늦게 필구가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부 강종렬(김지석)은 그의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옹산으로 달려와 있는 강종렬은 필구 주변을 빙빙 돌며 그를 챙기려 한다. 아마도 동백의 엄마 정숙도 그런 마음이었을 게다.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그 곳에 있는.

 

늘 속없이 웃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용식의 뒤에는 억척스럽게 일하며 그를 뒤에서 보살펴온 엄마 곽덕순(고두심)이 있었다. 앞에서는 등짝 스매싱을 날리지만 혹여나 몸 상할까 늘 걱정하며 냉장고에 보약을 챙겨 넣어주고, 며칠을 고아 삶은 오리탕을 먹인다. 또 수사에 도움이 될 CCTV 자료를 얻기 위해 영심이네서 밭일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거기 전화해 당장 갖다 주라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늘 자기가 잘 나서 일이 잘 된 것처럼 여기며 티 없이 살아가는 용식이지만 그런 삶의 뒤에는 곽덕순이 있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 찌질하지만 마을에서 그나마 명망(?)을 유지하며 살아온 노규태에게도 그가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보이지 않는 보살핌이 있었다. 바로 이혼한 전 부인 홍자영(염혜란)이다. 향미가 사체로 호수에서 떠오르고 유력 용의자가 되어 임의 동행되어 갈 처지가 된 노규태에게 나타난 홍자영은 변호사의 카리스마로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강종렬의 자식이 있다는 소문을 추적하며 기사화하려는 기자들에게 든든한 보호막을 쳐주는 옹산 어벤져스 아주머니들 역시 보이지 않는 보살핌들이다. 그 아주머니들은 동백을 겉으로는 백안시하기도 했지만 “김치는 있냐”고 물으며 속으로는 챙겨주는 이들이었다. 동백을 든든히 챙겨주는 용식이와 엄마 정숙, 용식을 챙겨주는 덕순, 향미를 챙겨줬던 동백, 필구를 챙기려는 강종렬, 노규태를 보살피는 홍자영... 이런 따뜻한 보살핌들이 있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끝까지 기억해주고, 또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쓴다는 건 어떤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아마도 <동백꽃 필 무렵>이 그려내려 한 것이 그것이고, 시청자들이 이 작고 촌스러운 시골 마을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된 이유가 그것일 게다. 동백꽃 하나가 핀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 꽃이 피어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따뜻한 볕들이 어디선가 비춰주고 있었다는 것. 모두가 홀로 외롭게 버텨내고 있는 삶이지만, 지금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동백꽃 필 무렵>은 얘기하고 있다.(사진:KBS)

‘동백꽃’, 엄마 이정은은 늘 딸 공효진 옆에서 뭐든

 

“그래 물증이 없지. 그러니 경찰이 뭐하겠어? 근데 나는 헷갈릴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어. 짐승의 에미도 제 자식한테 해 끼칠 놈은 백 리밖에서부터 알아. 그리고 에미는 제 자식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해 얼씬대지 말어. 난 동백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나는 해 뭐든지.”

 

철물점 흥식이(이규성)가 까불이라는 심증을 가진 정숙(이정은)은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휴먼드라마와 엮어 시청자들을 빠뜨린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정체가 이제 곧 밝혀지려 한다. 그런데 이 즈음에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까불이라는 캐릭터를 세워 만들어냈던 스릴러의 정체다. 도대체 이 드라마는 어떻게 스릴러로도 사람을 먹먹하게 만드는 걸까.

 

까불이의 정체가 밝혀지려는 참에 동시에 드러난 건 어린 동백(공효진)을 버리고 떠났다 갑자기 나타난 엄마 정숙의 정체다. 동백은 엄마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엄마가 돌아온 게 그 신장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그래서 그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을 버렸던 대로 똑같이 엄마를 버린다. 하지만 용식(강하늘)이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찾아낸 과거 CCTV 자료를 통해 동백은 예전 까불이로부터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 엄마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는 늘 동백의 주위를 숨어서 맴돌고 있었다. 너무 가난해 자신이 키울 수 없다는 걸 알아 보육원에 보냈지만, 보육원 봉사를 핑계로 동백의 아들 필구를 가끔 만나는 걸 유일한 삶의 희망처럼 살아왔다. 재혼했지만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그 집에서 억척스레 일하며 동백을 위한 보험을 들어두었다. 어려서 키워주지 못했던 그 죄를 제 ‘목숨 값’으로나마 챙겨주고 떠나려 했던 것. 동백은 드디어 알게 됐다. 엄마가 나타난 게 자신의 신장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떠나는 길에 자신을 챙겨주기 위함이었다는 걸.

 

정숙은 그래서 까불이라 여기는 흥식이네 철물점에 찾아가서도 또 어두운 밤길 자신을 뒤따라오는 그 누군가에게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의 말대로 ‘헷갈릴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심지어 어쩌면 정숙은 까불이를 도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가 까불이를 해치우고 자신도 죽게 되는 동귀어진까지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자식의 위협요소를 없애는 일이고 또 목숨 값으로나마 자식을 챙겨줄 수 있으니.

 

<동백꽃 필 무렵>이 까불이의 정체와 엄마 정숙의 정체를 동시에 끄집어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의 놀라운 면면을 새삼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심지어 스릴러를 가져와서도 이토록 먹먹한 모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그간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 여겨 늘 주눅 들며 살아왔던 동백은 뒤늦게 늘 엄마가 자신의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식에게 “묘하게 기분이 괜찮다”고 말한다. 동백은 그렇게 늘 자신을 붙잡았던 과거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자존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동백을 찾아와 보험증서에 수혜자로 동백이 적혀져 있는 사실을 얘기하며 정숙을 ‘꽃뱀’ 운운하는 정숙의 의붓딸에게 동백은 뺨을 올려 부치며 말한다. “감히 누구보고 꽃뱀이래? 우리 엄마야. 너 같은 년이 함부로 지껄일 내 엄마 아니라구.” 동백은 드디어 엄마를 갖게 된다. 삶에서 늘 부재했던 엄마를 가슴으로부터 끌어안게 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늘 편견 속에서 살아왔던 자신이 엄마를 꽃뱀으로 바라보는 편견과 마주하며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이니.(사진:KBS)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tvN 드라마, 기획만 보인다

 

한때 잘 나가던 tvN 드라마가 어찌된 일인지 주춤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유령을 잡아라>는 애초 문근영의 주연작이라는 점과 지하철 경찰대라는 소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갈수록 기운이 빠져간다. 첫 회 4.1%(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매회 뚝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2.4%까지 추락했다.

 

이유는 첫 회에 끌어 모았던 주목을 드라마가 계속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 지하철 유령을 추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곁가지 스토리들로 매회 채워지고 있고 그 스토리들도 그다지 큰 몰입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겨우 유령(문근영)과 고지석(김선호)의 멜로 라인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이 지하철 범죄 수사라는 공적 사안과 사적인 멜로의 결합은 어딘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애초 기획과 소재는 그럴 듯했지만 빈약한 스토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수목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이다 풍자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퍽퍽한 고구마 현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드라마를 답답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단경리직원으로 있다 등 떠밀려 사장 자리에 앉게 된 이선심(이혜리)의 캐릭터는 누가 봐도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데, 스토리는 짠 내 나는 을의 위치에서 핍박받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미숙한 스토리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

 

tvN이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들로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던 토일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날 녹여주오>는 점점 관심에서 벌어져 이제는 1%대 시청률로 뚝 떨어져 버렸다. 지창욱이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이렇게 화제조차 안 되는 드라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최근 tvN에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 건 금요일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도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본래 웹툰 원작을 충실히 담아온 부분과 이를 과감하게 드라마화하겠다는 그 기획적 선택이 가장 주효했던 작품이다. 물론 연출이나 연기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래도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이 tvN드라마의 기획 그 이상의 성취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tvN 드라마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지상파 드라마들이 약진하고 있다. 월화에 새로 들어온 SBS <VIP>는 6.8%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9.1%까지 올랐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를 VIP 전담팀이라는 특정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더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목에는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6.3%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입소문이 점점 퍼지더니 이미 18%를 넘겨서며 20% 시청률까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들이 물량공세에 도회적인 이야기들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정반대로 촌스러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역발상이 주효했다.

 

수목에 포진된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시청률은 3%대에 머물러 있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로 호평 받고 있다. 웹툰 속 캐릭터들에게 의식이 생겨나고 그래서 그 정해진 설정값(운명)을 넘어서려 노력하는 이야기는 판타지 설정이지만 현실적인 공감대까지 만들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태생부터 정해진 설정값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가 이렇게 주춤하며 위기에 몰리게 된 건 어딘가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느낌 때문이다. 이미 <위대한 쇼> 같은 전작들을 통해서도 느껴진 것이지만 창대한 기획 그 이상의 스토리의 완성도를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들은 보여주지 못했다. 적당한 스릴러나 코미디에 멜로를 더하는 방식은 과거 지상파 드라마들이 위기에 처하게 됐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애초 지상파에 밀리던 시절 tvN 드라마의 과감했던 그 선택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주춤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만든 위치가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사진:tvN)

 

심상찮은 'VIP' 반응, 불륜을 통해 담아내는 사회적 의미

 

SBS 월화드라마 <VIP>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청률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단지 불륜만은 아니라는 징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상황도 그렇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불륜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색다른 사회문제나 의미를 가진 드라마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VIP>는 분명 초반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정선(장나라)에게 온 문자 하나가 그 시작점이었다.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 그 후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을 의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또 그 ‘여자’가 누구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된 박성준은 나정선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하고, 고통스럽지만 나정선 역시 용서하려 노력해보겠다 말한다.

 

이런 전면에 드러난 스토리만을 두고 보면 <VIP>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만을 자극적으로 펼쳐놓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나정선과 박성준을 부부이면서 한 팀의 팀장과 차장으로 구성해놓고 있는 점이나, 또 그 팀이 다름 아닌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부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VIP 전담팀이라는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를 가져왔고 그 팀에 부부가 팀장과 차장으로 있는 설정을 해놓은 걸까.

 

그건 우리네 관계가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정선과 박성준이 어느 VIP 고객과 자연스런 인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사적인 부부의 저녁을 가장해 앉아 있을 때, 그 고객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한 부부의 시선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적인 일은 VIP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사적인 불륜 같은 것들조차 숨기고 감춰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일로서는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불륜일 뿐이다. 이미 박성준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나정선은 그래서 그 VIP의 불륜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저들의 불륜은 넘어가면서 내게 닥친 불륜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얽혀져 있어 불륜마저 그 힘에 의해 덮여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 구조가 들어가 있다.

 

이런 일들은 이 VIP 전담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모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온유리(표예진)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가난을 넘어서려 하는 인물이다. 공적인 위치를 사적인 관계를 통해 넘어서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이현아(이청아)는 정선과 입사동기이고 친구였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역시 무언가 회사 내 위계구조 안에서 일을 겪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정선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바꿔놓고 있는 것.

 

송미나(곽선영)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워킹맘으로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위치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사에서 승진해 정당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하지만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면서 승진이 누락되어 6년째 사원이다. 훨씬 더 절실해진 그는 그래서 공적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겠다 선언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한 건, 이런 돈과 지위로 결정되는 위계가 심지어 윤리적인 부분까지 넘어서는 걸 가장 잘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VIP라는 이유로 저들은 군림하고 뭐든 하대하며 누리려 한다. 저들은 선을 넘는 일조차 당연하듯 행하고 거기에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전담팀은 다르다. 그들은 VIP를 응대하는 일이 자신의 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저들을 목격한 이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VIP>는 그래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건 우리가 그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다. 돈 있는 이들이 결국 VIP로 불리고 군림하는 사회. 하지만 VIP의 의미 그대로 진정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런 부분들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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