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 양세종,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 그 먹먹함

 

어째서 이 청춘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를 보다 보면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이 눈에 밟힌다.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는 이 사극에서 항상 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피와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초상과 겹쳐져 더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남전(안내상)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서휘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방원(장혁)이 가세한 거사(?)에서 서휘가 맡은 역할은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방원을 제거하는 것처럼 꾸민 서휘는 남전이 동생 서연(조이현)을 위해 자결하라 던져 준 칼을 기꺼이 자신의 가슴에 박았다. 물론 급소를 피해 자결한 것처럼 꾸미려던 일이었지만, 서휘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 상황은 짠하기 그지없었다.

 

서휘는 남전에게 칼을 받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남전이 던진 칼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그래서 남전처럼 더 많은 걸 가지려는 이들에 의해 제 한 몸을 던져야 하는 삶이다.

 

피투성이의 서휘를 간호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희재(김설현)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게 되는 건 그 처절한 청춘의 삶을 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휘의 그런 온 몸을 던지는 거사가 쉽게 이뤄질 리가 없다. 죽을 위기에 몰렸던 남전은 그렇게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서휘는 제 몸을 던져 구해내려 했던 서연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걸 보게 된다.

 

남선호라는 청춘 또한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 남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심지어 서휘를 전쟁터로 보내는 모진 선택을 하면서까지 입신을 하려 한다. 정작 비정한 아버지 남전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아들인 남선호까지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남선호는 서휘를 배신했지만, 그와 그의 여동생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구해내려 제 몸을 던진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도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남선호. 그에게서도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절망감이 느껴진다.

 

서휘와 남선호의 앞길을 전면에서 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남전이라는 욕망에 의해 비뚤어진 어른의 초상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누구든 이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휘의 아버지를 이용하고는 죽게 했고, 그 아들인 서휘마저 그 길에 들어서게 했으며 결국 서휘의 여동생까지 죽게 만든다. 게다가 서자라고 해도 자신의 자식인 남선호까지 언제든 제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인물이다.

 

<나의 나라>는 조선 초기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피 튀기는 역사를 밑그림으로 가져왔지만 거기에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들을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들은 남전 같은 엇나간 욕망에 휘둘리는 어른에 의해 피 흘린다. 어째서 이런 구도를 사극의 이야기 속에 상상력으로 채워넣은 걸까. 그건 어쩌면 이 사극이 담아내려는 것이 저 조선 초기의 역사가 아니라, 그 혼돈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현재의 청춘들이 겪는 절망감을 담아내려 함이 아니었을까. 서휘의 얼굴만 봐도 짠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이제 웹툰의 문법에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 마트>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의 공식을 첫 회부터 깨버렸다. 물론 드라마의 공식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하고 놀라워할만한 과장된 이야기들은 파격적이었다.

 

이제 망하기 일보직전의 천리마 마트에 좌천되듯 정복동 이사(김병철)가 대표로 부임해와 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전혀 스펙이 되지 않는 이들을(심지어 빠야족까지) 정직원으로 떡 하니 채용하고 고객만족센터에 곤룡포를 입은 전직 조폭을 떡하니 단상 위에 앉혀놓질 않나, 심지어 출입구가 손님들이 들어오기 너무 쉽게 되어 있다면 손으로 한참을 밀어 돌려야 열리는 회전문까지 설치한다.

 

이런 정도의 황당한 조치는 당연히 현실적 개연성이라면 마트가 망하는 게 상식이지만 드라마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님들이 더 북적이게 되는 것. 이렇게 망할 위기에 처한 회사의 현실적인 모습은 아마도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거기도 일개 말단경리가 사장이 된다는 설정이 들어 있지만 짠내 가득한 중소기업의 현실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드라마의 개연성과 현실성의 관점으로 보면 <청일전자 미쓰리>가 훨씬 그럴 듯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이 훨씬 크다는 것. 드라마의 문법을 과감히 깨고 저 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풍자가 들어가자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황당함에 시청자들은 점점 빠져들었다.

 

알다시피 이런 스토리 전개가 가능했던 건 원작이 웹툰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웹툰 특유의 과장과 특히 B급 감성 가득한 웃기는 설정들은 그 장르적 특성 때문에 훨씬 개연성에 대한 부담 없이 그려지는 면이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웹툰으로서도 놀라운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드라마화된 작품에서도 이런 웹툰의 감성들이 먹히고 있다. 한때 이런 황당한 전개는 만화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라고 치부되던 것이 아니었던가.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역시 원작 웹툰인 <어쩌다 발견한 7월>의 그 독특한 세계를 드라마적으로 잘 구현해냈다. 흔한 학원 로맨스물처럼 여겨지는 소재가 웹툰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과 엮어지면서 기막힌 세계관을 만들었다. 웹툰 속 주인공들이 의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본래 정해져 있던 설정값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

 

중요한 건 이런 웹툰의 설정들이 드라마화 되면서도 시청자들이 이제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작품의 드라마화가 성공적이었던 건, 그 황당하기까지한 웹툰 설정에 담겨진 뒤집어보는 현실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상술로 돌아가는 세상을 뒤집는 통쾌함이 있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작가의 뻔한 이야기 전개를 캐릭터들이 뒤집는다는 흥미로움이 존재한다.

 

어쨌든 <쌉니다 천리마마트>나 <어쩌다 발견한 하루> 같은 웹툰 설정을 가져온 드라마들이 점점 시청자들을 공감시키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웹툰의 힘이 드라마 문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만큼 웹툰이 이제 우리네 문화 콘텐츠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사진:tvN)

‘동백꽃’ 공효진·이정은, 버려진 이나 버린 이나 찢어졌을 가슴

 

“엄마가 나보고 진짜 그걸 떼 달라고 왔을까요? 그런 게 어딨어. 엄마 진짜 짜증나. 엄마가 계속 쳐다보는 거예요. 사람 가는데 왜 자꾸 봐. 엄마가 나를 계속 봤어요. 나는 27년을 거기서 기다렸는데 우리 엄마도 그럼 어떡해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은 용식(강하늘)을 안고 그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거기에는 동백이 머물러 있었던 27년의 세월이 겹쳐졌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정숙(이정은). 마지막으로 삼겹살을 사주며 “많이 먹어. 밥을 잘 먹어야 예쁨 받지”라고 말하고 떠나던 던 엄마를 어린 동백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동백은 그렇게 27년 간을 그 지점에 서 있었다. 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 동백의 마음은 복잡해졌을 게다. 미워해야 맞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아픈 상황이고, 그렇지만 혹여나 딸에게 신장을 얻기 위해 온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서운함이 더해졌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동백은 엄마를 데리고 삼겹살집에 갔다. 아픈 엄마에게 먹을 걸 사주고픈 마음도 있지만, 그 어린 시절 동백이 삼겹살을 먹으며 떠나가던 엄마를 바라보던 그 아팠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픈 마음도 있었으리라.

 

정숙은 동백이 그 때의 일을 지금껏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마음이 찢어졌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는 물음에 동백은 ‘필구보다 어린 기지배’가 백밤, 천밤도 넘게 버려지던 날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동백은 비수 같은 말들을 엄마에게 던졌다. 그건 엄마가 27년 전에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누가 엄마 이름 물으면 꼭 모른다고 해. 부탁이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동백은 똑같이 돌려줬다. “누가 딸 이름 물으면 꼭 모른다고 해. 부탁이야.”

 

27년 전 엄마가 그랬듯 이제 동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갈 때 택시 창에 하염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비췄다. 그건 과거 엄마가 떠날 때 뒤에서 하염없이 그를 바라봤던 동백의 모습 그대로였다. 떠나오는 택시 안에서 동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건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도 찢어졌을 거라는 것이었다. 용식의 품에 안겨 엄마가 혹여나 자신처럼 그렇게 계속 떠나간 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어떡하냐며 울었던 건 그래서였다.

 

사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과 정숙의 이야기는 소재만으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다. 딸 버린 엄마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딸에게 돌아온 것. 그건 아마도 신장을 떼 달라고 왔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지막을 딸과 함께 하고픈 마음 때문에 왔을 게다. 하지만 이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동백꽃 필 무렵>은 엄마와 딸이 27년의 세월을 넘어 서로의 입장이 되는 상황을 통해 절절하게 풀어낸다. 엄마는 딸의 입장이 되어 그 버려진 마음을 헤아리고, 딸 역시 엄마의 입장이 되어 자식을 버린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

 

<동백꽃 필 무렵>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건 이처럼 뻔할 수 있는 상황도 완전히 새롭게 풀어내는 방식 때문이다.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의 존재 하나를 갖고도 이렇게 큰 궁금증과 몰입감을 만들어내고, 동백이와 용식의 다소 촌스러운 사랑이야기도 이토록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임상춘 작가의 남다른 공력이 느껴진다. 물론 <쌈마이웨이>부터 이미 준비된 작가라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깊이와 재미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낼 줄이야. 또 한 명의 믿고 보는 작가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사진:KBS)

‘어하루’, 뻔하고 자기 복제하는 작가와 대결하는 캐릭터들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순정만화 속 세계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칸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화 속에서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대로 움직이던 은단오(김혜윤)는 어느 날 갑자기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작가가 만들어낸 만화 속 캐릭터지만 의식이 생겨났다는 걸.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래서 만화의 칸에서 칸으로 이동하는 그 쉐도우의 지점에서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칸 속의 ‘스테이지’와 칸 바깥의 ‘쉐도우’의 세계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밀’이라는 만화책의 내용과 똑같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작가가 정해놓은 설정값대로 움직이지만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 정해진 설정값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경(이재욱)이라는 인물의 약혼자라는 설정값에 늘 호통치고 상처 주는 그를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 인물 캐릭터가 싫어진 것이다. 은단오는 그래서 이 만화 속 세계의 뻔한 순정만화 설정들을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 주지만 그 때마다 속으로는 “토 나와”라고 투덜댄다.

 

그러다 이름도 없는 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오고 그에게 하루(로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은단오는 설정값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의지에 의한 삶을 조금씩 추구해간다. 하루를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은단오의 의지 또한 커지자 설정값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저 이름 조차 없던 엑스트라였던 하루가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고 ‘비밀’이란 만화책 등장인물 소개란에도 얼굴을 내밀게 된 것.

 

하지만 수영장에 빠진 은단오를 구해낸 후 하루는 사라져버리고, 다시 나타난 하루는 은단오와의 기억이 지워져버린다. 대신 이 만화 속 세상에서 엑스트라가 아닌 존재감 있는 인물로 거듭 서게 된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걸 깨달은 하루가 도서관에서 블랙홀 같은 곳에 손을 넣었다 드디어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는 자꾸만 은단오와 얽히게 되는 것이 사극 배경의 ‘능소화’라는 만화에서의 인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그 배경이 되는 만화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가 ‘비밀’이라면 또 하나는 사극 배경의 ‘능소화’다. ‘비밀’에서 은단오와 하루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능소화’에서는 주인공급이었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설정값을 가졌기에 의식을 갖게 된 그들이 막연히 연결된 과거 ‘능소화’ 스테이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만일 이런 이야기라면 이 ‘비밀’이나 ‘능소화’ 같은 만화 속 세계의 설정값을 만든 작가는 은단오가 투덜대듯 뻔한 순정만화를 쓰는데다 자기복제까지 하는 작가다. 그래서 은단오나 의식이 생겨난 만화 속 인물들이 설정값을 바꾸려는 대결의식은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만화 속 세상이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네 사는 현실 특히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현실만큼 뻔하고 자기복제하는 세상도 없을 게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정해진 길대로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설정값 속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은단호가 설정값을 바꾸려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판타지가 기묘하게 현실을 툭툭 건드리는 지점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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