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예술대상’ 만장일치 대상의 품격 보여준 김혜자의 수상소감

 

김혜자의 말대로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맞는 것 같다.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김혜자가 수상 소감으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따뜻해진 가슴들은 얼었던 무언가를 녹여내며 건조했던 눈을 촉촉하게 적셨다. 시상식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수상 소감은 소탈했지만 그 소탈함에 더해진 진정성은 묵직했다. 그것은 지금껏 오래도록 해온 연기자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기에 느껴지는 묵직함이었다. <눈이 부시게>라는 인생작을 만들어준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 김수진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김혜자는 혹여나 상을 받을지 몰라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드라마 엔딩에 나왔던 내레이션 대사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외우고 외워도 자꾸 잊어먹는다며 대본을 찢어왔다는 김혜자는 대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드라마 속 대사였지만 어쩌면 연기자 김혜자가 진심으로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이기도 했을 게다. 그래서 수상 소감에서 다시 듣는 <눈이 부시게> 엔딩의 대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선배인 김혜자가 대중들에게 직접 전하는 위로.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속 대사가 그대로 김혜자라는 인생선배의 위로로 들리는 그 순간, 후배 연기자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 또한 가야할 길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또 후회와 불안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김혜자는 전하고 있었다. 그건 또한 후배 연기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상식을 바라보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위로로 다가왔다.

 

김혜자의 수상소감은 그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그대로 입증했다. 진정한 연기의 끝은 그가 배역인지 배역이 그인지 알 수 없는 그 경지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김석윤 감독이 <눈이 부시게>에 굳이 주인공 이름을 김혜자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건 배역이긴 하지만 김혜자라는 연기자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배역이었으니. 수상 소감 간간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찢어온 대본을 보는 모습까지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의 공로상급의 대상 수상이었지만, 결코 이 대상은 공로상이 아니라 그의 연기가 지금도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기는 ‘현재진행형’ 연기자라는 데서 결정된 대상이었다. 이것이 필자도 참여했던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일찌감치 김혜자의 대상을 ‘이견 없는 만장일치’로 정한 이유였다. 김혜자는 충분히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며 ‘눈이 부신’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으니.(사진:JTBC)

‘유퀴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보통 사람 이야기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날, 용산으로 나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누굴 만나고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슬쩍 스케치해서 보여주는 이 날 이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사람들의 면면은 훈훈함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거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거나 지나쳤을 식당 아주머니도 있고 건강원 아주머니, 철도원, 방앗간 사장님 등의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담겨 스쳐간다. 아마도 매일 출퇴근하며 마주쳤을 그 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을 게다.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용산이라는 특유의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용산에 있는 한글박물관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정기훈씨부터 이 날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역사전공자로서 이 곳에서 청년 멘토로 일한다는 정기훈씨는 “역사란 뭐라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역사는 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축적”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남긴다. 그런데 그 답변은 마치 이 날 이 프로그램이 찾아간 용산의 오래된 골목길에서 만날 분들에 대한 복선 같았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축적하며 살아오신 그 분들.

 

용산은 재건축이 이뤄지며 거대한 랜드마크가 들어섰지만, 그 뒤편에는 마치 시간을 뒤로 되돌린 듯한 개발이 되지 않은 옛 거리가 남아있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고층 건물들 아래 여전히 자리한 그 골목을 걸어 나간다. 랜드마크는 시간을 밀어내고 미래를 쌓아올렸지만, 그 골목에는 여전히 시간과 거기 축적된 역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보면 닮아가기 마련이라던가. 비 오는 날이라 손님이 뜸한 감자탕집 사장님 부부는 얼굴부터가 닮았다. 집안일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집 바깥 일 봉사 같은 데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반은 겸연쩍고 반은 미안한 남편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으며 연중무휴 가게를 지키느라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은 몇 번 갔었다는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듯 들으면서도 연실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어차피 자신은 식당을 비울 수 없다며 웃는 그 모습에서 그간 이 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 아내가 못내 안 쓰러운지 퀴즈 대결에서 돈을 벌면 아내 여행자금으로 주겠다 말씀하시는 남편에게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을 아내 사랑이 느껴진다.

 

한쪽에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어 개발이 되지 않는 곳은 그 그림자에 가려지고 있는 이 골목은 감자탕집 사장님 말씀대로 “장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님은 동네가 활성화되어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사장님은 “사람도 정서가 없어지고 옛날 그런 게 없어지니까 어딘가 한 군데는 예스러운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 배경으로 슬쩍 깔린 영상은 지금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을 철길과 건널목 풍경이다. 워낙 예스러운 거리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용산 백빈 건널목의 광경.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과 아이유가 퇴근길에 건너다녔던 그 건널목이다. 지친 하루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땡땡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날 동안 내려져 있는 건널목 차단기가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를 멈춰 세우며 쉬어가라 말하는 듯 했던 그 공간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속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장님은 자동차여행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게 많고 도보여행은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세계일주를 하려면 10년에서 15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반면 자전거로 하면 3년이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느리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은” 그 자전거의 속도가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문득 삶의 속도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을까.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감자탕집 사장님의 말씀이 다시금 들려오는 듯 하다.

 

슬쩍 보여줬던 백빈 건널목을 찾아온 두 사람은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땡땡거리’라 불리는 곳에서 상근하시는 철도원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2~3분마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그 곳은 아마도 살기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유재석이 말한 것처럼 이런 곳이 이제는 “점점 귀한 곳”이 되어간다. 맛난 닭갈비에 막국수 그리고 밥까지 볶아 든든히 배를 치운 유재석과 조세호는 다시 길을 나서고 그 곳에서 39년째 방앗간을 한다는 아저씨와 드라마 같은 그 삶을 듣는다.

 

10남매가 사는 시골집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집을 나와 상경했다는 아저씨는 어느 식당에 갔던 게 인연이 되어 50년 넘게 방앗간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홀로 상경해 느꼈을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 어린 소년을 식당 주인이 방앗간에 소개했고, 그곳에서 13년 동안 든든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행복해서 일을 배우게 됐다는 사장님은 그 후 독립해서는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새벽 3시 반이면 나와 일을 한다는 사장님이 그 50년 넘게 부대끼며 살아왔을 방앗간에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느 길거리라는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은 작아보여도 위대한 저마다의 역사들이다. 때론 공간들이 밀려나고 사라져도 그 사람들이 기억에 담고 있는 시간들은 여전히 남는다.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유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느껴지는 어떤 훈훈한 정서는 바로 그 곳에 사는 분들이 그 삶의 이야기로 전하는 온기 때문이다. 퀴즈가 전면에 세워져 있고 유재석과 조세호 같은 베테랑 예능인들이 나서고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 분들이다. 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삶의 역사만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사진:tvN)

'슈퍼밴드', 천재 참가자들만으로도 이미 협연이 기대되는 건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겹고 식상하다 여길 것이다. 그래서 이미 <슈퍼스타K>나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새로운 시즌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프로듀스101>이나 <쇼미더머니> 같은 Mnet형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구성과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정형화된 면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사실 이런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귀호강 오디션’의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이 JTBC <팬텀싱어>다. 시즌2까지 나온 <팬텀싱어>는 지금껏 대중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음악적으로는 그 깊이를 따라가기 어려운 성악, 뮤지컬 같은 장르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중창단을 꾸려 이른바 ‘크로스오버’ 무대를 만들어내는 그 마법 같은 과정을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들은, 이 오디션 무대에 올라 자신의 기량을 맘껏 보여주면서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하모니’에 집중함으로써 경쟁의 자극보다는 조화의 감동을 선사했다.

 

새롭게 금요일 밤에 포진한 JTBC <슈퍼밴드>는 그 <팬텀싱어>의 밴드 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일단 제작진이 <팬텀싱어>를 만든 이들이고, 심사위원으로 앉은 윤종신이나 윤상은 <팬텀싱어>에서 성악에서부터 재즈, 팝, 뮤지컬까지 두루두루 갖춘 식견으로 이들을 어떻게 조합해내 더 아름다운 크로스오버 중창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던 이들이다. 물론 밴드 오디션에 맞춰 넬의 김종완이나 린킨파크를 프로듀싱한 조한이 참여했지만.

 

구성도 비슷하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개인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에 맞춰져 있는 반면, <팬텀싱어>나 <슈퍼밴드>는 모두 중창단과 밴드를 만드는 이른바 ‘단체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팀 구성’에 더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놀라운 연주자가 등장해 퍼포먼스를 보이면 자신이 떨어질까봐 긴장하기 보다는 그 인물과 함께 음악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가지며 바라보게 된다. 이 점은 <슈퍼밴드>가 가진 여타의 오디션들과의 확연한 차별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출연자들이다. 실력의 편차가 너무 많이 나거나 하게 되면 ‘팀 구성’은 우호적 분위기에서 자칫 ‘배제’의 분위기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애초에 가질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간 이런 다양한 장르의 악기 연주자들과 보컬들을 위한 오디션이 없어서인지 <슈퍼밴드>에는 놀라운 기량과 실력을 가진 이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첫 회에 기타 천재로 소개된 이강호와 김영소의 무대는 <슈퍼밴드>의 참가자들의 기량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잘 보여줬다. 핑거스타일로 마치 마이클 헤지스의 기타 연주를 듣는 듯한 테크닉을 보여준 이강호가 그렇고, 훨씬 감성적인 기타 연주로 모두를 귀 기울이게 만든 김영소가 그렇다. 김영소는 연주 중간에 카포를 바꿔 전조하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줘 윤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들의 연주가 자작곡이라는 건 이들의 수준이 이미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의 위치에 올라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두드리는 것이라면 뭐든 연주해낼 것 같은 타악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 정솔의 무대나, 영화 <인터스텔라> OST 연주에 노래 실력까지 들려줘 모두를 집중시킨 독일에서 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나우, 애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바이올린 연주로 편곡한 곡을 들려주고 랩실력까지 보여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한 벤지, 컴퓨터로 음원을 채집하고 믹싱해 심지어 조이스틱으로도 게임하듯 음악을 들려준 방구석 아티스트 디폴, 10대지만 놀라운 기량의 속주를 보여준 또 한 명의 천재 기타리스트 임형빈.... 한 명 한 명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슈퍼밴드>에는 천재들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건 다양한 악기들이 주는 매력을 천재 아티스트들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유튜브에서 이미 완소 드러머로 이름난 강경윤을 통해 알게 되는 드럼의 맛이나, 백반증을 갖고 있어 눈썹까지 하얀 이종훈이 보여준 이보다 멋일 수 없는 베이스의 맛이 그렇다. 여기에 독특한 색깔을 가진 레트로 소울킹 김지범이나 자연을 느끼게 만드는 노래와 음색의 홍이삭, 목소리만으로도 빠져들게 만드는 기프트 같은 보컬들이 어우러지니 앞으로 이들이 꾸려낼 상상불가의 연주와 노래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등을 통해 밴드에 대한 관심도 꽤 높아져 있는 상황에 <슈퍼밴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반갑고 그 기대 또한 높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편견을 과감히 깨버릴 수 있었던 건 첫째, 악기 연주 같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둘째, 이들의 경쟁이 아니라 조화를 보여줌으로써 오디션의 피로감을 힐링으로 바꿔주며 셋째, 어떤 무대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기대감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지친 귀가 정화되는 느낌을 주는 <슈퍼밴드>로 금요일 밤이 기다려진다.(사진:JTBC)

‘스페인하숙’, 유해진의 유머는 일터를 즐겁게 만든다

 

차승원과 배정남이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유해진은 이케요 작업실(?)에 들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지난 주 방영됐던 tvN <스페인 하숙>에서, 알베르게를 찾은 손님 하나가 입구를 찾지 못해 지나쳤던 걸 떠올리고는, 화살표로 입구 안내 표지판을 만들기 시작한 것. 합판에 줄을 그어놓고 보조가 되어버린 박현용 PD와 함께 하는 작업. 줄과 달리 잘라놓은 합판을 두고 “왜 그랬냐고? 내 맘이야”라더니 갑자기 <맘마미아>를 부르며 말장난을 시작한다. 

 

잘 잘라놓은 화살표 표지판에 노랑색으로 페인트칠을 하고는 드라이기로 말려달라는 유해진에게 박 PD는 갑자기 “쿨로 할까요?”하고 물어 웃게 만든다. 박 PD가 표지판을 말리는 사이 나무를 잘라 지지대를 만드는 유해진. 표지판 말리는 일에 이케요 신입사원(?) 이란주 작가가 투입된다. 표지판을 말리는 사이 시트 치우러 갔다가 오는 길,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지 않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사장이 그가 없는 사이 초콜릿을 먹는 박 PD를 발견한다. 사장 눈치 보며 초콜릿 먹다 딱 걸린 박 PD가 갑자기 일어나 견과류 드실래요 하고 묻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게 뭐라고 어느새 이란주 작가까지 투입되어 드라이기로 표지판을 말리고, 그 사이 사장이 선심 쓰듯 “배고프지”하며 견과류를 한줌씩 나눠주는 그 의도적인 훈훈함에 웃음이 피어난다. 어느새 이 이상하게 유쾌한 사장의 상황극에 빠져든 박 PD는 “(이 회사) 복지가 좋네요”라며 기분 좋게 웃어 보인다. “우리 이케요는 일단 제품이 좋으려면 직원들의 복지가 좋아야 된다”며 너스레를 떠나는 유해진은 이제 아예 상황극 속에 푹 빠져 이케요 사장 목소리를 낸다. “대량생산을 못하니까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도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긍지를 가지고...” 그 말에 유해진도 PD도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저 옆에 서 있다가 “조수가 없다”는 유해진의 말과 함께 바로 채용(?)된 박 PD. 때론 힘들기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유해진 특유의 유머에 푹 빠져든 박 PD는 그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얼굴이었다. 이케요에 오면 “이런 일도 해야 한다”며 침대시트를 정리하던 유해진이 은근히 ‘박과장’이라고 부르며 직책까지 주자, 박과장은 이란주 작가를 인턴이라고 소개한다. 이제 유해진과 박과장은 얼굴만 봐도 웃음을 터트린다. 유해진은 문제의 견과류를 주며 “이렇게 주는 회사 있어? 견과류. 이렇게 주는 회사 없어. 그리고 일은 다 사장이 하고.”라고 말해 박과장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유머는 전염되는 지 유해진이 만든 분위기에 직원들의 유머도 점점 업그레이드된다. 문득 생각난 듯 유해진이 박과장에게 “하고 많은 DIY 회사 중 우리 회사를 지원하게 됐냐?”고 슬슬 상황극에 시동을 걸자 박과장의 말 한 마디가 유해진을 쓰러지게 만든다. “견과류 준다고 해서.” 문득 그 유쾌한 일터를 보던 인턴이 “(창고에서 일하던) 구글 초창기 같다”고 말하자 유해진의 말장난 개그가 또 발동한다. “우리는 ‘찌개를’이야. 국이 아니라.” 그 말에 박과장과 인턴이 쓰러진다.

 

물론 이건 <스페인 하숙>에서 유해진이 만든 일종의 상황극이지만, 적어도 이런 분위기라면 일할 맛 날 것 같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일터가 진짜 힘든 건 대부분 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던가. 물론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나서 유쾌할 수 있는 그런 일터의 분위기라면 능률도 높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스페인 하숙>을 보면 유해진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산책을 하고 아침부터 알베르게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무언가 손님이 불편한 건 없나 확인하고 그걸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특이한 건 그가 하는 일이 꽤 즐겁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도 즐겁기 그지없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 이런 일터를 찾는 건 어렵겠지만, 유해진의 유쾌함은 적어도 사장의 즐거운 유머 하나가 일터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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