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김소연의 무엇이 우리를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나

 

같은 사람 맞아?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배우 김소연은 너무나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척 보기에도 떨고 있었고, 카놀라 유(유재석)와 영길(김종민) 그리고 동석(데프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민한 반응과 리액션을 보여줬다. 등장부터 너무나 수줍어했고 세 사람을 대하는 김소연의 모습은 나긋나긋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모습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봤던 광기어린 천서진 역할을 그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무려 28.8%(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즌1을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하지만 막장 논란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에서, 그럼에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김소연의 연기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하고 도망친 후, 피가 묻은 손으로 웃음과 눈물이 겹쳐진 채 피아노를 치는 광기어린 모습은 시청자들을 소름 돋게 만든 바 있다. 김소연의 연기가 놀라웠던 건, 짧은 순간 슬픔과 분노와 희열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 연기였다. 그래서 '코리안조커'라 불릴 정도로.

 

하지만 그런 연기를 펼쳐보였던 배우가 그 연기에 대해 호평을 쏟아내는 카놀라 유 앞에서는 민망해 견딜 수 없겠다는 듯 낮게 비명(?)을 지르고,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의외의 웃음을 제공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자신이 보면서도 낯설게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연기 장면을 함께 보며 명연기에 박수를 치는 세 사람 앞에서도 김소연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긴장해서 습관적으로 두 손을 꼭 쥐며 이야기하는 김소연은 광기 가득한 얼굴로 피아노 치는 그 연기를 위해 두 달 반 동안 연습을 했다는 걸 너무나 해맑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배우로서 그런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영광이었다고 했다.

 

사실 카놀라 유라는 새로운 부캐를 유재석이 가져온 건 '예능 투자자'라는 수식어처럼 올해 예능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는 김태호 PD와 새로운 미션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옛 세대나 현 세대를 막론하고 발굴되지 않은 예능의 얼굴을 찾아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최근 <SKY캐슬>, <스토브리그>에 이어 <경이로운 소문>으로 화제가 됐던 조병규가 출연했고, <펜트하우스>의 김소연이 나오게 됐던 것.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김소연은 카놀라 유와 영길, 동석이 콕콕 집어내는 캐릭터로 인해 의외의 매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치며 "해야겠다"고 말하는 그 특유의 동작도 이들이 집어내면 김소연만의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예능에 나오기만 하면 너무 긴장해 손을 덜덜 떤다는 김소연은 바로 그 지점이 색다른 예능 캐릭터의 가능성이었다. 시청자들이 새로운 얼굴로 보고 싶은 건 예능에 능숙한 그런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어색한 모습일 테니.

 

너무 긴장하는 모습 때문에 어머니가 보기 힘들다며 예능 출연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의외로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음악중심>의 MC로 활약하기도 했고, <진짜사나이>에도 출연한 바 있었으며 <복면가왕>, <개그콘서트>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연기에서 주어진 역할을 200% 소화해내는 김소연의 모습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기가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는 모습 이면에는 그의 남다른 심성이 숨겨져 있었다.

 

<복면가왕> 출연 당시, 한 기자와의 에피소드는 그의 타인을 배려하려는 심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말해줬다. 마침 <복면가왕> 녹화가 있던 날, 한 기자가 이상우와의 열애 기사를 쓰겠다고 해서 하루만 기다려 달라 했는데, 그 날 다른 기자가 먼저 기사를 내서 너무나 미안했던 김소연은 녹화 전 시간을 내 기자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인터뷰까지 했다는 것. 그 에피소드는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주변 사람들을 성실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쉽지 않은 작품에 쉽지 않은 연기지만 놀라울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을 잘 소화해내는 모습이나, 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한 예능 출연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밑바탕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의 착한 심성이 있었다. 그것이 예능의 새 얼굴을 찾아내려는 카놀라 유를 매료시킨 부분이었다. 이러니 연기든 예능이든 안 될 리가 있나. 임하는 마음 자체가 다르니.(사진:MBC)

'윤스테이'가 코로나 시국에 내놓은 명민한 선택

 

tvN <윤식당>이 <윤스테이>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해외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미뤄지다 결국 국내를 선택하면서 식당보다는 '한정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할 수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숙박업을 미션으로 삼게 된 게 <윤스테이>의 기획의도였다. 

 

사실 코로나19 3차유행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지난 11월에 촬영된 것이지만, 방영시점이 현재 3차유행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윤스테이>가 보여줄 '대면의 풍경'들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한 지점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윤스테이>는 시작 전부터 그 '송구스러운 마음'을 자막으로 전제하고, 방송 중간 중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전방역과 철저한 검사를 한 후 촬영에 임했다는 고지를 담았다.

 

또한 <윤스테이>의 '대면 공간'을 전남 구례에 외부와 격리된 한옥 고택으로 삼은 점도 다분히 코로나 시국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우연한 외부인들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도시에서 떨어진 만큼 코로나의 영향이 적은 지역의 공간을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전에 예약을 받아 외국인들이 이 곳을 찾아오지만, 모두 사전 검사를 하고 그들만의 시간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이 주는 안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스테이>는 이런 코로나 시국에도 굳이 이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 또한 제시했다. 그것은 '한국 체류 1년 미만의 외국인 손님들'로 참여를 제한한 데서 드러난다. '한국 체류 1년 미만'이라는 의미는 나영석 PD의 설명대로 일 또는 학업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신 분들이고 그만큼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위해 1박2일 간의 한옥 스테이를 통해 한옥과 한식 같은 한국문화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취지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근 들어 해외에서도 이른바 'K'를 붙여 지칭하곤 하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들을 그 시공간 안에 채워 넣었다. 먼저 곶감을 매달아 놓은 풍경과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널찍한 정원을 만나고 그 곳에 비밀스럽게 들어 앉아 있는 고즈넉한 한옥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그 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옛날에 사용하던 자물쇠를 여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고, 털 달린 고무신을 신고 즐거워한다. 구비되어 있는 팽이나 제기 같은 전통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구들장이나 비밀공간을 발견하고는 반색한다. 

 

'한식은 손맛'이라며 떡갈비를 위해 고기를 다지는 데만 1시간 넘게 들어갈 정도로 정성이 가득한 매 끼니들은 아마도 <윤스테이>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지테리안을 위한 요리는 물론이고,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외국인들을 위한 덜 매운 요리들까지 손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서비스들에 담길 가족 같은 '한국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으로서 그저 훈훈한 광경만이 아닌 '긴장감' 또한 <윤스테이>는 놓치지 않았다. <윤식당>처럼 음식과 접객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과 달리 <윤스테이>는 하루 숙박이 갖는 무게감이 더해진다. 손님을 픽업해와야 하고, 좀 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숙소도 준비되어야 한다. 식사 때가 되면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을 불편함 없이 접대해야 하는 숙제도 만만찮다. 과연 이걸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적당한 긴장감을 제공하고, 그걸 해냈을 때의 뿌듯함 같은 걸 시청자들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윤스테이>가 'K'로 가득 채운 나영석표 블록버스터 예능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출연자들의 면면일 게다. 최근 영화 <미나리>로 미국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윤여정은 물론이고, <보건교사 안은영>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주목받는 정유미, 영화 <기생충>의 최우식과 박서준 그리고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이서진까지. 아마도 K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이들이 접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국은 여러모로 예능 프로그램에 장애요소들을 가져왔다. 해외로 나가던 예능들은 그래서 국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거리두기'로 인해 꺼려지거나 불편해지는 상황마저 만들었다. <윤스테이>는 그런 불편한 지점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서 '송구한' 마음을 전제하고는, 최대한 조심하며 이 장애요소들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는 선택을 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지친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대리충족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 중요한 건 '진정성'일 게다. 그저 강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애초 취지에 맞게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그 진심이 전달될 때 시청자들은 불편함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숨 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사진:tvN)

'골목식당', 백종원이 명절 할머니집에 온 것 같다고 한 원주 칼국숫집

 

제작진이 오기도 전에 테이블마다 떡이며 과일이며 분주하게 준비해놓고, 먼저 도착한 촬영팀과 작가들에게 "얼른 드시고 하세요"라고 재차 말하는 할머니. 그 풍경은 마치 고향 떠난 자식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차리는 할머니의 모습 같았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힘내요 소상공인 특집'으로 찾은 원주 칼국숫집. 백종원과 김성주, 정인선 그리고 제작진이 코로나19로 힘겨운 소상공인들을 위해 힘을 주겠다 마련한 이 특집에서, 원주 할머니는 그 곳을 찾은 출연자와 제작진들에게 오히려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시청자들에게도 남다른 위로로 다가왔다.

 

정인선을 "인선 언니"라 부르며 반기는 할머니는 그 반가운 마음이 얼굴 한 가득이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 작은 마스크는 그 따뜻한 마음을 가리지 못했다. 으레 고향집을 방문하면 먼저 앉아 먹을 것부터 권하는 할머니들처럼, 손을 잡아끌고 준비한 음식들을 이것저것 권하는 어르신. 백종원은 "얼굴이 좋아지신" 할머니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던졌다.

 

그럴 만했다. 처음 이 원주미로시장에서 칼국숫집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기억들이 소록소록 피어올랐을 테니 말이다. 화재로 터전을 모두 잃고 비닐하우스로 마련한 가게에서 장사를 이어가던 할머니. 백종원이 나서서 가게를 그나마 가게답게 바꿔 주었고 그렇게 칼국숫집은 자리를 잡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후로 들려온 할머니의 암 투병 소식. 김성주와 정인선이 방문했을 때 항암치료 중이던 할머니는 모자를 눌러쓴 모습으로도 그들을 반겼고, 화상 통화로 연결됐던 백종원은 그 소식에 좀체 보이지 않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니 할머니가 건강해진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반기는 모습에 어찌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건 시청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식이 방영된 후 칼국숫집을 찾는 손님들은 단지 음식 맛 때문에 그곳을 온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했고, 심지어 너무 힘들게 일하시지 말라고 적은 편지들을 전하기도 했다. 또 마음이 힘들어 찾아오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할머니를 통해 느껴지는 따뜻함은 음식 그 이상의 위로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마치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지친 이들이 할머니 집을 찾아오는 그 마음처럼.

 

팥 가격이 올랐음에도 여전히 6천원을 고집하시는 할머니의 모습과 그래도 한 2천원은 올려받으라 거꾸로 요구하는 백종원의 실랑이는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드문 광경이면서 시청자들을 훈훈하게 만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백종원의 강권에 1천원만 올리겠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그 가게가 단지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백종원과 김성주 그리고 정인선이 뜨끈한 팥죽을 먹으며 몸이 스르르 녹는다 말한 건,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 먹는 모습을 옆에 앉아 미소 지으며 바라보시는 할머니가 옆에 있어서였다. 뭔 말만 하면 다 드리겠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서 배부름과 함께 마음의 포만감 또한 가득 채워질 테니 말이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할머니가 말씀해주시는 훈훈한 미담은 이 식당의 진짜 맛난 반찬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줬다.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은 옆에 군인 아저씨나 같이 앉으시잖아요. 그러면은 그 앞에 사람이 (돈을) 내주고 가." 어째서 이런 일이 이 칼국숫집에서는 벌어지는 걸까. 김성주의 말대로 그건 손님들도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한 그 곳을 찾는 손님들이 단지 칼국수 한 그릇, 팥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함이 아니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나누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손님들이 나를 너무 사랑해주시는 거야. 진짜로." 할머니의 말대로 손님들의 사랑이 넘치는 건 방문 후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리에 앉으니 할머니께서 아침에 생선을 구워서 가게에 냄새가 좀 남아있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전 그런 거 신경 안씁니다 ㅎㅎ 할머니가 건강하게 계신 거 하나만으로 이미 행복한걸요?^^'

 

손님들을 한꺼번에 받으시고 다 먹고 나가면 또 한꺼번에 손님을 받는 할머니의 독특한 접객 시스템도 백종원은 곧바로 이해했다. 찾으시는 분들과 일일이 소통하고 대화하고픈 할머니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었던 것. 그건 이 칼국숫집을 찾는 이들의 특별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그런 시스템은 바꾸지 않기를 백종원도 바랐다.

 

"젊은 사람이 할머니 손 한 번 잡아보면 자기가 행복할 거 같대. 아 그래? 그럼 내 손 만져보고 내 행복 다 가져가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음식이 장사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워하는 소상공인들에게 할머니의 미소가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질 정도. 마치 외지에 나간 자식 걱정하는 고향의 부모님들처럼 할머니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오라고.(사진:SBS)

'싱어게인', 무명마저 뚫고 나오는 노래의 힘이란

 

JTBC 오디션 <싱어게인> 3라운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잔인한' 매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그건 2라운드로 진행됐던 팀 대결에서 한 팀이었던 이들을 고스란히 대결상대로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잔인한' 대진표는 팀으로 뭉쳤을 때부터 예고된 면이 있었다. 왜냐하면 비슷한 장르나 성향을 가진 이들이 2라운드 팀 미션에서 팀으로 묶였기 때문에, 1대1 대결 역시 그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을 세워 비교하는 것이 공정(?)할 수 있어서다. 

 

지난 회에서 이문세의 '휘파람'을 자신만의 감성적인 발라드로 소화해내 주목을 받았던 63호 가수와,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을 선곡해 서태지를 소환시킬 정도의 파격으로 '족보 없는 무대'의 매력을 보여줬던 30호 가수의 대결은 그래서 잔인함 그 이상이었다. 둘 중 누군가를 떨어뜨린다는 게 시청자들에게는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어서였다. 

 

이런 대진의 잔인함은 이번 회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연어장인 20호 가수와 거의 CD를 튼 것 같은 완벽한 가창력을 구사하는 19호 가수의 대결이 그랬고, 무엇보다 '장발 라인'으로 거칠지만 깊은 감성을 노래에 담는 10호 가수와 헤비메탈의 극강 고음으로 소름 돋는 무대를 선보인 29호 가수의 대결이 그랬다. 또한 2라운드에서 묶여진 팀 그대로 팀 대결을 벌인 '아담스'와 '너도 나도 너드'의 대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싱어게인>은 기묘한 관전 포인트가 생겨나고 있다. 애초 '○호 가수'라 부름으로써 '무명가수'로서의 탈출을 목표로 하던 프로그램에 이제 시청자들은 이름 대신 그들의 무대를 원하고 있어서다. 사실 '무명가수'라는 타이틀은 이미 무색해진 상황이다. '○호 가수'라 방송에서는 소개되지만, 그 순간 인터넷에는 그의 실명이 거론되며 그가 어떤 가수였던가에 대한 이력들이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가리면 가릴수록 더 궁금해지고, 그래서 시청자들이 알아서 검색하고 찾아보면서 이 무명가수들의 실체는 더더욱 그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호 가수'라 불리던 이들의 이름이 공개되는 순간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그건 그 가수가 이제 진짜로 탈락하는 순간이고, 그 가수의 또 다른 무대를 볼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슈퍼어게인'으로 탈락의 위기에 처한 가수가 '이름을 겨우 밝히지 않고' 구제되는 순간 시청자들이 안도감을 느끼게 된 건 그래서다. 29호 가수가 탈락 위기에 놓였을 때 이선희 심사위원이 슈퍼어게인 카드를 썼을 때가 그렇고, 그와 대결해 졌지만 역시 다음 무대를 계속 보고프게 만들었던 10호 가수가 이름을 밝히고 탈락할 위기 상황에 처하자 이혜리가 슈퍼어게인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가 그렇다. 

 

결국 <싱어게인>이 보여주는 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는 그 자체로 무명까지 뚫고 나오는 노래의 힘을 말해주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이들의 이름이 밝혀지기보다는 좀더 그들의 무대를 보고 싶어 하게 됐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무명가수들이 진짜 원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단지 이름이 아니라, 어떤 노래와 무대로 기억되는 이름으로 남는 것.(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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