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스테이' 유머에 배려, 성실함까지..이래서 사랑받는 것

 

"당신이 <기생충>에 나온 배우라고요?"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는 최우식에게 외국인들은 그렇게 물었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1년 미만을 거주한 외국인들을 손님으로 받아 1박2일 간의 한국문화 체험을 해주겠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걸 맡은 이들이 윤여정, 정유미, 이서진, 박서준, 최우식 같은 이제는 월드클래스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물론 외국인의 놀라는 리액션을 통해 전해지는 진한 '국뽕'의 향기가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윤스테이>는 어쨌든 그 콘셉트 자체가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체험해주겠다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 한식이나 한옥 그리고 한국의 정이 느껴지는 문화들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인의 이런 반응들에 유독 민감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윤스테이>가 한국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찬만을 담고 있다 보기는 어렵다. 그것보다 <윤스테이>가 보여주고 있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 어떤 일을 대할 때의 성실함 같은 '세계 보편적인 가치들'이고 그런 가치들이 나라와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서 소통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주는 힐링이기 때문이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우식을 본 외국인들이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것보다, 그가 그런 유명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뛰어다니며 강도 높은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배려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다. <윤스테이>의 새 얼굴로 등장한 그는 정해진 보직(?)이 없어, 짐 나르기, 방 치우기, 그릇 치우기, 낙엽 쓸기, 재료 준비, 전날 재료 손질, 손님 픽업, 가방 들어주기, 다이닝룸 세팅은 물론이고 손님 응대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하게 됐다. 

 

이서진이 "얘는 타고 났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손님들을 응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 배우로 서게 됐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것은 연기만 잘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유머와 배려와 소통의 자세 같은 것들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라는 걸 '윤스테이' 영업 단 하루만으로도 보여주고 있어서다. 

 

<윤스테이>의 얼굴이자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윤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영화 <미나리>로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인물이지만, 이 '윤스테이'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사랑스럽다'고 얘기될 만큼 친근하고 유머 넘치는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식사 주문에 추가 요금이 있냐고 걱정하는 손님에게 "돈 잃을 일 없으니 걱정 말라" 농담하고, 생소한 오징어 먹물로 만든 부각 요리에 손님이 "저희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죠?"하고 농담하자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받아치는 재치라니. 영화 촬영장에서 이런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이 느낄 친근함과 따뜻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꺼번에 몰려오는 손님들의 저녁 식사(그것도 코스 요리를)를 멘붕이 올만한 상황이면서도 애써 침착하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정유미나 박서준의 단단한 멘탈과 성실함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윤스테이>를 보며 느끼는 뿌듯함에는 한국문화 체험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이는 호감 표현 자체의 '국뽕'만큼, 윤여정부터 최우식까지 '윤스테이' 식구들이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 '대접의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따뜻한 마음은 국적이 달라도 전해진다는 걸 확인하는데서 오는 것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이들이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타인과의 호흡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도 한 배우들에게 있어 기술이 아닌 태도나 성실함, 유머 같은 그 마음의 힘이 그 어떤 자질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러고 보면 <윤스테이>에 부제처럼 붙여진 '사장님 마음 담아'라는 문구가 그냥 달린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일에 있어서의 성취나 또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행복도 그걸 대하는 이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사진:tvN)

'유퀴즈', 돈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진짜 지쳤을 때 집에 와서 집어 들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좀 따뜻하고 내일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자신이 쓰고픈 책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유독 좋아했고, 또 글 쓰는 걸 좋아해 매일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일이 끝나고 나면 타인의 글을 잃거나 작품을 보며 논다는 정세랑 작가. 책 판매부수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그의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겨울방학 탐구생활'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떤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그것을 직업이 된 이들을 담은 이야기는, 직업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직업이라고 하면 먼저 '밥벌이'에 '생계'를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돈'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 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명의식 같은 것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당장의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세랑 작가는 '어떤 질문이든 답을 알려주는 사전이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뭐냐는 물음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알면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정세랑 작가는 "지금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회 문제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걸 은연 중에 말하고 있었다.

 

<조선잡사>를 쓴 강문종 교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다 가장 궁금했던 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직업을 탐구한 그는 <의궤>라는 책에만 160개에서 200개의 직업이 있다고 했고, 가장 큰 돈을 번 직업이 사쾌(부동산 중개업자), 수모(웨딩플래너)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매품팔이(매를 대신 맞아주는) 대장자 같은 불법이지만 살기 위해 대신 맞는 일까지 했던 직업도 있었다고 했다. 

 

막힘없이 조선시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풀어내주는 강문종 교수에게 조세호가 놀랍다고 말하자,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그 동기라는 소탈한 이야기를 내놨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방송사에서도 개그맨 공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유재석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냐고 묻자, 강교수는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들려줬다. 

 

그는 이 탐구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지저분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위해 또는 본인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분뇨를 처리하던 '똥장군'을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에서 '선생'이라 표현했던 대목을 들려줬다. "좀 더러운 것 또는 뭐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수많은 직업들이 끊임없이 유지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하는 스스로 드는 의문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문법과 자기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그 힘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2개국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전달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일을 사비를 들여 하고 있는 사진작가 라미는 바로 그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이었다. 2017년부터 개인작업으로 시작한 이 일로 그가 찍은 참전용사의 수만 1400명. "사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은사가 말해준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그는 빚을 내서도 하게 된 그 일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영국의 참전용사였던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불편한 몸에도 군인으로서 서서 찍겠다 말하며 아내의 부축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라미는 그 사진을 전달하러 갔을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라미가 말한 사진의 가치 그대로 '기록'을 통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위한 돈의 차원을 넘어 소명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인 '밥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힘겨워진 현실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유퀴즈>는 에둘러 보여줬다. 최근 출연자 논란으로 질타를 받은 뒤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며 공식 사과문을 내놓은 <유퀴즈>가 프로그램 내용으로 그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야말로 코로나로 인해 '직업의 세계'를 주로 다뤄왔던 <유퀴즈>가 향후 계속 추구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그저 연봉이나 수입 그리고 그 수치로 얘기되는 성공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아도 저마다의 소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사진:tvN)

'우이혼'의 호불호는 엇나간 관점에서 생긴다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는 첫 회를 시작하며 스튜디오에서 이를 관찰하는 MC들인 신동엽과 김원희의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을 먼저 보여준다. '할리우드'에서나 나올 법한 이혼이라는 소재를 우리도 하게 됐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는 신동엽의 반응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관찰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게 만든다.

 

이혼이라는 소재를 과감히 끌어왔다는 사실은 <우리 이혼했어요>가 가진 파격을 드러내지만, 어쩐지 계속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은 이것이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커플이 다시 만나 느끼는 감정(그것이 연애감정이든, 아니면 전 부부였던 관계가 남긴 감정이든)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아가 '재결합'을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영하와 선우은숙은 어딘지 어색하고 냉랭한 관계가 여전하다. 그래서 함께 뱅쇼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다가도 과거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처럼 느껴졌던 일들을 꺼내놓으며 다시 관계는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분위기를 풀어주는 건 손녀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다. 그런 자리에서 선우은숙은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를 잘했다며 이러한 소통과정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며느리가 시부모의 이혼에 대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이다. 며느리의 이런 모습은 이혼에 대해 그다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영상 속 등장하는 며느리의 쿨한 태도를 스튜디오에서 관찰하는 신동엽이나 김원희는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의 관점은 여전히 이혼을 삶의 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쩌다 저런 이유로 이혼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신동엽도 김원희도 그 보수적인 관점 속에서 이영하가 음식을 며느리와 선우은숙에게 나눠주는 장면을 그저 평범한 인간적인 매너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애정이 담긴 사랑의 마음으로만 보려하고, 그래서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어색한 관계를 풀어주는 손녀의 등장을 '큐피드'에 비유한다. 자꾸만 그 손녀가 '뽀뽀해'를 요구하라 이야기하는 신동엽의 멘트는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이혼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이들에게는 미소지으며 볼 수 있겠지만 이혼도 하나의 선택이라 보는 관점에서는 그런 관점이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최고기와 유깻잎의 영상물 앞에서 신동엽과 김원희의 보수적인 관점은 더더욱 호불호를 극명하게 만들어낸다. 이들은 너무 일찍 결혼해 아이까지 가졌지만 양가의 갈등이 커지고, 유깻잎이 독박육아를 하며 힘겨워했던 시기에 최고기가 사실상 방임을 했다는 사실에 이혼을 하게 됐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전처이자 아이 엄마의 빈자리를 실감하는 최고기는 조금씩 '재결합'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유깻잎은 여전히 최고기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래서 철벽을 치고 선을 긋는다.

 

사실 최고기와 유깻잎의 이혼은 당사자들의 현실 때문에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그래서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재결합'을 운운하는 일이 생겼을 리가 없을 게다. 당사자들의 문제도 문제지만, 너무나 완강한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최고기의 아버지나 결코 그것이 바뀌지 않을 거라며 재결합을 반대하는 유깻잎의 어머니 같은 양가의 문제는 쉽게 넘을 수 있는 장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방송에 등장하면서 이들의 '재결합'을 바라는 관점들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물론 재결합을 하던 안하던 그건 제3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프로그램에서 신동엽과 김원희는 대놓고 이들의 재결합을 간절히 바라는 관점을 드러낸다. 그것은 전혀 이 프로그램이 애초에 기대하게 만들었던 이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사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이영하, 선우은숙이나 최고기, 유깻잎이 이혼 후에도 다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하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혼이 모든 관계의 끝을 얘기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하고도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부모로서 보다 쿨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관계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이혼 후에도 만나서 서로 간의 애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그런 과정들을, 스튜디오에서 '재결합' 운운하며 설레발을 치는 건 그들이 선택한 삶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 관찰카메라는 그걸 관찰하는 주체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느냐가 그 프로그램의 시각을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과연 이런 시각으로 봤을 때 신동엽과 김원희의 관점은 <우리 이혼했어요>가 애초 기획하려 했던 이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겠다는 취지에 부합한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이혼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관점으로 이 프로그램이 이혼을 다루길 바란다. '하지만 재결합을 원해요'라는 엇나간 관점을 보태기보다는.(사진:TV조선)

'싱어게인', 29호 정홍일에 심사위원도 시청자도 매료됐다는 건

 

"내한공연인 줄 알았어요." JTBC 오디션 <싱어게인>의 4라운드 톱10 결정전에 나와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 송이'를 부른 29호가수의 무대에 대해 이해리 심사위원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실제로 오랜만에 보는 록 공연 같았다. 어찌 보면 뻔한 무대가 아닐까 싶은 선곡이었다. '못다핀 꽃 한 송이'는 종종 록커들이 특유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무대에서 선곡되던 곡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소 평범해 보였던 도입부분을 지나 중간에서 변주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록 스피릿이 더해지자 29호가수 특유의 절절함이 곡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 절절함에는 그가 그간 음악을 하며 살아왔던 쉽지 않은 삶이 고스란히 겹쳐졌다. 록을 고집하고 그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못다핀 가수로서의 삶. 그래서 <싱어게인>이라는 무명가수 오디션을 선택해 나온 그가 아니었던가. 그 꽃 한 송이 피워내겠다는 그의 절규가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특히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예수처럼 손을 펼치고 노래를 불러 마이크 없이 불렀던 대목은 그의 말대로 '실수'였지만 오히려 의도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소름 돋게 만들었다. 과거 마이크 없이 엄청난 성량으로 노래를 불러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록 가수들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런 무대들을 그 짧은 장면이 보여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극강의 고음이라고 하지만, 사실 과거 헤비메탈의 샤우팅 창법이 유행했던 시절만 보면 그런 고음은 익숙한 것이었다. 다만 지금 헤비메탈이나 록을 내세우며 노래하는 이들이 적어져 그런 고음이 귀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그래서 사자 갈기처럼 치렁치렁한 머리를 늘어뜨리고 첫 등장에 자신을 '헤비메탈 가수'라고 소개했을 때부터 29호가수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유희열은 그의 외관만 보고도 "딱 봐도 록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그는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통해 채워줬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꾹꾹 눌러 부르다 클라이맥스에서 폭발적으로 터트리는 29호가수의 무대는 간만에 록이 주는 에너지를 제대로 전해주었고, 심사위원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엔 거의 사라진 창법과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유희열 심사위원이 표현했던 것처럼, 그의 록 스피릿은 그렇게 아련한 향수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예수님들'이라고 표현됐던 10호가수와 함께 29호가수가 선보였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가수들이 오히려 절제된 목소리로 부를 때 그 깊이가 더 깊어진다는 걸 느끼게 해줬고, 홀로 부른 들국화의 '제발'은 김종진 심사위원이 말했듯, 오랜만에 속이 다 시원해지는 무대의 묘미를 선사했다. 

 

29호가수는 결국 자신이 바랐던 톱10에 오른 것이 오롯이 록을 고집하며 살았고 그래서 생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자신에게 뭐라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 말을 전하며 슬쩍 비쳐진 눈물은 마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자의 눈물처럼 보여 더욱 묵직한 여운으로 남겨졌다. 

 

이제 톱10에 들어간 29호가수는 그의 이름 정홍일로 무대에 서게 됐다. 향후 그가 <싱어게인>에서 어떤 위치에까지 오를 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쩌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됐다.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의 취지에 걸맞게 그는 요즘엔 거의 사라진 스타일이 되어버린 록으로 '다시 노래 부르게' 됐고 그렇게 대중들을 빠져들게 했으니 말이다. 그는 어쩌면 이 오디션이 추구했던 기획의도를 삶 전체를 끌고 와 무대에서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싶다.(사진:JT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