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튼페이퍼팝과 가요를 잇는 경계인의 음악

 

수목이면 방영하는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메인 테마곡으로 자리 잡은 ‘Bye, autumn’이란 곡이 화제가 된 건 과연 드라마 때문일까. 아니면 제목에 나타나있듯 솔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나무들이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가을이라는 절기의 서정적인 감성이 이 곡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드라마와 계절, 그 영향을 무시할 순 없을 게다.

 

사진출처:질투의 화신OST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이 곡은 저 수많은 ost들 중 하나 정도의 존재감으로 남지 않았을까. 영어가사로 되어 있어 팝송이라 여겼던 분들은 이 곡이 이 드라마의 남혜승 음악감독과 작곡가 김희진이 대본을 받고 만든 곡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또 영락없는 팝 가수의 목소리로 가을의 감성을 제대로 긁어놓은 솔튼페이퍼가 불렀다는 사실에도.

 

노래가 좋아 반복해 듣다가 ‘Bye, autumn’의 가사를 새삼 되뇌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시적인 정조에 당장 눈앞에서 천천히 쏟아져 내리는 별빛(Slowly fall a thousand stars)과 모든 것들이 지나쳐가는(And everything, all goes by) 그 시간의 쓸쓸하지만 어딘지 말랑말랑해지는 그 감성을 느꼈을 것이다. 솔튼페이퍼는 이 곡을 통해 자신이 웃거나 울거나(If I cry, if I smile) 혹은 노력한다고 해서(If I try, if I chase) 달라질 건 없는, 저 가을이면 하릴없이 떨어지는 잎들처럼 작별을 고해야 하는 우리네 삶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줬다.

 

솔튼페이퍼의 음악이 팝과 가요에 걸쳐진 경계인의 느낌을 주는 건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 90년대 시애틀에서 성장했고 2005년 한국으로 와 지금껏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해왔던 특이한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에는 90년대 커트코베인을 연상케 하는 그런지의 느낌이 배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식의 정서가 깔려 있다. 이미 팝이 특정 국가의 음악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음악이 되어버린 현재, 그래서 솔튼페이퍼의 음악은 팝송이지만 우리 정서가 좋아할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지난 5월 발표한 앨범 ‘Spin’은 그래서 꽃잠프로젝트 김이지와 함께 부른 오 달아라‘What a Place’ 같은 우리네 정서가 물씬 풍기는 어쿠스틱한 곡도 있지만, 커트 코베인이 다시 살아 돌아와 부른 것만 같은 ‘Love Leech’‘Heavy Muse’ 같은 곡들도 들어 있다. 게다가 솔튼페이퍼는 MYK라는 이름으로 에픽하이와 힙합 작업을 하기도 했다.

 

팝송과 가요, 그런지 느낌이 절절히 묻어나는 얼터너티브록과 지극히 감성적인 어쿠스틱한 발라드, 게다가 힙합까지. 사실 어찌 보면 한데 묶어놓기 애매한 요소들이지만 솔튼페이퍼는 바로 그런 다양한 음악적 감성들이 섞여지며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팝송이자, 우리네 감성이 해외에도 어필할 수 있는 그런 가요를 동시에 해내고 있다.

 

물론 솔튼페이퍼라는 매력적인 경계인의 음악을 대중적으로 알려준 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솔튼페이퍼가 가진 음악적 매력은 이 ost 그 이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미 모든 세계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그 주고받는 영향을 통해 교집합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솔튼페이퍼라는 경계인의 음악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는 그런 자신의 음악에 우리 식의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지금껏 국내에서 활동하며 노력해왔다고 한다. 지난 2013<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왔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말이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튼페이퍼의 음악은 우리 식의 감성이 잘 배어든 팝송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계인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12>, 정준영 빈자리 보단 남은 자산 돌아보길

 

KBS <12>에서 정준영은 결국 하차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 빈 자리가 아무렇지도 않을 리는 없다. 한글날 570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마련된 <12>은 그래서 그 오프닝 자리에 정준영의 빈자리를 에둘러 표현했다. 마치 사죄를 하고 있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의식했고, 어쩌다 삭발을 하고 온 김준호에게 마치 <12>이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의지를 다진 것 같은 뉘앙스를 덧씌웠다.

 

'1박2일(사진출처:KBS)'

판교역에서 출발해 여주까지 가는 경강선에서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 출연자들은 그 동생의 빈자리를 언급했고 목적지인 세종대왕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을 때도 그 동생을 이야기하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꽤 오랫동안 함께 여행하며 동고동락했던 동생의 빈자리를 단번에 떨쳐낸다는 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12>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정준영의 빈자리를 얘기했지만 실제로 그 빈자리는 그만큼 크게 다가왔을까? 이번 한글날 특집으로 마련된 여행이 워낙 잘 꾸려져서인지 그 빈자리는 33으로 하던 게임을 이제는 못하게 된 것 정도로 소소하게 느껴졌다. 이 점은 출연자들이 아쉬워하고 있지만 <12>만의 저력은 여전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특집은 기획적으로 적확했다고 볼 수 있다. 한글날을 맞아 기획된 특집으로 새로 개통된 경강선을 타고 세종대왕릉역까지 가는 여정도 여행정보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게임들, 이를테면 만 원 권의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게임을 통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하거나 그 외에 여러 발명품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들이 <12> 특유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보해주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릉에서 벌어진 복불복 게임으로 승패에 따라 자음과 모음을 나눠줘 그걸 조합해 음식을 얻는 게임은 <12>의 게임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것 역시 게임의 재미와 더불어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가를 그 조합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12>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들, 즉 숨겨진 우리네 여행지 소개나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알려주는 이런 시도들이 이번 특집에서는 잘 구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김준호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프로 예능인이 있고, 바른 이미지에 뭐든 적극적으로 임하며 때론 놀라운 지식을 보이면서도 때론 허당의 면면으로 웃음을 주는 동구 윤시윤이 있으며, 오래도록 <12>의 신바(신나는 바보)로서 기상천외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종민과 프로그램에 따뜻한 정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차태현,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웃기는 먹방러 데프콘은 <12>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자산들이다.

 

여기에 유호진 PD 이후 새로 자리해 무도리로 불리는 유일용PD와 최근 무인도 낙오에서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낸 새내기 주종현 PD 같은 연출자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제작진이 있다. 물론 프로그램 이면에서 이런 갖가지 게임을 개발하고 여행지와 여행의 방식 등을 기획하는 작가들도 존재한다.

 

그러니 정준영이 하차한 지금,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이제 <12>이 충분히 갖고 있는 자산들을 돌아볼 때다. 물론 필요하면 새 멤버를 충원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작진과 출연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12>이라는 브랜드가 쌓아놓은 가치들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빈자리가 주는 아쉬움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진사> 박찬호 리더십, 메이저리거의 솔선수범

 

아마도 이건 박찬호가 낯선 이국의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맹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박찬호는 자신만이 아니라 동료와 병사들을 챙기고 함께 임무를 수행해가는 특유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모습은 동료들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그들을 위한 박찬호의 마음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MBC <진짜사나이>에서 박찬호는 2갑판장이라고 불린다. 워낙 동료와 병사들을 챙기는 게 거의 습관화되다보니 그의 쉴 틈 없는 잔소리가 그에게 그런 별명을 붙게 만들었다. 같이 갑판에 배치 받은 솔비는 진짜 갑판장님이 가고 나면 휴식시간에 제2갑판장이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방탄복을 잘 못 챙겨 입는 솔비를 도와주고 암기사항을 잘 못 외워 늘 곤욕을 치른 서지수에게 그걸 외울 수 있게 도와준다. 막내로서 이런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서지수는 자신이 너무 못한다는 자책감에 눈물까지 흘린 바 있다. 박찬호는 그런 서지수에게 마치 딸처럼 세세하게 임무 상황들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탄피가 갑판에 떨어질 때 파손을 막기 위해 계류삭 작업을 할 때 박찬호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보기 좋게 임무를 끝내고는 함께 한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건 2 갑판장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행동이었지만 어찌 보면 과도한 느낌마저 주었다. 액면을 이야기하면 이건 <진짜 사나이>라는 군 체험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박찬호의 행동은 프로그램을 찍는다기보다는 진짜 부사관 훈련을 받는 이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모든 임무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거의 투수로서 사격은 어딘지 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던 타겟을 맞추는 것이 야구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으니까. 던짐줄 훈련에서도 그는 세 차례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해 단번에 성공시킨 이태성과 비교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결국 메이저리거라고 해도 군 생활은 또 다르다는 것.

 

하지만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동료들과 어우러지고 또 통솔하는 면에 있어서 박찬호는 단연 돋보이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 쏟아내고 다녀 투머치토커라고까지 불리는 건 어쩌면 동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함께 하는 임무에 있어서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내려는 그 마음은 야구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는 이미 삶 속에 체득된 것이었을 게다.

 

40줄을 훌쩍 넘겨버린 나이에 해군 체험이 쉬웠을 리 없다. 그것은 그 나이에도 훈련을 할 때나 나아가 식사를 할 때조차 잔뜩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그 얼굴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갑판장과 동료가 챙겨주는 생일에 딸과 아내에게 받은 편지를 읽을 때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잔뜩 쉰 목소리로 그가 편지를 읽을 때 동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건 어쩌면 나이는 들었지만 그간 열심히 동료들을 챙기려 애쓰며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온 그의 진심이 읽혔기 때문일 게다. 그저 방송을 찍는 것이 아닌 진짜로 임하는 진짜 사나이의 면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는 형님>, 이시영의 모든 것이 허용됐던 까닭

 

아는 형님. 넘 좋은 형님들. 편하게 제발 막 하라고 하셔서 정말 막 했어요. 죄송해요. 수근오빠 호동오빠가 더 신경도 써주고 고마워요. 예체능팀. 으어허헝.” JTBC <아는 형님>에 나왔던 소감을 이시영은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그녀가 새삼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건 <아는 형님>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이 한 마디로 거침이 없었기때문이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보통의 경우 <아는 형님>에서 여성 출연자는(그것도 단독 출연이라면 더더욱) 이 아재들의 짓궂은 농담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날은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이시영이 아재들을 압도하는 모습들로 채워졌다. 물론 아재들의 짓궂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권투를 배우겠다며 나선 이상민을 몇 방 만에 포기하게 만들고, 35살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절대 동안인 그녀는 아재들이 서로 애정공세를 펼칠 만큼 그들을 쥐락펴락했다. 데뷔전에 찜질방 매점에서 일을 했었다는 이야기부터 복싱 연습을 너무 심하게 해 생수병 마개를 딸 힘도 없어 서러웠었다는 이야기까지 소탈함과 털털함은 아재들마저 빠져들게 만들었다. 같은 스포츠인으로서 서장훈은 그녀가 했을 연습량을 얘기하며 존경스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즉석 상황극으로 펼쳐진 일주일 남친 인사이드는 이시영이 일곱 명의 아재들을 상대로 일곱 다리를 걸친 상황을 통해 그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말로 게스트를 당황시켜운 월요일 남친 김희철에게 뱃속 아기 아빠를 찾아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는 드립을 날려 당황하게 만들었고, 화요일 남친 거구의 서장훈을 군 부사관이 되어 점호를 실시하고 얼차려를 주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수근은 스스로 샌드백이 되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남친으로 등장해 이시영에게 펀치를 맞고 베개에 맞고 또 딱밤을 연거푸 맞는 굴욕을 당했고, 돈 자랑하던 이상민은 반지부터 신발, 목걸이까지 모두 빼앗긴 채 쫓겨났으며, 강호동은 먹방 훈련이라며 연거푸 레몬을 통째로 먹고 휘파람을 불어야 했다. 이시영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웠을 <아는 형님>의 역전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건 저 이시영의 인스타그램이 얘기해주듯이 그녀가 맘껏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준 <아는 형님> 아재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동네 예체능>으로 이시영은 강호동, 이수근과 친분을 갖고 있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시영의 자신감 넘치고 털털하며 인간미 가득한 모습들을 맘껏 꺼내놓을 수 있게 기꺼이 아재들이 온갖 굴욕을 감수하고 나선 것일 게다.

 

무엇보다 이런 모습은 그간 여성 출연자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해오면서 쌓인 불편한 느낌들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는 차원에서 <아는 형님>에도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보인다. 물론 뭘 해도 예뻐 보이는 이시영 같은 출연자가 아니라면 시도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지만. 이시영이 가진 매력은 <아는 형님>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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