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유준상이어서 괜찮은 몇 가지 이유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애초에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뽑아내고 있다. 그저 여군 체험 정도로 살짝 쉬어가는 특집으로 여겨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고 있다. 항간에는 여군특집이 훨씬 더 리얼에 가깝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진짜 사나이(사진출처:MBC)'

사실 여자 연예인들을 화생방에까지 들어가게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사격훈련의 PRI, 그리고 유격 같은 훈련은 남자들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김소연이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려 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들고, 남편 닮아 처신을 곧게 해나가는 홍은희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게 만든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지나가 어려운 언어장벽에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자세나, 아들 생각하며 아픈 다리에도 든든하게 대대장 포스를 보이며 버텨내는 라미란은 정말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럽게 다가올 정도다. 운동선수 특유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묵묵히 훈련에 임하는 박승희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눈물 콧물까지 흘려가며 화생방 훈련을 받는 모습은 남자 연예인들이 하던 그 장면들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군대와 여성. 요즘은 여성들도 자원해 군인이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군대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여성 연예인들이 남성들이 하는 훈련을 받으며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은 남성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군대 간 친구가 전화 오면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꼭 받아야겠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실로 진심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이번 여군 특집에 내레이션을 홍은희의 남편 유준상이 맡았다는 점이다. <진짜 사나이>의 내레이션은 고생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서 남자 연예인들이 나왔을 때는 여성들이 그걸 맡아왔다. 하필 왜 유준상이어야 했을까 하는 점은 방송을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즉 이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는 여성들을 상대로 때론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고 때론 격려의 목소리를 더하는 인물로 유준상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남자가 이 내레이션을 맡았다면 자칫 여성들이 고생하는 장면을 보며 유쾌해하는 악취미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은희의 남편으로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유쾌한 농담과 격려를 던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기분 좋게 만든다. 때론 힘내라고 소리를 쳐주고 때론 화장기 없는 아침의 얼굴을 보며 여전히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번 여군 특집에서 유준상은 확실히 숨은 공로자다. 그의 목소리는 이들 고생하는 여성들을 보는 남성들의 이중적인 시선을 대변해주고 있다. 사실 군대라는 곳이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면서 여성들도 그곳이 얼마나 힘든가를 체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대변하듯 정신 못차리는 여자 연예인들을 향해 정신차려!”하고 외칠 수 있는 내레이션으로 유준상 만한 인물이 있을까. 이번 여군 특집은 그래서 유준상과 홍은희라는 유쾌한 부부를 재발견시켜 주고 있다.

 

<꽃보다 청춘>, 회고담 속에 담긴 청춘의 기억

 

윤상, 유희열, 이적이 함께한 <꽃보다 청춘>의 페루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실 중년의 나이에 어느 날 훌쩍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중년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나이라서 그렇다. 회사를 다니는 중년이라면 위로 아래로 챙겨야할 일들이 산적해 개인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그렇다. 가족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자신 따위는 살짝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바로 중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꽃보다 청춘>은 바로 이 현실에 꽉 막혀 있는 중년들을 어느 날 납치하다시피 비행기에 태워 그것도 남미 페루에 떡 하니 갖다 놓는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상하게 그것은 그들을 설레게 만든다. 유희열은 남녀가 함께 혼숙하는 도미토리에서의 불편한 하룻밤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하나하나 계획하기 시작하고, 이적은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부터 일어, 중국어 등등 각종 언어들을 급조해 섭렵(?)하며 여행의 소통을 책임진다. 갑작스런 출발에 부대끼는 몸을 달고 온 윤상은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동생들을 배려하며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여행 자체를 싫어하던 윤상은 동생들과 여행에서 여행의 묘미를 찾아낸다.

 

여행의 목적지인 마추피추 앞에서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것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그 성취감과 현실에 묻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런 역사적인 문명 앞에 서 있다는 감흥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시간은 그 무구한 세월을 버텨온 유적 앞에서 다시금 의미를 되찾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채워가듯 일에 쫓겨 살아가던 중년들은 세월이 무상한 유적 앞에서 자신들이 보낸 현실의 안간힘이 마치 먼지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거쳐 남미까지 들어가는 데만도 20시간이 꼬박 걸린다. 거기서부터 또 마추피추까지 가는 여정은 버스로도 하룻밤 이상을 더 가야 하는 거리다. 그러니 중년의 그들에게 이동거리만으로도 도전이 됐을 터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이들은 동료로서 선후배로서의 끈끈한 관계를 재확인한다. 아픈 윤상을 무심한 척 살뜰히 챙기는 유희열의 마음이 보이고, 그런 윤상의 사연을 들으며 왈칵 울어버린 이적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윤상이 보인다.

 

중년 남자 셋이 마음을 통해 가까워지니 이제 그들은 소년이 된다. 마치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로 돌아간 듯, 현실 바깥으로 나와 적응된 그들은 점점 청춘이 되어간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왜 중년들의 여행을 소재로 하면서 <꽃보다 청춘>이라 이름 붙인 이유가 될 것이다. 여행은 우리 모두를 청춘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기억은 영원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그들이 납치되듯 여행을 시작했던 자유로 김치찌개 식당에서 후일담을 나눈다. 그 후일담에는 세 사람의 여행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은 여행과 청춘에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여행이든 청춘이든 다시 가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꽃보다 청춘>이라는 특별한 여행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청춘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떠나라. <꽃보다 청춘>은 그런 말을 전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침묵하는 김구라를 보니

 

JTBC <비정상회담>에 한국 대표로 출연한 김구라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MC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체를 이끌어가는 메인 MC로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이 있지만 그들은 이야기의 전면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옆에서 주제를 던지거나 외국인들이 던지는 말에 양념을 쳐서 웃음을 만드는 정도를 할 뿐이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그래서였을까.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김구라는 지금껏 여타의 토크쇼에서는 좀체 보여주지 않았던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가 갖고 나온 주제는 아들에게 뭐든 들어주는 자신이 비정상이냐는 것이었다. 지금껏 아들 동현이가 원하는 건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다는 김구라는,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비정상판정을 받았다.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는 그 어릴 때의 잘못된 습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친다며 강도 높게 김구라의 육아방식을 비판했다.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건 괜찮지만 끈기 있게 한 가지를 끝까지 하는 것은 좀 더 종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대표 타쿠야는 무뚝뚝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며 그렇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뭐든 받아주는 김구라의 육아방식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육아방법에서 각자 아버지에 대한 회고로 이어졌다. 타쿠야는 자신이 야구선수로 마운드에 섰을 때 저 멀리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고 있던 것이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를 꺼내며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타일러 라쉬는 알코올에 의존하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고는 그 약해진 아버지와 드디어 소통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김구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루게릭병을 앓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사연을 꺼내놓으며 자기 위치에 굳건히 서 있는 것도 효도라고 말했다.

 

최근 김구라에 대한 호감은 과거에 비해 부쩍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특유의 독설이 시청자들에게 심지어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딘지 불편함으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크쇼가 전반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인지 독설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건 오히려 호불호만을 더 키우고 있다. 특히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불쑥 불쑥 꺼내놓은 그의 이야기 방식은 대중들에게는 어딘지 잘못된 것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런 김구라가 <비정상회담>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경청하는 모습은 심지어 낯설게 다가왔다. 김구라가 아닌 것 같은 모습. 그건 방송에서 보여주던 독설가의 모습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김구라의 모습이었다. 이건 어쩌면 <비정상회담>이라는 특별한 토크쇼가 부여한 역할일 것이다. 김구라는 처음 테이블에 앉았을 때 프로그램이 잘 되는 이유가 MC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처럼 애써 자신을 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김구라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건, 그가 던지는 센 멘트들이 그의 고유 성향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 토크쇼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SBS <매직아이>MBC <라디오스타> JTBC <썰전>에서 경청하는 김구라는 불필요하다. 그는 점점 센 이야기들을 요구하는 토크쇼들 속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거친 독설은 그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런 점은 김구라가 좀 더 새로운 예능의 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방송이 그를 불러준 건 독설하는 김구라였지만 지금은 조금씩 그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늘어가는 상황이다. 비슷한 토크쇼 속에 들어가면 자칫 김구라는 그 틀에 갇혀버릴 위험성이 있다. MBC <사남일녀>는 김구라가 하지 않던 야외 버라이어티쇼를 통해 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 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역시 토크쇼에서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직설어법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토크쇼는 없는 것일까. 이건 김구라의 숙제이면서 우리네 방송계가 고민해야할 토크쇼의 숙제이기도 하다.

 

생활 자체가 예능이 되는 대체불가 김병만

 

SBS에서 새롭게 시작한 에코빌리지 <즐거운가>는 김병만이라는 대체불가 예능인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만들었다. <즐거운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직접 집을 짓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누군가 지어준다는 것으로 인식이 박혀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자신이 설계하고 자신이 땀을 흘려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도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즐거운가(사진출처:SBS)'

물론 도전이 주는 의미는 있지만 사실 집짓기는 과거라면 도저히 예능화되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거기 김병만이라는 달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집 또한 스스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뭐든 제 손으로 척척 만들어내고 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병만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생활 예능인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그가 체험하고 겪는 생활 자체를 예능으로 묶어내고 있다.

 

<정글의 법칙>은 어린 시절부터 산에서 나무를 타며 뛰어놀았던 김병만의 특별한 재능을 전제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그의 재능을 처음 들은 SBS 정순영 국장은 단박에 김병만에게 이 기획을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그런데 그의 재능과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쿠버 자격증과 스카이다이빙 자격증까지 딴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의 시야를 물속과 하늘 위로까지 옮겨가게 만들었다.

 

그가 설 특집으로 출연했던 <주먹쥐고 소림사> 역시 마찬가지다. 평상시 그가 관심을 보였던 무술의 세계는 그를 직접 소림사로 가게 만들었고 거기서 무술을 배우는 과정을 예능으로 탄생시켰다. 이번 <즐거운가><정글의 법칙>에서 그가 지형지물을 이용해 뚝딱 집을 지어내는 모습을 통해서 그 프로그램 탄생의 전조를 본 적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김병만 스스로의 진짜 생활이 예능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와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 속의 그가 거의 100% 똑같은 리얼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마도 프로그램 안과 밖이 이처럼 투명하게 이어지는 연예인도 드물 것이다. 바로 이점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에 왜 김병만이 독보적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진짜인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보여준다.

 

<즐거운가>는 김병만표 리얼 예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나면 그저 기억 속에 휘발되는 것에 비해, 이 프로그램은 직접 실체로서 그들이 만든 집이 남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프로그램과 현실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방송이 현실을 그대로 바꾼다는 건 김병만표 리얼 예능이 현실 그 자체에 발을 딛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즐거운가> 첫 회를 통해 김병만은 직접 포크레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보여주었던 그 누구보다 체험에 있어 적응력이 빠른 달인의 기질은 이렇게 각각의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탄생하고 있다. 과거 달인이 매주 새로운 도전을 예능으로 시작해 리얼로 발전시켰듯이, 지금 김병만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나온 하고 싶은 도전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리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김병만이라는 예능인의 독보적인 영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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