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를 보면 2009 토크쇼가 보인다

올 예능을 단적으로 정리하자면 그 한 축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이고 다른 한 축은 토크쇼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토크쇼에 있어서 올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을 고른다면 단연 ‘무릎팍 도사’가 꼽히지 않을까. 그것은 ‘무릎팍 도사’가 얻은 시청률 성적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토크쇼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때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걸어온 ‘무릎팍 도사’의 실험적인 행보가 전체 토크쇼에 일으킨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올 한 해 ‘무릎팍 도사’는 우리네 토크쇼에 어떤 실험을 했고 그것은 내년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탈신비주의, 탈권위주의 바람
‘무릎팍 도사’의 핵심적인 특징은 배틀 구조의 화법으로 진행되는 토크의 진검 승부라는 점이다. 마치 탐문하듯이 상대방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시청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도사와, 그것을 숨기거나 아예 자포자기하듯 털어놓는 게스트의 입장이 절묘하게 부딪치는 이곳은 기존 연예인들 혹은 유명인들이 갖고 있던 신비주의 혹은 권위주의의 껍질을 벗겨내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신비주의 마케팅이 주조를 이루던 시대라면 이 대결구도는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이제 탈신비주의가 어떤 대세가 된 상황에서 이 도사와 게스트가 벌이는 한판 굿은 가능해진다. 그 양자가 공유한 목적은 신비주의라는 겉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신 연예인 혹은 유명인은 친근한 이미지를 대신 얻게 된다. 반면 도사가 얻는 것은 바로 그 연예인, 유명인의 껍질을 벗겨내는 쾌감이다.

도사의 직설어법은 여타의 토크쇼에서 에둘러 홍보가 아닌 척 가장한 채 홍보를 하는 그런 방식을 깨뜨려버린다. 올해 다른 토크쇼들은 여전히 이 방식을 어떻게 잘 위장한 채 고수할 것인지만을 고민해왔다. ‘야심만만2’도 올킬 시스템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게스트의 홍보에 집중하고 있고, 게스트의 카테고리화로 어떤 주제를 상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놀러와’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해피투게더’나 ‘샴페인’ 같은 토크쇼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명랑히어로’는 초기에 시사문제를 끌어 들여 이 문제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두 번 살다’라는 컨셉트는 역시 인물 홍보로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토크쇼들 역시 직설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무릎팍 도사’ 같은 형식은 구축하지 못했다. 과거의 형식에 화법만 바꾼 셈. ‘무릎팍 도사’가 보여준 화법과 형식의 균형은 2009년 토크쇼들의 주된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중심주의 벗어난 게스트 섭외의 확장
무엇보다 올해 ‘무릎팍 도사’가 토크쇼의 변화에 기여한 부분은 게스트 섭외에 있어서 연예인 중심주의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토크쇼라고 하면 늘 연예인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신변잡기나 홍보거리를 토로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 초기 ‘무릎팍 도사’도 이 한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었다. 논란 연예인을 섭외한 것은 참신한 부분이었지만 그것 역시 논란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씌워주었다는 역홍보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다. 한참 공격적인 발언을 하던 도사가 마지막에 가서 “○○여! 영원하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토크쇼 역시 연예인 홍보의 한 분파임을 자인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직면해서 ‘무릎팍 도사’가 꺼낸 비연예인 게스트라는 카드는 주효했다. 비연예인 출연은 연예인 홍보라는 지적을 간단히 뛰어넘으면서 동시에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릎팍 도사’는 양준혁, 박세리, 이만기, 장미란, 추성훈 같은 스포츠인들은 물론이고 산악인 엄홍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장영주), 발레무용가 강수진, 만화가 허영만, 소설가 이외수 같은 문화계 전반의 인물들을 비롯해 심지어 우리 시대의 소설가 황석영까지 토크쇼로 끌어들여 한바탕 걸판진 솔직한 토크의 재미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연예인보다는 비연예인이 출연했을 때 더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는 점은 앞으로 우리네 토크쇼들이 게스트를 섭외하는데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준 셈이 아닐 수 없다.

집단MC체제? 1인 토크쇼로도 충분
무엇보다도 ‘무릎팍 도사’가 내년 토크쇼의 어떤 전범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집단 MC체제를 부르짖을 때 홀로 1인 토크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방진 도사 유세윤과 올밴이 있지만 이들은 보조적인 위치에 있을 뿐, 그 진짜 형태는 1인 토크쇼로서 게스트와 메인 MC의 토크 대결이 중심을 이룬다. ‘무릎팍 도사’는 정통 토크쇼 구조를 유지하면서, 대신 토크의 형식과 대화의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정면승부를 통해 그간 홍보와 진정성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있던 토크쇼의 문제를 뛰어넘었다.

이것은 현재 경기불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집단 MC체제에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이 된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 같은 1인 체제가 구조조정의 한 선택으로 대세를 이룬다고 해도 똑같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박중훈쇼’ 같은 1인 체제의 토크쇼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쇼의 경우처럼 그저 과거로 회귀하는 1인 토크쇼는 어쩌면 시대착오일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1인 토크쇼라도 그 구조 위에 이 시대의 화법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토크쇼는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시대에 맞게 얼굴을 고쳐오며 진화해왔다. 그 전방위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무릎팍 도사’다.

 편성 + 아이템 + 시스템

본래의 시간대였던 9시로 돌아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올해 초 한 시간 뒤로 밀리면서 10% 초반대의 시청률에 만족하던 것이 이제 20%대를 넘어서고 있다. 불황에 개그 프로그램은 호황이라는 말이 있지만 경쟁 프로그램들인 ‘웃찾사’나 ‘개그야’가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 ‘개콘’의 약진은 어딘지 특별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개콘’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9시 대로 돌아온 편성, 넓어진 시청층
‘개콘’이 주말 9시로 복귀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프로그램 성격상 너무 늦은 시간대는 젊은 시청층들의 호응을 끌어내기가 어렵기 때문. 타방송사와의 뉴스와 겹치는 이 9시라는 시간대는 과거에도 ‘개콘’만이 가진 성공적인 편성 전략이었다. 주말의 뉴스라는 것이 주중의 그것과는 달라서 주목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상황에, 요즘처럼 하수상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차라리 ‘개콘’처럼 잠시 현실을 잊고 한바탕 웃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 ‘개콘’의 9시 복귀는 사회적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SBS의 ‘웃찾사’는 시간대가 1시간 늦춰진 금요일 10시로 편성되었다. 사실상 금요일이라는 특수성, 즉 ‘주5일 근무제’시대를 맞아 대부분이 TV앞에 자리를 하지 않는 이 상황은 그 시간대에 편성된 프로그램들의 어려움을 예고한 바 있다. 경쟁작이 없는 금요일의 그것도 두 시간 연속 편성되는 금요드라마가 결국에는 폐지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에둘러 말해준다. 한편 MBC의 ‘개그야’는 토요일 12시까지 시간대가 밀려났다. 사실상 ‘개그야’의 전성기는 ‘주몽’이 시청률 패권을 쥐고 있을 때, 이어서 월요일 11시에 방영되던 때였다. 하지만 ‘주몽’이 끝나고 점점 시들해진 ‘개그야’는 편성에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유목민 신세가 되었다.

공감 아이템, 깊어진 공감대
‘개콘’만이 가진 강점은 실험적이면서도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난... 했을 뿐이고!’라는 유행어로 주목받고 있는 안상태는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답답하고 억울한 현 시대의 절박한 상황을 기자라는 입을 빌려 콕 집어냄으로써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밖에도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은 과대포장되기 일쑤인 믿기 어려운 세상을 막무가내로 고발하는 그 까칠함을 통해 대중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앙금을 속시원히 털어낸다.

‘도움상회’ 역시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한 불만사항을 상조전문CF를 패러디해 비판하고 있으며, ‘로열패밀리’는 상류층인 척 행동하는 거지가족을 통해 한편으로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상류층의 특권의식을 꼬집는다. ‘할매가 뿔났다’, 혹은 ‘박대박’같은 코너는 소통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전달한다. 이처럼 ‘개콘’의 강점은 시대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개그 코너로 끌어들이는 순발력에 있다.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
‘개콘’이 이처럼 순발력 있는 대응을 할 수 있는 힘은 그 안정적인 시스템에서 나온다. 무대개그의 경쟁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개콘’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단 몇 분 몇 초라도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 시스템은 어찌 보면 개그맨들에게는 가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콘’은 이미 이 시스템을 통해 많은 스타들을 발굴한 전적이 있다. 박준형, 정종철, 정형돈, 유세윤 같은 무대 밖에서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스타들의 면면은 그대로 후배 개그맨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자극이 된다.

게다가 경쟁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스템에도 선후배 개념의 끌어주고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스템 자체를 좀더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개콘’만이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개콘’의 승승장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편성시간대의 변경은 시청층이 세대별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개콘’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청층은 그만큼 넓어졌다. 게다가 어려운 사회환경은 ‘개콘’만이 가진 순발력 있는 개그의 즉각적인 소재가 되어 주었다. 그만큼 공감의 폭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오래 지속되면서 공고해진 시스템은 넓어진 시청층과 깊어진 공감대를 생산해내는 원천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이것이 웃음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 더욱 웃겨진 ‘개콘’만의 인기비결이다.

여름에 빛나는 ‘패떴’, 겨울에 돋보이는 ‘1박2일’

날씨와 여행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소풍 전날 다음날 비가 온다는 기상정보에 잠 못 드는 밤을 지낸 적이 있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여행이 산다. 만일 출사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날씨는 절대적이다. 수백 킬로를 달려가 일출을 찍으려 했는데, 마침 먹구름에 해가 가려버렸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날씨는 그림(사진 혹은 영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날씨가 여행에, 특히 영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여행버라이어티 역시 날씨와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표적인 여행 버라이어티로 주말 저녁을 즐겁게 해주는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는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단지 그림의 변화가 아닌 이들 버라이어티쇼들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의 변화다.

‘패밀리가 떴다’에 드리워진 추위라는 야생
석모도에 간 ‘패밀리가 떴다’에게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칼바람을 맞으면서 하는 게임은 과거 이 프로그램의 최대 강점이었던 그저 웃고 즐기던 분위기를 변모시킨다. 이전만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정도의 추위 앞에서 그나마 프로의식을 발휘한 건 유재석이다. 그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사리지 않는 몸 개그를 보여줘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한다. 이러한 날씨의 침공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심적인 아이템인 저녁 차려 먹기에서도 이어진다.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는 즐거움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는 고역으로 변모한다. 문제는 이 버라이어티쇼가 지금껏 지향해온 것인 리얼리티 자체가 아니라 설정을 통한 유쾌한 즐거움이었다는 점이다. 야외에 나가서도 대외적인 접촉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해, 저들만의 관계가 주는 폐쇄적인 즐거움에 몰두해온 그들에게 차가운 날씨란 꼭꼭 닫아놓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야생 그 자체다. 그들은 여전히 이 프로그램의 성격대로 설정된 즐거움을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그 설정을 파고드는 차가운 날씨 앞에서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충남 보령시 외연도를 찾아간 ‘1박2일’에게 추운 날씨는 오히려 그림을 살린다. 야생과 리얼리티를 주창하고 있는 ‘1박2일’은 사실상 이러한 도전상황이 없으면 그림이 생기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 추위라는 상황은 어떤 사건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아무런 사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준다. ‘혹한기 대비캠프’편은 아무런 외부적 상황 없이도 날씨 하나만으로 ‘1박2일’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확실히 겨울은 ‘1박2일’에게는 제철이다.

제철 만난 ‘1박2일’, 새로운 재미 보여주어야
야생을 피하고 안전한 즐거움을 찾는 ‘패밀리가 떴다’와 야생 그 자체가 주는 생고생을 통해 웃음을 주는 두 프로그램의 다른 분위기는 겨울이라는 도전을 만나 시청자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혼자 버려져 있다가 팀과 합류하려 새벽에 어선을 타고 팀에 합류하는 이승기의 모습은 ‘1박2일’에서는 그다지 독한 영상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잠깐 벌어진 야생 상황이 주는 불편함 그 이상이지만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는 편안한 상황일 뿐이다. 추운 날씨라는 도전 앞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두 프로그램에 대한 편안함은 이렇게 달라진다.

이것은 거꾸로 이번 여름시즌 내내 ‘패밀리가 떴다’가 승승장구할 때, 작년 겨울 혹한기에서의 잠자리 복불복으로 승승장구하던 ‘1박2일’이 추락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도전상황이 없을 때, ‘1박2일’의 영상은 단조로워진다. 그러니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되는 그림을 무리하게 찾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룻밤의 야외 체험을 담아내는 여행 버라이어티쇼에 날씨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겨울을 맞이하여 ‘패밀리가 떴다’는 추운 날씨에 무리한 야외 게임과 취사로 일관되는 그 패턴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만일 그 패턴을 유지한다면 자칫 ‘1박2일’을 넘어설 수 있었던 그 편안함을 무기로 하는 차별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제철을 만난 ‘1박2일’에도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겨울에 재미를 보았던 패턴의 유혹이 그것이다. 이미 한 해를 보낸 상황에서 ‘1박2일’은 한 단계 나아가는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어야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을 맞아 두 여행 버라이어티쇼들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면 되고’와 ‘했을 뿐이고’사이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못 참겠으면 그만 두면 되고, 견디다보면 또 월급날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한 때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모 통신사의 ‘되고송’. 특유의 긍정어법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화제를 일으켰었다.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 생각으로 뛰어넘겠다는 이 단순한 가사의 구조는 결국 마지막 후렴구, ‘생각대로 하면 되고’로 결론지어진다. 모든 건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론은 현실이 그나마 버틸 만 할 때나 통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더 어려운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때, 긍정론은 자칫 부정적 현실을 가리는 자그마한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는 것이 탄로 나기도 한다. 여기에 그 천 쪼가리를 씌운 어떤 의도 같은 것까지 읽게 되면 긍정론은 거꾸로 더 잔인하고 무서운 현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가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네 생각을 바꿔라’라는 말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긍정론이 먹히던 시절의 아이콘이 ‘되고송’이었다면, 지금은 ‘난... 했을 뿐이고’의 시대다. 개그콘서트에 복귀한 개그맨 안상태가 들고 나온 이 유행어에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물론 ‘...뿐이고’는 적극적인 부정이 아니다. 소극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안상태의 이 개그코너가 가진 구조를 보면 어째서 이 유행어가 지금 시대의 대중들의 마음을 콕 집어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코너에서 안상태는 기자로 등장한다. 기자란 자신이 본 현실과 그 현실을 보여줄 대상 즉 대중들 사이에 선 매개자다. 따라서 이 매체적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는 것. 대중들에게 리포터는 따라서 감정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매체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면 그 매체가 전해주는 세상의 소식은 어떤가. 매일 같이 급락하는 경제소식과 하수상한 사회의 각종 사건사고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세상은 사실 아무리 리포터라고 해도 감정 없는 뉴스를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저 편의 일이라 여겨지던 그 세상의 사건사고들이 이제는 나의 일이 되어 가는 이 체감상황 속에서 안상태 기자의 토로가 보여주는 것은 그 현실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 TV 속의 뉴스가, 그것도 점점 험악해져 가는 소식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 잘못은 엄한데서 했는데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똥에 대한 서민들의 억울함. 안상태 기자가 ‘난... 했을 뿐이고!’를 외치며 하는 말에는 서민들과의 이런 공감의식이 깔려있다.

부정의 세상에 긍정론은 허위다. 안상태 기자의 짧고 소심한 부정에 대한 열광은 바로 그 허위의 세상을 순간 발견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급전직하의 주식경기 속에서도 자꾸만 사라고만 외쳤던 사람들 속에서 “사지 말라”고 부정했던 미네르바처럼, 누군가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자꾸만 말하지만 그래도 “했을 뿐이고!”를 외치며 그 허위를 꼬집어주는 듯한 안상태 기자의 말에 자꾸 끌리는 건 그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