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와 ‘라디오스타’의 생존법

대화를 통해 재미를 이끌어내는 토크쇼는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왔다. 그것은 시대마다 토크의 방식 또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일방향적 미디어 시대에 주조를 이룬 것은 ‘주병진쇼’, ‘자니윤쇼’같은 1인 토크쇼였다. 하지만 쌍방향 미디어 시대에 1인 토크쇼는 시대착오가 되었다. 일방적인 토크가 갖는 홍보성향이 문제가 되었다. 어디서나 토론이 일어나고 중심 없는 지방방송(?)이 대화의 주류가 된 지금 시대에 홍보성향을 버리고 진정성을 담기 위해 토크쇼는 진화해왔다. ‘무릎팍 도사’와 ‘라디오 스타’는 이러한 대화방식의 변화 속에서 지금의 토크쇼가 어떻게 생존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무릎팍 도사’, 대결 토크로 살아남기
대세로 자리한 집단 MC 체제의 토크쇼 속에서도 ‘무릎팍 도사’는 여전히 1인 체제(물론 유세윤과 올밴이 있지만 이들은 분명 보조자일 뿐이다)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가 버틸 수 있는 건 과거의 1인 토크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릎팍 도사’는 다른 토크쇼와는 차별된 구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출연진들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옆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MC 강호동은 게스트와 마주보고 있으며 그것을 옆에서 찍는 카메라는 그 장면 자체를 자연스럽게 대결구도로 포착해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과거 1인 토크쇼 중에서도 보이던 장면이다. 하지만 그 과거의 구도에서 MC와 게스트는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향해 보고 말한다. 즉 시청자에게 직접 토로하는 이 방식 속에서 MC는 게스트가 하고 싶은 얘기를 끄집어내게 하는 보조자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는 시청자에게 직접 토로하려는 게스트의 시선을 MC 강호동이 붙잡아두고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대화로 이끌어간다.

무언가 숨겨져 있던 비화를 끄집어내거나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진솔한 모습을 끄집어내는 방식으로서 이 대결구도의 토크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해 신선하다. 대화방식도 공격적이어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경우 바로 그 아픈 이야기가 거침없이 끄집어내진다. 홍보의 느낌이 상쇄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또한 고도로 우회된 홍보의 방식이기도 하다. 물의 연예인은 이 적나라한 이야기 끝에 가서 결국 면죄부를 받게 된다. ‘무릎팍 도사’가 무당 같은 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이 한바탕 토크의 굿판을 통해 그 연예인의 이미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 중심 없는 대화로 살아남기
‘무릎팍 도사’가 1인 토크쇼가 가진 홍보성향을 대결 구도의 토크로 넘어섰다면, ‘라디오스타’는 중심이 없는 토크로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라디오 스타’는 모두 카메라 정면을 보고 빙 둘러앉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메인 MC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토크가 어떤 중심을 갖고 흘러가기보다는 산발적으로 쏟아대는 말들의 상찬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고정 MC는 물론이고 게스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정 MC들은 게스트를 초대해놓고도 저들끼리 서로 자신이 메인 MC라고 다투면서 게스트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게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하면 가차없이 잘라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라디오스타’만의 독특한 대화방식이다.

혹자는 이런 방식이 게스트를 배려하지 않는다 하여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방식은 이제 디지털 세대들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다. 대화방에 들어가 손가락에 불이 나게 타자를 쳐본 적이 있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메신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 대화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알 것이다.

1인 토크쇼가 대세였던 시대를 ‘집중’의 시대였다면, 집단 토크쇼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 시대는 ‘정신분산’의 시대다.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모니터에 수없이 많은 창들을 띄워놓고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는 않지만 모든 창을 통제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상한다. 토크쇼는 그 달라지는 담화방식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프로그램 형식이며 ‘황금어장’은 바로 그 변화양상을 가장 잘 보이고 있는 토크쇼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삶의 현장에서의 재미는 의미가 담보되어야 한다

‘체험 삶의 현장’이 2001년부터 무려 7년이 넘게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이 프로그램만이 갖는 독특한 재미에 있다. ‘삶의 현장’은 여행지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그것은 시골이 될 수도 있고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즉 장소를 불문하고 땀흘리는 일터가 바로 그 현장이 된다. 예를 들면 병어잡이를 하러 배를 타는 어부들의 현장이나, 동물원 사육사들의 현장 같은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이 장수할 수 있는 이유
이런 체험은 일반인들이 여행 같은 것을 통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를 대리하여 체험하게 되는 출연자들 역시 마찬가지. 시청자들이 흔히 체험할 수 있는 보통 여행지와 체험하기 어려운 삶의 현장 그 중간을 이어주는 그 자리에 ‘체험 삶의 현장’만이 가진 재미가 존재한다. 게다가 그 체험을 하기 위해 마음껏 망가지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런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오랜 시간동안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혹자들은 일터에서 민폐만 끼치는 이 프로그램을 외면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진짜 장수할 수 있었던 힘은 그 공공성에 있다. 체험을 통해 얻은 일당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그 민폐(?)는 용인될 수 있었던 것. 이처럼 특정 지역을 프로그램 속에 넣는 과정에는 그 대민 접촉이 갖는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존재한다. 재미와 민폐의 차이는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되지만 그 파장은 엄청나다.

‘무한도전’에 의해 시도되고 ‘1박2일’에 의해 정착된 여행 버라이어티는 이제 ‘패밀리가 떴다’로 완성되어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들 여행 버라이어티는 점점 재미에 더 열을 쏟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이니 재미에 대한 추구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대민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이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재미에만 몰두하는 건 여러모로 그 생명을 단축시킬 우려가 있다. 촬영은 그 촬영지의 주민들에게는 환영받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난받기도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버라이어티, 그 재미와 민폐 사이
여행 버라이어티로서 오락 프로그램이 추구해야할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여행지 즉 촬영지의 민폐를 상쇄하는 방법으로 ‘1박2일’이 초반부에 했던 것들은 ‘오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즉 독도나 가거도 같은 오지에 사는 분들을 조명해주고 현지인들에 대해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이벤트를 벌이는 식이다. 이것은 민폐를 넘어서 어떤 감동으로까지 이어줄 수 있는 이 프로그램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을 가던 에피소드 같은 거대담론에서부터 ‘1박2일’이 가진 소박한 느낌이 점점 지워졌고, 또한 캐릭터가 정착되면서 이야기가 자꾸 캐릭터에 매몰되는 형태를 띄게 되었다. 즉 장소가 주는 의미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 상황에서도 ‘1박2일’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민 접촉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성에서 비롯되는 공감을 바탕으로 깔고 있던 ‘1박2일’로서는 그것이 많이 상쇄된 이 시점에서의 대민 접촉은 오히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터진 것이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는 애초부터 ‘1박2일’같은 공공성 자체가 희박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여행 보내드리고 그 집을 하루 봐주는 것이 어쩌면 공공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사실상 ‘패밀리가 떴다’는 장소를 빌려 하룻밤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이다. 자칫 민폐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패밀리가 떴다’가 하는 것은 대민 접촉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다.

거의 장소로 정해진 시골집 안에서 게임을 벌이고, 또 개울이나 논두렁에 가서도 거의 현지인들과의 접촉을 통한 재미는 끌어내지 않는다. 추석 특집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호박죽을 나눠주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외에 그다지 현지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집 주인 어르신들을 초반부에 만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민 접촉이다. 대신 ‘패밀리가 떴다’는 자신들 패밀리 내부의 관계와 접촉이 주를 이룬다.

일터에서 하는 게임, 괜찮을까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가 하는 체험은 저 ‘체험 삶의 현장’의 체험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해넘이 마을의 갯벌로 나가 대나리 그물로 하는 물고기잡이 체험 같은 것은 일반인들이 경험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그것은 여행지라기보다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짧은 체험을 해보고 결국 오리발을 발에 끼고 본래 모습인 게임을 하는 그 갯벌은 현지인들에게는 일터가 되는 셈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 있는 패밀리들은 노동과는 유리되어 있다.

그 특별한 체험은 저 ‘체험 삶의 현장’이 그러한 것처럼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재미를 주지만 이것은 관점 자체가 현지인이 아닌 외부인에 맞춰져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그들이 연예인이고 또 방송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빼놓고 같은 상황을 일반인이 했다고 생각해보면 한 쪽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다지 현지인들에게 좋게 보일 리는 없다.

흔히들 버라이어티쇼 같은 오락 프로그램을 가지고 의미 운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재미는 타인의 피해를 대가로 치르는 경우가 생긴다. 현지인들의 생계가 달린 삶의 현장에 의미는 없이 재미만을 찾아가는 여행은, 마치 그런 삶의 현장을 밀어내고 그 위에 세워지는 도시인들의 현란한 재미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의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재미는 물론이고 그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송사를 넘나드는 예능인들의 각축장, 예능선수촌

‘야심만만2’가 ‘예능선수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예능의 선수들을 끌어 모아 마치 스포츠처럼 예능 대결을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그 속에는 깃들여 있다. 이 프로그램에 고정MC로 강호동, MC몽의 KBS‘1박2일’ 라인과 , MBC의 ‘무한도전’의 전진, ‘우리 결혼했어요’의 서인영 그리고 SBS ‘패밀리가 떴다’의 윤종신이 함께 자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몇몇은 타 방송국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그램은 위에 언급한 것들이 분명하다.

예능판 ‘온에어’?
이런 의도는 ‘야심만만2’의 기획의도에 예능판 ‘온에어’라는 문구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즉 방송의 뒷얘기(이것은 사실상 연예인들의 사생활일 수도 있다)를 도마 위에 올리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초반부 5회가 지속되는 동안 ‘야심만만2’의 이런 야심만만한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올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첫2회의 게스트로 장근석과 이효리가 출연했고, 3회에 탁재훈, 예지원, 4회에 엄정화, 오지호, 그리고 5회의 박상면, 김지석까지 참여하는 게스트들은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못했다. 누구도 하지 못했을 폭탄 발언을 통해 말 그대로 ‘다 죽이는’ 올킬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예능선수촌’에 상응할 만큼 경쟁적이지 못했고, 게스트에게만 집중적으로 올킬 제안이 이루어지는(게스트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야심만만2’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집단 대결 구도다. ‘야심만만2’는 예능선수촌 vs 기센 게스트들(강인, 김희철, 홍지민)을 기점으로 두 팀으로 나눠서 올킬 시스템을 적용했다. 태능선수촌(이용대, 남현희, 왕기춘, 이배영)과 예능선수촌의 대결은 그 백미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결국 대결 구도 자체가 게스트팀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조강지처클럽’의 출연진들은 아예 조강팀과 지처팀으로 게스트를 나누어 대결을 벌였다. 올킬 시스템은 좀더 안정적인 형태를 띄었다. 예능판 온에어라는 기치가 드러난 것도 이 ‘조강지처클럽’에서부터였다.

방송사를 넘어선 선의의 경쟁 보여준 ‘야심만만2’
하지만 무엇보다 예능판 온에어라 지칭할만한 아이템은 ‘1박2일 vs 패밀리가 떴다’가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MBC의 예능 프로그램이 빠졌지만 그것에 대한 아쉬움은 서인영과 전진이 한 마디씩 보태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구도 속에서 ‘야심만만2’의 올킬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되었다. 애초부터 방송3사를 막론하고 골고루 고정MC를 두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별로 그들도 나뉘어졌다. 함께 ‘야심만만2’를 진행해왔던 강호동과 윤종신은 각각 ‘1박2일’팀과 ‘패밀리가 떴다’팀으로 나뉘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초반부터 팽팽한 대결구도를 가져갔지만 상대방의 개그에 아낌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천희의 엉뚱한 언변에 모두들 자지러졌고, 이수근의 재치에 모두들 넘어갔다. 복불복에 져 까나리 액젓을 마시는 ‘패밀리가 떴다’팀은 ‘1박2일’의 고생을 인정해주었다. 서로의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모습은 방송사 간에 매주 벌어지는 치열한 예능 경쟁이 사실은 상당 부분 조장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결구도에 놓여지게 된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쟁은 현재 지나치게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기 ‘야심만만2’의 ‘1박2일 vs 패밀리가 떴다’편이 보여준 것은 타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으로서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모두 예능인의 이름으로 함께 뭉치는 모습이다. 과거 방송사별로, 혹은 프로그램별로 형성되던 그룹이 이제는 각자 ‘예능선수’로서의 개인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이합집산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프리랜서로서 방송3사를 넘나드는 예능인들에게 방송국과 프로그램의 경쟁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야심만만2’에서 강호동이 갑자기 ‘1박2일’에 대해 홍보발언을 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팬덤 현상으로 과열경쟁이 나타나는 현재, ‘야심만만2’가 대결구도에 있던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한꺼번에 끌어안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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