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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괴물’을 좇는 ‘추격자’, 그 흥행의 이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물결. 인파로 복잡한 거리에서 만나는 남녀. 그리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차. 골목길. 담벼락에 대충 세워지는 차. “차를 저렇게 세우면 어떻게 하냐”는 사내의 말, “금방 나올 건데요”하는 여자의 답변. 하지만 이어지는 담벼락에 오래 방치된 듯 보이는 차에 가득 달라붙어 있는 출장안마사 명함들. 이 짧지만 함축적인 영상의 연결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과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해 설명한다. 누군가 사라졌고, 그 사내는 여자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 것. 원경에서 잡을 때는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이었던 것이 차츰 가깝게 심도를 잡아가자 특정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영상 구성의 효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거리에서 어쩌면 우리..
‘람보4’, 람보는 여전히 유효한가 ‘람보’는 겉으로 보기엔 미국이 결국 패퇴할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전의 또 다른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의 재미는 그러한 사회적 이슈보다 근육질의 람보 1인이 수백 명에 달하는 적수들과 싸워 하나씩 물리치는 전형적인 액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즉 베트남전에서 패배했지만 미국을 상징하는 람보는 여전히 건재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메시지가 그 속에는 들어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기서 람보가 다수의 적들과 싸우는 전술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형지물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저 베트남의 정글에서 그들이 혹독하게 경험한 그 게릴라 전술. 이 영웅이 보여주는 액션의 재미는 바로 이 게릴라 전술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그 때까지의 전형적인 미국 액션영..
‘우생순’, 핸드볼을 닮은 아줌마들 그동안 많은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들이 포착한 것은 이 땅의 마이너리티였다. ‘슈퍼스타감사용’의 패전처리투수 감사용이 그렇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외인구단이 그러하며 ‘말아톤’의 초원이와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가 그렇다. 최근작으로 다큐멘터리로서 놀라운 흥행을 거둔 ‘비상’의 인천유나이티드FC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소외되거나 주목받지 못한 변방의 인물들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여자 핸드볼팀 역시 이런 견지에서 보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감사용이나 외인구단처럼 늘 꼴찌를 해왔던, 그래서 한번의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아니며, 초원이나 기봉이처럼 장애를 이겨내고 평범함을 얻..
귀로 보는 영화 ‘원스’ “때론 ‘음악’이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지난 9월 10개관으로 개봉했던 ‘원스’는 13주차가 되면서 20개관으로 확대 개봉되었고 20만 명의 흥행에 육박하고 있다. 제작비가 1억4천만 원에 불과한 독립영화로 보면 이 영화의 흥행은, 더 많은 물량이 투여되는 기획영화들이 거둔 약 500만 명의 흥행에 버금가는 성공을 이룬 셈이다. 그 성공의 이유는 바로 존 카니 감독의 말과 다르지 않다. ‘원스’는 음악이 우리 인생에 주는 최고의 선물들을, 그 순간들을 86분 짜리 영상에 담아 전하는 음악에 관한, 음악에 의한, 음악의 영화다. 음악의 기적1. 노래의 진심이 다른 마음에 닿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
섹시하고, 웃기고, 울리는 몸 ‘색즉시공2’가 보여주는 몸은 섹시하다. 볼륨감 넘치는 몸들이 유혹적인 표정과 자세로 관객들을 자극한다. 살과 살이 부딪치고 거기서 토해져 나오는 환희의 비명소리는 관음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하지원이 떠나간 자리에 서게된 송지효의 몸은 귀엽게 톡톡 튀고, 전라연기를 펼친 이화선의 몸은 관능적이다. 전편에 이어 출연한 신이는 거침없는 화장실 유머를 날리며 섹시한 웃음을 유발한다. 때론 상황전개 자체가 지나칠 정도여서 자칫 여성들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비하했다는 심각한 지적을 받을 만하지만, 영화 속에서 비하되는 건 여성들만이 아니다. 이 영화 속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깨지고 비하되는 존재다. 화장실 유머가 그러하듯이 그 대상에는 성별이 없다. 비하되는 것은 이 도무지..
영화, 음악... 진심이 닿지 않을 곳은 없다 제작비 1억4천만 원에 촬영기간은 고작 2주, 게다가 남녀 주연배우는 연기경험 전무의 뮤지션들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원스’. 작은 몸집(?) 때문에 미국에서도 2개관에서만 개봉됐던 이 영화는 80일 만에 140여 개 관에서 볼 수 있는 초대박 영화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10개관에서 개봉했던 영화는 현재 16개관으로 늘어났고 지금까지 독립영화로서는 좀체 거두기 힘든 16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도대체 그 흥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 캐릭터? 아니면 연출? 가난한 영화 ‘원스’가 성공한 이유 ‘원스’는 거의 스토리가 없는 영화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남자와 그의 음악을 알아차린 여자가 만나고 서로 음악을 나누면서 사랑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본 ‘불한당들’과 독립영화의 가능성 다음은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출품된 장훈 감독의 ‘불한당들’이란 영화의 장면들. 윤성호 감독(‘은하해방전선’의 그 윤성호 감독이다)은 안산공단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인터뷰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가 갑자기 이들을 도시의 한 주점으로 불러들이면서 이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한 그 곳에는 왠지 인종적인 편견이 담배연기처럼 자욱하고, 급기야 화장실에 간 한 베트남 노동자와 시비가 붙은 사내는 그걸 말리려는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황당한 것은 사내를 비롯해 주점 안의 한국인들이 모두 좀비로 돌변하는 것. 외국인 노..
‘색, 계’와 ‘사랑의 유형지’의 노출이 예술적인 이유 ‘야한 것’과 ‘예술적인 것’은 상반된 것일까. 왜 똑같이 적나라한 성기 노출을 해도 어떤 것은 포르노가 되고 어떤 것은 예술이 될까. 그것은 ‘노출을 위한 노출’인가 아니면 ‘작품의 통일성 속에서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노출’인가의 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안 감독의 ‘색, 계’와 ‘실낙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유형지’는 분명 야하긴 하지만 후자에 속할 것이다. 이 두 영화는 정말 야하다. 예술적으로. ‘색, 계’의 노출, 합일될 수 없는 육체의 경계를 그리다 아무리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에 빛난다 해도, 또한 이안 감독의 작품이라 해도, ‘색, 계’의 무삭제 개봉은 지금까지의 우리네 상황을 두고볼 때 파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