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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독립영화의 불한당들,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본 ‘불한당들’과 독립영화의 가능성 다음은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출품된 장훈 감독의 ‘불한당들’이란 영화의 장면들. 윤성호 감독(‘은하해방전선’의 그 윤성호 감독이다)은 안산공단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인터뷰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가 갑자기 이들을 도시의 한 주점으로 불러들이면서 이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한 그 곳에는 왠지 인종적인 편견이 담배연기처럼 자욱하고, 급기야 화장실에 간 한 베트남 노동자와 시비가 붙은 사내는 그걸 말리려는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황당한 것은 사내를 비롯해 주점 안의 한국인들이 모두 좀비로 돌변하는 것. 외국인 노.. 더보기
야하다, 예술적으로 ‘색, 계’와 ‘사랑의 유형지’의 노출이 예술적인 이유 ‘야한 것’과 ‘예술적인 것’은 상반된 것일까. 왜 똑같이 적나라한 성기 노출을 해도 어떤 것은 포르노가 되고 어떤 것은 예술이 될까. 그것은 ‘노출을 위한 노출’인가 아니면 ‘작품의 통일성 속에서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노출’인가의 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안 감독의 ‘색, 계’와 ‘실낙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유형지’는 분명 야하긴 하지만 후자에 속할 것이다. 이 두 영화는 정말 야하다. 예술적으로. ‘색, 계’의 노출, 합일될 수 없는 육체의 경계를 그리다 아무리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에 빛난다 해도, 또한 이안 감독의 작품이라 해도, ‘색, 계’의 무삭제 개봉은 지금까지의 우리네 상황을 두고볼 때 파격.. 더보기
청룡영화제, 힘겨운 한 해를 정리하다 꿈 하나로 충분한 그들, 영화인들에게 박수를 꿈이란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그 단어 하나로 청룡영화제에 모인 영화인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개그콘서트’ 뮤지컬 팀이 청룡영화제 2부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축하무대 정도로만 생각됐다. 하지만 힘겨운 영화인들의 일상이 겹쳐지면서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뮤지컬 팀에 의해 번갈아 노래되고 안성기가 올 한해 어려웠던 우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영화인들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인순이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영화인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칠 때 카메라에 잡힌 영화인들의 얼굴은 모두 숙연해졌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에서도 ‘어려운 한 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아한 세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하는 건 아.. 더보기
‘세븐데이즈’, 모성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모성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세븐데이즈’ 지연(김윤진)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승률 99%의 잘 나가는 변호사, 하지만 딸에게는 빵점 짜리 엄마인 그녀는 딸에게 1등을 선사하기 위해 운동회 달리기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그리고 1등으로 골인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갑작스레 유괴된 딸을 찾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지연을 따라서 달리는 카메라도 숨가쁘다. 인물 동선의 중간이 생략된 채 계속해서 점프하는 컷들과 멀리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망원렌즈로 당겨진 컷들의 연속은 관객들의 숨까지 턱에 차게 만든다. 지연이 변호사이며 유괴범의 목적이 희대의 강간살인범의 무죄방면이란 점에서 영화는 법정 안에 인물들을 가둬놓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판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연은 스스.. 더보기
‘색, 계’, 에로틱하지만 안타까운 살들 ‘색, 계’, 관념의 속살을 뱀처럼 파고드는 영화 “그는 나를 뱀처럼 파고들었어.” 왕치아즈(탕웨이)의 묘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살들이 마치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겠다는 듯이 꿈틀거린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걷어내고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은 적나라한 살점과 몸의 촉점(觸點)들이 서로의 빈틈을 파고드는 두말 할 것 없는 정사장면이지만, 또한 하나가 되기 위한 욕망 속에 안간힘을 쓰면서도 결국에는 경계지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기 위해 막부인으로 위장하여 접근한 왕치아즈.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되면서 파국으로 가게 된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단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