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기력을 두고 논란이 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배역과 연기가 따로 노는 데서 비롯한다. 관객 혹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비판받는 연예인들을 우리는 굳이 연기자라 부르기가 꺼려진다. 진정한 연기자라면 자신을 과감히 훌훌 털어 버리고 배역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연기자들이 배역 때문에 수없이 망가지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아름답고 박수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올 한 해도 망가진 만큼 아름다웠던 많은 연기자들이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끼, 류덕환
‘웰컴 투 동막골’에서 동구 역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역시 동구 역으로 확고한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했다. 이 나이(1987년생)에 이처럼 깊이 있는 내면연기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영화 속 오동구가 되기 위해 20kg을 찌우는 것은 어쩌면 내면연기보다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마돈나가 되고 싶은 천하장사’. 자칫 잘못하면 코미디에 묻혀 영화가 말하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진정성을 놓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이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된 연기를 류덕환은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진짜 연기자가 아니면 난감할 수 있는 이 오동구라는 역에 기꺼이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는 디렉터스 컷의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광기와 감성을 잡은 김래원
MBC 드라마,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김래원은 늘 하던 그 모습을 연기했다. 도회적이면서 장난기 많은 김래원표 연기.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 개봉했던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살짝 드러냈던 광기를 ‘해바라기’에서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반 이상이 김래원의 공이라 할 정도로 그의 온몸을 던지는 미친 듯한 연기가 한 몫을 해주었다.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죄의식에, 순간 순간 튕겨 나오는 광기가 어루러져 마지막 라스트 신의 폭발력을 갖게 만들었다. 김래원은 이 연기를 통해 액션연기에도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여 년 연기 세월의 내공, 변희봉
영화 ‘괴물’을 통해 비로소 그 진가를 알아보게 된 배우. 그러나 그의 연기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으니 40여 년 조연과 단역으로 잔뼈가 굵은 결과였다. ‘수사반장’이나 ‘113 수사본부’에서 범법자의 역할을 단골로 해오던 그는 차츰차츰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성강한 단역들(점쟁이 같은)을 소화해낸다. 그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기용한 인물은 바로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서부터 ‘괴물’까지 함께 작업을 해오다 드디어 ‘괴물’의 박노인이란 캐릭터로 들어와서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부성 가득한 할아버지면서도 어딘지 기괴하고 괴팍한 구석이 있는 연기를 연기9단답게 소화해냈다.

웃으면서 우는 연기의 달인, 유오성
KBS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로 돌아온 유오성은 영화 ‘친구’에서의 섬뜩한 카리스마는 버렸다. 대신 그가 입은 최장수라는 옷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헌신적인 ‘우리 시대의 아버지’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는 역할을 맡아 진짜 환자 같은 섬뜩한 연기를 보여준 유오성은 특히 웃으면서 우는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웃음 끝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과 오열하며 콧물에 범벅이 되었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그것을 아름답게 느꼈다. 이미 똑같이 최장수가 되어 눈물, 콧물을 같이 흘렸기 때문이다.

솔직 대담해진 연기, 고현정
다시 돌아온 고현정은 과거 청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버렸다.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문숙 역을 맡은 그녀는 그간의 공백기간을 단 몇 마디의 꾸미지 않은 말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채워버렸다. “차가 귀엽네요”라는 말에 “똥차예요”라고 답변하고,  “키가 크다”는 말에 “잘라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신선한 충격마저 느껴졌다. TV 속으로 돌아온 고현정은 ‘여우야 뭐하니’에서 노처녀 고병희 역할을 맡아 어딘지 어리숙하면서도 솔직하고, 내성적이면서도 대담한 연기를 소화해냈다. 그녀의 거침없는 망가짐은 오히려 ‘그 속에서 더 귀여운’ 그녀만의 독특한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변신의 귀재, 김윤석
KBS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 평범해 보이는 남편 역할을 보여준 김윤석. 우리는 그가 ‘타짜’의 아귀로 등장했을 때 동일인물인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범한 얼굴은 순식간에 살 떨리는 카리스마로 변신해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약간 기우뚱한 자세로 노려보는 그는 저 허영만 만화 원작에서 보았던 그 인물, 천상 아귀였다. 사실 만화 속의 아귀는 그 이름에서부터 풍겨나듯 만화적인 인물. 따라서 영화화되면서 그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김윤석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온전히 아귀를 자신의 한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개성으로 승부, 유해진
유해진을 통해 우리는 연기자의 얼굴이 때로는 보통, 아니 보통 이하여야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다 잘생긴 연기자들이 작품 속에 들어오는 경우, 유해진의 얼굴은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그 얼굴을 개성으로 바꿀 수 있어야 된다는 것. 영화 ‘타짜’를 통해 유해진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어설프게 폼잡지 않고 완전 캐릭터에 몰입해 시종일관 입을 가만두지 않는 이 정이 가는 타짜를 보면서 유해진의 연기 공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천의 얼굴, 박용우
13년 동안 그닥 눈에 띄지 않았던 박용우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소심하면서도 우습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눈빛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걸 통해 박용우는 ‘달콤하고 살벌한’ 느낌을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욕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용한 세상’의 김형사는 ‘달콤 살벌’의 대우와는 상반된 캐릭터. 일상에 찌들어 있는 유들유들한 성격의 인물이다. 코믹으로 성공한 그가 다시 코믹이 아닌 장르로 뛰어든다는 것은 모험이지만 그것은 연기자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추자현
영화 ‘사생결단’에서 마약에 취한 추자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불안한 듯 허공을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자신을 버리고 저 바닥에 드러누운 연기자의 그것이었다. 그녀의 역할은 어찌 보면 황정민, 류승범 사이의 대결구도 속에서 그다지 큰 비중의 역할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순간들에 자신을 버리고 혼신을 다해 연기한 그녀는 대종상 신인여우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여우상, 여우조연상에다 올해 감독들이 시상하는 디렉터스 컷의 신인연기상까지 거머쥐었다. 노출연기에서부터 부산사투리까지 소화해낸 그녀는 바닥에서 비로소 연기를 낚은 연기자이다.

망가짐이 아름다운 배우, 예지원
연기자가 망가질수록 더 아름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이가 바로 예지원이다. ‘올드미스다이어리’에서 그녀는 손톱만큼도 ‘예쁜 척’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캐릭터 그대로의 최미자가 된 셈인데,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과하게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려도, 심지어는 심한 키스로 입술이 퉁퉁 불어도 어찌된 일인지 밉지가 않다. 이 정도면 거의 빙의가 된 셈인데, 예지원이 최미자가 된 것인지, 본래 최미자가 예지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망가짐의 미학을 기대할 수 있는 연기자다.

연기자는 매번 망가져야 한다
이밖에도 자신을 충분히 망가뜨려 작품을 살린 배우들은 많다.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박중훈, ‘왕의 남자’의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타짜’의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제대로 연기맛을 보여준 손예진, 드라마 ‘주몽’에서 제대로 악역을 해준 대소 역의 김승수와 굴욕을 보여준 영포 역의 원기준 등등 일일이 거론하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자들은 많다. 반면, 연기변신이나 자신을 철저히 부숴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연기자들도 있다. 대부분 연기력 논란이 되는 이들 배우들이 출연해서 성공한 작품들은 보기가 어렵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심지어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연기자를 통해 작품 속의 인물에 감정이입되고 싶은 것이지, 본래의 연기자 자신에 감정이입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자는 작품을 위해 기꺼이 망가져야 아름답다.

상상력이 제작기술 못 미친 '중천'유감

‘매트릭스’ 약 6백50억 원, ‘반지의 제왕’ 편당 약 1천10억 원. 제작비 규모로 보면 100억 원을 들인 ‘중천’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가져간 개런티(1편만 약 92억 원)에 불과한 소품이다. 하지만 그 CG만 떼어놓고 보면 결코 소품이라 할 수 없는 놀라운 장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게 진짜 100%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완성된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영화는 설정부터 가상공간이다. 하늘과 땅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진 ‘중천’이라는 중간계가 배경인 것이다. 그러니 거의 대부분을 CG에 의존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상황. 미국 같은 경우에 이미 CG를 활용한 작품들이 일상화될 정도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엔 아마도 이 작품이 이제 그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사실 과거에도 우리의 CG는 결코 헐리우드나 일본에 뒤지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 유명게임업체들이 우리네 게임업체들을 OEM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걸 선호했던 것은, 터무니없는 제작비로도 훌륭한 CG가 나온다는데 놀라서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중천’의 시도는, 돈이 없어 OEM으로 잔뼈가 굵은 우리네 애니메이션 업계나 게임업계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중천’에 때아닌 CG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 CG 작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겨운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다. 2년 넘게 5백여 명의 스태프들이 참여한 이 ‘작품’을 단 몇 줄로 ‘표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만일 단지 선정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끌기 위한 기사였다면 그 기사가 허문 것은 단지 100억 원이라는 비용뿐만이 아니고, CG업계에서 배고프게 일해온 종사자들의 의욕이다.

‘중천’의 CG는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 ‘스파이더맨’ 같은 헐리우드 CG에 비견할 만큼 뛰어나다. 이 작품으로서 ‘은행나무침대’에서 보았던 조악한 수준은 이제 과거지사가 될 법하다. 특히 숲 속에서 벌어지는 사슬창 추격신과 천기관 광장에서 벌어지는 3만 원귀병과 이곽(정우성 분)이 벌이는 전투신은 놀랄 만한 수준이다. 배경으로 제시되는 중천의 풍경 역시 ‘반지의 제왕’의 그것과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가장 어렵다는 인물3D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디지털 액터(정우상이라고 불리는)를 만들어낸 것 역시 대단한 성과이다.

‘중천’의 문제는 CG에 있지 않다. 이 훌륭한 CG를 내러티브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인 것이다. ‘중천’이라는 이 매력적인 공간은 수많은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게 만들었던 ‘매트릭스’와 비견됨에도 불구하고, 불교적이고 사이버펑크적인 충분한 알레고리를 형성하지 못했다. 깊이 있는 내러티브에 대한 접근을 하지 못한 결과, 훌륭한 CG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저 ‘은행나무침대’의 멜로로 흐르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 빈약한 내러티브를 현란한 CG가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아쉬움은, 역시 영화는 CG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제 달라진 상황을 읽게될 것이다. 과거 제작기술이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지사가 되었다고. 오히려 상상력이 제작기술을 못 따라가는 건 아닌지.

아무 기대 없이 영화관을 찾았던 분들이라면 이 ‘개그콘서트 같은 영화’에 푹 빠져서 배꼽 빠지게 웃다가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TV시트콤으로 봤던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즐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거대 블록버스터의 숫자놀음에 질렸던 관객이라면 이 조촐한 잔치에서 풍성한 대접을 받은 기분을 느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 옆구리나 주머니가 허전한 사람이라면 단돈 몇 천 원으로 큰 위안을 받을 지도 모른다. 소박하지만 풍성함을 주는 영화, ‘올드미스다이어리(이하 올미다)’다.

솔로종합선물세트가족이 주는 개콘식 웃음
영화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최미자(예지원 분)의 꿈으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뭔들 못할까마는 그녀는 꿈속에서조차 비행기가 추락하고 벼락을 맞는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이것보다 더 암울하다. 바로 ‘노처녀에 백수’. ‘너무 자서 허리가 아픈’ 그녀를 지켜보는 눈들이 있으니 함께 사는 가족들. 그런데 이 가족들 역시 범상치 않다.

노년에 홀로 남은 할머니 세 자매에, 역시 홀로된 아버지, 게다가 노총각 외삼촌까지 줄줄이 짝 없는 화투패 신세다. 이 ‘솔로종합선물세트가족’은 마치 저 개콘 가족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같이 부족해 보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 굳이 김석윤 감독이 개그콘서트의 연출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최미자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엮어가기보다는 이들 각자의 개콘식 에피소드로 엮어진다.

개그콘서트에서 가끔 한 코너의 아이콘이 다른 코너에 이입되면서 웃음을 만드는 것처럼, ‘올미다’도 세 할머니 자매(영옥, 승현, 혜옥)의 이야기와 소심남인 노총각 외삼촌(우현)의 은행 에피소드, 그리고 최미자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그려지지만 그 이야기는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관계가 중요한데 세 할머니 자매의 상황과 최미자의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은 나이로 구획되어지는 연애담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사랑이라는 보다 큰 주제로 영화를 확장시킨다. 또한 우현과 최미자의 상황 역시 사회적 약자로서 유사한 상황을 그려내면서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포함시킨다. 결과적으로 노처녀 원맨쇼에 머물 수 있었던 소재를, 개콘식 솔로 가족들로 줄줄이 사탕 엮어내자, 영화는 단순한 ‘노처녀 연애 성공기’를 넘어서 진한 페이소스를 갖는 블랙코미디로 나아간다.

정작 웃기는 사람은 슬프다
영화 내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그러나 점점 진행될수록 그 웃기는 자의 심정 속으로 빠져들면서 알 수 없는 애잔함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무대 위에 올랐을 때 그저 당연히 웃음을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던 개콘 식구들이 가끔 저 무대 뒤의 진솔한 모습을 보였을 때 느껴지는 슬픔 같은 것이다.

그 슬픔의 근원은 바로 저 ‘블랙코미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확장시킨 이야기 속에는 이 시대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숨겨져 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가만두지 않느냐”는 원망과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최미자의 절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영화 내내 우리를 웃겼던 그 장면들이 사실은 꽤나 비극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분들을 위한 한 편의 백일몽이다. 시작부터 꿈을 꾸는 최미자는, 무언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마력이 있다. 따라서 영화가 환타지라도 그것은 꿈이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용서받는다. 정작 현실에서 그들은 저 무대 위의 개콘 가족처럼 슬픔이 있어도 겉으로는 웃지 않았던가. 이 영화를 보고 진정으로 실컷 웃다가 눈물이 나왔다면, 영화가 말하듯 당신은 진정한 행복을 꿈꿀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이 영화에서 최미자 역을 해낸 예지원은 연기자로서 망가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마치 저 개콘의 마빡이처럼.

작년에 이어 올 한해도 그 화두는 역시 ‘몸’이었다. ‘얼짱’에서부터 ‘몸짱’으로 넘어온 신드롬은 올초에는 ‘동안’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을 성형과 몸 만들기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는 ‘생얼’이라는 극단적 하드코어 뷰티(나 벗어도 이렇게 아름다워요!)까지 유행하면서 이제 외모지상주의는 극단적인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데 일거양득이지, 뭐가 문제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나쁜 건, 보기 좋고 건강 좋은 몸에 자꾸 가격이 매겨지는 느낌 때문이다. 이른바 말 그대로의 ‘몸값’, ‘꼴값’하는 세상에 사는 기분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그 상품화가 가장 첨예하게 벌어지는 연예계를 소재로 이 사회에 만연한 ‘몸 신드롬’을 유쾌하게 뒤집어놓는다.

얼굴 없는, 혹은 얼굴만 있는
공포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얼굴 없는 가수, 한나(김아중 분)가 얼굴만 있는 가수, 아미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69cm의 키에 95kg의 몸무게를 가진 한나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 거대한 몸을 숨기며 살아가는 존재. 반면 노래를 못하나 완벽한 S라인의 몸매와 외모를 가진 아미는 ‘몸만’ 드러내놓고 사는 존재다. 이 둘의 물리적인 조합은 저 공포영화에서나 가능할 이야기지만, 연예비즈니스에서 이 두 존재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틀 속에서 자연스럽게 엮어진다. 그들이 둘다 상품으로서 기능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순간 상품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이 사모하던 상준의 말에 상처를 받고 한나가 사라지는 순간, 아미라는 상품도 사라지는 것이다.

인생 180도로 바꾸어 주는 환상의 몸
재미있는 건 몸을 상품화하는 사회가 한나에게 고통을 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그녀에게 거는 변신의 기대다. 관객들은 그녀의 변신 역시 몸을 상품화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변신했을 때의 달라진 반응을 기대한다. 보상심리다. 너희들의 몸에 대한 매혹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걸 보고 싶은 것이다. 한나라는 무거운 몸이 제니가 되었을 때, 그녀의 과장된 몸짓에 거리의 이목이 집중되고, 자장면 범벅이 되어도 아름다운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보상심리를 갖게된다. 심지어 교통사고를 내고도 피해당사자나 경찰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는 이 사회에 고소함을 느끼고, 자신을 거대한 몸이 아닌 아름다운 몸으로 바라보는 상준(주진모 분)의 눈길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인생을 한 순간에 180도 바꾸어주는 이 환상적인 몸의 변신에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하지만 살 떨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
그러나 부작용은 있다. 그것은 거구의 한나가 얼굴 없는 시절, 얼굴만 있는 아미에게 목소리를 주면서 자신의 몸을 숨겼던 것처럼, S라인 쭉쭉빵빵으로 변신한 한나 역시, 제니라는 가상의 인물 뒤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 여기에 연예 비즈니스가 맞물리고 상품의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제니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얼굴만 있는 아미와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것. 영화는 이렇게 완벽몸매로 변신한 한나의 잘라낸 살 찾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살들을 맞대며 추억을 만들어온 친구와 부모를 되찾는다. 저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분리되었던 몸과 이름은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정말 현실에서도 그럴까하는 의심이 들지만, 어쩌랴 이건 로맨틱 코미디이니,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갈 관객들에게 순간적이나마 행복감을 주는데 만족할밖에.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가히 ‘살 연기’라고 해도 괜찮을, 육중한 살의 무거움과 군더더기 없는 살의 가벼움을 잘 표현해낸 김아중의 호연과 ‘무사’이후 오랜만에 보여준 주진모의 존재감 있는 연기,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맛을 살려준 성동일, 임현식, 박휘순, 이범수, 김용건, 이원종 등의 출연으로 유쾌함을 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 인물은 지긋지긋하게 우리의 귓전에 눌러앉았던 저 ‘몸 신드롬’이란 거구가 아니었을까. 이 거구야말로 수술대 위에 올려 슬림하게 S라인으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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