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고맙구만이어라. 하지만 받지 않겄습니다. 그 길은 제 길이 아니어라.”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윤정년(김태리)은 자명고 대본을 내주며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주려는 매란국극단 스타 문옥경(정은채)의 호의를 거절하며 그렇게 말한다. 문옥경은 장터에서 윤정년이 소리를 하는 걸 듣고는 단박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를 매란국극단에 들어올 수 있게 도운 인물이다. 그런 문옥경의 호의가 고맙지만 이를 거절하는 정년에게서는 보다 당당하게 제 힘으로 서고 싶은 청춘의 기세가 엿보인다. “안 그래도 다들 지가 지 실력으로 이 국극단 들어온 거 아니라고 떠들어 싼디, 여기서 또 쉬운 길을 선택해 불믄, 그 사람들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께요.”
첫 회 4.8%(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해 단 4회만에 12.7%까지 급상승한 ‘정년이’의 저력은 바로 이 윤정년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서 나온다. 목포 시장 바닥에서 아무런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살아가던 이 청춘은 어느 날 별천지에서 온 대스타 문옥경을 만나고 국극의 꿈을 꾸게 된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집을 떠나 매란국극에 들어온 윤정년은 거기서도 그를 시기하는 이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갖은 역경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청춘은 물러서거나 좌절하는 법이 없다. 돌덩이 같은 단단한 역경을 피하지 않고 뚫고 나가는 기세. 이 청춘의 기세에 시청자들은 빠져든다. ‘정년이’가 파죽지세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유다.
서이레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정년이’는 드라마 리메이크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원작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감당할 배우가 과연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 활달한 성격에 소리까지 연기해야 하니 만만찮은 역할이다. 하지만 김태리가 정년이 역할로 분한 첫 회가 등장하면서 이런 우려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원작 웹툰에서 막 튀어나온 듯 싶을 정도로 발랄한 청춘의 캐릭터를 제 옷 입은 듯 소화해냈고, 소리를 하거나 국극의 무대에 설 때는 너무나 진지한 모습 또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유독 ‘청춘의 초상’으로서의 역할들을 주로 해왔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2016년 영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김태리라는 배우가 가진 밝고 쾌활한 면모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담긴 이 작품에서 김태리는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으로 귀족 아가씨(김민희)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는 인물이다. 하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이 인물이 백작이 아닌 아가씨와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김태리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소화해낸 바 있다. 그 후 2017년 ‘1987’에서는 1987년 독재정권과 맞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이었지만 차츰 그 대열에 참여하게 되는 이연희라는 청춘의 고뇌와 성장을 연기했다. ‘1987’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태리는 하는 작품마다 당대의 청춘들이 겪는 아픔들을 공유하면서도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뚫고 나가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저마다 성공하고픈 꿈을 꾸지만 그것이 청춘을 마모시키고 좌절하게 만드는 현실을 담은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그랬다. 김태리는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와 거기 나는 식재료들로 음식을 챙겨먹으며 자신을 회복해가는 청춘 송혜원을 통해 당대의 청춘들을 위로했다.
“나도 꽃이요. 다만 나는 불꽃이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미스터 션샤인’은 또 어떤가. 구한말 사대부가의 영애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힘겨운 의병활동의 길을 선택한 고애신 역할을 김태리는 특유의 발랄한 에너지로 소화해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분위기를 뚫고 나오는 드라마의 발랄함은 김태리라는 배우와 만나 기분좋은 시너지를 만들었다. IMF를 배경으로 그 힘겨운 시절 어른들로 인해 청춘들이 겪게 된 아픔과 성장을 담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김태리는 나희도라는 인물을 통해 큰 위로를 줬다. 이러한 김태리가 써온 청춘의 초상을 담은 필모그래피는 심지어 오컬트 장르인 ‘악귀’에서도 이어졌다. 각박한 현실 앞에 좌절한 청춘들이 그 엇나간 욕망이 탄생시키는 악귀를 그린 이 작품에서, 김태리는 구산영이라는 공시생 역할로 악귀가 자신을 잠식하려는 위기와 맞서는 청춘을 연기했다.
그래서 김태리가 나왔던 작품들을 들여다 보면 지금의 청춘들이 마주한 현실이 엿보인다. 수저 색깔로 미래가 결정되는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도, 어떻게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히 좌절되는 현실 앞에 갑갑해 하는 청춘들의 초상이다. 그래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이른바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포기’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건 청춘들이 원해서가 아닐 게다. 그들이 진짜 바라는 건 그래서 김태리가 해온 작품들 속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그 현실을 뚫고 나가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김태리가 가진 청춘의 에너지가 빛나는 ‘정년이’는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6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삶 속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고단한 삶을 살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정년이’가 그리고 있는 건 그런 좌절과 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국극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 정년이의 성장드라마다. 그 고단했던 시절에도 그 힘겨움을 위로해줬던 건 다름 아닌 국극 같은 당대의 문화들이었다. 그 문화의 현장 속에서 민초들도 잠시 현실을 잊고 웃고 울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 예인의 길을 그려낸 ‘정년이’가 주는 위로가 남다른 건 그래서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 역경을 뚫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정년이의 모습은 큰 위로와 더불어 용기를 준다. 제 아무리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꿀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남다른 청춘의 기세를 보여주는 정년이와 그 역할을 맡은 김태리는 말해주고 있다.(글:국방일보, 사진:tvN)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가 화제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폭발했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음식 문화권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흑백요리사’에 충격을 받은 눈치다. 중식, 일식 같은 요리들이 완고한 원조의 틀 안에 갇혀 자신들이 최고라고 외쳐왔던 것이 일종의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흑백요리사’는 한식을 굳이 내세우지 않고도(한식은 물론이고 일식, 중식, 이태리요리 등등의 셰프들이 모였다) 한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저마다 타국의 요리법을 가진 셰프들이지만, 한식의 식재료인 묵은지나 홍어 같은 걸 과제로 내주자 자연스럽게 응용되고 퓨전화된 한식들이 등장했다. 한식의 특징이 뭐든 ‘비벼내는’ 것에 강점이 있다는 걸 ‘흑백요리사’는 보여줬고 거기에 해외에서도 반응들이 쏟아진 것이다.
‘흑백요리사’는 물론 최종 우승자가 된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이나 에드워드 리 같은 무수한 셰프들을 스타로 배출했지만, 그 중심을 딱 잡아준 심사위원으로서 백종원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맛은 주관적인 것이라 순위를 매기긴 쉽지 않은 영역이다. 결국 이 흑백으로 분류되어 참여한 유명한 100명의 셰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쟁을 하는 이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건, 그 주관적이라고 해도 그 결과에 선선히 모두가 납득할만한 상징적인 존재가 절대적이다.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의 오너 셰프인 안성재가 맛에 있어서 ‘익힘의 정도’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심사위원으로 그 권위를 부여받았다면, 백종원은 자타공인 요리에서부터 다양한 음식 경험 나아가 사업에 이르기까지를 두루 꿰뚫고 있는 국내 음식 콘텐츠에 관한 한 상징적인 존재로서 심사위원의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들이 서게 되면서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 이미 인정받고 있는 셰프들이 이 서바이벌을 긍정하며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백종원의 존재감은 음식은 물론이고 방송인으로서도 전문가라는 걸 보여준다. 그는 먹성 좋은 먹방의 달인답게 심사가 아닌 진심으로 먹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으로 웃음을 주고, 전 세계의 음식들을 먹어본 경험치를 바탕으로 블라인드 심사에서도 재료가 뭔지, 어떤 방식을 썼는지, 의도는 뭔지를 단박에 파악해내는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블라인드 심사에게 그가 먹는 장면은 그 자체로 밈이 될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종원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건, 역시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연결되어지는 지점까지 나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실제 요식업계가 들썩일 정도로 여기 출연한 셰프들의 음식점들이 대호황을 누리게 되었는데, 백종원은 출연한 셰프들을 자신의 유튜브에 출연시켜 이들을 다시금 조명시키기도 했다.
‘흑백요리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방송은 방송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새로운 경향이 됐다. 한때 방송이 현실과 유리된 여가나 오락 정도로 여겨져 오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백종원을 비롯해, 오은영, 강형욱 같은 전문가들이 방송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게 된 건 그래서다. 이들 전문가들은 각자의 영역 안에서 현실에 변화를 이끄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을 방송과 접목해 현실을 바꿔나가는 일들을 한다. 그 중에서도 백종원은 프랜차이즈 대표이면서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가로 뛰어들어 그 시너지를 만든 인물이다. 그가 해온 방송들을 들여다보면 음식이라는 그의 전문 영역들이 방송과 만나 어떻게 현실을 바꿔왔는가가 새삼 실감난다.
그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쿡방을 통해 재미있는 음식연구가이자 방송인 정도로 대중들과 눈을 맞췄지만, ‘백종원의 푸드트럭’, ‘백종원의 3대천왕’,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하면서 그의 존재감을 순식간에 각인시켰다. 이들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그저 먹방, 쿡방에 머물러 있던 음식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의 영역을 확장해 사업의 영역으로 넓혔다는 것이고 나아가 상권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푸드트럭’이 창업 청춘들의 미래를 바꿔줬다면, ‘3대천왕’은 지역 맛집들에 손님들의 줄을 세웠다. 그리고 ‘골목식당’은 불황에 힘겨워 하는 서민들의 식당을 솔루션을 통해 호황으로 바꿔주고 나아가 골목상권을 살리는 방향으로까지 나갔다. 2018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 백종원이 참석해 골목상권 살리기 정책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몇 년 사이에 급상승했다.
물론 백종원이 방송을 통해 현실에 변화를 준 건 상권 살리기만이 아니다. 그는 요리 문화에 대한 변화 또한 이끌었다. ‘집밥 백선생’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집밥’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과거 집밥이 막연하게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게 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그저 ‘집에서 해먹는 밥’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놓았고 따라서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유튜브 방송에 뛰어들어서는 ‘백종원 시장이 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예 예산이라는 지역 상권을 살리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자체들에게 자극을 줘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이를 모델로 삼으려는 흐름까지 만들었다.
백종원의 이런 현실까지 바꾸는 방송은 당연히 비즈니스적인 접근이 전제된 결과이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사업가로서 그에게 방송은 그저 여가가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방편이 되기도 하는 셈이니 말이다. 항간에는 그래서 방송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것은 유튜브 같은 개인방송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현실에 변화를 일으키는 영상의 새로운 시대에 흐름일 수 있다. 즉 누구든 저마다의 영역을 고도화하고 전문화하는 그 정점은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것이 지금은 개인방송 같은 영상을 통해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백종원이 그 페르소나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바로 이 시대의 변화다. 누구나 자신만의 전문적인 영역을 갖게 된다면 그걸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이게 진짜 재판이야.” SBS 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강빛나(박신혜)는 지옥에 가는 게 마땅한 가해자들을 처단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는 지옥에서 온 악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한 판사 강빛나의 몸으로 들어왔다. 지옥의 총책임자인 악마 바엘(신성록)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보내졌고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이 내려졌다. 세계관 설정부터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옥에 악마에 판사라니.
하지만 그런 이유로 지상에 내려와 판사로서 활동하게 된 악마 강빛나가 벌이는 가해자 처단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 이유는 가해자들이 너무나 잔혹한데 그들이 저지른 벌에 비해 처벌이 솜방망이인 현실 때문이다. 첫 번째 가해자로 등장한 인물은 심각한 교제 폭력을 저지르고도 300만 원의 벌금형만 받고 나와 또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끔찍한 폭행을 저지른 자다. 강빛나는 그에게 나타나 그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대로 고스란히 당하며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결국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게 되면 “그럼 죽어”라며 지옥으로 보낸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둘이나 살해한 후에도 아이까지 상습적으로 학대해온 범죄자나 일가족을 살해한 범죄자 같은 끔찍한 사건들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가해자들을 시원하게 처단하는 악마 판사의 모습이 보여주는 카타르시스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악마가 하는 처단이라 그런지,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잔혹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잔혹함이 자칫 지나친 폭력성과 자극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장본인이 바로 박신혜다. 그는 ‘러블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배우이니 말이다. ‘천국의 계단’에서 여주인공인 한정서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박신혜는 그 후에도 주말드라마 ‘깍두기’, ‘미남이시네요’, ‘넌 내게 반했어’,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리고 최근에 방영된 ‘닥터 슬럼프’까지 러블리한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러블리한 아우라의 원천은 건강한 에너지다. 과거 드라마 ‘닥터스’를 함께 했던 고 김영애 선생님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신혜에 대해 한 말이 그 단서를 알려준다. “신혜는 발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아요. 땅을 튼튼하게 짚고 서 있는 참 밝고 건강한 아이. 이쪽 일하다 보면 땅에서 붕 떠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신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고, 좋은 여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함께 호흡 맞추는 게 예뻤어요.”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은 건강함에서 나오는 러블리함. 그런데 그 러블리함은 지옥에서 온 판사 같은 하늘에 붕붕 띄워진 캐릭터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눈빛이 악마로 변할 때는 섬뜩한 면을 주지만, 그 처단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천진한 아이 같은 깨발랄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 건강하고 발랄한 러블리한 면모들이 있어 자칫 과도한 잔혹함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들이 중화된다. 박신혜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신혜는 애초부터 이 길을 꿈꿨던 배우가 아니다. 그의 데뷔 과정을 보면 독특한 면이 있는데, 잘 알려진 이승환과의 인연이 그것이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다니던 교회에 이승환 팬이니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박신혜의 사진을 당시 이승환이 운영하는 회사 드림팩토리 클럽(지금은 이승환 1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에서 공고한 뮤직비디오 배우 오디션에 보낸 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다음 앨범인 이승환의 ‘꽃’ 뮤직비디오에 발탁됐다. 그래서 박신혜의 본래 꿈은 가수였지만 노래를 표현하기 위해 연기수업을 받던 중 배우가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천국의 계단’의 아역오디션을 보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오게 됐다. 당시 이승환의 드림팩토리가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되면서 박신혜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게 됐지만 그 때의 경험들은 아마도 밴드 이야기를 소재로 담은 ‘미남이시네요’에서도 좋은 자양분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신혜가 남장여자 고미남 캐릭터로 나온 이 작품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정용화와 ‘넌 내게 반했어’를 이어서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남장여자 캐릭터로서 남자들 사이에서 털털한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박신혜의 특유의 건강한 러블리함으로 그들 사이에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을 하면서 그는 드디어 ‘한류퀸’으로서 떠올랐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권까지 월드투어 팬미팅을 한 첫 국내 여자 배우가 됐다.
이제 겨우 30대지만 10대부터 연기를 해온 박신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할들을 소화했다. 멜로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피노키오’나 ‘닥터스’처럼 전문직 장르물도 소화했고, 게임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전직 기타리스트인 호스텔 주인과 게임 속 신비로운 NPC 캐릭터 엠마의 1인2역을 연기했다. 어려서부터 무용이나 서핑 같은 다양한 스포츠를 해왔던 그는 액션 연기도 잘 소화해 ‘#살아있다’ 같은 좀비 영화나 ‘콜’ 같은 액션이 많은 스릴러, ‘시지프스:the myth’ 같은 SF 판타지에서도 이물감 없는 연기를 펼쳤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큰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의 강빛나 캐릭터가 가진 전복적인 요소들이 그 자체로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범죄물에서 여성들이 피해자로 등장하고 심지어 그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판결도 주로 남성 판사들이 함으로써 억울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성별 구도를 뒤집어 놨다. 여성이 늘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가 아닌 처단자의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이 인물 자체의 매력도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건강함이 주는 매력이 더해짐으로써 악마조차 발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변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고 김영애 선생님이 표현한 것처럼 그 건강함은 허공으로 붕붕 띄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건강함, 이건 박신혜만이 아닌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글:국방일보, 사진:SBS)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굴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닌 전현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의하면 그가 지난해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만큼 그가 해내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이 폭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전천후 방송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인포테인먼트의 흐름, 전천후 방송인의 탄생
전현무는 방송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2012년 그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방송가에는 ‘인포테인먼트’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교양에서조차 정보만이 아닌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나아간 선택은 이런 변화에 딱 맞는 거였다. 진행자인 MC로서의 역할, 예능에서의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또 코멘테이터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한 결과였다.
“저는 근데 예전에 이렇게 역할이 다 나뉘어 있을 때부터 그냥 옷만 다르게 입는 거지 다 똑같은 전현무를 하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게스트, 패널, MC, 플레이어 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는데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예전에 넌 MC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하려고 해 라고 누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역할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옛날부터 저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 다르긴 한데, 약간 MBTI처럼 제가 MBTI P인데 P만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도 J가 한 20% 정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 모든 게 섞여 있듯이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색깔을 좀 넣는 거고 게스트일 때는 게스트를 좀 하고... 100% 완벽하게 하나의 성향만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그것만 조금씩 조절을 하는 거지 역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들어있다. 과거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루시퍼’ 춤을 추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한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진 예능인으로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가끔 케이블 채널 몇백 번대에 가면 그거(루시퍼) 나와요. 아직도 나오고 있죠. 진짜 민망해서 못 봐요. 저런 멘트를 하고 저런 표정을.. 그리고 남의 말 듣지도 않고 그냥 나 하나 웃기려고 그냥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 같고, 지금 이제 막 예능하는 친구들을 제가 이렇게 MC로서 보면 제가 그랬던 모습이 보여요. 귀여워요. 얘들도 10년 뒤에 얼마나 이걸 흑역사로 생각하고 민망해 할까. 근데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여유를 갖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능력만큼 중요한 건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방송가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는 건 어쩌면 이 태도와 자세가 남달라서일 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저는 캐스팅을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하는 사람한테 캐스팅 하길 잘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게스트로 나가도 춤을 한 번이라도 더 추고 편집을 하더라도 그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섭외해 줬으니 이렇게 120% 하고 가겠다 라는 마인드로 지금도 하고 있고, 그 초심은 지금도 여전해요.”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법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OTT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콘텐츠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른바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캐릭터로 MZ들의 다양한 취향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트렌드란 도대체 뭘까.
“몸이 늙는 거는 병원 가서 어떻게든 노화를 더디게 할 수는 있는데 정신 늙는 거는 답이 없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정신이 늙으면 진짜 두 배 세 배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간에 요즘 세대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하죠. 근데 그거를 재미있게 풀어서 ‘트민남’이라고 한거예요. 요즘 애들은 뭐 이거 한대 이러면 이미 나는 늙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든 그걸 알려고 하고 따라해보려고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귀엽게 봐요. 저를 친근하게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어떤 추세고, 맛집은 어디가 힙한지 관심이 많고 또 그걸 즐기며 살고 있어요.”
트렌드 변화는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서 역으로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는데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현무는 아직 그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잘 적응해온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행보다.
“주변에 유튜브를 안하는 사람이 거의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오히려 레어템이 돼서 방송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유튜브 하다 보면 콘셉트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방송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유튜브가 하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남들 하니까 나도 계정이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자세로는 처음 잠깐 주목받다 흐지부지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방송에서 이미 했던 캐릭터를 갖고 비슷한 걸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방송에서 소화못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어요.”
예전에 ‘Moo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현무는 브런치 스토리에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가장 나다운 게 곧 트렌드’라고 한 문구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문화에 진심인 것. 그게 가장 트렌디한 일이다.’라고 그는 썼다.
전현무와 함께
뻔한 엄숙주의를 넘어선 펀(fun)한 인물
전현무는 누가 봐도 엘리트다. 연세대를 나왔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다 1주일만에 나와 YTN에 앵커로 들어갔으며, 2006년에는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언론고시에 있어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 브레인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행보는 기자에서 앵커로 앵커에서 아나운서로 옮겨간 후에도 또다시 이전에는 없던 ‘예능에 최적화된 아나운서’로 그리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때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 엿보인다.
“저는 예전부터 영상 매체는 뉴스든 다큐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재밌어야 된다는게 제 철칙이었거든요. 요즘 종편을 보면 앵커들조차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감이 있었던 건데 저는 이럴 때가 올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바쁜 와중에 TV를 켠다는 건 대단한 행위인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려고 보지는 않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보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 싸이월드 제 계정에 제가 이렇게 쓴 적도 있어요. ‘재미 없는 건 재앙이다’라고요. 당시에는 아나운서, 코미디언, PD, 기자 등등 역할이 완전히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인포테인먼트 시대를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교양과 예능이 뒤섞이는 시대로 넘어갔다. 실제로 SBS에서는 당시 교양국과 예능국이 통합되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교양의 다큐적 요소들이 예능 속으로 들어와 점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도 생겼다.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된 건 당연지사였고, 전현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얘기해도 될 법한 인물이었다.
“아나테이너들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장성규와 조정식을 응원하거든요. 너무 이쁜 동생들 좀 더 활발히 설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나다움’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다움을 잃고 기존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순간 불합격입니다. 나다움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흔히들 하는 얘기거든요. 면접장에서도 본인이 보지도 않는 방송의 아나운서를 제 롤모델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거 다 알거든요. KBS 시험 볼 때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얘기했었어요. 실제로전 ‘개콘’을 매주 일요일마다 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술렁술렁거렸어요. 당시 아나운서들이 진행할 확률이 제로인 ‘개콘’을 얘기했다는 거는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은 답변이었죠. 근데 거기서 그분들은 솔직하게 본 거죠. 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잘한다. 방송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거를 잃지 말고 면접장에서 어필을 하시면 훨씬 더 합격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아나운서는 직종 자체가 위기다. 이미 정확한 발음에 특화된 아나운서보다 조금 익숙지 않아도 개성있는 배우가 멘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또한 아무 개성 없이 멘트만 하는 아나운서는 AI를 이기기가 어렵다. 전현무가 말하듯 자기만의 어떤 개성이 확실한 목소리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또 감정도 실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요구된다.
‘나다움’의 아이콘 이른바 ‘멀티테이너’가 당연해진 우리의 일상이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한 가지 캐릭터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부캐’가 대세가 되고, 역할도 많아졌다. 어떨 땐 굉장히 진지해야 되고 어떨 땐 굉장히 가벼워야 하고 이걸 균형 있게 잘해야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지의 나의 모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삶이 중요해진 현재, 전현무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그는 예전에 ‘다움’에 대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움’에 갇히면 다 같아지고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자가 백만 유튜버가 되고 파워 블로거가 되고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얻는다.”
“‘나다운 게 다움에 갇혀 있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학생다워야 한다, 아나운서다워야 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아나운서답지 않게 해서 성공을 했어요. 그 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남이 규정해 놓은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나운서는 이래도 돼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싸이월드에 ‘내가 정답이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부모님도 정답이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 사장님, 본부장님도 아닌 당신이 정답이에요. 당신 인생의 정답은 당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나운서 들어가자마자 아나운서다움도 버려 버렸고 이제 프리를 해서도 아나운서 출신 다움에 대한 선입견도 버렸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예로 들면,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곤충에 미쳐있거나, 피규어에 미쳐 있고 또 ASMR에 빠져있는 이런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있잖아요. 10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무 좋아 죽겠는거, 나다운 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은 요즘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과거 직장인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야근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 퇴근 후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워라밸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흔히들 ‘MZ 같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현 세대들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전현무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도 말하듯 MZ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MZ였다고도 볼 수 있다.
“MG들의 성향을 20대 때 이미 갖고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회식도 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게 그 때는 쉽지 않았어요. 신입 아나운서 때부터 저는 회식을 안갔는데, 제 아나운서 송별회 하는 날도 제가 안 갔어요. 그만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죠. 저는 나이 50, 60이 돼서도 이런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도 음악 방송을 많이 하지만 아이돌들이 인사하고 오는 걸 싫어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가 인사를 안 왔다고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니 바빠 죽겠는데 자기 할 일 하고 가면 되지. 그 시간에 쉬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전현무가 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금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인물이 됐는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나다움’이란 사회적 잣대가 들이미는 무수한 ‘다움’의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전현무의 나다움은 그래서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던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