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light’, 유해진이 보여주는 촌스러움의 가치

삼시세끼 light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넣을 청양고추를 따러 잠시 자리를 비운 몇 분 사이, 김치를 썰던 유해진은 갑자기 찌개에 김치를 넣고 싶어진다. 그만큼 김치를 좋아하고 펄펄 끓는 냄비만 봐도 넣어 끓여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유해진은, ‘그러다 차승원한테 혼난다’는 나영석 PD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숭덩 짤라 찌개에 넣고만다. 돌아온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청양고추를 잘라 넣고 휘휘 젓는데 무언가 낯선 비주얼에 눈에 들어온다. 금세 알아챈 차승원은 “이거 왜 김치를 넣었어?”하고 나무란다. 유해진이 감짝 놀라 올려다보자 차승원은 누가 고추장찌개에 김치를 넣냐며 안만든다며 국자를 던져놓고 나가버린다. 순간 흐르는 침묵. 유해진 특유의 너스레가 시작된다. 차승원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괜스레 막걸리 채운 잔을 들이밀며 “한 잔 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굳었던 차승원의 표정이 풀어진다. 망쳐버린 고추장찌개를 되살려내고 금세 화기애애 해져서 함께 밥상을 차려 먹는 두 사람의 풍경이 이어진다. 

 

최근 시작한 tvN ‘삼시세끼 light’에서 등장한 이 짧은 장면은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무엇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빛을 발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이번 ‘삼시세끼’가 ‘light’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이전처럼 두 사람을 보조해주던 손호준 같은 후배가 빠져 있어서다. 오롯이 차승원과 유해진이 끌고 가는 콘셉트이랄까. 물론 게스트로 임영웅이나 김고은이 출연하지만 두 사람에 온전히 무게중심을 세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손호준 같은 후배가 없이 차승원과 유해진 두 사람이 막상 가게 되니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다. 두 사람이 해야 할 노동(?)이 많아져 수다 떨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아저씨 둘이 수다를 떨 것도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해진이 진짜 시큼한 김치 냄새에 혹해서 고추장찌개에 그걸 넣는 순간 갑자기 이 심심했던 예능의 정경에 재미가 생겨난다. 요리에 진심인 차승원이 진짜로 기분 상해 하고 유해진은 특유의 너스레로 그 마음을 풀어주면서 별 거 없어 보이는 이 시골 저녁에 긴장과 이완의 극적 상황들이 전개된다. “분명 끈인데 왜 아니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라며 ‘노끈’을 꺼내놓고 해학적으로 웃는 유해진의 모습은 어딘가 촌스러운 정감이 묻어난다. 일을 하면서 별것도 아닌 농담을 툭툭 던져 웃게 만드는 허허로움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시골에 가서 세 끼 챙겨먹는 단순한 콘셉트를 가진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유해진이 어째서 이토록 찰떡 같은 캐릭터로 서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 냄새 가득한 유해진의 모습은 그가 지금껏 해온 연기의 영역에서도 특유의 빛을 발한 면이 있다. 그는 97년부터 영화 ‘블랙잭’으로 배우를 시작했지만 거의 대부분 단역과 조연을 오가는 역할들을 맡았다. 그러다 대중들의 눈에 확실하게 각인된 건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천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육갑이라는 광대로 등장하면서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코믹하면서도 처연한 광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그는 이듬해 ‘타짜’의 고광렬 역할과 주목을 받았고 그 다음 해인 2007년 ‘이장과 군수’에 차승원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때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유해진은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전우치’ 같은 판타지물에서 초랭이 역할로 깨알같은 감초 웃음을 선사했고, ‘이끼’ 같은 스릴러에서는 정반대로 다소 모자라면서도 섬뜩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밑바닥에는 어딘가 사람 냄새 나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한 몫을 차지했다. 따뜻한 느낌이 해학적으로 풀어지면 코미디가 되지만, 그 따뜻한 이미지를 배반하는 모습에서는 섬뜩한 스릴러가 만들어졌다. 물론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해온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액션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놈이다’, ‘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완벽한 타인’, ‘말모이’, ‘봉오동전투’, ‘승리호’ 등등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최근 그의 연기가 가장 도드라진 작품은 ‘올빼미’다. 유해진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인조라는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다소 병적이고 광기 가득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과거 ‘왕의 남자’에서 광기 어린 연산군 앞에서 살기 위해 광대 놀음을 했던 육갑 연기를 했던 걸 떠올려보면 17년만에 이제 왕 역할을 하게 된 유해진의 성장 과정이 배역으로도 느껴진다. 물론 최근 ‘파묘’를 통해 또 하나의 천 만 영화 배우가 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지만. 

 

그런데 이러한 유해진이 가진 경쟁력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특유의 촌스러움 혹은 사람 냄새 가득한 그만의 개성이 엿보인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지성적인 배우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더 느껴지는 배우다. 그가 해온 일련의 역할들이 이른바 ‘장삼이사(張三李四)’라 불리는 평범한 서민들이었던 건 우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건 물론 오래도록 조연과 단역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작을 수 있는 그 역할들을 크게 만들어내는 그의 진정성 가득한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삼시세끼’로 그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특유의 사람 냄새가 불러 일으키는 따뜻한 정서가 만들어내는 그리움이랄까. 

 

유해진은 이른바 ‘촌스러움’의 가치를 되살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흔히들 ‘촌스럽다’는 표현을 우리는 한때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해왔다. ‘촌뜨기’나 ‘촌놈’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 생활이 주는 각박함은 정반대로 ‘촌스럽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는 시골의 푸근함이 그것이다. 유해진은 바로 그 기분 좋은 촌스러움이 ‘인간화’한 인물처럼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래서 그의 빙그레 웃는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면 지독한 도시의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한껏 힘을 빼는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단 며칠이라도 그렇게 삼시 세 끼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글:국방일보, 사진:tvN)

‘굿파트너’에서도 증명한 아역 그 이상의 배우 유나

굿파트너

흔히들 아역이라고 하면 성인역의 보조 역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역이 극의 메인 캐릭터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아역의 존재감으로 인해 극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굿파트너’에서 차은경(장나라) 이혼 전문변호사의 딸 재희(유나)는 단적인 사례다. 재희는 ‘굿파트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이혼 소재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인물이다. 즉 이혼 소재의 드라마들은 흔히 이혼 사유를 만들어낸 배우자와 이로 인해 심적 고통을 겪는 배우자가 대결하고 이를 통해 권선징악의 단순한 결론으로는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불륜 배우자가 응징되는 복수극 형태의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혼의 현실은 어떨까. 그런 단순한 응징과 복수의 서사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자녀의 문제다. 부부들끼리는 서로 상처를 주면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갈라졌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이혼으로 인해 자녀가 겪을 상처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 된다. 이른바 자신은 남편을 잃었지만 자식까지 아빠를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게 이들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희라는 캐릭터는 ‘굿파트너’라는 이혼 소재 드라마를 색다르게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건 이 만만찮은 아역을 과연 누가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역할을 맡은 유나는 아역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부모들의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사실은 아빠 김지상(지승현)의 불륜 사실을 엄마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엄마를 똑닮아서 ‘리틀 차은경’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똑부러지는 시크함을 가진 재희는 그래서 부모가 이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건 어른들이 결정할 일처럼 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차은경과 김지상의 이혼 소송의 핵심은 누가 재희를 키우느냐를 두고 벌이게 된 양육문제가 되고, 여기서 재희는 드디어 아빠에 대해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한다. 자신은 나름대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줬지만 끝내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 차은경 앞에서도 뻔뻔하게 버텼던 김지상은 딸의 그 말에 무너진다. 같이 살자며 두고두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갚아나가겠다는 그에게 재희는 놀라운 말을 한다. “아빠랑 안 살아. 잘못한 사람은 벌 받아야지. 아빠한테 가장 큰 벌은 나 못보는 거잖아.”

 

이 대사에서 유나의 배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거기에 아이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어른스러운 이 아이의 캐릭터 또한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다.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감정이 겹쳐져 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나는 표현해낸다. 결국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게 되면서 재희는 또한 아빠의 빈자리를 계속 느끼게 되는데 결국 그 부재를 절감한 재희가 “그냥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이 엿보인다. 아역이지만 그저 아이의 연기라고 보기 어려운 유나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유나라는 배우의 가능성은 이미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어린 선자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눈에 띠었다. 갈대 숲속에서 잠자리를 잡아주는 아버지를 향해 미소를 짓는 어린 선자의 매력적인 모습이 그랬다. 또 영도 어시장에서 일본인 순사가 지나가자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어린 선자의 모습은 향후 이 인물이 얼마나 당차게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만들어준 면도 있었다. 

 

유나의 이런 연기 잠재력이 폭발한 건 ‘유괴의 날’에서 천재 소녀 로희 역할을 연기해내면서다. 김명준(윤계상)이라는 착하고 어설픈 유괴범에게 유괴된 로희는 오히려 유괴범에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유괴를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의 평이한 서사구조를 뒤집는다. “유괴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라고 로희가 말하면 명준은 “뭘 책임 져? 유괴를 당한 아이는 경찰이 책임을 져야지.”라고 말하는 식이다. 범죄스릴러의 틀을 갖고 있지만 ‘유괴의 날’은 아이들을 성적 순으로 세우고 그래서 1등과 꼴등을 나눠 그 가치를 판단하는 비뚤어진 어른들의 세상을 꼬집는 드라마다. 로희는 바로 그 어른들의 욕망이 투사된 1등 천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의 연구대상이 된 아이다. 그래서 착한 유괴범이 차라리 가장 어른다운 모습으로 로희를 지키려는 상황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우리네 현실을 꼬집는다. 여전히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조숙한 면들을 가진 로희를 유나는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사실상 김명준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똑똑한 로희는 그러나 그렇게 정들었던 아저씨와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 이런 말 하기 진짜 싫은데 난 아저씨랑 같이 있는게 너무 좋단 말이야.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람이랑 내가 배고픈지 졸린지 심심한지 그런 관심 주는 사람이랑 나 처음 있어본단 말이야. 제발 가지마. 아저씨 가지마.” 천상 어린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조숙한 면모를 왔다갔다 하는 연기. ‘유괴의 날’에서부터 ‘굿파트너’까지 이어진 유나라는 배우의 잠재성이 느껴지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유나의 배우로서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2022년 ‘파친코’를 내놨고, 2023년 ‘유괴의 날’을 그리고 올해 ‘굿파트너’로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을 보면 우리가 막연히 어리다고만 생각해온 아이의 다른 면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나이의 아이다운 면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잣대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생각과 아픔 같은 것들도 갖고 있다는 걸 이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가 보여준다. 하긴 아역을 성인역의 보조 역할로 생각하는 그 태도 자체가 구시대적 산물이다. 아이는 어려도 아이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다는 걸 유나라는 배우의 필모가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SBS)

‘유어 아너’로 명배우 재입증한 김명민

유어아너

“나는 화가 안나. 너무 아파서, 너무 슬퍼서 화가 날 겨를이 없어. 어떻게 화를 내는 건지도 기억이 안나.”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김강헌(김명민)은 아들이 죽었는데도 왜 화조차 내지 않느냐며 나무라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 말은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조직 보스에서 우원그룹의 대표로 우뚝 선 이 인물은 우원시(시의 이름조차 회사 이름에서 따올 정도다)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다. 손 하나 까닥 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인 그런 인물. 그런데 막상 자신의 아들이 죽자 그는 화조차 내지 않는다. 그것은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너무나 축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분노와 고통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말 한 마디에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가진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라간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 그 이상을 가진 무소불위의 존재가 앞으로 어떤 복수를 해나갈 것인가가 그 긴장감을 무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아들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무자비한 권력자 김강헌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이 그 중요한 추진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드라마다. 다른 한 축은 그 살인을 저지른 아들의 아버지인 송판호(손현주)가 쥐었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정의로운 판사인 송판호는 김강헌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유어 아너’는 그래서 김강헌과 송판호의 부성애가 격돌하는 대치상황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 열쇠는 주로 모든 걸 꿰고 있고 심지어 송판호가 꾸미는 일들조차 쉽게 알아차리는 김강헌의 손에 쥐어진다. 

 

김명민은 이번 김강헌 역할을 하기 위해 영화 ‘대부’를 참고했다고 한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하지만 누구나 긴장하며 들어야 할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대부’의 돈 꼴레오네(말론 브란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대부’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유어 아너’의 극적 긴장감이 폭발력을 갖게 만든 건 김명민이 김강헌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 ‘발산’이 아닌 ‘억압’하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이 뭐든 할 수 있는 권력자가 그걸 억누를 때 극적 긴장감이 생긴다는 걸 잘 이해하고 연기를 했다. “그렇겠지. 쉬운 싸움이 아니겠지. 존경을 받던 사람이 나쁜 짓을 해야 하니까 어렵겠지. 근데, 내가 너를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야. 너는 무척 어려운 일을 해야 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참아야 해.” 김강헌이 송판호에게 으름장을 놓는 이 장면에서 그 역할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억눌러야 하는 최고의 권력자. 바로 여기에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유어 아너’에서 소화해냐 하는 역할이 있다는 걸 김명민은 간파했다. 

 

사실 이런 연기 스타일은 기존의 김명민이 해왔던 ‘메소드 연기’와는 조금 다른 면이다. 김명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메소드 연기의 대가다. 영화 ‘내 사랑 내곁에’에서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50킬로에 가깝게 살을 급격히 빼고(저혈당 증세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수십 권씩 독파했으며, 그 고독을 느끼기 위해 몇 달 간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중 휠체어에서 쓰러지는 장면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 몇 차례씩 다시 찍는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담아내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것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고, 이순신의 연령에 맞는 목소리 톤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에서는 “똥덩어리”라는 명대사가 완벽하게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그 캐릭터에 몰입했으며, ‘하얀거탑’의 장준혁에서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며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는 이 인물 그 자체가 됐다. 그의 메소드 연기는 이처럼 완벽하게 그 인물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어 아너’에서 그는 인물 자체가 되어 빠져들기보다는 그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주는 효과를 적절히 맞춰나갔다. 김명민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왜 이런 연기의 변화를 시도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메소드, 메소드하니 힘들어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 같다, 요새는 쉽게 쉽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강압적으로 연기하는 게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는 충고를 들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그의 연기가 메소드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이런 이야기는 너무 역할에 과도하게 빠져들기보다는 적절한 선과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 할 게다. 이런 여유는 당연히 연기에 있어서 개인적 기량보다 중요한 앙상블에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유어 아너’에서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손현주와의 연기 앙상블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 건 아마도 이런 한 걸음 빠져나온 김명민의 여유에서 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과거 한 인물 다큐에서 김명민이 했던 연기에 대한 자세에 대한 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김강헌이라는 인물을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아니게 안으로 억누르는 연기로 더 강렬한 존재감을 만든 것처럼, 이제 그는 어떤 연기가 극에 효과를 극대화해주는가를 정확히 간파해 가며 연기를 하는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역할로 남는 배우가 무엇인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 잘 되기 위해서는 도드라진 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라는 것 또한 그는 보여줬다. 그리고 이건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ENA)

‘파친코2’로 돌아온 김민하, 더 단단해졌다

파친코2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아.”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 역할을 연기하는 김민하는 무려 4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이뤄진 오디션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내성적인 성격이고 어려서는 누가 말을 걸어도 땀이 날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고 한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자신이 가진 진가는 어느 순간 누군가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드디어 꺼내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김민하는 그런 점에서 보면 ‘파친코’의 선자라는 인물을 통해 그 숨겨져 왔던 매력이 드디어 꺼내진 배우가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 어시장에서 어린 선자(유나)는 일본 경찰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찬 아이다. 그 아이는 성장해 사업가인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에게는 이미 일본에 아내가 있다는 것. 결국 홀로 아이를 낳은 선자(김민하)는 마침 다 죽어가는 몸으로 선자네 하숙집을 찾아왔다가 겨우 살아난 이삭(노상현)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와 부부가 된다. 갖은 일본인들의 핍박과 차별 속에서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오사카에서의 삶. 노동자들을 돕다가 이삭은 감옥에 끌려가고 결국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로 나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선자는 끝없이 무너지고 내팽개쳐지는 삶의 바닥에서도 끝내 다시 일어나 그 삶을 버텨내는 인물이다. 

 

아마도 ‘파친코’의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는 바로 이런 끈질긴 생명력이 한인들의 정체성이라고 본 것 같다.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인상적인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바로 선자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있다. 낯선 타지에서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무너질 것 같은 그 삶 속에서도 끝까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선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래서 ‘선자’라는 이름은 당대의 조선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김민하는 오디션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마치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선자를 찾아낸 양 강렬한 눈빛과 앙다문 입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 위대한 인물을 표현해낸다. ‘파친코2’에서도 밤이면 굶주린 아이들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는 엄마들이 못할 게 뭐가 있냐며 위험한 밀거래에도 나서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되어 함께 부부의 연을 맺고 한수의 아이까지 자신의 아들로 보듬는 이삭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의리를 잊지 않는다. 늘 선자와 아들에 대한 동태를 살피고 있던 한수가 감옥에 들어갈 처지에 놓인 선자를 꺼내주고, 이제 곧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며 떠나라고 하자 선자가 단호히 선을 긋는 모습에서는 서릿발이 느껴진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선자는 똑바로 한수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것이 마치 돌맹이 같은 단단한 의지를 느끼게 만든다. 이 장면은 김민하라는 배우가 얼마나 깊이 선자라는 인물 속에 들어가 그 자체가 되어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끝까지 남편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는 선자의 단호함에 결국 한수는 힘을 써 오래도록 감옥살이를 해온 이삭을 빼내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이삭이 그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 선자와 마주하는 장면은 ‘파친코’의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점점 힘이 빠져가지만 살고 싶어하고 또 그 와중에도 아이들 걱정을 하는 남편을 선자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늘 헌신적으로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남들을 위해 살았던 남편이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자 또 그 선자 특유의 단호한 표정과 말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 또한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사실 선자 역할에서 드러나는 김민하의 이런 강렬한 인상은 ‘파친코’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물론 영화 ‘킬러스웰:아워 스페이스’의 유진이나 ‘봄이 가도’의 현정 같은 인물 모두 이처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파친코’의 선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김민하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고나 할까. 이건 배우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본인도 잘 몰랐던 가능성의 영역이 열린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파친코2’에서는 이제 이삭을 떠나보낸 선자와 그의 앞에 나타난 한수가 보여주는 애증의 관계가 이어질 전망이다. 즉 선자와 한수는 두 사람의 아들인 노아(김강훈)가 그 중간 매개가 되는 셈이다. 무기 사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한수는 노아에게는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되는 것이지만, 선자는 여기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자는 일제로 대변되는 차별과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또 한수로 대변되는 자본의 힘 앞에서도 굳건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지점은 ‘파친코’라는 작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즉 권력과 자본의 힘이 마치 시대의 가치인 양 이야기되는 현재에, 이를 거부하는 선자라는 인물의 강렬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가치라는 걸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하가 배우로서 보여준 가치 역시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내면에 깃든 단단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었다. 주근깨가 매력적인 이 배우는 선자라는 기회를 통해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진짜 매력을 꺼내놨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인 내면의 단단함은 그 어떤 외적 잣대로도 깨질 수 없는 거라는 걸 김민하는 그 연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글:국방일보, 사진: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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