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왜 비정상이라 비난받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걸까. 공영방송이 이래도 되나 싶다. 여동생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오빠가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후 인터넷은 이 오빠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들끓었다. ‘정신병자’이니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부터 ‘스토커’라는 비난, 오빠가 여동생에게 툭하면 시키는 뽀뽀가 ‘성추행’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고, 심지어 ‘성적인 악플’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내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그도 그럴 것이 방송에 나간 이 여동생에 집착하는 오빠의 이야기는 실로 정상이라 볼 수가 없었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랬다고는 해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여동생을 매일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여행을 갈 때도 꼭 따라가고 심지어 신혼여행까지 같이 가자는 오빠를 어찌 정상으로 보겠는가. 늘 손을 잡고 다니고 툭하면 뽀뽀를 요구하는 것에다 ‘사랑해’라는 말을 안 하고 전화를 끊으면 다시 건다는 건 도에 지나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결혼하기로 한 예비신랑과 이 오빠가 썼다는 계약서에는 동생은 평생 자기 것이며 같이 살 것이고 언제든 데리고 놀러 갈 수 있다는 식의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오빠가 아니라 부모도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동생은 울먹거리며 오빠가 자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자신의 미래를 꾸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오빠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관객의 투표에서 150명 중 132명이 ‘고민이다’를 눌러 우승자가 됐을 때 오빠의 표정은 심지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의 가족 일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내막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가타부타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미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이 사적인 이야기를 공론화하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오빠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들은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 정상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방송에서 보여진 인물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따라서 이것은 방송이 아예 내놓고 한 사람을 전 국민적인 비난 앞에 내놓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그 사람이 제 아무리 비정상적이고 잘못됐다 해도 그 어찌 보면 사적인 문제들을 온 국민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실로 방송이 할 짓이 아니다. 흔히 인터넷에서 누군가 찍은 동영상이 올라와 ‘○○녀’, ‘○○남’이라 불리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일과 이것이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다양성의 차원에서 보여주고,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들 사이에 어떤 화해와 소통의 물꼬를 터주자는 <안녕하세요> 애초의 기획의도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기획의도대로 하려면 좀 더 신중한 접근과 편집이 필요하다. <안녕하세요> 같은 특이한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자칫 자극적으로 경도되기 쉬운 위험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녕하세요>가 그나마 안전하다 여겨졌던 것은 가족이 출연해 가족애라는 틀 안으로 특이한 이들을 껴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난받을 만한 이들도 뒤늦은 참회의 모습으로 오히려 소통의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동생에 집착하는 오빠의 이야기에는 그런 부분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소통은커녕 오히려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오빠가 여동생에게 보여준 리액션의 전부였다. 그러니 이 편집된 방송에서 대중들의 비난여론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이 날 방영된 또 다른 사연 중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마치 하인처럼 시키는 부모 이야기 역시 자극적인 소재였지만 그나마 비난여론이 덜했던 것은 마지막에 엄마가 딸의 고충을 이해하고 울컥하는 모습을 통해 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소재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도무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불편한 내용들은 그대로 방영되면 당사자들을 공론의 질타 속에 던져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민을 들어준다는 빌미로 어쩌면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 마구 풀어헤침으로써 결국 그 당사자들의 비난을 먹고 자라는 프로그램이라면 실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방송이 시청률을 위해 일반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좋은 기획의도는 자칫 잘못된 방송을 통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비난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제작진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진짜사나이> 장혁의 영화 찍기와 그 역효과

 

<진짜사나이> 수방사편에서 특임대에 들어간 장혁은 매번 모의 훈련 때마다 거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권도로 무장한 장혁은 버스에서의 대테러진압훈련에서도 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테러범을 제압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인질을 구출하는 훈련에서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창밖에서 진압 도중 생겨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적을 조준하는 자세를 진짜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훈련 과정에서 장혁의 모습은 조금 과한 느낌을 주었다.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훈련에서도 장혁의 동작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한 편의 영화였다. 그 때마다 훈련교관들은 당황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한 마디로 ‘너무 잘 해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통해 예능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 하지만 장혁의 조금은 과한 동작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너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아이리스>를 떠올리게 된 것.

 

이것은 영화만큼 장혁이 잘 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영화처럼 너무 짜여진 각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들 일어나는 것조차 천근만근인 상황이지만 장혁은 그 와중에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 그의 모습에 일반병사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실제 병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연예인과 군인들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부대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청룡대대나 이기자 부대처럼 체력적 부담을 느낄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곳에서 장혁의 모습은 FM병사의 그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떤 인간적인 허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뭐든 말로는 최고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경기에 나가 한 방에 모래판에 꽂혀버리는 모습은 장혁의 액션(?)에 실감을 만들어주었다. 즉 폼은 멋있고 또 체력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실전은 역시 실전이라는 것.

 

하지만 수방사 특임대에서 장혁이 보여주는 액션은 심지어 교관들조차 압도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것은 수방사 특임대가 다른 부대에 비해 훈련 강도가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혁이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실제야 어디 그리 쉽겠냐마는 방송으로 나오는 장면만을 두고 보면 장혁이 잘 하면 잘 할수록 특임대의 훈련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짜사나이>의 존재이유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진짜사나이>의 주인공들은 힘들게 군복무를 하는 일반사병들이지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역할은 사병들이 얼마나 열심히 군복무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또 공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수방사 편에서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일반병사들에게 마치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장혁이 내무반에서 사병들에게 하는 이른바 ‘연애 특강’은 인생 선배로서는 이해되는 일이지만 진짜 군대 생활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수방사편의 훈련내용이 지금껏 나온 다른 부대들에 비해서 너무 약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방사편에서 일반사병 중 가장 많은 방송분량을 만들고 있는 ‘특별한 선임’ 손지민 일병은 연예인 구멍병사보다 더 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심지어 손지민 일병이 받쳐주지 못해 서경석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빗속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치르는 유격훈련이나 잠을 자지 않고 훈련을 버텨내는 고강도 무박훈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수방사가 보여주는 테러진압 훈련이 너무 짜여져 있어 약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대마다 특성이 있기 마련이고 또 훈련강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한 부대에 전입되면 거기에 맞춰 생활하는 군인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부대 간의 비교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 균형을 방송 제작진과 출연진이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출연진은 이전에 다른 부대를 경험하고 온 터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와 부대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수방사편은 특히 류수영 같은 <진짜사나이>에 걸맞는 ‘힘겨워도 긍정하는’ 인물이 스케줄 때문에 중도에 부대를 빠져나갔고, 목 부상을 당한 샘 해밍턴이 훈련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균형이 깨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혁의 영화 같은 액션은 너무 튀는 인상만 남기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사병들 사이에 어떤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수방사편은 <진짜사나이>의 그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진흙탕 싸움과 노출경쟁에 가려진 영화제

 

영화제로 부산이 들썩들썩하는 건 알겠는데 정작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지, 어떤 행사가 어떤 의미로 치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하는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터넷이나 신문 혹은 방송에 잠깐씩 나오는 기사들이 영화제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쳐보라. 거기에 정작 영화에 대한 정보들이 얼마나 있는지.

 

사진출처:YTN

제일 많은 것은 역시 레드카펫의 여배우 노출 경쟁을 말 그대로 경쟁하듯 올린 사진들이다. 매회 그러하듯이 이번에는 등을 훤히 드러내다 못해 엉덩이골까지 드러낸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에 올라온 강한나와 가슴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드레스를 입은 한수아가 주역이 될 모양이다. 여기 저기 연관검색어로 떠 있고 모음 사진에 동영상 서비스는 기본이다.

 

어딜 가나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키는 클라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연 기사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클라라가 무슨 영화에 출연하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강한나나 한수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수아는 올해 <연애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개봉예정중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레드카펫 노출을 통해 얻어진 홍보일 것이다. 영화 홍보하겠다는 데야 무에 잘못된 것이 있겠냐마는 막무가내 노출로 정작 영화제의 영화와 연기자에 대한 시선을 빼앗는 건 민폐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들이 연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화제에 의도치 않은 폐를 끼치는 상황도 발생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국외의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열렸던 행사에서는 몇몇 아이돌 연기자들이 빠져나가면서 관객들까지 뭉텅 빠져나가 남은 해외 스타들에게는 민망한 행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친 팬덤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돌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배려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이러니 행사에 참여했던 배우들 중 일부는 화를 낼 법도 하다.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18년이라는 영화제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화인들과 영화들이 저 뒤로 묻혀 버리고 대신 일부 아이돌들이나 레드카펫 노출 연예인들 이야기만 무성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현수와 이켠이 SNS상에 토로한 씁쓸하고 답답한 심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영화제 행사가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이 되거나 팬 미팅 현장이 되어서야 될 말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소식보다 더 뜨거웠던 이슈는 강동원측과 남동철 프로그래머 사이에 벌어진 진흙탕 싸움이다. “레드카펫에 서지 않으려면 센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자극적이다. 마치 영화제 측에서 갑질을 한 뉘앙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맞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강동원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음이 터지면서 영화제의 이야기는 저 뒤로 훌쩍 물러나 버렸다. 누가 잘못했든 쌍방이 미꾸라지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흙탕 속에 영화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18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명실공히 아시아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판이 제대로 영화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은 점점 사라지고 화제와 이슈만 난무하고 있는 듯한 영화제 풍경은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물론 선정적으로 화제만을 좇는 언론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제측이 좀 더 세심한 준비와 배려를 했다면 이처럼 논란과 가십성으로만 흐르는 영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에 왜 영화 얘기를 찾는 건 이리도 어려운 걸까. 이것은 이제 역사와 전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TV, 영화 사로잡은 딸바보의 심리학

 

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에는 성폭행을 당한 딸아이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아빠마저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아빠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딸의 마음을 조금씩 연다. 결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딸바보 소원이의 아빠다. 그저 가족에게 무심하게 살아왔던 그는 참회하듯 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사진출처:영화 <소원>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 아빠 장태산(이준기)은 삶에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딸 수진(이채미)이 백혈병을 앓고 있고 그녀에게 골수를 기증할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는 삶이 절실해진다. <투윅스>는 이 주 동안 딸바보 장태산이 온갖 세상의 위협과 어려움을 뛰어넘고 딸과 가족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부쩍 딸바보 아빠들이 많아졌다. 올해 초에 개봉해 1천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딸바보 아빠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영화에서 딸 예승(갈소원)이에 대한 무한사랑을 보여주는 딸바보 용구(류승룡)는 실제로도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바보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대놓고 딸바보의 이야기를 기획했다고 보여진다.

 

무려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서영이(이보영) 아빠 이삼재(천호진) 역시 딸바보다. 자신이야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잊혀지더라도 딸 서영이가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바라는 그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삼재가 그렇게 하는 데는 원죄가 있다. 서영이의 청춘시절에 자신의 사업실패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것. 그래서 이삼재의 사랑에는 원죄에 대한 참회가 섞여 있다.

 

딸바보 열풍(?)은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아빠 어디가>의 송종국이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성훈은 물론이고 예능에 출연하는 이들은 서슴없이 자신들이 딸바보임을 인증하곤 한다. 마치 세상의 아빠 치고는 딸바보 아닌 이들이 없는 것처럼 이들은 왜 이렇게 스스로를 딸바보로 세우는 것일까.

 

흥미로운 건 TV 프로그램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딸바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무릎을 꿇는다는 점이다. 영화 <소원>의 아빠는 그간 벌어먹고 살기 위해 딸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투윅스>의 장태산은 가족을 위한다면서 가족을 떠난 자신을 후회한다.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정신지체이기 때문에 딸 예승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눈물을 쏟고 <내 딸 서영이>의 이삼재는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서영이에게 사죄한다.

 

딸바보들은 이처럼 과거와 달라진 아빠들의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즉 과거에 어딘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빠들이 가족에 대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IMF 이후부터 꺾여 온 아빠들의 권위와 사회가 달라지면서 점점 가족 내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입지가 좁아진 점 때문에 아빠들 스스로 가족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아내는 어딘지 어색하지만 딸이라면 바보처럼 살갑게 굴어도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점점 집 밖에 딸을 내놓기가 위험해지는 사회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성폭행이니 하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아빠들은 괜스레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빠져들곤 한다. 어른들이 만든 불안한 사회는 아빠들에게는 그래서 또 하나의 죄의식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바로 이런 딸바보 아빠들의 원죄의식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영화다. 이토록 많아진 딸바보 아빠들. 그간의 남성성의 성 역할에만 머물며 집밖을 떠돌던 아빠들은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점점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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