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심’, 허성태와 손잡은 이준, 강하나 질녀삼은 장혁

붉은 단심

“국혼은 전하께서 세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박계원(장혁)은 병판 조원표(허성태)와 술자리를 하며 국혼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한다. 실로 조선의 12대왕 이태(이준)는 중전 간택이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오래도록 연모해온 유정(강한나)이 연심을 드러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에겐 혼인해야 할 여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정을 밀어낸다. 

 

이태가 말한 ‘혼인해야 할 여인’이란 병판 조원표(허성태)의 딸 조연희(최리)다. 그는 좌의정 박계원과 대적하기 위해 거의 유일하게 자기 세력을 갖고 있는 조원표를 택한 것이고, 그래서 조연희와 정략결혼을 하려 한다. 일부러 조연희를 위기에서 구해내며 마음을 흔든다. 이태에게 마음을 빼앗긴 조연희는 조원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혼에 처녀단자를 넣어달라며 중전이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떼를 쓴다. 

 

조원표는 이 일이 좌의정 박계원과 자신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비화될 거라는 걸 예감한다. 그래서 애써 이태가 국혼을 통해 만들어낸 박계원과의 틈새를 부정하려 하지만 이태는 이제 그 틈을 더욱 벌려 놓는다. 좌의정 사람이면서 병판의 명을 듣는 겸사복에게 자신이 병판의 여식을 만난다는 말을 전하게 한 것. 왕이 잠행 시 어딜 갔는지를 추궁하기 위해 겸사복을 고신하는 박계원과 이를 막으려는 조원표의 갈등은 정면에서 부딪친다.

 

결국 이태를 찾아온 조원표는 그런 계획이 무모하다며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 말하지만 이태는 조원표를 설득한다. “중전이 승하한 후 과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판의 여식을 만나는 거였다오. 두 번째 만남에서 병판에게 발각된 것도 과인의 의도였소. 좌의정을 몰아서 겸사복장을 파직하게 만든 사람도 과인이오. 그래서 지금 병판이 여기 오게 만든 이가 과인이오. 병판을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게 과인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소. 가장 힘든 판을 해냈으니 다음 판은 이보다 쉬울 터. 병판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과인을 믿고 이 손을 잡아 주시오.”

 

<붉은 단심>이 엮어내는 정치와 멜로는 유정을 연모하지만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정략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태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진다. 이태는 조정을 장악한 반정공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혼을 이용해 그들 사이에 균열을 낸다. 병판의 딸을 중전으로 삼음으로써 병판과 손을 잡고 박계원과 대결하려는 것. 그래서 박계원이 자신의 숨겨둔 질녀를 중전으로 세우려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이태는 그에게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며 저주 같은 말을 쏟아낸다. 

 

“국혼은 과인을 가장 비싸게 사줄 집안과의 거래요. 좌상. 뭐라 해도 이번 간택만은 좌상의 뜻대로 안될 것이오. 어떤 여인이든 데려와 보시오. 안지 않을 것이오 만나지 않을 것이오. 얼굴조차 보지 않을 것이오. 평생 구중궁궐에서 지아비의 그림자도 못 본 채 늙어 죽을 것이외다. 하여 좌상은 후대의 권력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오. 후대의 권력을 잃으면 현재의 권력도 약해진다는 걸 잘 아시죠?”

 

이태가 꺼내든 칼 같은 말들은 추상같지만 만만하게 당할 좌의정 박계원이 아니다. 그는 이태가 데려와 보라는 ‘어떤 여인’으로 유정을 세우려 한다. 유정을 질녀로 삼고 국혼에 내보내 중전이 되게 하려 한다. 그가 오래 전부터 이태를 만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박계원은 차마 이태가 유정을 밀어내진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왕이 중전을 간택하는 국혼이지만, <붉은 단심>에서 이 일은 핏빛 권력다툼으로 그려진다. 누구를 중전으로 맞이하느냐가 누구의 세력을 갖는가의 문제가 되고, 그건 조정의 권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 된다. 하지만 애써 마음속의 정인인 유정을 밀어내고 정략결혼을 하려는 이태에게, 유정을 질녀 삼아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박계원의 선택은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한다. 과연 이태는 권력을 선택할까 아니면 정인을 선택할까. 권력을 선택한다면 향후 맞서는 입장이 되어야할 유정과 어떤 관계를 이어갈까. <붉은 단심>이라는 정치와 엮어진 멜로가 갈수록 쫀쫀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사진:KBS)

‘우리들의 블루스’, 우울증의 심연 속으로 손을 내민 해녀 같은 

우리들의 블루스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오징어- 계란 계란- 순두부 순두부- 비지 비지- 시금치 시금치 윗도리 아랫도리...”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을 다니며 갖가지 물건을 파는 동석(이병헌)은 그렇게 녹음을 해 가져온 물품들을 알린다. 아마도 저마다 하루의 노동 속에 있던 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트럭으로 달려올 게다. 고등어도 사고 계란도 사고 옷도 사고... 그 순간을 놓치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외진 동네에서 나중이란 너무 멀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석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다. 그런데 그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린 선아(신민아)를 마주한다. 어려서 서울에서 내려왔던 선아를 동석은 좋아했다. 재가한 엄마를 따라 함께 살던 배다른 형제들은 매일 같이 동석을 두들겨 패곤 했지만 동석은 그저 참고 맞기만 했다. 선아도 엄마가 죽고 나락에 빠져 있는 아빠 때문에 힘겨워하며 자신을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아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건 동석에게도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된다. 

 

결혼을 했지만 우울증 때문에 힘겨워하던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아이까지 빼앗기자 선아는 살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이만이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었지만 그마저 사라진 것. 그래서 제주도에 온 선아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울증 증상이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선아에게 물은 죽음과 심연의 이미지다.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런데 그렇게 바다 속에 빠졌을 때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해녀들이 그를 찾아내 구해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동석은 119를 부르고는 괜한 심술을 부리듯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괜스레 차 안에 있는 침구들의 먼지를 거칠게 털어낸다. 바다에 빠진 선아를 해녀가 구해냈지만, 물밖에 나왔다고 선아는 산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져 있다. 그게 못내 걱정된 동석은 그를 병원에도 데려다주고 모텔 방도 잡아주고 때때로 전화해 “살아있냐?”고 묻는다. 바다는 아니지만 지금 동석은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진 선아를 끌어내려 안간힘이다. 

 

선아는 매 번 ‘나중’을 이야기한다. 나중에 아이를 다시 데려와 함께 살 집을 고치고, 나중에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말을 함께 탈 생각을 한다. 그런 선아에게 동석은 나중은 없다며 지금 당장 말을 타러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당장 말 탈 시간이 있으면 아들 열이와 함께 살 집을 더 짓고 싶다 말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자기 말 타는 사진을 찍어 달라 한다. 막상 즐겁게 말 타는 동석을 보니 선아도 웃는다. 그리고 동석의 강권에 못 이겨 말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별 일 아닌 것처럼 찍은 말 사진은 그 날 아이를 만났을 때 의외의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수족관에 갔지만 아이는 거기 수조를 유영하는 가오리보다 말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날 동석 때문에 억지로 찍은 말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즐거워한다. 그 때 동석이 ‘지금 하자’고 했던 그 일이 없었으면 선아가 말하는 지금 같은 ‘나중’도 없었을 일이다. 

 

동석은 선아에게 나중은 없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죽은 누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랑 누나랑 셋이 살 때, 없는 형편에 엄마가 돼지 내장을 얻어다 볶았는데 그걸 누나가 다 챙겨먹어 화가 나서 요강 단지를 누나 얼굴에 부어버렸다고 했다. 그게 미안해서 다음날 학교 갔다 와서 미안하다 하려 했는데, 그 날 누나가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게 누나랑 나랑 마지막. 그 때 알았지 썅. 나중은 없구나...”

 

배를 타고 제주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선아는 하염없이 바다만 쳐다본다. 그러면서 계속 파도만 보고 있으니 멀미가 난다는 선아에게 동석은 이렇게 말한다. “너도 울 엄마처럼 바보냐? 뒤돌아. 나중에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 있잖아. 그저 바다만. 바보처럼. 아 우리 엄마 얘기야. 아버지 배타다 죽고 동희 누나 물질하다 죽고 엄만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부지 동희누나 죽은 바다 안볼 수도 있는데, 매일 바다를 미워하면서도 바다만.”

 

엄마 얘기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선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터였다. 양육권을 두고 남편과 벌인 소송에서 진 선아는 절망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밥도 먹지 않는다.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선아를 동석은 애써 잡아 끌어올리려 하지만 제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질 않는다. 결국 동석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선아를 인정하며 “그래 이렇게 살다가 죽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고 쏘아댄다. 그러면서 선아가 가장 아파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들도 우울증에 빠진 엄마처럼 될 거라는 것. 

 

너무 아픈 이야기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 그래서 오열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말한다.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울엄마처럼 슬퍼만 하지 말라고.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썅. 어쩌단 웃기도 하고 행복도 하고 애랑 같이 못사는 것도 대가리 돌게 승질나 죽겠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엉망진창 네가 망가지면 니 인생이 너무 엿 같잖아 새끼야!”

 

선아는 동석과 함께 걸으며 우울증을 치료해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석의 끝없는 너스레에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물건 파는 걸 녹음하는 동석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그건 제주 구석구석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건 파는 트럭이 왔다는 목소리지만 또한 지금 아니면 나중은 없다는 목소리처럼도 들린다. 자잘한 일상의 욕망들을 일깨우는 소리.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선아를 마치 해녀처럼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동석은 그렇게 그를 현실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사진:tvN)

‘어게인 마이 라이프’, 검사 미화? 검찰개혁에 칼 들었나

어게인 마이 라이프

세상에 이런 검사가 있나.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초반 김희우(이준기)라는 검사 영웅을 그린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검사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다. 실제고 김희우는 대통령도 쥐고 흔드는 조태섭 의원(이경영)에게 칼을 들었다가 오히려 죽음을 맞이했던 검사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던 김희우가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또 한 번의 생을 얻게 되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한 그가 검사가 되어 펼쳐가는 복수극은 어쩐지 검사 미화가 아니라 검찰개혁에 칼을 드는 모양새다. 조태섭 의원의 라인을 잡은 김석훈(최광일) 중앙지검장과 그 측근들인 장일현(김형묵) 검사 그리고 최강진(김진우) 검사를 김희우가 하나하나 날려버리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의도적으로 김석훈 중앙지검장의 눈에 들고 그 라인에 들어간 것처럼 꾸몄던 김희우는, 함께 뜻을 합친 전석규(김철기)와 함께 검찰의 비리들을 척결해 나간다. 장일현 검사는 그 첫 번째 타깃이 된다. ‘스폰서 검사’로 기업의 상납을 받아온 데다, 사귀고 있던 국대예술재단 성진미(박나은) 이사장의 비리를 덮어줘 온 일로 장일현 검사는 사면초가에 이르게 된다. 

 

결국 위기에 몰린 장일현 검사는 살아남기 위해 최강진 검사의 성상납 비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김희우는 최강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SHC 엔터의 비리를 캐고 소속 연예인들의 성상남 비리는 물론이고 조직적인 병역비리 또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어게인 마이 라이프>가 그리고 있는 검찰은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갖가지 비리검사와 정치검사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김희우나 전석규 같은 인물만이 예외적일 뿐.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로 보면 김희우는 ‘판타지’를 캐릭터화한 인물이다. 그는 한 번 죽었고 되살아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이유는 조태섭 의원의 비리를 캐려 했지만 검찰 내부까지 다 손이 닿아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이미 검찰은 썩어 있었고 김희우의 죽음은 그래서 일개 한 검사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검찰 개혁이나 사회 정의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판타지로서 다시 살려낸 김희우가 긴 세월 동안 차근차근 힘을 키우고 자기편을 만들어가며 검찰로 돌아와 드디어 하나하나 비리 검사들을 척결해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들을 말 그대로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그래서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이야기는 때론 결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과 기연들이 주인공 김희우에게는 벌어진다. 조태섭 의원과 맞서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황진용 의원(유동근)의 등장과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침 조태섭의 추종자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여자를 구해주는데 하필이면 그가 황진용 의원의 딸이었던 것. 

 

‘하늘의 뜻인가 이렇게 황의원과 연결되다니!’ 김희우는 이런 우연이 스스로 놀랍다는 듯 그렇게 생각한다. ‘하늘의 뜻’. 사실은 작가의 뜻이다. 이처럼 이런 우연이 개연성이 없다는 걸 작가도 알고 시청자들도 알지만, 이 이야기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고 무엇보다 김희우라는 인물 자체가 판타지적 존재라는 점에서 하늘도 돕는 이야기는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드러내는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이 새삼스럽다. 결국 검찰개혁을 하고 이를 통해 조태섭 같은 비리 정치인을 척결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판타지와 우연까지 더해진 말 그대로 ‘하늘이 도와야’ 가능할 정도라는 걸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애초 검사 미화가 아닐까 생각됐던 이야기가 김희우 같은 검사는 판타지에나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분명히 드러나면서 오히려 이토록 어려워진 검찰개혁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실로 드라마 속은 시원시원한 사이다지만 현실은 퍽퍽한 고구마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사진:SBS)

‘붉은 단심’, 이준과 강한나는 정인이 될까 정적이 될까

붉은 단심

“중전은 죄가 있어 죽었더냐? 힘이 없으니 내 사람을 잃는 거다. 그 사람을 잃고도 세자를 지켜야 하기에 난 아내의 죽음마저 외면한 비겁한 지아비다.” 반정공신의 수장인 좌의정 박계원(장혁)의 음모에 의해 중전을 잃은 선종(안내상)은 세자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세자인 어린 이태(박지빈)가 되묻는다. “하여 저도 아바마마처럼 비겁해지라 하시는 겁니까? 소자는 그리 못합니다.”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선종과 세자 이태가 주고받는 이 짧은 대사는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갈등 구조를 가져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박계원의 음모에 의해 궁지에 몰린 중전이 세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셔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선종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힘이 없어서다. 하지만 어린 이태는 선종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이 마음에 두어 세자빈으로 맞음으로써 박계원에 의해 그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유정(신은수)을 이태는 구해내 궁 밖으로 탈출시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궁 밖 죽림현의 실질적인 수장이 된 유정(강한나)을 이태(이준)는 다시 만난다. 유정을 만나러 가는 이태의 얼굴은 밝고, 유정 역시 이태를 보고는 밝게 웃지만 과연 이 두 사람이 앞으로 마주할 운명은 과연 밝기만 할까. 두 사람이 만나는 다리 주변으로 마침 펼쳐진 불꽃놀이의 불빛들은 이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너무나 아름답지만, 언제나 이 둘을 삼켜버릴 것 같은 불꽃들이다. 그 위로 이태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살아주어 고맙소. 나로 인해 몰락한 연모하는 나의 빈이여.’

 

단순하게 보면 <붉은 단심>은 결국 박계원을 향한 이태와 유정의 복수극처럼 보인다. 박계원의 모략으로 이태는 어머니를 잃었고, 유정은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태와 유정이 안팎으로 손을 잡고 함께 박계원을 몰아내는 그런 전개일까 싶지만, 어쩐지 그리 단순한 구도가 아닐 듯 보인다. 박계원 역시 만만찮은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내쳐야 하는 왕 이태와 살아남기 위해 중전이 되어야 하는 유정, 정적이 된 그들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며 펼쳐지는 핏빛 정치 로맨스’라는 작품 소개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정인과 정적. 이것은 <붉은 단심>이라는 사극이 가진 두 개의 바퀴다. 그래서 이태는 유정을 연모하지만, (아마도 박계원의 계략에 의해) 유정과 정적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고 그래서 갈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복수를 위해서는 유정마저 밀어내야 하지만, 그건 정인을 내치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저 선종과 어린 이태가 나누는 대화 속 ‘비겁한 지아비’라는 말이 울림을 갖는 이유다.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극이다. 그간 멜로에 있어서 ‘운명적인 사랑’ 같은 이야기는 현대극보다는 사극에 더 어울리게 된 면이 있다. 최근 들어 멜로를 다룬 사극들이 대부분 가벼운 로맨스를 다루던 것과 비교해보면 <붉은 단심>은 자못 비장미를 가진 사랑이야기를 담는다. 

 

이렇게 된 건 ‘정인과 정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멜로와 함께 정치가 절묘하게 엮어져 있어서다. 궁중에서 남녀 간의 관계는 사적으로는 멜로이지만 공적으로는 정치와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 엮인 부분들을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풀어낼까. 이태와 유정은 서로를 정인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끝내 정적으로 밀어낼까. 첫 방부터 몰아친 <붉은 단심>이 그 어떤 멜로 사극보다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이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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