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와 남주혁의 무지개, 봄을 부르는 청춘멜로(‘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정리할 말이 없어. 우리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직 세상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지인, 친구, 연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구분 중엔 속하는 게 없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우리만 알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하면 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지만 까짓것 우리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뭐 우리 관계는 전화기다, 물 컵이다, 가위다 아니면 구름이다, 무지개다. 우리가 만들면 되는 거잖아.”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는 백이진(남주혁)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백이진에게 요즘 “너 땜에 미치도록 복잡하다”며 질투하고, 좋아하고, 열등감도 느끼고 그래서 진짜 싫다는 복잡하지만 정리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만난 백이진이 그 관계에 대해 묻자 나희도는 엉뚱하게도 무지개 운운 한다. 하지만 이미 그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이 끝난 백이진은 그 엉뚱한 나희도고 귀엽다는 듯 “너는 참...”하며 자신은 ‘무지개’가 좋다고 말한다.

 

아마도 나희도가 백이진에게 그 관계를 그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워 ‘정의를 만들자’는 건, 특유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데다 뭐든 직설적으로 툭 내뱉고는 ‘쪽팔려’ 하는, 이 대책 없이 귀여운 나희도라는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일 게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사랑이라는 걸 해보지 않았지만 이미 불쑥 그걸 하고 있는 ‘첫사랑’을 하는 이들의 어리숙함과 순수함이 뒤섞인 모양 그대로일 게다. 그래서 첫사랑을 아는 이들이라면 나희도의 얘기를 듣고 희미하게 웃는 백이진의 풋풋한 미소가 공감됐을 게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나.

 

그런데 이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흔한 클리셰와 상투적 관계들로 적당히 버무려진 여타의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제 첫사랑을 하기 시작하는 청춘멜로를 다뤄서이겠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는 9회까지 그 흔한 키스신 하나가 없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더 설레고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눈빛 하나로도 또 마음이 담긴 때론 따뜻하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티격태격하는 그 말들 하나로도 설렌다. 

 

백이진이 다큐 촬영 도중 다친 나희도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길, 거대한 무지개가 등장하자 나희도는 잠시 멈춰 그걸 보고 가자고 조른다. 그 자리에서 백이진은 나희도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너는 항상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끄는 재주가 있네. 너라서 달려갔어... 아시안 게임 때 심판 인터뷰 따러 공항까지. 생각해봤는데 네가 아니었으면 안 갔을 것 같애. 근데 네가 아니었어도 가야했어. 기자니까. 넌 결국 기자로서 내가 옳은 일을 하게 했어. 넌 항상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끌어.”

 

당시에는 나희도에게 네가 아니라도 달려갔을 거라고 말했던 백이진이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스타플레이어인 고유림(김지연)이 이에 불복하자 ‘금메달을 빼앗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나희도. 백이진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출국하려는 심판을 공항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따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단지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희도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건 사실상 백이진의 고백이다. 

 

그런 고백에도 기분은 좋지만 그것이 ‘사랑고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천진하게 웃는 나희도는 그게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들 관계의 정의라며 “이름은 무지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이진에게 묻는다. 너에게는 우리 관계가 뭐냐고. 그리고 드디어 백이진이 나희도가 알아들을 수 있게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사랑. 사랑해.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최근 멜로드라마들은 요즘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첫 회부터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하곤 한다. 그건 물론 다루는 사랑의 이야기가 달라서 그런 것이지만, 너무 쉽게 전개되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자극적이지만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오랜만에 첫사랑의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는 청춘멜로다. 작은 것 하나로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청춘멜로의 빛나는 순간들이 사라졌다 생각했던 연애세포들을 봄날 햇살을 맞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피어나게 만드는 드라마. 

 

촉촉한 비와 햇살이 만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지개’처럼, 그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어렵지만 보는 내내 감정을 뒤흔들고 설레게 만드는 어떤 것.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마치 긴긴 겨울 동안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던 봄이 오는 것 같은 그런 청춘멜로가 찾아왔다.(사진:tvN)

‘사내맞선’,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도 반응 나쁘지 않은 건

사내맞선

회사 대표 강태무(안효섭)와 평범한 사원 신하리(김세정). 친구 진영서(설인아)를 대신해 나간 맞선에서 신하리는 그 상대가 자신의 회사 대표 강태무라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고, 갖가지 남자들이 싫어할 짓들을 다했는데도 강태무가 뜬금없이 결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또 한 번 놀란다. 알고 보면 강태무의 조부 강다구(이덕화)가 하도 손자를 결혼시키려 맞선을 주선하는 바람에 그렇게라도(계약결혼) 이를 피하려 한 제안이다. 

 

결국 사실이 모두 드러나지만 강태무는 신하리에게 결혼을 전제한 계약연애를 제안한다. 물론 강태무는 신하리가 자기 회사 직원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매달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강태무의 말에 혹하지만, 신하리는 아무리 계약연애라고 해도 직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대표와 사귀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갈등한다.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이 가진 설정이다. 

 

그 설정만 봐도 <사내맞선>은 어떤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것인가가 예측된다. 전형적이고 뻔한 직장상사(그것도 대표)와 직원 사이에 벌어지는 오피스 로맨스가 그것이고, 거기에는 평범한 치킨집 딸이 GO푸드 대표와 엮이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빠지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밀고 당기는 티키타카를 벌일 것이고, 그 결과 계약관계를 넘어 진짜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않을까. 모두가 기대하는 스토리가 이것이고, 아마도 <사내맞선>은 이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게다. 

 

뻔한 스토리지만, 그런데도 <사내맞선>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너무 재밌다는 반응과 함께 출연남녀 캐릭터들이 모두 매력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물론 웹툰 원작이라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비교하는 목소리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반응들이다. 어째서 뻔해도 평은 나쁘지 않은 걸까. 

 

그 첫 번째는 일단 기대감 자체를 낮춘 <사내맞선>의 런칭 방식이 효과를 줘서다. <사내맞선>은 대놓고 전형적인 오피스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내세웠다.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는 굉장한 메시지 같은 걸 담는 드라마가 아니라 오락적인 드라마라는 걸 인정한 것. 그래서 시청자들은 부담 없이 보며 한 시간 웃을 수 있는 <사내맞선>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 면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제로 <사내맞선>이 오락적인 드라마에 맞게 충분한 즐거움을 주느냐 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사내맞선>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대사 하나하나에 빵빵 터지는 재치가 엿보이고, 다소 과장된 상황들을 보여줄 때는 마치 웹툰을 보는 것 같은 만화적인 연출을 통해 이 작품이 코미디라는 걸 강조한다. ‘시조새’가 계속 해서 울며 나타나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이것이 호평이 나오는 두 번째 이유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그런 위계구도에서 벗어나려 애쓴 부분이다. 사내에서 ‘여직원’ 운운하며 ‘신데렐라’, ‘신분상승’ 같은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계빈(임기홍) 차장에게 여의주(김현숙) 부장이 날리는 일갈은 단적인 사례다. “어쩜 이렇게 맞는 말씀만 하실까. 쳐 맞는 말. 자꾸 여직원 여직원 하지 말고 그냥 직원! 성차별적 발언인 거 몰라요? 그리고 뭐 신분상승? 내 혈압상승하게 하지 말고 빨리 결제 서류나 올려요.”

 

<사내맞선>은 다소 뻔한 전형적인 오피스 로맨스물이지만 적어도 세 가지 성공요인은 갖췄다. 그 하나는 오락물이라는 걸 선선히 인정하고 내세운 것이고, 두 번째는 충분히 오락물로서의 재미를 갖춘 것이며, 나머지 세 번째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구도에서도 성차별적 요소를 없애려 노력한 부분이다. 이런 편안함 위에서 <사내맞선>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피스 로맨스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스물다섯 스물하나’, 순정만화 같은 응원 혹은 사랑

 

스물다섯 스물하나

“백이진. 나야. 희도. 네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원망하진 않아. 네가 이유 없이 나를 응원했듯이 내가 너를 응원할 차례가 된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 때 보자.”

 

공중전화 부스에서 삐삐에 나희도(김태리)가 녹음해 남긴 메시지를 백이진(남주혁)은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그 장면은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이 영상으로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초록빛 전화통, 그리고 거기에 쌓아 둔 동전을 계속 넣는 손. 특히 그 음성을 계속 듣는 백이진의 쓸쓸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 그렇다.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처럼 느껴지는 장면.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세계다.

 

IMF로 이제 겨우 스물둘의 나이에 대학생활을 포기한 채 도망치듯 외삼촌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쉽지 않은 삶. 백이진은 나희도의 그 응원 메시지로 힘을 내며 살아간다. 동생을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고 변명했지만,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도망친 건 자신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 쓸쓸함과 힘겨움 앞에서도 수도꼭지를 뒤로 틀어 마치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걸 보는 백이진은 나희도를 떠올린다. 힘겨울 때 그 분수(?)로 자신을 위로해줬던 나희도를 생각하자 미소가 피어오른다. 

 

마침 눈이 내리고 그걸 올려다보는 백이진을 부감으로 찍어낸 장면은, 아마도 태릉선수촌에 있는 수도 앞에 서 있는 나희도로 이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분할화면으로 연출된다. 백이진이 나희도에게 국가대표가 되어 TV에 나온 걸 축하한다고 말하고 나희도는 마치 그 말을 듣기나 한 것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있지만 양쪽에서 똑같이 내리는 눈발은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백이진이 갑자기 분할화면을 넘어 나희도의 손을 잡고는 자신이 있는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 함께 달려 나간다. 

 

판타지로 연출한 장면이지만 그 속에서 손을 꼭 잡은 장면은 보는 이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제 나희도가 백이진이 답장처럼 남긴 음성메시지를 공중전화 부스에서 듣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보고 싶었어. 근데 봤어. 네가 보여줘서. 그래서 오늘은 웃었어. 풀하우스 14권은 나왔어? 15권 나오기 전에 나타날게. 기다려. 희도야.” 눈물을 뚝 떨어뜨리는 나희도는 백이진이 그랬던 것처럼 동전을 넣어가며 반복해서 그 메시지를 듣는다. 

 

마치 그대로 그리면 순정만화가 될 것 같은 장면들의 연속.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보면 느끼게 되는 설렘과 아픔은 그래서 독특한 질감을 갖는다. 어쩌면 너무나 무거울 수 있는 현실의 아픔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지만,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질식되지 않는 청춘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 아픔은 ‘시대’가 만든 것이지만, 이 청춘들은 그 시대에 무너지기보다는 버텨내고 넘어서려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은, 그저 두 사람 간의 매력에 이끌리는 질척함보다는 풋풋함이 느껴지는 적당한 거리를 보여준다. 사랑이 맞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응원 같다. 서로의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 한 사람이 그 응원을 받고 일어서면, 이번에는 일어선 그가 다른 사람을 응원한다. 응원과 지지가 그 어떤 애정보다 더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 수습기자가 된 백이진과 국가대표가 된 나희도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에도 결코 풋풋함을 잃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순정만화들이 흔히 그려내는 판타지는 대부분 이 남녀 관계의 적당한 거리에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사랑의 풍경이 이토록 초록빛일 수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순정만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풋풋함과 순수함 그리고 설렘 같은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김태리와 남주혁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흔히들 ‘만찢남’, ‘만찢녀’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막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장면들을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김태리와 남주혁이 환하게 웃는 장면이나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떠오르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실로 이들이어서 가능한 장면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사진:tvN)

‘소년심판’, 분노하다 아파하다 먹먹해지는 웰메이드의 탄생

소년심판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돼. 늘 찝찝하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건 아마도 <소년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다룰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제 겨우 13세의 나이에 8세의 초등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했다고 경찰서 앞에 나타나 흉기로 썼다는 피 묻은 도끼를 꺼내 보이며 자수를 하는 <소년심판>의 첫 번째 사건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이런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걸 소년 사건이라고 치부해 소년법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해도 될 일일까. 그렇다고 어린 소년을 교화가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어른들과 똑같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건 괜찮은 일일까. 

 

사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년 사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소년심판>은 불편한 사건들을 다뤄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지만, 그걸 단지 심판하고 단죄하는 단순한 방식의 사이다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또 그렇다고 답답한 고구마 현실만을 꺼내놓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멀리 놔두고 있어서 막연히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 문제를 좀 더 가깝게 보게 해주고 거기서 이 심은석이라는 판사의 행보를 통해 어떤 대안들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게다가 이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들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판결의 대상이 소년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판결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딘가 상처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결코 웃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판사. 그가 바로 심은석이다. 

 

최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촉법소년’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을 오히려 이용하는 잔인한 소년범죄를 자극적으로 끄집어내는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년심판>은 그보다 더 깊숙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해당 판사들의 고민이 숙고되어 있고, 이를 촘촘히 취재해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잘 녹여내려는 작가의 고민도 느껴진다. 

 

소재가 주는 불편한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있는 드라마다. 그 몰입감은 작가가 이 진지한 문제를 가져오면서도, 매력적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가능해진 일이다. 심은석 판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법한 존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몰입해 분노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퍼하다가 때론 먹먹해지는 그 감정들을 가이드해주는 장본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부장 앞에서도 결코 굽히는 일이 없는 이 심은석 판사의 냉정하고 대쪽같은 모습은, 그와 함께 사건에 뛰어드는 너무나 따뜻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차태주 판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논쟁적인 이야기에 균형감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에피소드도 시작에는 강력한 살인사건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소년 범죄가 벌어지게 되는 이유로서의 가정폭력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이런 소년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사회의 안전망으로서의 보호센터가 가진 현실적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즉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소년범죄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며 심층적인 사안들로 에피소드들이 전개됨으로써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4회와 5회에 걸쳐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거기서 센터장이 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이런 깊이 있는 접근을 잘 보여준 사례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 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사실 대부분 비행의 시작점은 가정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소년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말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여다보면 거기 드리워져 있는 부모들의 무관심과 심지어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할 문제들도 존재한다. 심은석 판사는 사실상 국가의 지원에 의해 된다고는 해도 결국 어떤 개인의 희생이 담보된 청소년 회복 센터 같은 시설들에 소년들이 맡겨지는 것의 실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걸 바꿔 말하면 국가가 해야 될 일을 오직 개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는 법원도 유죄야.”

 

한 번 보면 밤 새워 몰아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깊은 취재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이 더해진 극적 구성. <소년심판>은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경험을 통해 ‘소년범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작품도 좋지만 김혜수의 연기는 역시 넘사벽이다. 그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긴장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넷플릭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