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격>, 위기를 기회로 삼다

 

“이경규! 한물갔어... 라고 김준호가 말하는 것 들었다!”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 나온 용감한 녀석들의 박성광은 대놓고 이경규를 디스하는 것으로 용감함을 보여줬다. 그들은 기존 멤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간의 문제들을 꼬집었다. 용감한 녀석들의 양선일은 윤형빈을 “무존재감 1위”라고 했고, 신보라는 김태원보다 “박칼린 포에버”를 외쳤다. 정태호는 김국진에게 “<라디오 스타>와 <남격> 중 어느 프로가 더 중요하냐”는 곤란한 질문을 던졌고, 이윤석은 해도 방송에 안 나간다며 아예 아이템을 짜오지도 않는 용감함(?)을 보여줬다.

 

'남자의 자격2'(사진출처:KBS)

<남격>이 시즌2로 재시작을 알리며 한 작업은 시즌1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폭로하는 것이었다. 아예 미션을 ‘남자,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로 세워두고 그간 용기가 없어서 못했던 말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시간으로 <남격>은 시즌2를 열었다. 이윤석은 기다렸다는 듯 담아 뒀던 얘기를 쏟아냈다. “이경규. 재미없는 말 하지마. 몸으로 웃기려고 하지마. 언제 가냐는 말 하지마. 너 강의 하지마. 너 결혼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말래. 회식할 땐 하고 싶은 대로 다해. 촬영할 땐 하지 마. 제발 하지 말라는 말 좀 하지마.” 이경규가 “미쳤다”며 정색을 하고 나서자, 이윤석은 “나도 이제 절벽”이라며 “나이 50인데 지나치게 혈기가 왕성”한 이경규에게 “제발. 담배를 다시 피워.”라며 독설을 날렸다.

 

비판에는 제작진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새롭게 시즌2를 만들면서 캐스팅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잡음에 대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윤형빈은 정희섭 PD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정희섭 PD! 윤형빈 퇴출. 다시 기사 났어. 잔류 가능성. 다시 기사 났어. 검토 중, 다시 기사 났어. 긍정적. 다시 기사 났어. 잔류 왜? 기사 나는 동안 나 가만있었어. 내가 당신 장난감인가! 내 신변에 뭔일 생기면 그거 다 정희섭 PD 탓인 줄 알아.” 그간 점잖은 모습으로 일관하던 김국진도 “첫 아이템이 디스”라며 “그런데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자기비판의 시간 속에서 이경규는 자신이 “제일 먼저 반성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윤형빈은 이제 “물고 뜯고 봐주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고, 그런 그에게 새 멤버로 투입된 뉴비덩(새로운 비주얼 덩어리) 주상욱은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지. 왜 이런 계기를 통해서만 그러느냐.”며 “앞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경규는 마지막으로 “날로 먹는 거 안 하겠다. 뚜껑 없는 곳에서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남격>의 쇄신을 다짐했다.

 

주상욱의 말처럼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남격>은 좋은 기획과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인 체계에 가로막혀 몇몇은 병풍이 되어버렸고 몇몇은 날로 먹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땀이 보이지 않고 말만 들리니 진정성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귀여운 중년들이 노회한 중년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남격>의 매력은 사라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남격>의 시즌2 선언은 여타의 시즌2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그저 몇몇 멤버들이 나가게 됐거나 제작진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시즌2가 아니라 시즌1의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한 구조조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롭게 투입된 김준호와 주상욱은 끊임없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준호는 특유의 개그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고, 주상욱은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젊은 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나선 것. 특히 이경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간 <남격>을 어둡게 만들었던 수직적인 분위기를 깨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론 입으로 한 다짐 몇 마디로 <남격>이 보여준 그간의 많은 문제점들이 단번에 일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다짐을 매번 되새기면서 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첫 아이템으로 택한 ‘청춘여행’은 적절하다 여겨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만 가는 이 대장정은 무려 스물 한 번이나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18시간을 달려야 하는 고행. 그 노력의 땀이 진심을 보여주길.

 

무엇보다 <남격>이 살아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용감한 녀석들이 출연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용감한’ 모습들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윤석은 자신이 잘못 보좌해 이경규가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규를 살리는 길은 그를 형님으로 세우고 깎듯이 대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했을 때 이경규도 자신도 살아날 수 있고, 그것이 또 <남격>을 살릴 수 있다. <남격> 시즌2의 성패는 바로 이 수평적인 분위기와 거기서 발생하는 진정성 있는 미션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용감한 녀석들의 노래처럼, 한숨대신 함성으로, 걱정대신 열정으로, 포기대신 죽기 살기로 달리는 새로운 <남격>을 기대한다.

국카스텐과 소향,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나

 

역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가수였다.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가 초반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수들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롭게 투입되었던 백두산, 박미경, 이은미, 정인, 이수영, 박상민은 이미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가수들이다. 백두산의 김도균은 <탑밴드>의 심사위원이고 유현상은 각종 예능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이은미는 <위대한 탄생2>의 멘토였고, 이수영과 박상민, 박미경 역시 그다지 새롭다고는 할 수 없는 기성가수들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정인이 그간 방송에 많이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2'(사진출처:MBC)

여기에 시즌1에서 아쉬웠던 가수들이 합류했다. 김건모, 김연우, 이영현, 박완규, 정엽, JK김동욱이 그들이다. 물론 이들의 합류는 시즌1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나가수2>의 가수들이 변화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나가수>라는 무대가 가진 특성 중 하나는 그간 평가절하 되거나 방송이 조명하지 않았던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의 재조명에 있다. 그런데 이미 알려진 가수들이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 감흥이 반감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기성가수들이 벌이는 듯한 대결에 <나가수>의 팬들이 고개를 돌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재발견이 핵심인 <나가수>에서 이미 알려진 가수들은 제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다시 발견되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확인’이었으니까.

 

기성가수들을 세운 후, <나가수2>가 중점을 들였던 것은 형식적인 변화다. 즉 생방송을 시도한다거나, 청중평가단과 재택평가단이 함께 하는 투표 방식, 연말 ‘올해의 가수전’을 향해 매달 ‘그달의 가수’를 뽑는 방식. 하지만 이 형식 실험들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특히 생방송은 가수들의 음악적인 기량까지 제대로 보일 수 없는 장애로 등장하면서 결국 녹화방송으로 전환되었고, 문자투표도 폐지되었다. 올해의 가수전을 향해 그 달의 가수를 ‘탈락’시키는 방식에서도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은 <나가수2>의 가장 큰 틀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나가수2>가 이처럼 형식에 몰두하게 된 것은 시즌1에서의 수많은 논란과 잡음 때문이었다. 이른바 ‘재도전 논란’은 경연 형식의 공정성에 대한 대중들의 마음을 얘기해주었고, ‘막귀 논란’ 역시 투표 시스템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드러내주었다. 이밖에 스포일러의 문제도 골칫거리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논란은 그 무대에 서는 가수에 대한 ‘캐스팅 논란’이었다. 특히 옥주현과 적우에 대한 캐스팅 논란은 그 논란 자체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었는가를 떠나서 그 무대에 어떤 가수가 서느냐에 대한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나가수2>가 형식에 몰두하면서 그다지 새롭게 여겨지지 않는 기성가수들을 무대에 세운 방식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결국 <나가수>라는 무대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무대를 통해 놀라운 가수가 재발견되는 그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잦은 형식 변화가 가수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가수들이 열심히 준비해온 무대가 그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임재범처럼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지만 방송에 거의 나오지 않았던 인물을 찾기 힘들었으며, 그저 발라드만 부르는 것으로 알았지만 사실은 엄청난 끼를 숨기고 있었던 이소라 같은 가수가 안보였던 게 문제였다. 박정현이나 김범수 같은 얼굴 없던 가수들이 얼굴을 찾는 드라마틱한 무대가 없었던 것.

 

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초반 가수들의 세팅이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교체 선수들(?)이 선전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카스텐과 소향이다. 이들이 첫 무대에 올라 모두 기라성 같은 기성가수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대중들은 <나가수>라는 무대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꿈꾸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인디음악이 국카스텐에 의해 수면 위로 올라왔고, CCM의 디바로서 그 가스펠적인 감성을 대중적으로 선보이는 소향이 부각되었다. 지금껏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무대들이 국카스텐과 소향에 의해 보여졌던 것. 그것도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과의 조합을 통해 이루어진 이들의 음악은 그 반향도 클 수밖에 없었다. 국카스텐이 첫 무대에 불러 1위를 차지했던 ‘한잔의 추억’은 중장년층들에게는 이런 멋진 곡이 예전에도 있었다는 자부심을 부여했고, 젊은 층들에게는 이 곡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부르는 젊은 밴드가 있다는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이 낯설음과 익숙함, 중장년세대와 젊은 세대의 접점이 바로 <나가수>의 매력인 셈이다. 이것은 소향이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의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결국 음악이고 결국 가수의 재발견이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이 절정의 가수들을 경연이라는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명분이다. 연말까지 계속 경연을 이어가야 하는 <나가수2>는 아직 보여줘야 할 무대가 많이 남았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캐스팅에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간 방송이 보여주지 못했던 가수들을 장르 불문하고 이 무대를 통해 대중들과 공감하게 할 때 <나가수2>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아직 반등의 기회는 남았다.

김병만 펄펄 나는데, 이수근은 왜?

 

김병만과 이수근은 절친 중의 절친이다. <개그콘서트>를 통해 데뷔하던 시절, 두 사람은 같이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냈다. 그러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이수근이었다. ‘고음불가’, ‘키컸으면’ 같은 코너가 그를 주목받게 했고 <1박2일>에 투입되면서 그의 주가는 점점 올라갔다. 물론 1년 가까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그는 차츰 캐릭터를 만들어가더니 결국 ‘앞잡이’로 우뚝 섰다. 그 후 이수근은 <1박2일>에서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애드립과 상황극으로 절정의 개그감을 선보였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승승장구>, <청춘불패2>는 물론이고 케이블 채널과 종편에까지 꽤 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이수근은 그러나 최근 들어 주춤하는 기색이다. 그 발원지는 그를 정상에 세워주었던 <1박2일>이다. 시즌2로 넘어오면서 <1박2일>은 주말 최강자라는 자리를 <런닝맨>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시즌2로 대거 멤버들이 교체되면서 아직까지 제대로 캐릭터들이 새롭게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수근은 확실한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었지만, 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는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근이 가장 큰 빛을 보았던 시기는 강호동과 함께 “코미디언 아이가?”를 외칠 때였다. 이수근은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 코미디에서 커왔기 때문에 혼자 치고 나가는 개그보다는 누군가와의 합을 이룰 때 더 힘을 발휘한다. 그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던 강호동이 빠져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되면서 이수근은 경험자로서 <1박2일>의 고참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전면에서 이끌어야 하는 그 역할이 이수근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치고 나와야 의외의 웃음의 효과가 크기 마련인 그의 개그가 약화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반면 김병만은 이수근보다는 조금 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김병만은 이수근과 달리 말로 웃음을 주는 그런 개그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개그콘서트>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 웃기는 방식. 슬랩스틱이 기본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어떤 것. 김병만은 그렇게 <달인>을 만들었고 엄청난 노력으로 진짜 달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끝냈지만 여전히 달인이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피겨 스케이팅의 달인이 되었고 또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글의 달인이 되었다. 김병만은 결국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처럼 김병만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강한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고, 그는 결국 이 도전들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수근과 김병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지점을 가진 예능의 떠오르는 신예들이지만, 최근의 희비쌍곡선은 그 서로 다른 행보에서 비롯되었다. 이수근은 기존 프로그램 형식에 자신을 적응시킨 것이지만(<1박2일>이나 <승승장구> 같은), 김병만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결국 이수근은 그 기존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2인자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김병만은 자신만의 종족(병만족)을 만드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물론 지금도 JTBC <상류사회>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툰드라에 다녀온 김병만은 이수근에게 툰드라 의상을 택배로 보내 이수근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김병만이 펄펄 날고 있고 이수근이 주춤하게 된 것은 그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최근 달라져버린 예능환경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한 것도 <1박2일>이 시즌2로 넘어오면서 출연자들이 바뀌어버린 것도 이수근에게는 악재가 되었다.

 

반면 자신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 <정글의 법칙>을 하게 된 건 김병만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는 <개그콘서트>에서 무대에 갇혀 있던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이제 세상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의 성공은 김병만에게 또 다른 분야에서의 달인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절친으로서 이수근이 악재를 딛고 다시 제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김병만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상생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흥을 포기한 삶에 발랄한 일격, <나 공무원>

 

어쩌다 공무원이 로망인 시대가 됐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란 모두를 통칭하는 얘기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공무원이라는 이미지, 즉 ‘복지부동’으로 통하는 그 이미지로서의 공무원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이 감흥 없는 삶(심지어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고 말하는)에 발랄한 일격을 날리는 영화다.

 

'나는 공무원이다'(사진출처:마포필름)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는 나이 38세에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주임이다. 이 구청에서 그는 내용보다는 파워포인트 양식을 잘 다루는 것으로 자칭 좀 잘 나가는 공무원이다. 연봉 3천5백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임금 체불 없고 정년 보장되고, 미래를 위해 집도 하나 갖고 있는데다, 퇴근 하면 자신을 반겨주는 10년째 TV친구 유재석, 경규형이 있는 그는 자신의 삶에 200% 만족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삶으로 여겨지는가? 글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민원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오로지 평정심만이 자신의 위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살던 그의 삶에 어느 날 인디밴드 하나가 불쑥 침입한다. 그리고 밤마다 쿵쾅대는 소음에 사람이 “전두환이나 세계금융위기 이런 거시적인 걸로만 시달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던 그는 차츰 잊고 있던 심장박동소리를 듣게 된다. 평정심의 대가에게 흥분은 위험하고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공무원이 로망이 되고 흥분이 위험인 시대. 어딘지 불온한 이 시대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아마도 저 IMF라는 그늘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사자 직업이나 혹은 사업가, 심지어 예술가를 꿈꾸던 이들은 이 생존이 불안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꿈이 아닌 현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생 직업으로서의 교사나 공무원을 꿈꾸게 된 것. 물론 교사나 공무원이란 직업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직업 자체의 매력이 아니라 그 직업이 갖는 안정성을 좇는 세태가 문제라는 것.

 

사실 이렇게 공무원이 로망이 되어버린 힘겨운 현실은 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서민들에게 쏟아진 날벼락이라는 점에서 공분을 자아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노’보다는 ‘흥분’이라는 문제를 선택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본래 영어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Dangerously Excited>, 즉 <위험한 흥분>이었다. 왜 분노가 아니라 흥분일까.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보다 날카로운 세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본래 흥분이란 영어 표현으로 ‘Excited’라 표현하듯 그다지 나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흥분이라는 단어는 마치 부정적인 감정 상태인 것처럼 해석되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흔히들 “흥분하지 마”라고 얘기할 때 흥분이란 어딘지 일을 그르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왜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흥분이라는 상태가 부정적일까. 그 안에는 사회적으로 암묵된 억압의 그림자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영화는 한대희가 민원인들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껏 흥분해 있는 민원인들의 항변을 한대희는 마치 그것을 아무런 항변 없이 받아주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양 넙죽넙죽 받아낸다. 하지만 한대희라는 공무원 역시 사람일진대 어찌 흥분하지 않을까. 다만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 억눌려진 감정은 어느 날 한계수위를 넘으면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대희가 선택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흥분이다. 자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는 것. 이 영화가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무거운 현실을 등에 짊어지고 있음에도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흥분이라는 주제를 툭 던져놓는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를 얘기하면서 윤제문이라는 배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윤제문이라는 배우가 그간 해온 연기들의 맥락 속에 이 흥분이라는 주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그는 어딘지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그 안에 숨겨두고 있는 그런 역할을 주로 해왔다.

 

최근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그 감정이 한없이 숨겨졌다 분노로 표출되는 인물이다. <더킹 투 하츠>의 김봉구 역시 이 분노의 감정을 한없이 억누르고 풀어내는 역할이다. 그런 그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는 귀요미 연기 변신이 새로우면서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억눌려진 감정이 분노에서 흥분으로 바뀐 그 역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는 온전히 윤제문이라는 배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안에는 포복절도의 코미디와 부글부글 끓는 듯한 억눌린 감정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풀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해소의 과정들이 모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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