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진>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

 

“그러다가 이 사람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오. 그 억울한 죽음을 진의원이 책임질 수 있소?” 성난 민중들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은 진주의 탐관오리 현감을 살리려는 진혁(송승헌)에게 영래(박민영)는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의원은 본디 사람을 가려가며 살리지 않는다”며 진혁은 진주 현감을 살려내고, 영래 역시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바로 진혁이 살린 진주 현감이 영래의 오빠인 영휘(진이한)를 죽게 만든다.

 

'닥터 진'(사진출처:MBC)

그저 작은 시퀀스에 불과한 이야기 같지만 이 속에는 <닥터 진>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담겨져 있다. 의사라면 마땅히 환자가 누구라도 일단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본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히틀러라면? 그래서 죽을 인물이 살아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면? 이것은 생명에 대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닥터 진>은 현대에서 조선으로 던져진 천재 신경외과의 진혁을 통해 운명(역사)과 생명 사이에 놓여진 딜레마를 다룬다.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장안 최고의 기생 춘홍(이소연)은 진혁이 조선으로 와 행한 기적 같은 의술이 모든 것(아마도 운명 혹은 역사)을 어그러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가 안동김씨 최고의 실세로 임금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좌상 김병희(김응수)를 살린 일은, 역사에 기록될 대원군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죽음의 위기로 몰리는 이유로 작용한다. 역시 죽을 뻔한 영휘를 살려놓은 일 또한 진주 민란을 더욱 조직적으로 만들게 하고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된다.

 

진혁은 그저 의사로서 눈앞에 상처입고 죽어가는 모든 이들을 환자로서 바라보았던 것뿐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역사는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죽어야할 운명에 있는 이들이 살아나자 그들은 멀쩡해야 할 이들을 죽음에 몰아넣는다. 운명의 힘과 생명의 의지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 이것은 단지 의사인 진혁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다. 결국 실패로 끝난 진주민란의 역사를 알고 있는 진혁이 그 민초들을 이끌고 있는 영휘에게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하자, 영휘는 진혁이 해오던 말을 되돌려준다. “진의원은 병자가 죽을 것이 뻔하다고 손을 놓으시오? 그러니 내게도 저들을 모른 척 하라 하지 마시오.”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진혁에게 진주민란 같은 사건의 결과는 운명처럼 정해진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불나방처럼 역사의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영휘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진혁은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이 한 죽을 생명을 살려 운명을 바꾸게 될 때 역사도 엄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진혁이 처한 딜레마가 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조선말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 역사를 바꾸는 것이 두렵다.

 

게다가 그는 의사가 아닌가. 의사라는 직업으로 돌아가면 그는 역사와 상관없이 모두를 환자로 바라보며 살려야 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 부딪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죽어야 할 인물을 살리면 그로 인해 역사가 바뀐다. <닥터 진>의 묘미는 바로 이 의학드라마와 사극을 타임리프라는 장치로 연결하면서 생겨나는 아이러니로 인해 진지해진다. 역사를 살릴 것인가, 생명을 살릴 것인가.

 

역사와 의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페스트 같은 질병 하나는 중세의 역사를 바꾸었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의 개발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역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는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위협받는 질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때마다 어떤 의사의 손길 하나는 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닥터 진>이 그저 단순한 타임리프를 소재로 흥미로운 장면들(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뇌수술을 하는 것 같은)만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이런 역사와 생명에 대한 인식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닥터 진>은 장르적으로도 사극과 의학드라마가 가진 욕망의 부딪침을 잘 살려내고 있다. 사극이란 본디 갈등의 결과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다. 그래서 이 현대극보다 극성이 강한 장르는 어찌 보면 죽음이라는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학드라마는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것이 그 욕망이다. 따라서 이 두 장르의 욕망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기묘한 풍경은 <닥터 진>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닥터 진>은 사극인가 현대극인가. 이런 질문은 이제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닌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극이 반드시 역사의 틀 안에 머물던 과거는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사극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그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닥터 진>은 그 어떤 사극보다 진지한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와 생명의 의지 사이의 대결. 그저 박제처럼 정해져 있다 여겨졌던 역사가 사실은 무수한 생명들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결과물이라는 인식만으로도 <닥터 진>의 사극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진다.

<1박>에서 <나가수>까지, 시즌2 무엇이 문제일까

 

<1박2일>은 주말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해오다 시즌2를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한때 가요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던 <나는 가수다>도 시즌2에서는 점점 잊혀져가는 예능이 되어가고 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농촌과 아이돌을 엮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즌2에서는 그다지 존재감 없는 예능이 되었다. <탑밴드> 역시 시즌1에서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시즌2는 시청률도 더 떨어졌고 평가도 좋지 않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시즌2를 선언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1박2일'(사진출처:KBS)

본래 시즌2는 시즌1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즌2가 기획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즌1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시즌2는 보통 신생예능보다 훨씬 더 높은 기대치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다지 별로 다르지 않은 시즌2를 접하게 되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게 된다. 또 그렇다고 너무 색다른 시즌2를 했다가는 시즌1과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시즌2는 그 변화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1박2일> 시즌2의 경우 시즌1과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형식을 반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반면 <나는 가수다>는 시즌2에서 생방송 경연이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시즌1이 갖고 있던 음악의 질까지 생방송이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가수다>는 생방송을 접고 시즌1으로 회귀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즌1과 차별화되지 않는 현재 방식의 회귀는 대중들의 관심 자체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청춘불패>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변하고,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은 시즌2로 인해 추락을 경험했다. 즉 프로그램의 의미인 시골이라는 공간을 게임의 장으로 변질시킨 것이 패인이 되었다. <탑밴드>는 시청률을 올리겠다며 ‘악마의 편집’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밴드 음악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시즌2를 하면서 대거 바뀌게 되는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 명 정도가 바뀌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프로그램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바뀌면 지금껏 만들어져 온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가 전부 바뀌게 된다. 캐릭터가 관계에 의지한다고 볼 때, 완전히 달라진 관계는 기존 자리 잡았던 캐릭터마저 흔들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1박2일>의 이수근과 김종민은 대표적인 사례다. 강호동도 없고 이승기도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경험이 많은 이수근은 <1박2일>을 전면에서 끌고 가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의 본래 역할은 프로그램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의외의 웃음을 주는 것이지 진행 자체는 아니다. 이것은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김종민은 누군가와의 관계로 섰을 때 큰 웃음을 주지만, 단독으로 섰을 때는 그저 불안한 캐릭터가 된다. 김종민이 ‘김선배’라는 캐릭터로 자리하는 <1박2일>은 그래서 때론 안정감이 없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한편 <나는 가수다>나 <톱밴드>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게 사실상 출연자들이다. 누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시즌2로서의 차별성이 그 자체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2>는 시즌1과의 연계를 위해서 기존 가수들 중 6명을 시즌2에 합류시켰고 여기에 새 가수들 6명을 더해 12명이 경연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캐스팅이 시즌2만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카스텐의 등장과 반향은 거꾸로 이 시즌2의 초기 캐스팅의 문제를 드러낸다. 대중들은 좀 더 파격적인 가수들의 등장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탑밴드>는 출연 밴드들만 보면 이게 오디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라인업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유명 밴드들의 출연은 효과적이지 못한 방송으로 인해 오히려 주목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많은 유명 밴드들 중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확실히 생긴 밴드는 장미여관 정도. 피아나 내 귀에 도청장치, 데이브레이크, 몽니, 트랜스픽션... 그 어떤 밴드 하나라도 거의 한 회분의 분량을 만들만큼의 스토리와 음악을 가진 밴드들이지만 결국 오디션이라는 한 무대에 변별력 없이 서게 됨으로써 안타깝게도 하향 평준화된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시즌2가 전부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불후의 명곡2>나 <정글의 법칙2>, 그리고 최근 19금 예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SNL코리아2> 같은 경우는 시즌2의 성공사례다. 하지만 여기서 <정글의 법칙2>나 <불후의 명곡2>는 예외적인 경우다. <정글의 법칙2>는 형식상 시즌제를 해야만 가능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타의 시즌 선택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불후의 명곡2> 역시 본래 계획에 없던 것이 오디션 열풍으로 생겨난 것으로서 시즌2라 얘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시즌1과의 연관성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의 신생 예능의 인상이 짙다.

 

그런 점에서 보면 <SNL코리아2>의 성공은 시즌제의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시즌1이 보여줬던 신랄한 시사 정치 풍자 코미디에 시즌2는 19금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얹었다. 시사 정치 풍자의 강도도 시즌1보다 훨씬 더 강해져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는 상태. 무엇보다 <SNL>이 본래 정치와 섹스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시즌2는 <SNL코리아>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확실한 차별성이 <SNL코리아2>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SNL코리아2>의 성공은 케이블 채널이라는 특정 성향을 감안해보면 일반적인 시즌2의 성공사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즌2는 <1박2일>이나 <나는 가수다> 같은 주말예능의 강자들조차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시즌제에 대한 인식이 시청자들이나 제작진들 모두에게 낯설다는 것도 한 이유고, 시즌2 선언이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이 어려워지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차별성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시즌2는 그래도 계속 생겨난다. <남자의 자격>이 사실상 시즌2 성격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로그램의 힘이 빠지자 새로운 멤버를 넣어 새로운 동력을 찾아보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시즌2 기획은 안타깝게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 수많은 시즌2에 무릎 꿇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 많은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정글2>, 그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결합

 

<정글의 법칙2>가 보여주는 자연은 이중적이다. 한없이 맑은 하늘과 점점이 떠다니는 구름,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 모래사장, 신비롭게까지 여겨지는 블루 톤의 호수(블루홀)나 태곳적 신비를 머금은 듯한 동굴까지. 막연히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판타지가 된다. 저런 곳이라면 한번쯤 고생이라도 각오하고 싶은 그런 판타지.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판타지 너머 제작 현장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살 떨리고 멘탈 붕괴가 일어날 정도로 힘겨운 야생 그대로의 리얼리티가 있다. 어떤 이는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고, 그저 간단하게 보이는 강물 건너기조차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비를 머금은 진창은 그잖아도 천 근 만 근 같은 발목을 척척 감아쥐고,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는 위험 앞에 몸은 극도로 긴장하게 된다. 당장 배고픔과 추위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끈적거림 속에서 판타지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즉 TV 화면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그만한 거리가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심지어 판타지를 느끼는 그 장면들 속에서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은 엄청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글의 법칙> 시즌1과 시즌2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이 대비효과가 훨씬 강해져 있다는 점이다. 시즌1이 적응단계였다면 아마도 시즌2는 프로그램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적응기를 지나 진화단계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정글로드에서 보석처럼 발견한 블루홀마저 신비의 말말부족을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건너야 할 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넝쿨을 이어 강 양쪽에 묶고 한 사람씩 건너는 장면은 말 그대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2>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망중한(忙中閑). 그 고달픈 여정 위에서 잠시 나마 어린아이들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타잔처럼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거나, 넝쿨을 잡고 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별 것도 아닌 듯한 장면은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도시를 정글로 표현한 많은 이들이 그 생존경쟁의 장에서 탈출을 권하지 않았던가. 그 살벌한 공간을 잠시 떠나 취하는 여유는 그래서 모든 도시인들의 판타지가 되었다. 자신이 버는 월급 만큼의 돈을 들여서라도 단 며칠의 휴가를 계획하는 건 그 짧은 나날이 길디 긴 정글에서의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2>의 이지원 PD는 정글이 주는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그 곳이 주는 완벽한 편안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라면 잠들기 전까지 별을 세다가 잘 수 있겠어요? 수시로 전화벨이 울리고 내일 아침이면 해야 할 일들에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잠도 잘 못 자는게 현대인들의 생활이잖아요. 그런데 <정글>에 가면 달라져요. 오로지 생각이 먹을 것과 잠잘 것 같은 원초적인 것들에만 머물러 있죠. 몸은 조금 피곤해도 머리는 한없이 맑아집니다."

 

바로 이 점이 <정글의 법칙2>에 대해 우리 같은 시청자들이 느끼는 양가감정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혹독한 정글이 주는 현실감에 몸서리치다가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는 판타지.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존재들은 바로 출연자들이다. 만일 정글이 주는 혹독함에 매몰되어버리면 그것이 살풍경한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혹독함 속에서도 늘 여유 있고 심지어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김병만을 위시한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도시의 정글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잠시 동안이지만 숨 쉴 수 있는 여유로서 <정글의 법칙2>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격>, 멤버교체보다 중요한 것

 

<남자의 자격>이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기존 멤버였던 전현무, 윤형빈, 양준혁이 하차하고 새 멤버로 차인표, 김준현, 심태윤이 합류할 예정이다. 기존 멤버들 중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은 그대로 남기로 했다. PD도 교체됐다. 조성숙PD 대신 <해피투게더> 등을 연출했던 정희섭PD가 수장을 맡았다. 벌써부터 새 멤버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로써 <남자의 자격>은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변화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신원호PD가 프로그램을 이끌었을 때는 확실히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 분명했다. 중년 아저씨들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으로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역력했고, 도전 과제 자체도 ‘전투기 조종’이나 ‘지리산 종주’, ‘마라톤’ 같은 좀 더 땀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제작에 있어서도 확실히 달랐다. 소재 기획에서만 봐도 ‘하모니’나 ‘자격증’ 같은 굵직한 장기 아이템들이 시도되었고,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촘촘히 채워 넣음으로써 중년의 도전 그 자체가 전하는 의미를 분명히 해주었다. <남자의 자격>은 그간 어딘지 소통되지 못하는 듯 여겨졌던 중년 아저씨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신원호PD가 퇴사하고 조성숙PD 체제로 넘어오면서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귀농’ 미션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끝나버렸고, 대박 소재였던 ‘하모니’의 후속편인 ‘청춘합창단’은 지나치게 의도 과잉으로 편집되면서 전편만큼의 성과를 갖지 못했다. 특히 합창단의 어르신들을 주목한다는 이유로 멤버들이 실종된 것은 큰 문제로 지목됐다. 한껏 기대를 갖게 했던 ‘탭댄스’ 미션도 대거 편집되어 수개월을 준비해온 멤버들의 과정이 생략되는 파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즉 소재가 나쁘지 않았으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멤버들의 열의도 점점 식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의욕이 상실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한 회 한 회를 때우는 인상이 짙어졌다. 변화는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좋은 아이템이 이대로는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멤버 교체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먼저 중요한 것은 새롭게 재정비된 제작진들의 마인드다. 전체적으로 멤버들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제작진이 이들을 장악하고 콘트롤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새 멤버가 수혈된다고 해도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경규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사실상 이경규 없는 <남자의 자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경규라는 대선배에 휘둘리는 <남자의 자격>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멤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선후배 관계의 수직구조가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게 되면 <남자의 자격>의 핵심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저씨들의 권위 깨기 같은 수평적 시선이 흐트러지게 된다. <남자의 자격>이 작금의 위기에 봉착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이 수평적 시선이 깨지면서 어딘지 선배의 후배 가르치는 분위기가 프로그램의 뉘앙스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젊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불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의 새 멤버들을 갖고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에게 있다. 이들이 공고하게 갖고 있는 수직적인 관계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 어떤 새 멤버가 들어온다고 해도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군림하려 하려는 이경규나 그것을 잘 받쳐주는 이윤석, 그리고 2인자로서 안주하고 있는 김국진과 김태원이 갖고 있는 안정적인 틀은 그래서 <남자의 자격>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결국 열쇠는 정희섭PD에게 달려있다. 얼마나 멤버들의 진심을 잘 끌어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중년을 다루는 예능에서 더 중요한 건 그들과 적당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이다. 그것이 없다면 <남자의 자격>은 시즌을 거듭해도 달라지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알다시피 시즌을 바꾼 후에 달라지지 않는 예능이란 살아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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