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흥을 포기한 삶에 발랄한 일격, <나 공무원>

 

어쩌다 공무원이 로망인 시대가 됐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란 모두를 통칭하는 얘기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공무원이라는 이미지, 즉 ‘복지부동’으로 통하는 그 이미지로서의 공무원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이 감흥 없는 삶(심지어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고 말하는)에 발랄한 일격을 날리는 영화다.

 

'나는 공무원이다'(사진출처:마포필름)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는 나이 38세에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주임이다. 이 구청에서 그는 내용보다는 파워포인트 양식을 잘 다루는 것으로 자칭 좀 잘 나가는 공무원이다. 연봉 3천5백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임금 체불 없고 정년 보장되고, 미래를 위해 집도 하나 갖고 있는데다, 퇴근 하면 자신을 반겨주는 10년째 TV친구 유재석, 경규형이 있는 그는 자신의 삶에 200% 만족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삶으로 여겨지는가? 글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민원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오로지 평정심만이 자신의 위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살던 그의 삶에 어느 날 인디밴드 하나가 불쑥 침입한다. 그리고 밤마다 쿵쾅대는 소음에 사람이 “전두환이나 세계금융위기 이런 거시적인 걸로만 시달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던 그는 차츰 잊고 있던 심장박동소리를 듣게 된다. 평정심의 대가에게 흥분은 위험하고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공무원이 로망이 되고 흥분이 위험인 시대. 어딘지 불온한 이 시대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아마도 저 IMF라는 그늘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사자 직업이나 혹은 사업가, 심지어 예술가를 꿈꾸던 이들은 이 생존이 불안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꿈이 아닌 현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생 직업으로서의 교사나 공무원을 꿈꾸게 된 것. 물론 교사나 공무원이란 직업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직업 자체의 매력이 아니라 그 직업이 갖는 안정성을 좇는 세태가 문제라는 것.

 

사실 이렇게 공무원이 로망이 되어버린 힘겨운 현실은 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서민들에게 쏟아진 날벼락이라는 점에서 공분을 자아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노’보다는 ‘흥분’이라는 문제를 선택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본래 영어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Dangerously Excited>, 즉 <위험한 흥분>이었다. 왜 분노가 아니라 흥분일까.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보다 날카로운 세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본래 흥분이란 영어 표현으로 ‘Excited’라 표현하듯 그다지 나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흥분이라는 단어는 마치 부정적인 감정 상태인 것처럼 해석되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흔히들 “흥분하지 마”라고 얘기할 때 흥분이란 어딘지 일을 그르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왜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흥분이라는 상태가 부정적일까. 그 안에는 사회적으로 암묵된 억압의 그림자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영화는 한대희가 민원인들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껏 흥분해 있는 민원인들의 항변을 한대희는 마치 그것을 아무런 항변 없이 받아주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양 넙죽넙죽 받아낸다. 하지만 한대희라는 공무원 역시 사람일진대 어찌 흥분하지 않을까. 다만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 억눌려진 감정은 어느 날 한계수위를 넘으면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대희가 선택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흥분이다. 자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는 것. 이 영화가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무거운 현실을 등에 짊어지고 있음에도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흥분이라는 주제를 툭 던져놓는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를 얘기하면서 윤제문이라는 배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윤제문이라는 배우가 그간 해온 연기들의 맥락 속에 이 흥분이라는 주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그는 어딘지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그 안에 숨겨두고 있는 그런 역할을 주로 해왔다.

 

최근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그 감정이 한없이 숨겨졌다 분노로 표출되는 인물이다. <더킹 투 하츠>의 김봉구 역시 이 분노의 감정을 한없이 억누르고 풀어내는 역할이다. 그런 그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는 귀요미 연기 변신이 새로우면서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억눌려진 감정이 분노에서 흥분으로 바뀐 그 역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는 온전히 윤제문이라는 배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안에는 포복절도의 코미디와 부글부글 끓는 듯한 억눌린 감정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풀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해소의 과정들이 모두 들어 있다.

연예인 신뢰를 이용, 소비자 기만

 

지난 9일 6개 연예인 쇼핑몰(백지영과 유리, 진재영, 황혜영, 김준희, 한예인, 김용표)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태료와 더불어 시정명령을 받았다. 전자상거래법 위반행위를 했다는 것. 그들은 지각 등 근무수칙을 어긴 직원에 대해 의무적으로 소비자가 쓴 것처럼 사용 후기 5건을 올리게 했고(백지영, 유리 '아이엠유리'), 불리한 후기는 아예 게재하지 않았다고 한다(황혜영의 ‘아마이’). 이밖에도 끝난 이벤트를 계속 진행 중인 것처럼 속이는 수법을 쓰기도 했고, 추첨도 하지 않은 채 구매를 많이 한 VIP고객에게 사은품을 임의로 몰아주기도 했다.

 

'한밤의 TV연예'(사진출처:SBS)

하긴 인터넷 쇼핑몰의 이런 사기행위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아마 후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소비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뢰가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진심으로 좋은 뜻의 후기를 남겨도 이른바 ‘알바’로 오인 받을 정도니까. 그래서 연예인 쇼핑몰의 이번 사건 역시 그런 관행의 하나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가 하나 들어가 있다. 그것은 이들 연예인 쇼핑몰의 성패 자체가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쇼핑몰들은 연예인의 유명세 덕분에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적게는 연매출 10억 원에서(이것도 적은 게 아니다) 많게는 무려 2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쇼핑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연예인이 전면에 있어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란 그만큼 간편하지만 직접 손으로 만지고 입어보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그 부분을 연예인의 이미지가 채워주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건이 공개된 후 백지영은 발 빠르게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백지영은 "저를 포함한 '아이엠유리' 임직원이 인터넷 쇼핑몰 공정거래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사이트 활성화만을 염두에 두고 허위 후기를 남긴 점에 대해서는 모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공개사과에도 불구하고 대중정서는 싸늘하기만 하다.

 

대중정서가 더 싸늘해진 이유는 백지영이 그간 방송 등을 통해 늘 진솔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 신뢰에 금이 간 것이다. 아마도 좀 더 깊은 생각 없이 그저 수익성을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 뛰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알바성 후기들을 올리는 것이 어떤 짓인지도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알바성 후기의 후폭풍은 기존 인터넷 쇼핑몰의 그것과 연예인 쇼핑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들이야 그저 벌금 내고 말면 그만일 수 있지만, 연예인 쇼핑몰은 쇼핑몰의 차원을 넘어서 연예인 활동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그만한 큰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 이미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이번 연예인 쇼핑몰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이 사업을 벌일 때 잘되는 만큼 그 후폭풍도 크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얘기다.

 

물론 쇼핑몰의 이런 문제들을 오로지 연예인 몇 명에게 책임지우고 넘어가는 건 문제의 진짜 핵심을 흐릴 수 있다. 이미 인터넷 쇼핑몰 전체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불신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번 문제에서 나아가 전체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해당 연예인들 역시 이 문제를 단순히 사과하고 대충 넘길 수 있는 사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간 사랑을 받아왔던 만큼, 그 기만행위에 의해 상처 입은 대중들에게 진심어린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장르가 아닌 완성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

 

드라마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 <추적자>와 <유령> 같은 장르 드라마들의 선전이 그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물론 시청률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졌다는 점과 그것을 감안했을 때 시청률이 괜찮은 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성 면에서 단연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예감하게 한다.

 

'추적자'(사진출처:SBS)

<추적자>가 시청률 18%에 육박하고 있는 건 물론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극성 덕분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은 리얼리티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져 나오는 명대사들, 잘 구축된 캐릭터를 제 옷처럼 입고 연기하는 연기자들, 게다가 숨 쉴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잘 짜여진 연출까지 뭐하나 빼놓을 것 없는 완성도가 바로 그 높은 시청률의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적자>처럼 본격적인 추격 액션물이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추적자>의 밑바탕에 가족과 서민에 대한 대중정서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홍석(손현주)이 국민 아버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즉 <추적자>는 전형적인 추격 액션 장르를 가져왔지만 여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그저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네 정서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하지만 <유령> 같은 작품이 1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알다시피 <유령>에는 우리네 드라마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는 멜로나 가족이야기가 전무하다. 오로지 수사 장르물에 입각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재미에 집중되어 있다. 때로는 <유령>은 드라마로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촘촘히 이야기가 짜여지다 보니 잠시 집중을 하지 않게 되면 다음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TV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이런 드라마가 이렇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유령>은 본격 장르물이 갖는 이런 약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보완책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현실에서 쉽게 들어봤던 사이버 범죄들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타진요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민간인 사찰 같은 민감한 소재도 에피소드로 활용되었다. 이런 익숙한 소재들은 낯설 수 있는 드라마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 셈이다. 게다가 수사 장르물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반전 포인트들을 다양하게 가져간 점도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적자>나 <유령>을 통해 시청자들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장르에 대한 편견 없이 드라마를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의학드라마나 사극 혹은 시대극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새롭게 시작한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무신> 같은 사극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지만, <닥터 진> 같은 사극은 연일 화제가 되는 상황이 그렇다. 또 같은 멜로라도 <신사의 품격>이 선전하고 있는 반면, <빅>과 <아이두 아이두>가 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장르적인 우위를 떠나서 이제는 드라마가 갖는 완성도나 참신성 같은 것이 성패를 가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화려함은 없어도 팽팽한 대본과 연기가 뒷받침되어 성공한 <추적자>가 그렇고,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건의 얼개나 구성이 촘촘하게 잘 엮어져 있는 <유령>의 성공이 그렇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얘기다. 이제 어디선가 했던 비슷비슷한 설정을 반복하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관성적인 시청도 물론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한 드라마 시청률의 등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이 높으면 대체로 성공하는 드라마로 생각됐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가 힘이 빠진다 싶으면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반에 시청률이 잘 나왔지만 후반에 이르러 연장을 하면서 시청률이 뚝 떨어졌던 <빛과 그림자>가 단적인 사례다.

 

아마도 미드와 일드를 경험하고 열광했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 들어 TV의 주 시청층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바로 고꾸라지는 게 요즘 드라마의 운명이 되었다. 초반 기획으로만 봐서는 성공 요소가 별로 없다 여겨졌던 <추적자>의 성공이나, 아직은 조금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본격적인 장르 드라마인 <유령>의 선전은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말해주는 징후처럼 보인다.

<추적자>, 그들의 대사에 담긴 인간관

 

<추적자>를 보다 보면 고통스럽지만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공감을 접하게 된다. 이 시대 서민들의 아버지를 대변하는 백홍석(손현주)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을 갖게 되면서도, 그를 핍박하는 욕망과 권력의 화신들인 서회장(박근형)과 강동윤(김상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백홍석보다 훨씬 더 많은 서회장과 강동윤이 쏟아 낸 명대사로도 나타난다. 이 명대사들 속의 그 무엇이 우리를 통감하게 했을까.

 

'추적자"(사진출처:SBS)

“동윤아, 내가 민성이 만할 때, 명절 때마다 동네에서 소싸움을 했다 아이가. 거기서 내리 몇 년을 이긴 황소가 있었다. 글마 그게 어째 죽었는지 아나? 껄껄껄 모기한티 물리 죽었다. 지보다 두 배나 더 큰 놈들을 넙죽넙죽 넘기던 놈이 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기한테 물려죽었다 아이가?”

 

강동윤이 대선에서의 승리를 장담하자 서회장이 던지는 이 대사에는 큰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이 비유적으로 담겨있다. 하지만 이 비유 밑에 깔려있는 건 세상을 ‘싸움’으로 바라보는 서회장의 시선이다. 강동윤의 대사처럼 그들에게는 “누군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는 법”이고,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보면 깔려주는 벌레도 있기 마련”이다. 이 무한 경쟁 속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면 꿈을 반드시 이뤄야 하고, 벌레가 되지 않으려면 마차가 되어야 하는 권력욕이 탄생한다.

 

권력에 대한 강박은 세상이 승자독식의 구조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에서는 “용서도 힘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뿐”이다. 모든 것이 권력에 맞춰져 있는 그들에게는 사랑마저 정치 같은 게임이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야. 정치도 그래,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지는 거야. 상대방이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이렇게 말하는 강동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먼저 찾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은 못할 것이 없는 괴물이 되어간다. “욕 안 먹고 어떻게 이 자리에 올라왔겠노, 지원아. 사람들이 내보고 손가락질 하고 한오그룹이 악덕그룹이라고 하제? 그른데 지 아들이 한오그룹 입사하면 사방으로 자랑하고 다닌다.” 그 괴물은 자신의 행동을 인간은 본래 그런 종자라고 단정함으로써 이 분열적인 상태를 버텨나간다.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세상이 괴물이라고 말하는 것.

 

“이 나라 국민들이 동윤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오그룹 사위가 서민을 위해서 정치한다고 하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그걸 진짜 믿고 있다고 생각하나? 동윤이 공약을 한번 보래이. 집 가지고 있는 놈은 집값 올려준다 하지, 땅 있는 놈은 땅값 올리준다 카제, 월급쟁이한텐 봉급 올려준다 하제? 다 즈그들한테 이익이 되니까 지지하는 기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고 해서 지지한다고 하면 지가 부끄러운 기라. 그래서 개혁의 기수다 뭐다 해서 지지하는 기다. 국민들은 자기가 자길 속이고 있는 거다.”

 

서회장의 이 대사 속에는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희망이 없다. 이것은 서회장이 자신을 똑 닮았다고 말하는 강동윤의 인간관과도 맞닿아있다. “사람이 그렇죠. 모두들 말은 그럴듯하게 합니다.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되어서야 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30억이면 친구의 딸도 죽이고, 총리 자리 준다면 평생을 지켜 온 신념도 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들을 하지요. 난 어쩔 수 없었다고.. 사람은 똑같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많은 것들이 쉬워지죠.” 일종의 인간에 대한 포기 선언이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인간인 이상, 이러한 인간관이 분열적이고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막연하게나마 이 권력욕이 어느새 자신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뜻이 사라져버린 욕망에 대한 무한 추구. 욕망의 욕망. 서회장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옆집 딸내미가 시집을 간 후 배운 술에 비유해 이 허무한 무한 욕망의 끝을 드러낸다. “두어 달 지나니 그 딸내미는 잊어버리고 술 먹는 버릇만 남은 거다. 지금은 그 딸내미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술은 요새도 먹지 않나. 꿈이 그런 거다. 처음엔 페어한 세상을 만들겠다 뭐 하겠다 하면서 정치판에 끼어들지만 인제 너는.. 내가 잊어버린 그 딸내미 이름처럼 처음 하겠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권력을 갖겠다는 욕심만 남은기라.”

 

그들은 이미 욕망의 쟁취가 그 욕망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새 욕망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회장은 딸 지수에게 남편 강동윤을 버리지 못하자 이렇게 말한다. “지수야,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가지고 싶을 때는 진짜로 그게 좋아서 그라는 게 아이다. 내 앞에 없으니까 만지고 싶고, 주머니에 넣고 싶고, 안 그러면 죽을 것 같고 하제? 근데 막상 가지면 별것도 아이다.”

 

권력욕의 화신이 자신을 잡아먹어버린 이 괴물들은 자신 속의 수많은 얼굴들을 가면 아래 감추고 살아간다. 그 얼굴의 실체를 보게 된 서회장의 막내 딸 지원(고준희)에게 강동윤은 자신의 수많은 얼굴을 드러내고 그것이 모든 인간들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난 다정한 형부, 개혁의 기수, 가난한 집의 아들, 아내의 사고를 숨겨서라도 권력을 가지고 싶던 정치인이다. 이게 전부 나다. 사람은 앞도 있고 옆도 있고 뒤도 있는데 처제는 내 한 부분만 본거다.” 하지만 이런 분열적인 상태는 심지어 아버지가 딸을 내치는 상황마저 정당화시킨다. “누가 그카드라 시상에서 제일 위험한기 사랑에 빠진 딸이라꼬. 그 누고 자명고 찢은 공주도 나라 망하게 안했나. 내한테는 오늘부터 딸래미는 지원이 하나뿐이데이.”

 

<추적자> 속에 등장하는 이 ‘인간 포기선언’의 명대사들은 아프게도 우리를 고개 끄덕이게 한다.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어느 영화 속 명대사가 허무한 다짐처럼 여겨지는 건 우리네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권력욕에 대한 비뚤어진 행동들이 이제는 마치 모든 인간들이 본래 그렇다는 식으로 긍정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포기된 인간으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괴물이 된 그들이 내뱉는 명대사들의 깊은 통감을 지나치고 나면 우리 눈앞에 비로소 “난 수정이 아빠니까”라는 단 한 마디를 던지는 백홍석이 다시 보이게 될 것이다. 인간 포기 선언이 일상화되어가는 세상에 던지는 그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그 어떤 명대사보다 더 뭉클하고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추적자>는 그 잃어버린 ‘인간’을 추적하는 드라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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