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시대, 우리는 진정 소통하고 있나

휴대폰, 인터넷, 와이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누구든 얘기하고픈 사람에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건넬 수 있는 세상이다. 심지어 화상으로 뜬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지만 미디어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잘 소통하고 있을까.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무한연결되어 있는 와이파이 시대에 물음표를 하나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지금껏 단체로 미션을 수행해온 것과는 달리, 각각 사방 팔방으로 떼어놓고 미션을 시작한다. 김태호 PD는 1시간 내에 각자 지정된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간 사람을 포상할 것처럼 해 멤버들을 떼어놓은 후, 그들이 ‘무한도전’을 그동안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모일 것을 진짜 미션으로 내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 ‘무한도전’의 많은 미션에서 도구로도 활용되었던 휴대폰을 모두 반납시켰다는 점이다.

‘텔레파시’라는 아이템에는 ‘무한도전’이 교육실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붙여진 과장이 있다. 각자 공간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장소로 오라고 다른 멤버들에게 마치 진짜 텔레파시를 보내듯 과장하는 모습은 예능으로서의 웃음을 주기 위한 과장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간 ‘무한도전’이 해왔던 미션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또한 담겨져 있다. 그 아련한 기억을 좇고 그 기억 속을 함께 했던 멤버들에 대한 소중함을 담아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었다면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프로그램 전체를 감싸는 아련한 느낌까지 연출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텔레파시’라는 과장 이면에 담겨진 ‘소통’이라는 메시지는, ‘소통’되지 않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담아내면서 의미를 확장시킨다. 여기에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이 보여준 역설이 있다. 휴대폰 같은 보다 손쉬운 통신기기를 단절시켜놓자 더 절절해지는 진짜 소통의 욕구.

만일 각자 떼어놓고 휴대폰을 지참하게 한 채로 만나고 싶은 곳에서 만나라고 했다면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전화 통화하고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만나면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과 마음이 전하는 소통은 찾기가 어려워진다.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습다가 차츰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똑같이 생각한 장소에서 간절히 원했던 멤버가 서로 만났을 때 어떤 작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자막으로 등장한 왓비컴즈를 비판한 패러디 노진요(노홍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그래서 그 의미가 더 깊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속도나 전달력은 엄청나게 빨라지고 손쉬워졌지만 그것이 거기에 맞는 소통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무한도전’ 특유의 풍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물'의 판타지, 현실 정치의 부재를 채우다

'대물'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고충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표를 얻는 것, 그래서 권력을 계속 쥐고 있고 차츰 그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물론 이건 드라마 속 얘기다. 현실에는 그래도 서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 온 김에 우리 동네나 한 번 들려주지. 당췌 모기 땜에 살 수가 있어야지. 지옥이 따로 없어." 매립지에 생긴 웅덩이 때문에 모기떼들이 마을을 덮쳐 사람이건 동물이건 살기 힘들어하지만, 정치인들의 관심은 보궐선거에 가 있다. 검사들은 현장에는 나가보지도 않고 모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주민들의 집단 폭력으로 몰아 부친다.

"그럼. 이 사람들 대신 나 구속해. 야.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냐? 이분들 데모한 거 김태복 때문이 아니라 모기떼 때문에 데모했다잖아. 검사란 게 현장 한 번 안가보고 사무실에 앉아서 뭐? 구속? 구속이 그렇게 쉬워?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죽어나가는 판에 무조건 법 지키라고? 지키다가 죽으라고? 세상에 그딴 법이 어딨어?"

서혜림(고현정)의 이 말에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이것이 판타지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작금의 대중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물'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파괴력 있게 쭉쭉 뻗어나가는 이유가 된다.

'대물'은 바로 이 현실에서 우리가 종종 발견하는 사건들을 드라마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한바탕 속 시원히 풀어내는 드라마다. 따라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드라마의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현실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이다.

정치인 혹은 검사 같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이들이, 차 안에서, 공연장에서, 헬기 위에서, 정당 사무실에서, 갤러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서혜림이 모기떼로 고통 받는 서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충을 듣는 장면은 사뭇 대조적이다.

서혜림이 하도야(권상우) 검사에게 주민들의 입장에서 한 마디 쏘아부칠 때, 정치권에 새 인물을 찾는 강태산(차인표)의 눈빛이 반짝거리고, 그녀에게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묻는 장면이 전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미 이 대조적인 장면들을 통해 '저런 정치인 하나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현실에서 정치라고 하면 으레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그래서 '대물'이 보여주는 정치의 세계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판타지라고 해서 그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바로 이 판타지는 다름 아닌 선거철만 되면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던 것이지만, 때론 정치인들의 최대관심사인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현실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드라마가 판타지를 통해 어떤 비전을 제시한다면, 그것으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물'의 인기가 수직상승하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팍팍하다는 반증이다. 서민들이 바라는 세상과 실제 정치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물'의 판타지는 액면 그대로 현실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서민들이 뭘 바라고 있는 지는 분명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냉철한 카리스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자 대통령을 연기할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전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 그녀가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지도자적인 카리스마가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뚜렷한 변화로 보이는 건 '대물'의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표정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치지도자로서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에서 노출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표정변화 없이 늘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표정함에서 잠깐씩 보이는 입술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 마음의 동요를 언뜻 비춰주었을 뿐이다.

미실이 무표정으로 일관한 것은 '선덕여왕'의 추동력이 그 변화 없는 미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무표정했던 미실이 차츰 무너지면서 고통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 사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미 신비화될 정도로 정점에 선 그녀가 서서히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내려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대물'의 서혜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보통의 평범한 주부이자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인물이 남편의 죽음을 겪고는 차츰 정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정점인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서혜림의 표정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끝없이 변화한다. '대물'에서 고현정의 연기가 남다른 것은 한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강렬한 고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온 대통령의 비서를 맞는 장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서 시작해 화환을 모두 부숴버리며 오열하는 얼굴로 돌변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토로하는 방송을 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급작스런 변화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남편의 죽음을 한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놀아 달라"는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겨운 것은 이 깊은 상처를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조차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앞에서 마치 남 얘기하듯 짐짓 밝게 남편의 얘기를 하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하고 말하다가 결국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위로하는 하도야마저 더더욱 따뜻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현정이 '대물'에서 보여준 연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차츰 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성장과정과 함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있지만,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미실은 이제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의 '대물'로 돌아왔다.

복잡한 현실 속 명쾌한 건강함을 선사하는 '닥터 챔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이 의사나 운동선수처럼 그나마 나아보이는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과실을 덮기 위해 그것을 목격한 의사를 오히려 파면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내부고발자라는 멍에를 씌워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못하게 하는 상황. 가까스로 국가대표 유도선수로 뽑혔지만 잦은 부상에 고인이 된 형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되는 상황. 한때 촉망받는 선수였으나 사고로 하지마비 판정을 받아 다리를 절게 되고 의사가 되어 돌아와 한때 사랑했던 여자의 주위를 서성대는 상황. 혹자는 절망할 수 있는 이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공간은 다름 아닌 태릉선수촌이다. 연우(김소연)와 지헌(정겨운), 그리고 도욱(엄태웅)은 이 곳에서 만난다.

물론 태릉선수촌 역시 매일 같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경기 전날 잘못 놓은 수액 처방으로 도핑검사 때문에 아예 경기조차 치르지 못하게 하고, 매독에 걸린 선수의 애원으로 페니실린 처방을 했다가 쇼크로 쓰러진 선수를 가까스로 살려내는 등, 연우의 하루하루는 살얼음판이다. 한편 지헌은 5년 전 태릉선수촌에 들어왔으니 무단이탈한 사례 때문에 계속 믿음을 주지 못하고, 한때 친구였던 상봉(정석원)과 갈등을 겪는다. 생활고 때문에 형수가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자 그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그의 일상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마다 태릉선수촌은 이들을 바깥으로 내쫓으려 한다. 연우는 간신히 들어온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 매번 쫓겨날 위기에 서게 되고, 지헌 역시 후보를 벗어나기 위한 경쟁에 늘 놓여지게 된다. 주변상황은 복잡하고 늘 힘겨운 상황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이들은 태릉선수촌의 끝자락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세상은 어딘지 이 청춘들에게 '심판 없이'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도욱 같은 냉철하지만 그래도 공정한 심판은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닥터 챔프'는 결국 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사랑이야기가 메인 테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한갓 멜로의 하나의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들 주변에 배치된 상황들이 이 풋풋한 사랑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작은 안식처처럼 보인다.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만나서 맨발로 잔디를 함께 걷고, 한밤중 우연히 함께 택시를 타고, 뒤늦은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스포츠가 가진 정직함과, 의학이 가진 인간애,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 엮어진 이 드라마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건강함을 선사한다. 부상 좀 입어도 열심히 달리는 지헌과 실수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당당함과 명랑함을 잃지 않는 연우 그리고 비뚤어진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도욱의 모습은 그래서 이 차가운 세상에 어떤 희망을 전한다. 현실이 차가울수록 그들의 삶과 사랑에 더 간절함을 느끼게 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건강하다. 복잡한 가족관계와 뒤틀린 욕망으로 점철된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이 드라마는 어떤 섬 같은 안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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