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와 청년 실업은 어떻게 만났나

육상효 감독의 영화는 어딘지 사람 냄새가 난다. 첫 단편작이었던 '슬픈 열대'가 그랬고, 시나리오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았던 '장미빛 인생'이 그렇다. 그는 사회의 그늘 속에 가려진 낮은 존재들을 프레임 속에 넣어 그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방가 방가'가 비추는 그늘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옥 같은 취업전쟁 속에 스펙 없이 내던져진 고개 숙인 청춘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진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영화는 마치 '폭소클럽'에서 "사장님 나빠요"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흉내냈던 블랑카(정철규)처럼 외국인 특유의 말투가 주는 웃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인 김인권이 얼굴을 들이민다. "저는 부탄 사람입니다"하고 꺼내는 그의 말은 그 '내추럴 본 동남아 삘'이 나는 김인권의 얼굴 때문에 빵 터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펙 없이, 그럴 듯한 외모 없이 취업이란 언감생심인 우리 사회의 차가운 현실이다.

취업이 안돼 부탄 사람으로 위장해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나는 부탄사람입니다'라는 말에는 먼저 웃음이 묻어나지만, 한국인이 한국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게 된 그 현실은 눈물 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선은 이 낮은 자들의 생고생담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풍자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부탄 사람으로 위장한 방가(김인권)는 취업한 의자 공장에서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의 구박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러면서 이 청년 실업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그 낮은 위치에서 맞이하는 똑같은 사회의 냉대를 공감하게 된다.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건, 취업을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이나, 또 취업을 했다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온갖 착취를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비정규직이나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처럼 가장 낮은 지대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의 문제를 바라본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에 의해 영화가 지나치게 심각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육상효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김인권이라는 배우가 가진 발군의 코믹 연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또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든다. 영화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방가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욕 강의'를 하는 장면은 이 낮은 자들의 심정을 담아내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욕 먹기를 밥 먹듯 하며 살아왔으리라 짐작되는(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욕에 익숙하다) 그들이 거꾸로 욕을 배워 욕하던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통쾌함. '강아지 계열 17번'에 해당하는 욕은 어쩌면 이 힘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강력한 저항처럼 여겨진다.

물론 영화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현실에 침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전망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려는 주제의식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즉 실컷 웃은 뒤에 남는 진한 가슴 저림은 이 영화의 전망이 하나의 현실이었으면 하는(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 깊은 바람에서 나오는 것이다.

김인권이라는 배우는 어쩌면 이 영화 속 방가가 느꼈던 그 감정을 영화판에서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꽃미남이 아니면 주연이 될 수 없는 세상에서 늘 주변에서 머물렀던 그가, 영화 속에서 "나는 한국사람 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에서 돈 벌고 한국에서 밥 먹고 살아가는 나는 한국사람 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 '한국사람'이라는 지칭이 마치 '배우'로도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주변인들, 즉 외국인 근로자나 스펙 없는 청년 실업자 그리고 김인권처럼 만년 감초로 불리던 배우가 주연이 되는 영화. '방가 방가'가 유쾌한 건 그 전복이 주는 통쾌함 때문이다.

'슈퍼스타K'가 배출해야할 슈퍼스타는 어떤 가수일까

장재인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서 "바닥이 더 편해요"하며 털썩 주저앉아 또박또박 가사를 음미하듯 노래할 때, 아주 오랜만에 가슴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어떤 설렘을 느낀 것은 거기에서 '음악'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현란한 댄스, 그리고 음악 자체는 물론이고 비주얼조차 점점 찍어낸 듯 비슷비슷해진 작금의 가요계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어떤 정서적 감흥을 느끼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마도 음악이라기보다는 프로듀서에 의해 잘 포장된 하나의 음악상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심사위원으로 경쟁자들을 심사하던 윤종신이 한 후보자에게 "당신은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될 것"이라는 지적은 작금의 현실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목소리나 가창력 자체가 가진 거칠지만 독특한 개성은 작금의 가요계에서는 프로듀싱 되는 과정에서 연마되기 마련이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렬한 개성 자체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어필이다. 원석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연마되어 상품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슈퍼스타K'는 이승철이 매번 입에 달고 말하는 것처럼, "프로가 될 사람을 뽑는 자리"다. 따라서 아마추어들의 실력 없는 치기는 모두 '불합격'을 받기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30만 명이 넘는 경쟁을 뚫고 11명에 안착한 생존자들(?)은 이미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이들이다. 포크를 하는 장재인이나 김지수는 바로 그 포크라는 장르가 갖는 어쿠스틱한 매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성을 드러내고, 존박의 재즈적인 느낌마저 주는 R&B 스타일이나 허각의 감성적인 발라드 역시 그들만이 가진 개성적인 보컬에 의해 평이해 보이는 음악조차 돋보이게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실력도 갖추었고, 인지도도 갖춘 이들이 실제로 가요계에 슈퍼스타로 자리하는 문제일 것이다. 작년 '슈퍼스타K'가 배출한 가수들은 슈퍼스타K가 된 서인국, 박세미, 길학미 등이다. 어느 정도 인지도는 갖고 있지만 이들이 말 그대로 슈퍼스타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작년 '슈퍼스타K'는 올해처럼 많은 스타성 있는 후보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결과가 크다. 만일 이런 상황이 올해도 반복된다면 이것은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흠집을 낼 것이다. 아무리 '슈퍼스타K'가 되도 실제로 슈퍼스타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그 오디션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슈퍼스타K'에 의해 실력을 검증받고 인기도 얻은 이들이 진정한 슈퍼스타로 서는 과정에는 반드시 상품화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른바 되는 음악과 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이 개성 넘치는 신인들을 어떻게 상품화시키느냐는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성은 무시될 수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을 수도 있다. 개성 있고 실력 있는 가수들이 프로듀싱 과정에서 색깔을 잃어버리는 건 천편일률적인 가요시장의 흐름과 거기에 편승하려는 제작자들의 잘못된 마인드 때문이다.

아직 '슈퍼스타K'를 뽑는 오디션이 끝나기도 전에 거기 참가한 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앞서는 것은, 오디션 과정에서 어떤 설렘까지도 던져주었던 날 것의 개성 넘치는 후보자들의 노래와 스타일이 훗날 프로듀싱 과정에서 똑같은 상품으로 찍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제발 장재인이 지금처럼 털털하게 바닥에 앉아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며, 김지수가 특유의 소울 가득한 목소리로 포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이 댄스가수들 속에 들어가 춤을 추고 전자음 가득한 음악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가요시장에서 버텨내려면 가장 상품화가 잘 되는 댄스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시장이 진정 이렇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어쿠스틱한 노래 하나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슈퍼스타K'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네 가요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이 거의 장악해버린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댄스와 자극적인 음악을 선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스타K' 같은 무대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엮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필요하다면 무대를 바꿔야지, 무대에 맞춰 가수들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원석을 세공할 때, 비죽비죽 삐져나온 부분은 잘려져 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석에 대한 비유일 뿐, 한 사람의 가능성을 똑같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사각형을 둥그런 원으로 만드는 방법은 각을 잘라내는 방법도 있지만, 사각형 바깥으로 두툼한 원을 덧붙이는 방법도 있다. 날 것의 강렬한 개성을 버리기보다는 좀 더 감싸서 두드러지게 어필하는 방식은 어쩌면 지금 막 가요계로 발을 딛고 있는 이들 11명의 후보자들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슈퍼스타K'가 오디션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진정한 음악인들의 다듬어지지 않았어도 그대로 느껴지던 그 묵직한 진정성의 감동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상품성과는 별개로 '슈퍼스타K'는 이 시대에 진정한 슈퍼스타를 뽑는 대회로서 자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장여자 콘셉트를 용인하게 하는 '여자보다 더 예쁜' 송중기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4인방이 화제다. 보기만 해도 오줌을 잘금잘금 지린다는 꽃미남 4인방. 어찌 보면 '꽃보다 남자' F4의 사극 버전을 보는 듯 하지만, 사실 4인방 속에 김윤식(박민영)은 남장여자라는 점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더 닮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당파로 갈라진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청춘들의 도전 혹은 저항을 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드라마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이 4인방이 미션 속에서 보여주는 달달한 로맨스다.

마치 '캔디'의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이선준(박유천)과 문재신(유아인), 그리고 아치와 스테아를 합쳐놓은 듯한 구용하(송중기)가 남장여자로 성균관에 들어온 김윤식(본래는 김윤희)과 미묘한 관계로 엮어진다. 늘 삐딱하게만 구는 반항아 문재신은 김윤식이 사실은 여자라는 사실을 목도하고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선준은 우정으로만 알았던 가슴 설렘이 어딘지 연애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구용하는 일찍부터 김윤식이 남장여자라는 심증을 갖고 있었지만, 바로 그 점에 흥미를 느끼면서 이들과 같은 편에 선다.

이야기는 이들 잘금4인방과 성균관 장의 하인수(전태수)와의 대결을 담고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들 뒤편에 왕과 권세를 장악한 노론 세력과의 대결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미션을 내리지만, 그 미션은 또한 왕이 노론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즉 성균관은 대학이지만, 당대의 조정의 축소판이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소해보여도 하나의 정치적인 행위로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잘금4인방 중에서 유독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사실 구용하는 이러한 대결구도 속에 당사자로 서 있다기보다는 방관자처럼 주변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이토록 주목받는 것일까. 그것은 먼저 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상당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이선준은 전형적인 사대부 자제의 모습이고, 문재신은 또 전형적인 그 극단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반항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구용하는 깨방정에 가까운 가벼움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에게 학문이나 정치 같은 것은 어딘지 우스워 보인다.

그가 삶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재미'라는 차원은 구용하라는 조선시대의 캐릭터를 작금의 젊은이들의 감성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다. 어딘지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젊은 청춘들은 삶에서 유일한 위안거리로서 재미를 찾는다. 그는 유생들의 물건을 훔쳤다는 모함에 빠진 김윤식을 위해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탐정놀이를 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도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역할이다. 허무주의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는 분명, 작금의 현실이 청춘들에게 부과하는 허탈감이 들어 있다.

물론 구용하라는 캐릭터를 깨우는 건 송중기라는 꽃미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단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가진 이미지는 구용하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드라마적으로 볼 때 송중기는 이 자칫 이해할 수 없는 '남장여자 놀이'를 그나마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자보다도 더 예쁜' 그의 이미지가 있었기에 누가 봐도 여자인 박민영이 남장여자로 활동하는 것이 용인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용하라는 캐릭터가 그저 허무주의에 빠진 청춘을 대변하는 것으로 주목받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뭐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김윤식을 만나 차츰 진지해지고 뭔가 삶에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는 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현실에 치여 방황하는 청춘들 스스로 현실을 넘어서려는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슈퍼스타K2'의 내적 외적 성공요인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 MBC '목표달성토요일'에서 진행됐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악동클럽'은 소소하게 지나가 버렸고, 2006년 박진영이 진행한 스타 메이킹 프로그램 '슈퍼스타 서바이벌'은 전국과 해외에 걸친 사전 오디션과 서바이벌 형식, 시청자들의 직접 투표방식 등 작금의 '슈퍼스타K'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을 갖추었지만 그다지 화제를 몰고 오지는 못했다. 2007년도 MBC에서 방영됐던 신인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쇼바이벌'은 쇼의 형식으로 신인들의 무대대결을 보여주었지만 역시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다르다. 케이블 채널 엠넷에서 방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케이블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두 자리 수를 훌쩍 넘어섰다. 도대체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뭐가 다른 것일까.

많은 이들이 프로그램 외적인 상황을 지적한다. 즉 현실이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상에서나마 실현시켜준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슈퍼스타K2'에 몰린 1백만 명이 훌쩍 넘는 지원자들이 그려내는 풍경은 경쟁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를 살 떨리게 재현한다. 그런데 그 엄청난 지원자들이 선정되는 기준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아무리 연예인의 자식이라도, 또 학벌이 출중하다고 해도 실력이 없다면 심사위원들은 가차 없이 '불합격'을 준다. 초기에 심사위원으로 앉은 이하늘은 '철이와 미애'의 신철의 조카를 떨어뜨리면서 "너는 철이형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하늘은 "이 오디션이 실력은 있지만 등용문이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란 점을 반복해서 말한다. 살벌한 경쟁 현실의 리얼함 위에, 불공정한 세상을 뒤집는 판타지가 겹쳐지는 지점에 대중들의 몰입은 생겨난다.

하지만 단지 프로그램 외적인 상황에 의해 '슈퍼스타K2'가 거둔 경이적인 대중적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외적인 환경은 기획적인 것이지만, 이 기획을 실현시키는 것은 내적인 완성도다. 그런 점에서 '슈퍼스타K2'가 거둔 성과의 반은 바로 이 끊임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프로그램 내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음악의 본질인 노래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2'는 물론 간간히 댄스를 가미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래 실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슈퍼위크를 거쳐 마지막 11인에 뽑힌 경쟁자들 중에서 댄스와 함께 노래를 한 후보자는 이보람과 김소정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각자의 개성적인 보컬로 경쟁에 임했다. 기존의 노래들을 이들이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해내는가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특별한 재미다.

쟁쟁한 기성가수들의 노래가 이제 첫발을 디디는 이들에 의해 거침없이 재해석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대중들을 열광한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해체이기 때문이다. 이문세가 '조조할인'을 부른 허각에게 "저보다 더 잘 불렀네요"라고 심사평을 말할 때, 윤종신이 장재인의 노래를 듣고는 "좋은 가수가 될 거예요"라고 말할 때 그 쾌감은 극대화된다. 심사위원들의 노래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서서히 찬사로 바뀌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이들이 불러야 하는 노래가 좀 더 폭넓은 세대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뽑힌 11명이 첫 생방송 무대에서 부여받은 미션은 명곡들의 재해석이었고, 8명으로 좁혀진 경쟁자들이 치르게 된 미션은 이문세의 노래를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쇼바이벌'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들이 지나치게 젊은 층에 치중되었다면 '슈퍼스타K2'는 이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좀 더 넓은 세대를 포괄할 수 있는 노래들을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들은 물론이고 중장년층까지 빠져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노래 자체의 매력과 그것을 절절히 표현해내는 경쟁자들의 만만찮은 노래 실력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힘을 만들어냈다면, 이 힘에 더 강한 추진력을 부여하는 건 게임이나 스포츠를 보는 것 같은 이 프로그램만의 형식이다. '슈퍼스타K2'는 노래를 빼놓고 보면 한 판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관중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사회자로서의 김성주 아나운서(그가 예전 스포츠 캐스터였다는 점이 이채롭다)가 심판처럼 서 있고 경쟁자들이 나와 실력을 보이면 그것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준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형식은 100만 명이 넘는 지원자에서 단 한 명으로 서서히 좁혀져가는 과정을 통해 시쳇말로 '쪼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이렇게 좁혀지는 과정에서 가수들(캐릭터)은 성장한다. 스타일리스트가 붙으면서 스타일이 업그레이드되고, 보컬트레이너가 붙으면서 노래가 세련되어지는 과정은 게임에서 캐릭터가 성장할 때 바뀌어지는 갑옷처럼 대중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지지 않았다면 매번 진행될 때마다 이처럼 프로그램이 상승곡선을 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지는 구조가 '슈퍼스타K2'에 마치 연속극을 보는 것 같은 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지원자들은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들고 무대 위에 오른다. 허각이나 김지수가 갖고 있는 힘겨웠던 가족관계의 이야기는 노래로 승화된다. 때론 애인을 생각하며 때론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래에 감정이입하는 이들의 모습은 노래 이면의 스토리를 구축한다. 게다가 함께 합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들은 그들만의 스토리 또한 만들어간다. 함께 연습해서 무대에서 부른 후, 둘 중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경쟁 형식은 이런 스토리에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슈퍼스타K2'의 경이적인 성공을 단 한 가지 요소로서 해석하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음악이 갖고 있는 본연의 힘과 그 음악을 세대적으로 배려하는 섬세한 연출, 마치 게임이나 스포츠를 보는 것처럼 구성해놓은 무대 그리고 차츰 성장해가는 인물들의 스토리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물론 한 몫을 하는 것은 케이블이라는 채널이라는 특성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심사라고 하지만 이승철이 지원자들 앞에 거침없이 날리는 독설은 지상파에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직설어법이 이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왜 우리는 저런 프로그램을 못하냐"는 질책으로 '슈퍼스타K2'를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요인들을 분석하다보면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예감할 수 있다. 다 년 간의 무대 노하우가 거기에는 있고, 케이블만이 자유롭게 해온 실험정신이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지극히 상업적이면서도 그것이 용인되는 케이블에 대한 대중들의 감성이 들어가 있다. '슈퍼스타'는 그냥 탄생하는 게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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