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토크쇼, '놀러와' 게스트의 입을 열다

집요하게 추궁하는 MC와 당황해하는 게스트. 이제 토크쇼에서 익숙해진 풍경이다. 상대방의 숨겨진 이야기를 폭로하고 끄집어내는 이른바 '독한 토크쇼'는 대세가 되어버린 리얼 토크쇼의 대안처럼 자리했다. '솔직함'이 모든 토크쇼의 지상과제가 되자, 그 솔직한 모습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토크쇼가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재미가 대화의 재미라고 볼 때, 토크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토크의 방식이다. 억지스럽고 강압적인 토크방식은 아무리 놀라운 토크의 내용이라고 해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놀러와'의 토크방식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독설의 시대, 가시방석의 시대에 '놀러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진솔한 이야기에 도달하고 있다. 마치 게스트의 옷을 벗기기 위해 억지로 바람을 불어대는 것보다, 따뜻한 햇볕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토크방식을 가진 '놀러와'가 시청률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것(13%)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야심만만2'가 초창기 버전이었던 자연스러운 설문 방식을 버리고, 강압적인 일련의 토크방식들(올킬에서 심지어 유치장 컨셉트까지)을 사용했으나 시청률에서 '놀러와'를 넘지 못하는 것에는 바로 이런 형식이 가진 자연스러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러와'의 토크 방식은 '골방밀착토크'에서 그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골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은 게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그 곳에서 게스트들은 무거운 신발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아무렇게나 앉아 가운데 놓여진 주전부리를 먹어가며 수다를 풀어놓는다. 골방이 가진 협소함은 오히려 게스트와 MC들 간의 거리를 좁혀놓는 훌륭한 장치다. 너무 밝지 않은 적당한 조도의 조명 역시 골방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유재석, 김원희 MC는 오래된 친구처럼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런 곳이라면 누구나 찾아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낼만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골방밀착토크'가 편안함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편안하다는 것은 자칫 쇼를 밋밋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놀러와'는 이 곳에 장치를 두었다. 그들이 바로 골방브라더스다. 상대적으로 반항기 있고 강한 인상을 주는 이하늘과 길이 슈퍼맨 복장을 입고 앉아 짓궂은 질문들을 툭툭 던지는 것으로 그 긴장감은 유지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캐릭터들이지 상대방을 괴롭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따라서 골방 브라더스라는 토크의 양념은 감칠맛을 낼 뿐,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는 않는다.

'놀러와'의 이런 토크방식은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들이 먼저 기획 아이템을 제안하는 기현상까지 만들어냈다. 이효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걸프렌즈31 특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독한 토크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상황에, 편안한 토크를 견지하는 '놀러와'의 선전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독한 토크가 결국은 점점 독한 자극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놀러와'는 적절한 자극과 편안한 토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좀 더 장기적인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바람보다는 햇볕의 힘. '놀러와'의 토크방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비담, 그 무심함이 담은 세상에 대한 비웃음

어떤 캐릭터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전혀 우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어떤 캐릭터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슬쩍 눈 한 번 찌푸리는 것으로도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덕여왕'의 비담(김남길)이 그렇다. 비담이라는 캐릭터는 말 그대로 불쑥 등장했다.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이 동굴로 숨어들었을 때, 비담은 어둠 속에서 슬쩍 발끝을 보이고는 천연덕스럽게 하품을 하며 우리들 가슴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도대체 무엇이 비담을 이처럼 매력적으로 만든 걸까.

첫인상에서 캐릭터의 성격까지는 알 수 없었을 테니, 일단은 그 인상이 준 효과부터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먼저 비담이 등장한 그 시점이 중요하다. 비담이 등장하는 시점은 덕만이 비극적인 자신의 운명을 알아채고 상심에 빠져있던 시기이고, 유신 역시 덕만을 호위하며 애틋한 사랑을 드러내던 시기다. 덕만이나 유신 둘 다 운명의 고리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하던 그 때, 비담은 마치 운명 자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품을 해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의 덕만와 유신의 당찬 모습을 보아왔던 시청자라면 이 시점에서 비담의 하품에 공감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드라마가 조금은 울고 짜는 멜로적 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담은 그 후에도 늘 그 하품을 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비담이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왔던 것은 그 우스꽝스런 표정 탓만은 아니다. 비담은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활용하는 긴장의 와해를 통한 웃음을 연출했다. 덕만과 유신을 중심에 두고 천명(박예진)과 알천랑(이승효) 그리고 설원공(전노민)과 김서현(정성모)이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 비담은 이들과는 무관한 인물로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신의 갑옷을 비담이 갖고 있는 걸 본 알천랑이 그게 어디서 났냐며 심각하게 물어볼 때, "닭다리랑 바꿨는데?"하고 말하는 식이다. 게다가 엄청난 무공을 갖춘 인물이 이처럼 한가로우니 그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보인다.

이처럼 비담은 이 사극 속의 어떤 캐릭터와도 확실히 차별화되는 얼굴로 등장함으로써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이 단순히 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고유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담은 중간자적인 인물이다. 진지왕(임호)과 미실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실에 의해 버려졌다. 그는 혈연으로는 미실의 편이지만, 버려졌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미실의 적이기도 하다. 그는 선과 악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아귀 같은 얼굴로 돌변한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중간자이다. 정치와는 상관없이 몇 백 명의 생명을 위한 약재를 구하기 위해 한 사람(덕만)의 목숨 정도는 버릴 수도 있는 인물이다. 선이건 악이건 실용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다. 비담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이제는 정치에 무관심하려 하는 우리네 대부분의 모습을 닮았다. 운명이니 대의니 하면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보다는 솔직한 것이다.

비담이라는 캐릭터의 얼굴을 보면 까칠함과 천진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눈빛은 살기등등하지만 살짝 비틀어진 입가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칼을 들고 있지만 유신처럼 잔뜩 긴장하여 앞으로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어깨에 걸머쥐는 무심함을 유지한다. 비담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나지만 그 웃음 뒤끝은 좀 허허로울 정도로 쓸쓸함이 있다. 늘 비껴있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비극적 운명 속에 서 있는 자의 눈물이 그 모습에는 기묘하게도 배어있다. 이런 연기를 단번에 끌어내 보여주는 김남길이란 배우가 왜 이제야 눈에 띄었는지 이상할 정도다. 비담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적기에 등장함으로써 그만큼 강렬해진 첫인상과, 대중들을 닮은 캐릭터 자체가 가진 공감대, 그리고 무엇보다 김남길이라는 발군의 연기자가 잘 어우러진 결과다.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무심함(무언가 대단한 일인 양 운명 운운하는 자들이 하는 짓에 대한 비웃음을 담은)은 지금의 서민들의 마음 또한 건드는 부분이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의 확장, 'W'

TV라는 매체는 그 본질이 '멀리 있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본다'는 이른바 '원격현전'이다. 텔레비전(Television)이란 용어 자체가 멀리(tele) 있는 것을 본다(vision)는 뜻. 그런데 과연 우리는 TV를 통해 멀리 보고 있을까. 또 멀리 보고 있다고 해도 그 멀리 있는 것을 제대로 자세하게 보고 있을까. TV가 오락적인 기능에 매몰되고 있는 동안, 정보적인 기능은 그 본질에 맞게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을까. 'W'는 어쩌면 TV를 트는 순간 당연하게 생각해야할 이 질문들에 답변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의 확장, 바로 'W'가 꿈꾸는 프로그램이다.

맥루한이 매체가 우리네 감각을 확장시킴으로써 '지구촌'을 도래하게 할 것이라고 한 것처럼, 'W'는 우리의 눈으로는 다가가기 힘든 지구 구석구석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포착해내 우리네 감각기관으로 전달한다. 카메라는 그 감각을 확장시키는 기구다. 그것은 마다가스카르로 케냐로 필리핀으로 미얀마와 우간다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달려가 그 곳의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이것은 카메라의 세례다.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지구촌 어느 구석의 소외된 이야기는 카메라의 세례를 통해 우리의 눈으로 전달되고, 바로 그것으로 인해 그 곳은 관심 받고 변화하게 된다.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 편은 그 곳의 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신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여줌으로써 변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편이 방영된 후, 시청자들은 스스로 후원카페를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 이 곳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었다. 처음 한 명으로 시작한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는 이제 16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구 저 편에 일어나는 일을 지금 여기서 보고 느끼고 행동하여, 그 곳에 변화를 준다는 것. 이것이 바로 지구촌이라는 의미에 딱 맞는 매체의 역할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가치있는 것은 좀더 총체적으로 지구를 관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으로 점점 바다 속으로 잠겨가는 키리바시 공화국 사람들을 다룬 '잊혀져가는 사람들의 당부'편은 단적인 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 터전을 잃어버린 그들이지만, 뉴질랜드 같은 인근 나라가 보여주는 냉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의 차원이 아닌 지구적 차원으로 보는 시선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이고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구촌 구석에 소외된 이들을 조명해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W'는 그 곳에 희망의 손길을 전해주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난민들을 돕고 사랑을 전하는 행동은 제작진들의 진정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어떤 PD는 촬영 끝에 자신보다 더 필요할 것 같다며 그들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오기도 하고, 어떤 PD는 남은 출장비를 몽땅 털어주고 올 정도로 이들의 일은 이제 일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이 잡아오는 영상이 우리에게 정보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본격 국제 시사프로그램. 이것이 'W'가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제 시사가 우리와 멀리 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직결된 삶의 문제라는 것을 이 프로그램은 손수 보여줘 왔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이웃으로 묶는 인식의 전환. 이것이 'W'가 해온, 또 앞으로 해나갈 가장 큰 사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00회 특집으로 'W'에서는 2주에 걸쳐 '1부-지상 최후의 풍경'과 '2부-희망은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를 방영한다.

휴가철, 대중문화로 주목받는 촬영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가 주목받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올해 휴가철을 맞아 가장 주목받는 곳은 어딜까. 최근 이른바 뜨고 있는 작품들을 염두에 둘 때, 떠오르는 두 지역이 있다. 그것은 현재 시청률 40%에 육박하고 있는 '선덕여왕'의 경주와, 역시 1천만 관객을 예고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해운대'의 부산이다.

물론 '선덕여왕'의 촬영지는 경주만이 아니다. 용인의 MBC세트장에서도 촬영을 하고, 양평에서도 야외 촬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경주가 '선덕여왕' 촬영지로 주목받는 것은 그 곳 보문단지 내에 조성된 신라밀레니엄파크 내에 있는 세트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껏 사극이 조명하지 않았던 신라를 온전히 품고 있는 곳으로서의 경주가, '선덕여왕'으로 주목받는 여행지가 되는 이유다.

따라서 드라마 '선덕여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세트장에서만이 아니다. 선덕여왕 하면 우선 떠오르는 첨성대가 그렇고, 지금까지는 조금은 쓸쓸하게 존재해온 선덕여왕릉이 그렇다. 그 곳에 가면 드라마가 왜 그다지도 천문에 관심을 두는가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드라마의 이야기지만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이 천문을 두고 벌이는 대결구도는 실제로 선덕여왕이 얼마나 여기에 관심이 많았는가를 거꾸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첨성대가 있는 대릉원 주변에는 실제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 조성된 지천으로 피어난 연꽃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그 앞에 서면 카메라를 꺼내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드라마 포스터에 선덕여왕이 쓰고 있는 금관과 금귀고리를 보려면 대릉원 맞은편에 있는 천마총에 가보면 된다. 천마총도 천마총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에 조성된 소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경주가 '선덕여왕'으로 들썩이고 있다면, 부산은 영화 '해운대'로 들썩인다. 1천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해운대'는 그 제목 자체가 해운대이기 때문에 이 공간이 갖는 특별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영화 '해운대'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걸려 있어,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장면의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해운대를 통째로 잡아먹는 쓰나미를 잡아낸 영화는, 해운대를 인파의 쓰나미로 법석대게 만든다.

해운대라는 공간이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앞으로는 바다가 있고 뒤로는 호텔과 빌딩들이 서 있는 그 공간적 특수성에 비롯된 바, 해운대의 묘미는 바닷바람 맞으며 호텔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쇼를 감상하는 것이다. 누리마루에서 보는 멋진 풍광은 영화 해운대에서 엄정화가 다가오는 쓰나미 앞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 장면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영화 '해운대'가 보여준 부산만의 지역적인 재미, 특유의 활력은 해운대라는 공간에 서면 현실로서 보여진다.

문화 컨텐츠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려진 바다. '주몽'의 성공이 그 테마파크가 있는 전라도 나주를 일으켜 세웠듯이 '선덕여왕'은 경주를 재발견하게 만들고 있고,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 한 편이 강원도 영월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이게 했듯이, '해운대'는 부산을 우리 앞에 새로 꺼내놓고 있다. 휴가철, 이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단순한 여행지, 그 이상의 문화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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