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공효진·이정은, 버려진 이나 버린 이나 찢어졌을 가슴

 

“엄마가 나보고 진짜 그걸 떼 달라고 왔을까요? 그런 게 어딨어. 엄마 진짜 짜증나. 엄마가 계속 쳐다보는 거예요. 사람 가는데 왜 자꾸 봐. 엄마가 나를 계속 봤어요. 나는 27년을 거기서 기다렸는데 우리 엄마도 그럼 어떡해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은 용식(강하늘)을 안고 그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거기에는 동백이 머물러 있었던 27년의 세월이 겹쳐졌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정숙(이정은). 마지막으로 삼겹살을 사주며 “많이 먹어. 밥을 잘 먹어야 예쁨 받지”라고 말하고 떠나던 던 엄마를 어린 동백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동백은 그렇게 27년 간을 그 지점에 서 있었다. 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 동백의 마음은 복잡해졌을 게다. 미워해야 맞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아픈 상황이고, 그렇지만 혹여나 딸에게 신장을 얻기 위해 온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서운함이 더해졌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동백은 엄마를 데리고 삼겹살집에 갔다. 아픈 엄마에게 먹을 걸 사주고픈 마음도 있지만, 그 어린 시절 동백이 삼겹살을 먹으며 떠나가던 엄마를 바라보던 그 아팠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픈 마음도 있었으리라.

 

정숙은 동백이 그 때의 일을 지금껏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마음이 찢어졌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는 물음에 동백은 ‘필구보다 어린 기지배’가 백밤, 천밤도 넘게 버려지던 날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동백은 비수 같은 말들을 엄마에게 던졌다. 그건 엄마가 27년 전에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누가 엄마 이름 물으면 꼭 모른다고 해. 부탁이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동백은 똑같이 돌려줬다. “누가 딸 이름 물으면 꼭 모른다고 해. 부탁이야.”

 

27년 전 엄마가 그랬듯 이제 동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갈 때 택시 창에 하염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비췄다. 그건 과거 엄마가 떠날 때 뒤에서 하염없이 그를 바라봤던 동백의 모습 그대로였다. 떠나오는 택시 안에서 동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건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도 찢어졌을 거라는 것이었다. 용식의 품에 안겨 엄마가 혹여나 자신처럼 그렇게 계속 떠나간 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어떡하냐며 울었던 건 그래서였다.

 

사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과 정숙의 이야기는 소재만으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다. 딸 버린 엄마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딸에게 돌아온 것. 그건 아마도 신장을 떼 달라고 왔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지막을 딸과 함께 하고픈 마음 때문에 왔을 게다. 하지만 이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동백꽃 필 무렵>은 엄마와 딸이 27년의 세월을 넘어 서로의 입장이 되는 상황을 통해 절절하게 풀어낸다. 엄마는 딸의 입장이 되어 그 버려진 마음을 헤아리고, 딸 역시 엄마의 입장이 되어 자식을 버린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

 

<동백꽃 필 무렵>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건 이처럼 뻔할 수 있는 상황도 완전히 새롭게 풀어내는 방식 때문이다.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의 존재 하나를 갖고도 이렇게 큰 궁금증과 몰입감을 만들어내고, 동백이와 용식의 다소 촌스러운 사랑이야기도 이토록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임상춘 작가의 남다른 공력이 느껴진다. 물론 <쌈마이웨이>부터 이미 준비된 작가라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깊이와 재미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낼 줄이야. 또 한 명의 믿고 보는 작가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사진:KBS)

‘어하루’, 뻔하고 자기 복제하는 작가와 대결하는 캐릭터들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순정만화 속 세계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칸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화 속에서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대로 움직이던 은단오(김혜윤)는 어느 날 갑자기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작가가 만들어낸 만화 속 캐릭터지만 의식이 생겨났다는 걸.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래서 만화의 칸에서 칸으로 이동하는 그 쉐도우의 지점에서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칸 속의 ‘스테이지’와 칸 바깥의 ‘쉐도우’의 세계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밀’이라는 만화책의 내용과 똑같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작가가 정해놓은 설정값대로 움직이지만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 정해진 설정값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경(이재욱)이라는 인물의 약혼자라는 설정값에 늘 호통치고 상처 주는 그를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 인물 캐릭터가 싫어진 것이다. 은단오는 그래서 이 만화 속 세계의 뻔한 순정만화 설정들을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 주지만 그 때마다 속으로는 “토 나와”라고 투덜댄다.

 

그러다 이름도 없는 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오고 그에게 하루(로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은단오는 설정값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의지에 의한 삶을 조금씩 추구해간다. 하루를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은단오의 의지 또한 커지자 설정값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저 이름 조차 없던 엑스트라였던 하루가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고 ‘비밀’이란 만화책 등장인물 소개란에도 얼굴을 내밀게 된 것.

 

하지만 수영장에 빠진 은단오를 구해낸 후 하루는 사라져버리고, 다시 나타난 하루는 은단오와의 기억이 지워져버린다. 대신 이 만화 속 세상에서 엑스트라가 아닌 존재감 있는 인물로 거듭 서게 된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걸 깨달은 하루가 도서관에서 블랙홀 같은 곳에 손을 넣었다 드디어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는 자꾸만 은단오와 얽히게 되는 것이 사극 배경의 ‘능소화’라는 만화에서의 인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그 배경이 되는 만화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가 ‘비밀’이라면 또 하나는 사극 배경의 ‘능소화’다. ‘비밀’에서 은단오와 하루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능소화’에서는 주인공급이었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설정값을 가졌기에 의식을 갖게 된 그들이 막연히 연결된 과거 ‘능소화’ 스테이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만일 이런 이야기라면 이 ‘비밀’이나 ‘능소화’ 같은 만화 속 세계의 설정값을 만든 작가는 은단오가 투덜대듯 뻔한 순정만화를 쓰는데다 자기복제까지 하는 작가다. 그래서 은단오나 의식이 생겨난 만화 속 인물들이 설정값을 바꾸려는 대결의식은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만화 속 세상이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네 사는 현실 특히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현실만큼 뻔하고 자기복제하는 세상도 없을 게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정해진 길대로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설정값 속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은단호가 설정값을 바꾸려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판타지가 기묘하게 현실을 툭툭 건드리는 지점이다.(사진:MBC)

‘동백꽃’이 제대로 건드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위로

 

“저도 지쳐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강하늘)이 그렇게 말하자 동백(공효진)은 ‘이별’을 떠올렸다. “내가 뭐라고”를 입에 달고 살던 동백이었다. 까불이가 낸 방화로 불구덩이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던 그 순간, 황용식은 온 몸을 물을 끼얹은 후 그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내다 다쳐 병상에 누워 있는 용식을 보며 동백은 눈물이 차올랐다. 용식이 그렇게 다친 것조차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동백이었다. 하지만 용식이 지치고 그만 하자고 한 건 ‘이별’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놈의 썸. 다 때려 쳐요. 다 때려 치고요. 우리 고만 결혼해요. 저 동백씨 걱정돼서 못 살겠어요. 걱정되고 애가 닳고 그리고... 너무 너무 귀여워갔구요. 죽을 때까지 내 옆에 두고 싶어요. 팔자도 옮는다며요. 예? 동백씨 제 팔자가요. 아주 타고난 상팔자래요. 내가 내거 동백씨한테 다 퍼다 줄게요.”

 

용식의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그 직진 청혼에 동백이 그간 철벽처럼 치고 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내 나이 서른 넷 난생처음 청혼을 받았고, 사랑받지 못해 찌질 대던 일생의 불안이 날아가며 겁도 없이 말해버렸다.’ 동백은 용식에게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결국 내놓는다. “용식씨 사랑해요.” 썸의 끝이다.

 

아마도 용식이가 동백에게 청혼을 하고 키스를 하는 그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심쿵했을 게다. 도대체 이 촌스러운 남자의 촌스럽기 그지없는 청혼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들었을까. 항간에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며 용식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신드롬까지 이야기한다. 이미 맘 카페 같은 곳에서는 이른바 ‘촌므파탈’로 불리는 ‘용식이 앓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된 건 동백과 용식의 멜로에 투영된 특별한 몰입과 공감의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어딘지 세상에서 소외되거나 존재 가치를 폄하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들은 동백이라는 인물에 동일시를 느낄 수밖에 없다. 고아에 미혼모라는 그 사회적 편견 때문에 동백이 겪는 낮게 보는 시선들이, 열심히 살아도 잘 풀리지 않고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나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소외된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픔과 힘겨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 시청자들은 갑자기 나타나 당신 삶이 잘못된 게 아니고 당신 삶을 그렇게 비뚤어지게 바라보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며, 그런 편견의 비수들 앞에 나서서 온 몸으로 그걸 받아 내주는 용식이라는 인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돈키호테처럼 앞뒤 잴 줄 모르고 돌직구만 날리는 인물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래서 동백을 울리고, 시청자들을 울린다.

 

촌므파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마도 멋진 말만 내뱉는 차도남이 갑자기 동백 같은 소외된 이 앞에 나타나 용식이 하는 그런 말들을 했다면 이만한 위로가 되진 못했을 게다. 그런 말은 어딘지 신뢰가 덜 가는 입바른 말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무식해서 잘 모르겠고”라고 거두절미하며 솔직히 있는 그대로 촌스러워도 속내를 꺼내놓는 용식이라는 캐릭터기에 이 말들은 더더욱 빛을 낸다. 듣는 이들이 따뜻한 위로를 느낄 만큼.

 

<동백꽃 필 무렵>은 유독 인생캐릭터가 많은 작품이다. 손담비가 그렇고 마을 아주머니들로 나오는 ‘옹벤져스’ 4인방, 김선영, 백현주, 김미화, 이선희가 그러하며, 남다른 걸크러시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는 염혜란이나 찌질한 남성의 끝판을 보여주는 오정세, 아역이지만 어른을 울릴 정도로 깊은 감정 연기를 보여주는 김강훈 등등 인생캐릭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중에 으뜸은 역시 강하늘이다. 이토록 순박하고 촌스러운 캐릭터로 심지어 신드롬의 징후까지 만들어내고 있으니.(사진:KBS)

‘유퀴즈’, 유재석도 한 수 배운 춘천의 재밌고 먹먹한 입담꾼들

 

사랑에 대해 제대로 한 수 배웠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춘천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우연히 만난 부부는 무려 21년 간을 함께 세차를 해왔다고 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찌 다툼이 없을까. 웃으며 맨날 싸운다고 털어놓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부부는 아침에 헤어졌다 저녁에 봐야 제일 좋아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아침에도 싸웠다”는 남편의 말에 “금방 풀려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춘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윤연기(59), 이순자(58) 부부. 보통 여름에 더 세차가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겨울에 세차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추우면 셀프세차 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세차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우니까 손 발 시린 게 제일 힘들다”는 부부의 말에 성수기인 겨울을 맞는 반가움과 힘겨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 매일 다툰다는 부부에게 “혼자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냐”고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아내는 냉큼 그럴 때가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그는 진지하게 “전 혼자 하고 싶을 때는 없어요. 매일 옆에 달고 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묻어나는 말에 유재석의 광대는 승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의외였다.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단 세 번 만나 결혼했다는 것. 남편은 “꼭 사랑만 해야 사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고 아내 역시 그 말에 동조했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시쳇말로 젊은 날 청춘들이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하는 그런 사랑의 의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총각 때 삶의 회의를 많이 느꼈다”며 아내를 그 삶에서 건져준 사람이라는 남편과 “진실하고 열심히 사니까. 착하고 오로지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사니까”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미 사랑이 가득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냐”는 통상적인 유재석의 질문에 의외로 이 부부가 살아왔던 결코 쉽지 않았던 삶과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이 전해진다. 단박에 “안한다”고 말하는 아내와 “저는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 왜 안한다고 했냐 묻는 질문에 아내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대신 아내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잠시 잠깐이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으로.

 

남편에게 재차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묻자, 남편 역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어요.” 부부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가 그 얘기에 묻어났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남편이 어렸을 때 겪은 아픈 기억을 꺼냈다.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일찍 헤어졌다는 것. 그래서 요맘때 시월만 되면 우울하다고.

 

“초등학교 1학낸 땐가 2학년 절 보러 오셨었어요, 고향으로. 그 때 가시면서 거기 계시는 주소를 알려주고 가셨어요. 그 주소를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기억을 했다가 나중에 그 주소를 찾아갔었어요.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거기서 다시 살고 계시니까, 같이 융화를 못해요. 남편 분께서 아무래도 어머니하고 계속 트러블 있고 그래 가지고 제가 그냥 두 분이 나 때문에 싸우시지 말고 내가 가면은 두 분 행복하게 사시라고 울면서 떠나왔어요 강릉에서. 밤에 눈물을 흘리고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고 나온 데가 강릉이에요.”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남편분의 말에 담긴 존칭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것이 미움보다 더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아픔보다 ‘어머니의 밥’을 기억했다.

 

“열여섯 살 때. 한 6개월 정도 어머니의 밥을 먹어봤어요. 밥이 참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먹는 밥이 되게 맛있더라고요. 처음 해주시는 밥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먹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어머니의 자식을 태어나서 진짜 부모 자식의 정다운 정을 느끼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리광도 피워보고 효도도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솔직히 지금도 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들으며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니 이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위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사랑해야 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해보지 못한 어리광을 아내에게 한다는 남편과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며 웃는 아내. 사랑을 못 느껴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몰라 힘들었다는 남편이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다”는 아내에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춘천에 유독 사랑꾼들이 많은 것인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은 어느 빵집에서의 사연 역시 사랑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수공예 일을 하다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로 쫓겨나 춘천으로 오게 됐다는 권성기씨와 그 아내 권진미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 권성기씨지만 그 사연 속에서 어찌 힘겨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도중 외곽에서 카페 한다는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마침 퀴즈 맞혀 100만원 받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유재석이 묻자, “결혼 10주년인데 아내에게 주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던 참이었다. 그 말을 유재석이 아내에게 전하자 갑자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아내. “너무 고마워서”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단지 그 10주년과 100만원에 대한 고마움만이 담긴 게 아니었다.

 

“일이 많이 힘들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다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그래서 여기까지 버티고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기 거는 하나도 안하고 저한테만 다 주기만 하니까.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유재석의 눈이 촉촉해졌다. 아마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낙엽이 익어가는 가을에 춘천을 찾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청춘(靑春)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마도 춘천이란 지명에서 청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번 편이 보여준 건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남달랐던 건 그 열렬하고 달달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겨울을 앞둔 스산한 그 힘겨움들 앞에서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랑이었다. 스산한 가을에 찾아갔지만 거기서 느껴진 따뜻한 봄의 풍경들. 오늘도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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