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2’의 육각형 인재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광기 사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민시야. 물은 마셨어?”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정신없이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쉬지 않고 요리를 내놓느라 탈탈 털린 최우식이 함께 일한 고민시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고민시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아니요. 전 화장실 갈까 봐도 못 마시겠어요.” 그 말에 최우식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짐짓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처 그거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했다”며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사실 ‘서진이네2’에 새롭게 합류한 고민시지만 그가 영업 첫날부터 이만큼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윤식당’이나 ‘서진이네’를 하면서 첫 날은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 손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메인 셰프를 바꿔가며 하자는 새로운 룰을 제안한 이서진도 첫 날 셰프로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 최우식을 세운 거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날부터 오픈런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날의 메인셰프를 맡은 최우식과 인턴 주방 보조인 고민시는 넉다운될 정도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했던가. 고민시는 다양한 알바 경험들을 했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빠릿하게 모든 상황들을 알아서 보조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건 고민시라는 육각형 인재의 진가가 이제 겨우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불과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메인 셰프만 정유미, 박서준으로 바뀌고 모든 날 주방 보조로 일을 하게 된 고민시는 갈수록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메인 셰프가 바쁠 때는 직접 요리까지 했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손님이 오기도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놓음으로써 모든 상황들을 물 흐르듯 막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서진이네2’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어느 순간 적응한 그는 그 날의 메인 셰프에 맞는 다양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어딘가 서툴지만 그래도 해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최우식과는 빵빵 터지는 남매 케미를 보여줬다면, 안정감 있는 주방을 만들어내는 정유미와는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든든한 자매 케미를 선사했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온 듯한 박서준과는 마치 새롭게 창업한 청춘들의 가게 같은 동료로서의 케미를 그려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서진이네2’는 여러모로 고민시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건 못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뛰어들어 열심히 해내는 데서 나오는 저력이다. 첫 날 그 고생을 하고도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고민시에게서는, 배역을 맡았을 때의 그의 모습이 슬쩍 비춰진다. 연기에 있어서 쉬운 역할이 어디 있으랴. 다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침 ‘서진이네2’와 함께 서비스된 두 작품에서의 고민시가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스위트홈3’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그 두 작품으로 둘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다. ‘스위트홈’은 사실상 처음으로 고민시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고민시가 연기한 이은유라는 캐릭터는 발목 부상으로 발레의 꿈을 접은 인물이다. 그래서 발레를 하는 짧은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걸 위해 고민시는 7개월 동안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발레를 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서진이네2’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엄청난 유연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유연한 피지컬은 시즌3까지 이어진 ‘스위트홈’은 물론이고 최근 서비스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액션 연기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민시는 특유의 강인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배우다. 단호한 얼굴로 부릅 뜬 눈은 그래서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결연함 같은 게 느껴지게 만든다. ‘오월의 청춘’은 이 강인함이 김명희라는 생명력 넘치는 간호사 역할로 그려졌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백의의 전사’에 가까운 강인한 면모를 가진 간호사여서 희태(이도현)와의 비극적이고 절절한 사랑이 더욱 먹먹하게 느껴지게 하는 그런 연기를 펼쳤다. 마찬가지로 이 강인한 이미지는 ‘스위트홈3’에서 모든 게 무너지고 오빠마저 잃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아마도 고민시의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고민시는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미스테리한 인물 유성아를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어느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전영하(김윤석)가 운영하는 펜션에 유성아가 한 아이와 함께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그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실로 고민시로 시작해 고민시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지분이 확실한 작품이다. 평화롭던 숲속의 펜션을 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움으로서 이 스릴러를 연 고민시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보여줌으로써 극을 파국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섬뜩하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연출된 작품 안에서 고민시는 반쯤 풀린 듯한 눈빛과 순간 노려보는 눈빛으로 허무와 광기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분위기로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육박전은 웬만한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실감을 담아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났겠는가?” 매 회 이러한 화두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사건 사고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세상을 꼬집는 스릴러다. 분명 큰 사건이 터졌지만 그걸 모른 척 한 것이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말해주는 작품. 그런데 이 화두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고민시의 연기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요 속의 강렬함이라고 해야할까. 고민시가 가진 그런 이미지가 끝내 쿵 소리를 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뭐든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서도 금세 적응해내고 마치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여겨질 정도로 빠져드는 이 몰입의 힘은 이 배우가 향후 확장해나갈 무한한 가능성을 예상케 하는 면이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기안84표 여행이라 가능한 새로운 도전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Fxxx MBC” 기안84의 입에서 순간 욕이 튀어나온다. 어둑한 공터 같은 곳에 모여 싸이퍼 대결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자신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가사까지 고민한 후 나선 기안84였다. 하지만 막상 뛰어든 싸이퍼 도전에 말문이 막히고, 리듬은 계속 흘러나오고, 뭔가 좀 센 척 해야 할 것 같은 급한 마음까지 더해져 저도 모르게 그런 욕이 튀어나온다. 그걸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보던 출연자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쓰러졌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이번에는 ‘음악일주’로 돌아왔다. 어려서 꿈이 가수였다는 기안84가 음악을 소재로 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콘셉트다. 그래서 떠난 뉴욕. 지금까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떠났던 오지와는 사뭇 달라서 날 것의 어행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오해일 뿐이었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 거나 일단 부딪치고 보는 기안84 특유의 여행은 여전히 날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은 후 아무데나 누워 잠시 잠을 청하고 일어나, 갑자기 몰려오는 복통에 화장실을 찾으러 다니는 기안84의 모습부터 어딘가 우리가 생각해온 뉴욕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결이 느껴졌다. 마약 문제 때문에 공중화장실이 별로 없는 뉴욕 한 복판에서 화장실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기안84의 모습은 이 여행이 뉴욕 하면 떠오르는 한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길거리를 우아하게 활보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는 걸 실감케 했다. 

 

그리고 또 무작정 힙합의 고향 브롱크스를 찾아가면서 마주하게 된 길거리 풍경 역시 어딘가 살풍경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곳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힙합 하는 친구들은 기안84로 하여금 브루클린의 어느 작은 공터에서 벌어지는 싸이퍼 현장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싸이퍼 대결이 벌어진다며 장소를 알려준 것. 그래서 찾아간 그 곳에서 싸이퍼 대결을 벌이는 이들을 직관하다가 무작정 나선 기안84는 역시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마구 던져보는 특유의 힙합 바이브를 보여줬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도 그랬지만 이번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역시 기안84가 간 뉴욕은 지금껏 다른 여행 프로그램들이 가지 않았던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무수한 여행 프로그램들이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여행 프로그램들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리얼한 현장의 날 것이 주는 새로움은 역시 기안84여서 가능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밤에 길거리를 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뉴욕의 거리가 아닌가.

 

게다가 그 위험을 뚫고 가서도 생전 한 번 해보지도 않은 랩을 그것도 현지의 진짜 힙합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모하게 도전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스튜디오에서 그 영상을 직관하는 래퍼 쌈디도 그래서 기안84가 그 안에 뛰어들어 랩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건 자기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잘 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못해도 뛰어들어야 할 수 있는 것. 다소 무모하게 뛰어드는 기안84여서 가능한 색다름이 이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번 넘기 힘든 선을 넘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하던가. 기안84의 여행은 그 싸이퍼 대결 현장에서부터 엉뚱한 길로 이어져 간다. 그 곳에서 만난 친구 브이솝시티가 기안84를 자신의 음악스튜디오에 초대하고 그래서 찾아간 곳에서 그를 만난 후 그가 해주는 브루클린 투어를 하며 한 명 두 명 모여드는 그의 친구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간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어우러지며 다음 주 예고편에는 이들이 함께 패밀리(?)가 되어 현지 그대로의 바이브를 즐기는 모습이 펼쳐진다. 

 

너무 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가보지 않은 곳을 점점 찾기 힘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채워지곤 하는 게 현재 여행 예능의 현실이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를 보면 같은 지역이라도 완전히 예상을 깨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능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건 결국 누가 무슨 이유로 여행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는 어려서 가수의 꿈을 가졌던 기안84가 힙합의 본고장인 뉴욕 한 복판으로 날아가 그들과 어우러지며 그 문화에 고스란히 젖어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안84 같은 무조건 덤비고 보는 도전적인 인물이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떠나는 이 음악여행이 음악과 그들의 문화를 얼마나 가깝게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사진:MBC)

유퀴즈 온 더 블럭

 

“손흥민, 김연아에 맞춰진 눈높이가 기준이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기자회견장에서 한 작심발언에 대해 배드민턴협회는 장문의 보도자료와 함께 문제의 발언을 내놨다. 그 발언에 대해 누리꾼들의 맹비난이 이어졌다. 안세영 선수가 그간 거둔 성과는 ‘손흥민, 김연아 급’이 맞다는 이야기다. 사실이 그렇다. 안세영 선수는 22살의 나이지만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그리고 올림픽에서도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든 국제대회 배드민턴 경기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니 손흥민, 김연아 급은 아니라는 협회의 비꼬는 뉘앙스가 담긴 발언에 누리꾼들이 발끈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협회의 이 발언이 더 당혹스러운 건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맞닥뜨리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른바 국가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엘리트들을 선발하고 그들을 국가대표로 키워내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따오는 것이 우리네 스포츠가 지금껏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한 동력이었다. 실제로 이처럼 될 성 부른 싹을 일찍부터 발굴해 육성하고 집중 지원하는 방식은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게 사실이다. 88올림픽 때 무려 총 메달 33개를 땄던 것도 또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따는 놀라운 성과를 낸 것도 이러한 엘리트 스포츠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이 힘을 발휘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집중 육성과 일반인들의 생활체육이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엘리트 스포츠의 성과는 정반대로 일반인들의 생활체육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배드민턴 같은 종목은 단적인 사례다. 올림픽 등을 통해 전해진 승전보가 가져온 효과로 배드민턴 동호인 수가 급증했다. 그 저변이 현재는 약 3백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즉 스포츠에서 엘리트를 육성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제 집단적 성과만이 목표가 아닌 개인의 성취가 중요해진 시대에 과거적 개념의 시스템을 고집하는 건 자칫 개인들의 동기부여를 막아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세영 사태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안세영 선수도 밝힌 것처럼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시대에 맞는 보다 융통성 있는 열린 접근으로 이렇게 등장하는 불합리한 관행들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협회에서 ‘형펑성’을 문제로 들고 나와 안세영 선수의 주장을 ‘특혜’처럼 치부하는 이야기 속에는 안타깝게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도 된다는 과거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담겨있다. 이건 7,8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의 방식이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나서고 가족구성원들이 희생하는 가부장적 시스템이 그것이었고, 직장에서도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일하는 이른바 ‘가족경영’이 그것이었다. 국가 역시 모두가 매일 같이 태극기 앞에 멈춰서서 의례를 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래서 실제로 나라는 잘 살게 됐고, 국민 개인소득도 높아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그런 집단의 이익이 실현되면서 야기하는 개인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다. 한 개인이 하는 이야기를 이제 그저 ‘일탈’이라고 치부하는 일은 그래서 집단주의 시대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은 그래서 ‘손흥민, 김연아 급’ 운운하며 비꼬는 투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사실상 현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 중 최고의 성과를 낸 선수가 하는 말이 아닌가. 경청하고 대화를 통해 수용할 건 수용해야 하는 게 맞다. 

 

특히나 이번 작심발언에서 개인 후원 계약 제한 문제나 개인 자격 국제대회 출전 제한 문제는, 개인주의 시대로 들어온 현재 개인적 차원에서의 충분한 동기부여를 위해서도 진지하게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제 국가가 몇 개의 메달을 따내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는 지나갔다. 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일은 때로는 경기 조작 같은 부작용으로도 나타나지 않았던가. 이제는 반대로 스포츠 선수 개개인들이 자신이 하는 종목에서 성과를 내면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한다. 

 

개인 후원 계약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후원사들이 스타선수들에게 몰려, 협회로서는 후원금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대표팀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고민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협회 중심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은 제2의 안세영, 나아가 제2의 손흥민, 김연아가 나오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또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국가대표로 활동한 기간이 5년이 넘어야 하고 여자는 만 27세, 남자는 만 28세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 규정도 좀더 융통성 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규정은 국가대표를 마치 군복무처럼 의무화하는 조항처럼 보인다. 제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있어도 의무를 치러야 국제대회 등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안세영 선수가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7년 동안 막내로서 일부 대표팀 선배들의 방청소와 빨래를 대신했다는 이야기 또한 너무나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대중문화를 들여다보는 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안세영 사태는 마치 K팝의 글로벌 성공과 함께 등장했던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변화의 요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스포츠가 엘리트들을 모아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가져온 것처럼, K팝도 유사한 연습생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장기 계약 문제나 연습생 개개인들의 인권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조금씩 시스템 또한 변화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 변화과정 동안 적지 않은 안세영 선수 같은 이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아픈 목소리들을 들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관행처럼 과거의 기준들이 전도 유망한 청춘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사진:tvN)

‘엄마친구아들’, 친구, 가족, 사랑, 휴먼까지 다 담은 종합선물세트

엄마 친구 아들

정해인과 정소민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tvN 새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커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으로 멜로의 결을 제대로 보여줬던 정해인이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부터 ‘간 떨어지는 동거’ 그리고 ‘환혼’에서 무덕이 역할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정소민이다. ‘엄마친구아들’은 캐스팅부터 제대로 힘을 줬다. 

 

그래서인지 첫 회는 사실상 이 두 배우가 입은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온전히 채워졌다. 잘 나가는 젊은 건축가인 최승효(정해인)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해 이제 결혼식까지 앞둔 탄탄대로의 배석류(정소민)가 그들이다. 어려서 같은 목욕탕 그것도 같은 탕에서 목욕까지 같이 했던 소꿉친구지만,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까지 찍었던 석류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 게다가 폭탄 발언까지 한다. 회사도 그만 뒀다고. 그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황당해 화가 잔뜩 난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이 대파로 딸을 때릴 때 그걸 온전히 다 맞은 건 다름 아닌 승효다. 미국에서 돌아온 석류와 승효가 진짜 엄친아, 엄친딸처럼 티격태격하며 보여주는 그 친밀함으로 가득 채워진 첫 회. 두 사람이 연애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그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로맨스가 더더욱 기대된다. 

 

드라마는 신하은 작가의 전작이었던 ‘갯마을 차차차’가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성들이 담는 재미들로 포진되어 있다. 시작부분에 승효의 엄마 혜숙(장영남)과 석류의 엄마 미숙, 또 모음(김지은)의 엄마 재숙(김금순)과 이들 4인방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인숙(한예주)이 함께 등산을 하며 자식 자랑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는 마치 가족드라마의 도입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가족’이라는 소재를 먼저 밑그림으로 깔고 있다는 걸 그 도입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혜숙과 미숙이 자식 자랑 배틀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승효와 석류로 옮겨가고 석류의 귀국으로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석류의 둘도 없는 친구 모음의 이야기도 슬쩍 들어가 있다. 119 구급대원으로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그의 매력을 우연히 보고 겪게 된 청우일보 기자 단호(윤지온)와의 심상찮은 멜로가 벌써부터 예고된다. 또 119 구급대원인 모음이 술 취해 쓰러진 당뇨 노숙인을 도와주는 이야기에서는 이 작품이 뻗어놓은 이야기가 휴먼드라마적인 부분까지 나아갈 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엄친아, 엄친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족드라마적 서사와 더불어, 승효와 석류 그리고 모음과 단호의 멜로가 더해져 있고 그들 간의 끈끈한 우정 또한 빠지지 않는다. 나아가 각각의 인물들이 숨겨온 서사들이 등장하면서 아마도 이 작품은 휴먼드라마의 결까지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의 묘미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담아내는 작품이 될 거라는 것.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관계에 있어서 없는 게 없는 ‘엄친아’ 같은 드라마랄까. 

 

어찌 보면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어서 슴슴한 맛으로 시작되지만 인물 간의 관계성이라는 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은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삶이 팍팍해 더더욱 웃음이 간절해지는 시기에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의 밀도는 승효와 석류가 주고받는 대사의 말맛에서부터 느껴진다. 

 

끝없이 티격태격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무심한 척 가장하지만 승효와 석류가 던지는 몇 마디는 두 사람의 진심을 슬쩍 꺼내보인다.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한꺼번에 둘이나 내렸잖아. 타격이 없으면 그게 사람이냐? 인형이지.” 석류에 대한 승효의 걱정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그 잘나가던 석류는 왜 퇴사에 파혼까지 하고 귀국하게 된 걸까. 석류 또한 승효에게 그 이유를 차분히 꺼내놓는다. 

 

“그냥 내 인생이 너무 과열됐던 것 같아. 나 엄청 빡세게 살았잖아. 한국에서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가고 거기서 또 적응하고 취직하고 결혼까지 그렇게 내내 풀가동을 돌리니까 CPU가 멈춰버린 거지. 화면도 멎고 아무 키도 안 먹고 별 수 없더라. 그냥 전원을 껐다 켜는 수밖에.” ‘갯마을 차차차’에서부터 일관된 주제의식이지만 ‘엄마친구아들’ 역시 치열한 삶에 방전된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이야기를 그려나갈 거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엄친아’, ‘엄친딸’을 이야기할 때 그 의미에 담겨 있는 건 ‘비교’이고 마치 성공의 지표처럼 내세워지는 어떤 삶이다. 그래서 그 삶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가 꺼내놓은 게 바로 ‘엄친아’라는 단어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이걸 제목으로 세워놓은 이 작품은 그런 비교와 경쟁 사회의 강박관념을 잠시 벗어던지게 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치열한 성공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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