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플루언서’가 꺼내 보여준 인플루언서들의 민낯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놨다. ‘더 인플루언서’가 그것이다. 77인의 인플루언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정 미션을 수행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성공했고 살아남았는가가 엿보인다. 

더 인플루언서

관심으로 생존하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의 포스터에는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한 줄이 사실상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등 소셜 플랫폼에서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 77인이 한 자리에 모여 끝까지 살아남는 1인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구독자수에 비례해 3억원이라는 총상금 액수를 나눈 수치가 ‘몸값’으로 찍히는 목줄을 차고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시작된 서바이벌. 그건 소셜 플랫폼에서 구독자와 조회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처럼 보인다. 

 

77인이 저마다 ‘좋아요’ 15명, ‘싫어요’ 15명씩 투표하는 첫 번째 미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같은 보통의 상식으로 본다면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고 ‘싫어요’를 적게 받느냐가 이 미션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즉 ‘좋아요’ 수에서 ‘싫어요’ 수를 빼서 누가 더 많은 수를 얻느냐가 이 미션의 승리자일 거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그걸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많이 제작해옴으로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진용진은 정확히 꿰뚫어본다.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가 관건인 인플루언서들에게 ‘좋아요’든 ‘싫어요’든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이 관점은 실제로 이 미션의 진짜 목표가 된다. 그걸 간파한 이들은 이제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를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구독자수가 많아 가장 많은 상금을 가진 이들이 ‘싫어요’의 타깃이 되었지만, 진용진의 이 생각이 전파되면서 이제는 ‘싫어요’를 요구하는 이상한 풍경들이 생겨난다. 치열하게 ‘싫어요’를 받아낸 장근석과 빠니보틀은 그래서 이 미션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다.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그 문구가 사실상 이 서바이벌의 색깔이라는 걸 이 첫 번째 미션이 드러낸다. 재미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인플루언서들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 미션은 말해준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그 후 9년

2015년 MBC에서 방영됐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전조였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의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부분 담겨진 예능이었다. 거기에는 김구라, 초아, 홍진영 같은 연예인들이 참여했지만 동시에 이말년이나 황재근, 차홍, 정샘물 같은 인플루언서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비연예인들도 참여했다. 스튜디오에 꾸려진 여러 방들에 들어가 저마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 가장 시청률이 높은(평균 시청률과 최고 시청자수로 계산) 출연자가 우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현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박진경 PD와 함께 연출했던 이재석 PD가 기획, 연출한 ‘더 인플루언서’는 그간의 시간만큼 변화된 콘텐츠의 환경을 보여준다. 일종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넷플릭스 버전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소셜 플랫폼에서 유명해져 많게는 연간 수십 억의 수입을 얻게 된 인플루언서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미션으로 치러진 라이브 방송 미션을 보면 그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미션을 위해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거꾸로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도서관은 배우 설인아를 섭외했고, 준우는 가수 에일리를 섭외했다. 무엇보다 이 거꾸로 뒤집어진 영향력을 말해주는 건 장근석이 초보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전에 뛰어들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연예인들에게도 인플루언서는 이제 하나의 워너비가 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콘텐츠보다 관심이 더 앞서는 현실

그런데 막상 ‘더 인플루언서’에서 여러 미션들을 통해 살아남는 생존자들을 보니 그것이 콘텐츠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관심’이 우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진용진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자신의 수익을 공개한다거나 하는 식의 관심 끌기에 집중했다. 장근석이 매운 음식들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방을 하고, 뷰티 크리에이터인 이사배가 분장에 가까운 화장술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서의 방송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결과는 영알남(영어 알려주는 남자)이나 차홍처럼 콘텐츠로 승부하는 이들은 탈락하고, 진용진은 살아남았다. 또 벼랑 끝에 몰려 넷플릭스 욕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 장지수는 끝내 살아남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른바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이런 미션 방식과 결과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2인1조 팀전으로 치러진 피드 사진 미션에서도 평가단 100인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는 건 사진의 내용이 아니었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모습이나 글귀들이 더 높은 주목도를 낳았고, 인플루언서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시도하기도 하고 나아가 아예 사진이 아닌 글귀로만 채워진 피드도 올라왔다. 또 SNS를 통해 최대한 많은 댓글을 받는 미션에서도 선물 공세를 한다거나,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다는 이벤트를 하는 등의 시도들이 이어졌다. 댓글을 유도하기 위한 이들의 노하우가 드러나긴 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통해 주고받는 소통이라는 댓글 본연의 기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 올라온 오킹, 장지수, 빠니보틀 그리고 이사배 중 끝까지 살아남은 이사배와 오킹의 대결에서 결국 오킹이 3억원 상금의 주인공이 된 사실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관심을 유도하는 노하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화장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로 승부한 이사배는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오킹의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방송과 먹방, 즉석 소개팅 등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더 인플루언서’는 우승자가 된 오킹이 그간 인기만큼 크고 작은 논란의 주인공이고 최근에도 코인 관련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도 들여다볼 지점이 있다. 이것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조차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 세계의 높은 영향력에 비해 갖는 낮은 책임감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건 상대적으로 연예인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낮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최근 방송이 이제 유튜브 같은 소셜 플랫폼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피식대학이 지역 비하 논란으로 순식간에 많은 구독자들의 이탈을 경험한 건 영량력이 높아진 이들에게도 그만한 책임을 요구하게 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엄청난 관심을 받고,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도 해서 부러움을 사지만 ‘더 인플루언서’를 통해 보는 그들의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하는 SNS 시대의 씁쓸한 현실이다. 인플루언서는 그 극단화된 사례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대신 사람은 죽이지마.” 추창민 ‘행복의 나라’

행복의 나라

“왕이 되고 싶으면 왕 해. 돈이 갖고 싶으면 대한민국 돈 다 가져. 대신 사람은 죽이지마.” 추창민 감독의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는 합수단장 전상두(유재명)에게 독기에 찬 시선으로 그렇게 말한다. 1979년 10월26일 벌어진 대통령 암살 사건에 상관의 명령으로 개입하게 된 박태주(이선균). 사실상 재판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전상두에 의해 그는 소신을 꺾지 않으면 사형을 당할 처지다. 박태주는 군인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게 소신이고, 그래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거라고 말하는 타협 없는 인물이다. 정인후는 어떻게든 사형만은 막기 위해 박태주에게 법정에서 유리한 증언을 제안하지만 그는 끝내 이를 거부한다.  

 

10.26 사건에 연루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박흥주 대령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은 ‘사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태주가 죽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하는 소신은 그를 변호하는 정인후를 미치게 만들지만, 거기에는 생사 앞에서도 굳건한 사람의 위대한 가치가 엿보인다. 박태주의 그런 선택은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전상두라는 인물의 가치를 보잘 것 없게 만든다. “니가 무슨 짓을 하든 그 놈은 죽어.” 제 권력과 욕심에 눈 멀어 생명과 소신 따위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는 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로 왕이 절대 권력을 갖던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그 말 한 마디에 생사가 바뀔 수 있을만큼 가벼웠다. 돈이 절대적인 힘이 되어버린 시대에서도 사람의 가치는 돈 앞에서 폄하되곤 한다. 정인후가 굳이 권력과 돈을 다 가져도 좋지만 사람만은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는 건 그래서다. 제 아무리 사람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해도 끝내 지켜야 할 한 가지가 바로 생명이니 말이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행복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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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네2’의 육각형 인재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광기 사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민시야. 물은 마셨어?”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정신없이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쉬지 않고 요리를 내놓느라 탈탈 털린 최우식이 함께 일한 고민시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고민시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아니요. 전 화장실 갈까 봐도 못 마시겠어요.” 그 말에 최우식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짐짓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처 그거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했다”며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사실 ‘서진이네2’에 새롭게 합류한 고민시지만 그가 영업 첫날부터 이만큼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윤식당’이나 ‘서진이네’를 하면서 첫 날은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 손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메인 셰프를 바꿔가며 하자는 새로운 룰을 제안한 이서진도 첫 날 셰프로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 최우식을 세운 거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날부터 오픈런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날의 메인셰프를 맡은 최우식과 인턴 주방 보조인 고민시는 넉다운될 정도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했던가. 고민시는 다양한 알바 경험들을 했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빠릿하게 모든 상황들을 알아서 보조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건 고민시라는 육각형 인재의 진가가 이제 겨우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불과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메인 셰프만 정유미, 박서준으로 바뀌고 모든 날 주방 보조로 일을 하게 된 고민시는 갈수록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메인 셰프가 바쁠 때는 직접 요리까지 했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손님이 오기도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놓음으로써 모든 상황들을 물 흐르듯 막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서진이네2’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어느 순간 적응한 그는 그 날의 메인 셰프에 맞는 다양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어딘가 서툴지만 그래도 해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최우식과는 빵빵 터지는 남매 케미를 보여줬다면, 안정감 있는 주방을 만들어내는 정유미와는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든든한 자매 케미를 선사했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온 듯한 박서준과는 마치 새롭게 창업한 청춘들의 가게 같은 동료로서의 케미를 그려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서진이네2’는 여러모로 고민시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건 못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뛰어들어 열심히 해내는 데서 나오는 저력이다. 첫 날 그 고생을 하고도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고민시에게서는, 배역을 맡았을 때의 그의 모습이 슬쩍 비춰진다. 연기에 있어서 쉬운 역할이 어디 있으랴. 다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침 ‘서진이네2’와 함께 서비스된 두 작품에서의 고민시가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스위트홈3’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그 두 작품으로 둘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다. ‘스위트홈’은 사실상 처음으로 고민시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고민시가 연기한 이은유라는 캐릭터는 발목 부상으로 발레의 꿈을 접은 인물이다. 그래서 발레를 하는 짧은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걸 위해 고민시는 7개월 동안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발레를 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서진이네2’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엄청난 유연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유연한 피지컬은 시즌3까지 이어진 ‘스위트홈’은 물론이고 최근 서비스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액션 연기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민시는 특유의 강인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배우다. 단호한 얼굴로 부릅 뜬 눈은 그래서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결연함 같은 게 느껴지게 만든다. ‘오월의 청춘’은 이 강인함이 김명희라는 생명력 넘치는 간호사 역할로 그려졌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백의의 전사’에 가까운 강인한 면모를 가진 간호사여서 희태(이도현)와의 비극적이고 절절한 사랑이 더욱 먹먹하게 느껴지게 하는 그런 연기를 펼쳤다. 마찬가지로 이 강인한 이미지는 ‘스위트홈3’에서 모든 게 무너지고 오빠마저 잃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아마도 고민시의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고민시는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미스테리한 인물 유성아를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어느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전영하(김윤석)가 운영하는 펜션에 유성아가 한 아이와 함께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그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실로 고민시로 시작해 고민시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지분이 확실한 작품이다. 평화롭던 숲속의 펜션을 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움으로서 이 스릴러를 연 고민시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보여줌으로써 극을 파국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섬뜩하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연출된 작품 안에서 고민시는 반쯤 풀린 듯한 눈빛과 순간 노려보는 눈빛으로 허무와 광기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분위기로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육박전은 웬만한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실감을 담아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났겠는가?” 매 회 이러한 화두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사건 사고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세상을 꼬집는 스릴러다. 분명 큰 사건이 터졌지만 그걸 모른 척 한 것이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말해주는 작품. 그런데 이 화두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고민시의 연기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요 속의 강렬함이라고 해야할까. 고민시가 가진 그런 이미지가 끝내 쿵 소리를 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뭐든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서도 금세 적응해내고 마치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여겨질 정도로 빠져드는 이 몰입의 힘은 이 배우가 향후 확장해나갈 무한한 가능성을 예상케 하는 면이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기안84표 여행이라 가능한 새로운 도전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Fxxx MBC” 기안84의 입에서 순간 욕이 튀어나온다. 어둑한 공터 같은 곳에 모여 싸이퍼 대결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자신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가사까지 고민한 후 나선 기안84였다. 하지만 막상 뛰어든 싸이퍼 도전에 말문이 막히고, 리듬은 계속 흘러나오고, 뭔가 좀 센 척 해야 할 것 같은 급한 마음까지 더해져 저도 모르게 그런 욕이 튀어나온다. 그걸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보던 출연자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쓰러졌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이번에는 ‘음악일주’로 돌아왔다. 어려서 꿈이 가수였다는 기안84가 음악을 소재로 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콘셉트다. 그래서 떠난 뉴욕. 지금까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떠났던 오지와는 사뭇 달라서 날 것의 어행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오해일 뿐이었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 거나 일단 부딪치고 보는 기안84 특유의 여행은 여전히 날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은 후 아무데나 누워 잠시 잠을 청하고 일어나, 갑자기 몰려오는 복통에 화장실을 찾으러 다니는 기안84의 모습부터 어딘가 우리가 생각해온 뉴욕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결이 느껴졌다. 마약 문제 때문에 공중화장실이 별로 없는 뉴욕 한 복판에서 화장실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기안84의 모습은 이 여행이 뉴욕 하면 떠오르는 한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길거리를 우아하게 활보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는 걸 실감케 했다. 

 

그리고 또 무작정 힙합의 고향 브롱크스를 찾아가면서 마주하게 된 길거리 풍경 역시 어딘가 살풍경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곳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힙합 하는 친구들은 기안84로 하여금 브루클린의 어느 작은 공터에서 벌어지는 싸이퍼 현장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싸이퍼 대결이 벌어진다며 장소를 알려준 것. 그래서 찾아간 그 곳에서 싸이퍼 대결을 벌이는 이들을 직관하다가 무작정 나선 기안84는 역시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마구 던져보는 특유의 힙합 바이브를 보여줬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도 그랬지만 이번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역시 기안84가 간 뉴욕은 지금껏 다른 여행 프로그램들이 가지 않았던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무수한 여행 프로그램들이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여행 프로그램들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리얼한 현장의 날 것이 주는 새로움은 역시 기안84여서 가능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밤에 길거리를 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뉴욕의 거리가 아닌가.

 

게다가 그 위험을 뚫고 가서도 생전 한 번 해보지도 않은 랩을 그것도 현지의 진짜 힙합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모하게 도전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스튜디오에서 그 영상을 직관하는 래퍼 쌈디도 그래서 기안84가 그 안에 뛰어들어 랩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건 자기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잘 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못해도 뛰어들어야 할 수 있는 것. 다소 무모하게 뛰어드는 기안84여서 가능한 색다름이 이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번 넘기 힘든 선을 넘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하던가. 기안84의 여행은 그 싸이퍼 대결 현장에서부터 엉뚱한 길로 이어져 간다. 그 곳에서 만난 친구 브이솝시티가 기안84를 자신의 음악스튜디오에 초대하고 그래서 찾아간 곳에서 그를 만난 후 그가 해주는 브루클린 투어를 하며 한 명 두 명 모여드는 그의 친구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간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어우러지며 다음 주 예고편에는 이들이 함께 패밀리(?)가 되어 현지 그대로의 바이브를 즐기는 모습이 펼쳐진다. 

 

너무 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가보지 않은 곳을 점점 찾기 힘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채워지곤 하는 게 현재 여행 예능의 현실이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를 보면 같은 지역이라도 완전히 예상을 깨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능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건 결국 누가 무슨 이유로 여행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는 어려서 가수의 꿈을 가졌던 기안84가 힙합의 본고장인 뉴욕 한 복판으로 날아가 그들과 어우러지며 그 문화에 고스란히 젖어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안84 같은 무조건 덤비고 보는 도전적인 인물이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떠나는 이 음악여행이 음악과 그들의 문화를 얼마나 가깝게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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