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부족해” 켈시 만 ‘인사이드 아웃2’

인사이드 아웃2

불안은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게 하고 그래서 대비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부러움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 보다 성숙한 나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들이 과해질 때다. 과도한 불안은 그 사람의 영혼을 잠식해버리기도 하고, 과도한 부러움은 자기비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디즈니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는 바로 이 불안과 부러움 같은 감정들이 야기하는 사건들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사춘기를 맞은 라일리의 감정 제어 본부에 생겨난 변화로 시작한다. 불안, 부럽, 따분, 당황이라는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기쁨이를 비롯한 기존 감정들을 내쫓은 후 본부를 장악해버린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의 리더가 불안이라는 점은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들이 갖는 불안감을 잘 표현한다. 불안이는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라일리의 자아를 멀리 보내고, 대신 ‘난 아직 부족해’라는 새로운 자아를 세워놓는다. 뭘 해도 부족하게 느끼는 열등감은 라일리로 하여금 과한 행동들을 하게 만들고 끝내는 폭주하게 만드는데, 라일리는 그래서 끝없이 “난 아직 부족해”라고 속으로 되뇌이게 된다.

 

이 이야기는 라일리라는 한 사춘기 소녀의 감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지 우리네 한국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잘 살기 위해 생존경쟁하듯 노력해 압축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그 관성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열심히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자족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이제는 불안과 부러움에 휩쓸리기보다 그 감정들조차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이는 보다 성숙한 삶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동아일보, 사진:영화'인사이드아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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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으로 27년만에 연극 무대에 선 전도연

벚꽃동산

어떤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서도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 있다. 배우 전도연이 그렇다. 최근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 원작을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재해석해 내놓은 연극 ‘벚꽃동산’의 무대에 선 전도연은 첫 등장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건 전도연이 자신의 삶을 투영해내 몰입해낸 연기라는 점에서 관객들 또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 배우가 지금껏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하며 대중들을 울리고 웃겼는지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무대 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농노해방이 일어났던 1861년 이후 러시아의 혁명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벚꽃동산이 있는 대저택의 소유주였던 류바가 오랜 타국 생활에서 귀향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면서 결국 농노 출신으로 그 집안에서 컸지만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상인 로파힌에게 벚꽃동산도 또 집도 모두 팔린 채 그 곳을 떠나게 되는 류바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농노해방 시기에 벌어지는 신분 체계의 해체와 이로 인한 귀족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한때 찬란하게 빛나던 것들도 결국은 지는 벚꽃처럼 스러지고 사라져간다는 보다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까지 은유하는 명작이다. 

 

사이먼 스톤은 이 원작의 이야기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했다. 한 때는 잘 나갔지만 가세가 기운 재벌가의 송도영(전도연)이 10년 전 아들을 사고로 잃고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시작한다. 원작에서 류바가 그러했던 것처럼, 송도영 역시 무너져가는 집안의 현실을 부정하고, 그 집 운전기사의 아들 황두식(박해수)이 남의 손에 벚꽃동산이 넘어가는 걸 어떻게든 막으려 애쓰다 결국 자신이 사게 되는 상황을 그렸다. 구체적인 현실 상황들은 조금 다르지만, 작품의 정조는 유사하다. 한때 잘 나가던 인물의 몰락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그래서 전도연이 연기한 송도영은 어딘가 배우의 경험이 투영된 인물처럼 보인다. 연기자로서 해보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장르들을 섭렵했고, 또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칸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던 전도연이 아닌가. 최고의 위치란 결국 더 오르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내려와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실제로 전도연은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고,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지만 그 후 꽤 많은 작품들을 했음에도 생각만큼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영화 ‘카운트다운’,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협녀, 칼의 기억’, ‘남과 여’, ‘생일’ 등등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영화배우로 워낙 빛나는 성취들을 보였기 때문에 영화만 고집해온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전도연은 1992년 ‘TV손자병법’과 ‘우리들의 천국’ 같은 드라마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 후로도 ‘젊은이의 양지’나 ‘별은 내 가슴에’ 같은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영화 ‘접속’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 후에 ‘약속’, ‘내 마음의 풍금’, ‘해피엔드’ 같은 일련의 작품들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더 집중해왔다. ‘프라하의 연인’ 같은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 후 한동안 드라마에서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전도연이 다시 TV에 등장한 건 2016년 ‘굿와이프’에서부터였다. 즉 영화로 최고점을 찍은 후, 한동안 주춤했던 전도연의 행보는 최근 들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통해 글로벌 존재감을 드러냈고, ‘인간실격’에 이은 ‘일타스캔들’로 안방극장에서도 건재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 ‘벚꽃동산’으로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출연 이후 27년만에 연극무대로도 영역을 넓힌 것이다. 

 

최근에 전도연이 했던 작품들의 연기를 들여다 보면 이제 엄마 역할을 받아들이면서 다채로운 면들을 끌어내는데 있어 훨씬 자연스러워진 성숙함이 느껴진다. ‘길복순’에서는 킬러이면서 살인자들보다 더 무서운 딸 양육을 해야 하는 엄마 역할을 화려한 액션과 섬세한 심리연기로 선보였고, ‘일타스캔들’에서는 딸의 공부를 챙기다 알게된 일타강사와 사랑에 빠지는 반찬가게 사장 역할로 모성애와 러블리한 연인의 면면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물론 ‘벚꽃동산’에서도 딸과 위치가 뒤바뀐 것 같은 현실감각이 별로 없는 엄마 역할을 소화했지만 그 연기의 결은 훨씬 더 다채롭다. 이야기는 비극이지만 그 과정은 빵빵 터지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희극인 이 작품에서 전도연은 그 희비극을 넘나든다. 마치 다양한 경험치들이 모여 생겨난 경륜때문일까. 다가오는 비극을 알면서도 그걸 부정하다 결국 받아들이는 우리네 삶의 비의까지 전도연은 연기에 담았다. 

 

“전도연 연기 잘한다는 건 다 아는 거니, 제가 연기 잘하는 거 뽐내려고 하진 않아요. 어릴 때는 상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었지만, 이젠 내가 이 작품을 받아들인 만큼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표현하는지가 중요해요. 연기를 뽐내려면 무대를 선택하진 않았겠죠. 무대는 실수를 가려주지 않으니까요. 오직 절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한 매체에서 한 인터뷰를 통해 전도연은 ‘벚꽃동산’이라는 연극에 참여하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드러낸 바 있다. 실로 연기력에 있어서 그는 세계 무대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각종 시상식에서도 여러 차례 인정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정 욕구가 아니라 전도연은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한다. ‘벚꽃동산’이라는 작품 자체가 한 인물이 끌고 가는 게 아닌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전도연의 이 말이 가진 숨은 의미가 드러난다.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을 애써 드러내기보다는 작품 속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도드라지지 않지만 전체적인 연기 앙상블이 좋은 작품에 일조한다. 흔히들 ‘미친 존재감’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본래 주변 인물 역할이지만 너무나 충실하게 그 역할을 연기해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의미다. 전도연이 보여주듯 진짜 미친 존재감은 전면에 나선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함께 하는 이들 속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지. (글:국방일보, 사진:LG아트센터)

조폭 이미지? 엄태구의 매력적인 진면목에 묘하게 빠져든다

놀아주는 여자

“조회수 천만이면 천만원 법니까? 아니면 뭐 1억? 얼마를 벌길래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겁니까? 그 돈 내가 다 줄 수도 있는데. 아 전과자 돈은 뭐 더러워서 싫은가? 우리 직원들이요, 거기 난동부리러 간 조폭들 아닙니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욕 들으러 간 것도 아니고요. 그냥 애들 먹을 제품 열심히 개발하고 만들어서 홍보하러 간 겁니다. 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하고 같은 목적으로 간 거라고요. 내가 보기에 목적이 달랐던 건 그쪽인 거 같은데. 여기선 구독자와 좋아요가 돈이라면서요. 돈 버는 방법 알았으니까 이제 부자만 되시면 되시겠네. 아님 뭐 원래부터 방법 알고 있었거나...”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조폭 출신 사업가 서지환(엄태구)은 키즈 크리에이터 고은하(한선화)에게 아픈 말들을 쏟아낸다. 직원들 대부분이 전과자지만 이제 손을 씻고 육가공업체 목마른 사슴을 세워 합법적인 사업을 하려던 차에 SNS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새로 개발한 소시지 홍보차 행사에 나섰다가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마침 고은하가 출연한 행사 영상을 소속사인 마카롱 소프트 마대표(연제욱)가 악마의 편집을 해 올려버렸다. 마치 난동 부리는 조폭과 고은하가 대결하는 것만 같은 영상으로. 

 

영상은 조회수가 폭발했고 그래서 마대표는 입이 귀 끝에 걸렸지만 고은하도 서지환도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아이들을 위한 방송만을 하겠다는 소신으로 ‘어그로 방송’과는 선을 그어 조회수도 구독자도 별로 없던 고은하는 그 소신을 깬 사람처럼 된데다 심지어 서지환과 그 회사 직원들에게도 큰 폐를 끼치게 됐다. 그 영상을 고은하가 악의적으로 편집해 올린 거라 오해한 서지환은 큰 상처를 입는다. 고은하의 동심 가득한 모습에 마음이 가던 차에 큰 실망을 했고 그래서 너무나 아픈 말을 쏟아낸다. 

 

이 에피소드는 ‘놀아주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가진 기획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건 일종의 선입견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조폭 출신이고 전과가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뭘 믿고 먹느냐는 사람들이나, 그런 성급한 편견을 활용해 악마의 편집을 한 영상으로 조회수 장사를 하려는 약삭빠른 세상에 대한 일침이다. 조폭 출신이지만 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서지환의 회사에서 만든 소시지가 바로 그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모두가 거부하게 되지만, 정작 대규모 식중독 사태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고은하가 잘 모르고 홍보했던 유기농 우유였다는 사실이 이런 일침을 잘 보여준다.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내고 서지환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인물로 고은하라는 ‘동심’ 가득한 인물을 세워 놓은 건 그래서 우연한 선택이 아니다. 고은하는 여전히 동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고, 그래서 서지환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보며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실제 원본 영상을 올려 기존 영상이 악마의 편집을 한 거라는 걸 만천하에 공개한 고은하의 진심을 알아챈 서지환은 그래서 그녀를 찾아와 사과한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쪽한테 말을 너무 심하게 했습니다. 저는 오해받는거 싫어하면서도 제가 그쪽을 오해했습니다.”

 

‘놀아주는 여자’는 제목부터가 수상하다. 어딘가 편견과 선입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이다. 하지만 이건 그 앞에 ‘아이들과’라는 문장이 생략된 제목이다. 드라마를 보고 단박에 이 제목의 진짜 의미를 알아챈 시청자들은 깨닫게 된다. 문장 하나에도 감춰진 진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선입견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서지환 역할에 그간 조폭 이미지로 주로 소비되던 엄태구가 캐스팅된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딘가 섬뜩한 이미지로 굳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엄태구지만 이 작품은 그것 역시 하나의 선입견이자 편견이었다는 걸 앞으로 보여줄 작정이다. 한없이 망가지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무심한 듯 스윗한 그런 엄태구의 매력이 드러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진:JTBC)

‘졸업’은 학원강사를 미화하지도 교사를 비하하지도 않았다

졸업

“난 서혜진 선생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자기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선 망나니처럼, 미안합니다, 투사처럼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싸움에서 이기고 난 다음엔 갑자기 도덕책을 읊어대는 그런 뻔뻔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참 욕심나는 사람이에요.” 표상섭(김송일) 선생님이 학교까지 그만두고 최선국어 부원장이 된 이유를 묻는 서혜진(정려원)에게 최형선 원장(서정연)은 한껏 비아냥을 쏟아댄다. 

 

표상섭은 오답 문제 때문에 서혜진이 학교까지 찾아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줬던 인물이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서혜진을 포함해 학원강사들을 “기생충”이라고까지 이야기했던 인물이다. 또 결국 서혜진 뜻대로 오답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표상섭은 도저히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학원강사들을 혐오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오히려 서혜진을 필두로 한 학원강사들과 저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한다. 교과서 안에서만 시험문제를 출제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그건 결국 동료 선생님들에게 민폐로 돌아간다. 시험문제가 변별력이 없어, 학생들 등급을 세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랬던 표상섭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서혜진이 최고의 제안을 받고도 고사했던 최선국어 부원장으로 왔던 것이다. 알고보니 표상섭은 서혜진으로 인해 학교선생님으로서 완전히 망가졌고, 소신도 무너져버렸다.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고, 마침 최형선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고는 이제 완전히 학원 선생으로서의 길을 선택한 거였다. 서혜진을 찾아온 표상섭은 이제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도 동류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 일은 서혜진에게 큰 충격을 준다.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학교에 남아있어야 될 선생님을 학교 바깥으로 내몬 결과로 이어졌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최형선을 찾아와 그 부원장 자리를 지금이라도 맡겠다며 표상섭 선생님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학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서혜진에게 최형선은 지독할 정도로 정확한 지적을 한다. 최형선의 지적은 서혜진이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었다. 

 

최선국어 부원장 자리를 고사하는 이유로 제안조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학생 시우(차강윤)를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최형선은 무슨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인 줄 알았다며 코웃음을 친다. 그러면서 서혜진이 가진 양면적인 모습을 아프게도 꼬집는다. “교육자이자 장사치 그 괴리감을 서혜진 선생처럼 깔끔하게 외면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죠.” 이 충격적인 최형선의 지적을 서혜진도 아프게 인정하며 이준호(위하준)에게 털어놓는다. “최형선 원장이 왜 최고인 줄 알겠더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해줬어.”

 

이 에피소드는 ‘졸업’이 왜 표상섭 같은 인물을 앞부분에 배치해 서혜진과의 한 판을 벌이게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있다. 이 에피소드로 인해 전국의 중증교사노조에서는 공교육 현장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 장면만 놓고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10회에 이르러 표상섭이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 부원장 자리로 가고, 여기에 충격을 받은 서혜진이 최형선 원장의 날선 비아냥을 통해 자신을 직시하게 된 부분을 보면, 이 작품이 애초 학원강사를 미화하거나 공교육 일선의 교사들을 비하할 의도 자체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최형선의 이야기는 아프게도 서혜진의 진짜 모습 그대로였다. 서혜진은 학원강사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선생님’이 되고픈 욕망 또한 갖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의 첫 제자였던 이준호가 나타나면서 더더욱 커졌다. 그래서 다소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갖게 됐고, 부원장 자리 같은 현실적으로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한 학생의 스승으로 남겠다는 비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최형선의 일갈은 결국 서혜진은 학원강사일뿐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이었다. 

 

또한 표상섭의 선택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건, 공교육이 치열한 입시경쟁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과서 위주로’ 하면 된다는 말은 치열한 사교육에 의해 변별력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등급을 나누기 위해서는 다시 교과서 바깥에서 시험 문제를 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표상섭의 다소 고집스럽게 그려져 심지어 빌런처럼 보이게 만든 건 어찌 보면 그의 선택이 너무나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입시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으로 나서는 표상섭의 모습은, 우리네 공교육이 처한 위기상황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졸업’이 서혜진이라는 양면의 욕망을 가진 학원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내려 한 것은 어느 특정 직업군의 비하도 미화도 아닌 우리가 처한 교육 현실의 문제라는 것. 주인공이지만 그저 미화도 비하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려 한 이 지점은, ‘졸업’이 멜로드라마라는 장치를 갖고 오긴 했지만 그 안에 담아놓은 교육의 문제에도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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