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부터 ‘스위트홈3’까지, 이도현의 연기도전사

스위트홈3

도대체 군백기가 있기는 한 걸까. 이도현은 지난해 8월 입대했지만 그가 찍은 작품들은 계속 쏟아져 나왔고 또 좋은 반응들을 얻었다.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도현은 MZ세대 무당 윤봉길 역할로 관객들을 열광케 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3’에 신인류 캐릭터로 등장해 사실상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그가 입대 전 출연한 마지막 작품으로 드라마 ‘나쁜 엄마’를 찍으면서 동시에 ‘파묘’, ‘스위트홈3’까지 소화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세 작품을, 그것도 서로 다른 장르의 다른 캐릭터를 오가며 동시에 연기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일’을 한 결과는 달콤한 과실로 돌아왔다. 군대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도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적 신뢰감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도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현재 같은 믿고 보는 배우로 등극하기까지 너무나 그 기간이 짧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의 연기 필모는 약 7년 정도다. 2017년 신원호 감독이 연출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정경호가 연기했던 이준호라는 인물의 청년 시절을 연기했다. 고교 야구선수로 주목받았지만 교통사고로 결국 꿈을 포기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스포츠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청년 역할을 자주 맡은 바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야구선수였고, ‘18어게인’에서는 농구를 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스포츠와 그의 이런 인연은 과거 그가 농구선수로서의 꿈이 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그 꿈을 접고 연기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때의 경험들이 연기에도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도현은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아이유)이 좋아했던 호위무사 고청명 역할로 사극 연기에 도전하면서 대중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그 후 이도현은 ‘위대한 쇼’에서 송승헌이 연기한 위대한이라는 인물의 10대 시절 역할을 했는데, 송승헌 같은 연기 베테랑의 젊은 시절을 이도현이 맡았다는 사실은 드라마업계가 그에게 가진 신뢰가 분명했다는 걸 말해준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은 그 서사의 결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8어게인’에 와서는 드디어 이 배우의 진가가 발휘된다. 고등학생 고우영 역할로 홍대영이라는 중년 아저씨가 그 몸으로 빙의되는 판타지로, 겉으론 고등학생이지만 속은 아저씨인 역할을 잘 소화해 ‘고저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딸하고 같이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래서 딸이 학교에서 하는 행동에 못마땅해하는 아빠의 모습이 슬쩍슬쩍 등장하기도 하며, 나아가 아들이 왕따를 당하는 걸 알고 이를 가만히 보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 표현되기도 한다. 게다가 김하늘과의 멜로 연기도 들어 있었는데 이것까지도 이도현은 별다른 이물감없이 소화해냈다. 이 작품으로 이도현은 그 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을 받았다. 올해 ‘파묘’로 영화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까지 받았으니 이도현은 백상에서 TV와 영화 부문 모두 신인상을 받은 연기자가 됐다. 

 

‘18어게인’ 이후 이도현은 하는 작품마다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 하나하나 성공시키는 놀라운 성과들을 보여줬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으로 크리처물에 도전했는데, 거기서 이도현이 맡은 이은혁이라는 인물은 다른 캐릭터들과는 사뭇 차별화된 존재였다. 괴물들이 여기저지 출몰하는 그린맨션에서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이 인물은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모습으로 오히려 주목받았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시즌3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신인류로 부활해 돌아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엔딩을 그려냈다. 

 

‘5월의 청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으로 그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소화했고, ‘멜랑꼴리아’에서는 자폐를 가진 수학 천재로 역시 임수정과의 멜로 연기를 풀어냈다. ‘18어게인’에서는 김하늘과 ‘멜랑꼴리아’에서는 임수정과의 멜로 연기로 연상연하 커플의 남자주인공 역할로 급부상한 이도현은 ‘더 글로리’로는 송혜교와의 멜로 연기를 펼쳤다. 물론 ‘오월의 청춘’에서는 고민시와 또 ‘나쁜 엄마’에서는 안은진과 멜로 연기를 했지만 상대역과의 나이차에 있어서 이도현에게는 장벽이 별로 없었다.

 

이 이도현이 걸어온 7년 간의 짧다면 짧은 연기 여정을 들여다 보면 그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고등학생과 아저씨를 오가는 연기는 물론이고(18어게인), 나이 차이가 훌쩍 나는 연상과의 멜로 역할(18어게인, 멜랑꼴리아, 더 글로리)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장르적으로는 멜로에서 판타지(18어게인), 크리처물(스위트홈), 복수극(더 글로리), 시대극(오월의 청춘), 회귀물(이재, 곧 죽습니다)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영역들을 경험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두 가지 장점이 결합한 결과다. 그 하나는 이도현이 이미 갖고 있는 자질이다. 그가 가진(이것도 연습에 의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중저음 보이스는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신뢰감을 주고, 명쾌한 딕션은 대사전달력에 있어서 탁월한 그의 장점을 드러내준다. 또 그와 같이 작업을 한 감독들이 자주 말하는 ‘좋은 눈빛’도 빼놓을 수 없고, 입꼬리에 따라 다정하게도 보이지만 때론 악마적인 서늘함을 주는 입매도 연기자로서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들이 힘을 발휘하게 된 건 두 번째 장점으로 꼽히는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성장이다. 매번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과정들이, 7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이도현이 이토록 급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지어 군복무 중에도 전혀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성장에는, 그만한 도전과 노력들이 숨겨져 있었을 테니 말이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놀아주는 여자’, 무뚝뚝해서 반전이 더 큰 엄태구의 멜로

놀아주는 여자

“못알아봐서 미안해.”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고은하(한선화)는 드디어 서지환(엄태구)이 현우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려서 조폭들이 찾아오는 집을 벗어나 혼자 외롭게 있을 때 나타나 같이 놀아줬던 오빠. 지옥 같던 그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줬던 그였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나타나 현우오빠를 데려가자, 고은하는 울고 또 울었다. 미안해서 울고 보고 싶어서 울고.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다시 찾아간 옛집 터에서 고은하는 서지환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현우오빠를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전직 조폭이었고 지금은 육가공업체 목마른 사슴의 대표로 죗값 받고 새 삶을 살려는 전과자들이 바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전과자라는 꼬리표에 모두가 백안시하고 때론 억울한 누명을 씌워도 그저 고개를 숙이고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무릎도 꿇는 사람. 그가 바로 서지환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선입견 때문에 서지환을 피하는 상황에서도, 고은하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봤다. 차갑게 말하지만 따뜻한 사람이고, 그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서지환은 고은하에게 과거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었고, 그래서 애써 자신이 현우오빠였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었다. 결국 고은하는 그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못알아봐서 미안해”라는 대사는 ‘놀아주는 여자’를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다. 처음 서지환이라는 인물과 그와 함께 살아가는 목마른 사슴의 동생들은 어딘가 멜로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조폭 느와르에 어울릴 법한 말과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은하라는 인물이 그 집에 들어가게 되고 그들을 좀더 가까이서 바라보게 되면서 이러한 선입견은 조금씩 깨져버렸다. 그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아이들 같고 순진한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서지환을 중심으로 멜로 감정들이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서지환과 고은하가 좋은 감정을 갖고 조금씩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었고, 주일영(김현진)은 고은하의 친구 구미호(문지인)와 멜로 라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지환이 과거 구해줘 그를 좋아하게 된 키즈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강예나(송서린)는 양홍기(문동혁)와 엮어지는 중이다. 전혀 멜로와는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는 그 반전효과가 더 커졌다. 

 

서지환 역할의 엄태구는 이러한 멜로 연기가 사실상 처음에 가깝다. 늘 이 작품 속 서지환 같은 조폭 캐릭터로 주로 소비되었다. 그래서인지 ‘놀아주는 여자’의 서사와 더불어 엄태구의 필모도 바뀌어가고 있다. 엄태구의 이른바 ‘멜로눈깔’에 대한 좋은 반응이 생겨나고 있고, 로코가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다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고은하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서지환을 보게 되면서 그 역할을 연기한 엄태구에게도 생겨난 변화다. 

 

“못알아봐서 미안해”는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엄태구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다. 이 배우가 오히려 이토록 설렘과 먹먹함을 전해주는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못알아봐서 미안하다는 것. ‘놀아주는 여자’를 통해 엄태구라는 배우가 가진 새로운 진가가 그 반전효과와 더불어 시청자들을 그 멜로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사진:JTBC)

호불호 갈렸지만 ‘스위트홈’이 K콘텐츠에 남긴 것들

스위트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이 시즌3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반응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국내 크리처물이 이만한 성과를 가시적으로 냈다는 측면에서 호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시즌2부터 확장된 세계관을 그려내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확실히 시즌이 거듭될수록 대중적인 관심은 식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위트홈’이 시즌3까지 펼쳐낸 다양한 상상들과 그걸 구현해낸 성과들은 부정할 수 없다. 

 

시즌3의 서사는 괴물이 된 자들이 죽음과 부활을 거쳐 신인류로 등장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더해졌다. 신인류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되고, 그래서 중간 단계에 서 있는 특수감염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인류의 등장은 괴물화에 대한 반전의 인식들을 만들어낸다. 즉 시즌2에서 스타디움에 숨어 지내며 괴물이 되는 걸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괴물화 증상을 보이는 자들을 격리하려 했던 그 흐름은, 괴물이 되어야 그 다음단계인 신인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욕망을 더함으로써 뒤집혀버린다. 괴물화 증상은 숨겨야 할 사실이 아니라 드러내도 되는 일이 되고, 오히려 스타디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격(?)처럼 취급된다. 

 

물론 이건 이미 괴물화 단계에 들어선 이들의 입장이다. 괴물화 증상을 겪지 않은 인간의 입장은 또 그들과 다르다. 여전히 괴물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또 신인류로 돌아온 이은혁(이도현) 같은 인물은 죽지 않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로 욕망이나 두려움 자체가 없다. 이렇게 인간과 괴물 그리고 신인류라는 다양한 존재들을 동시에 세워 놓을 수 있었던 건 ‘스위트홈’이 가진 독특한 세계관 덕분이다. 욕망이 괴물로 탄생한다는 세계관. 

 

즉 이들이 괴물이 된 건 욕망 때문이다. 먹고 싶은 욕망,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강해지고 싶은 욕망,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망 등등 저마다 가진 욕망에 따라 괴물들은 그 형상도 능력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들이 죽어 부활해 탄생한 신인류가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의미를 갖는다. 욕망이 사라진 자들이라는 것. 즉 욕망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게 아니라 어떤 욕망을 갖는가가 다른 결과를 낼 뿐이라는 걸 ‘스위트홈’은 시즌3의 대혼전을 통해 그려낸다. 

 

임박사(오정세)처럼 인간이지만 괴물 같은 이들이 존재하고, 정반대로 탁상사(유오성)처럼 괴물이 되지만 인간편에 서서 그들을 구하려는 욕망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이든 괴물이든 아무런 경계를 세우지 않는 아이(김시아)가 있다면, 괴물이 된 후에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서이경(이시영)이 있고, 괴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 욕망을 되돌리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돌려놓는 능력을 가진 차현수(송강)가 있는 반면, 괴물의 다음 단계로서 신인류가 되어 무감해진 이은혁이 있다. 

 

‘스위트홈’은 인간과 괴물, 신인류가 서로 싸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종들이 버텨내려는 생존의 이야기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 인간과 신인류가 공존의 길을 찾아가고, 기다릴 곳과 돌아갈 곳으로서의 ‘스위트홈’이 필요하다는 걸로 끝을 맺는다. 기억은 있지만 감정이 없는 단계에 들어선 이은혁이 또 특수감염인으로서 살아온 차현수가 감정을 드러내는 미소를 짓는 엔딩신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돌아갈 곳이란 공간의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는 것 또한 그 장면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크리처물이 갖기 마련인 보기 불편한 장면들과, 시즌2부터 세계관이 확장되며 생겨난 복잡한 서사, 너무 많은 변종 크리처들의 탄생이 만들어낸 혼돈, 게다가 시즌3에 와서는 이들이 맞붙어 생겨나는 더욱 복잡한 서사들. ‘스위트홈’은 확실히 대중적인 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시도된 VFX 기술의 무한확장은 분명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구현되지 않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영역들을 ‘스위트홈’은 이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은 마치 ‘스위트홈’ 자체가 이러한 상상력의 확장에 대한 욕망에 의해 발현된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욕망이 만들어낸 세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 같은 것들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점점 더 커진 욕망이 그 세계를 확장하면서 기괴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비판의 과정을 거치며 이제 감정도 배워나가는 신인류 같은 보다 안정된 K콘텐츠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걸 ‘스위트홈’은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스위트홈’이 시즌3를 거쳐 거둔 분명한 성과다. (사진:넷플릭스)

뒷것 김민기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한국 포크 음악과 민중음악의 선구자이자 전 학전 대표였던 김민기가 별세했다. 향년 73세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는 현재의 문화 예술계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아침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지난 21일 김민기가 별세했다. 향년 73세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아침이슬’처럼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다. ‘나 이제 가노라’며 ‘저 거친 광야’로 떠난 그는 이제야 좀 ‘서러움 모두 버리고’ 갈 수 있었을까. 그의 삶의 행적을 좇다보면 ‘시대의 아픔’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스무살에 내놓은 ‘아침이슬’이라는 곡 하나만 두고 봐도 그렇다. 1971년에 낸 데뷔앨범에 들어 있던 그 곡은 김민기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유신 정권 반대 시위 현장에서 울려퍼졌다. 결국 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그 곡은 김민기 평생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됐다. 

 

물론 김민기 스스로도 시대의 아픔 한 가운데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그가 당시 했던 활동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독재정권과 정면대결을 벌였던 시인 김지하를 만나고 일찍이 야학에 뛰어들었으며 김지하가 쓴 희곡인 ‘금관의 예수’ 공연에 참가해 주제가인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작곡했던 김민기였다. 70년대 마당극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마당극 ‘아구’에 참여했고 군 생활 이후에는 인천 부평 봉제공장에 취직해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을 하며 ‘공장의 불빛’ 같은 음악극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운동가요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상록수’는 사실 공장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였다. ‘공장의 불빛’ 제작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했던 김민기는 10.26 사태가 벌어진 후에는 농부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고, 탄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삶을 몸소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통해 그의 금지곡들은 일부 해제되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져온 혹독한 독재정권의 그늘 아래서 그의 삶을 가장 낮은 자들 곁에 있었다. 그들을 위해 살았고, 그 삶이 노래가 됐고, 그래서 핍박받았지만 끝내 그 노래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네 현대사의 아픈 구석들을 들여다보면, 그의 노래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삶이 그 시대의 아픔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맨, 김민기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요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용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김민기가 쓰고 곡을 만든 ‘친구’는 고등학생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창이다. 가사는 시이고 곡 또한 단순하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썼다는 이 곡을 보면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김민기의 면모가 일찍이 드러난다. 거기에는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다. 그런데 그의 활동은 그 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노래도 만들고 불렀지만 음악극도 했다. 연극 또한 직접 만들었던 것. 1991년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그가 직접 연출한 ‘지하철1호선’은 지난해까지 8천회 이상 상연했고 무려 70만명의 관객이 함께 했다. 

 

그가 만든 학전(學田)은 ‘배우는 텃밭’이라는 의미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술인들의 텃밭이 됐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무수한 배우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동물원, 들국화, 장필순, 박학기, 권진원, 유리상자, 윤도현 등이 이 곳에서 노래했으며 고 김광석은 1천 회 공연을 했다. 그가 운영한 학전은 출연자들에게 그 날의 공연 수익을 밝히고 정산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그건 그 스스로 예술인들의 텃밭이 되겠다는 그 취지에 합당한 방식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문학과 연극과 음악을 아우르는 예술인이면서 동시에 그런 예술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학전’의 대표이기도 했다. 늘 적자에 시달리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스로에게는 ‘돈 안되는 일’을 자처함으로써 예술인들을 살게 하는 일에 앞장섰던 후원자에 가까웠다. 

 

뒷것 김민기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그가 학전을 세워 했던 일들은 그가 생전에 했던 이 말 하나로 설명된다. 그건 물론 뮤지컬, 아동극, 가수들의 공연 등을 무대에 올리는 역할을 자신은 뒤에서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한 것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예술인들에게 내려주고 자신은 무대 아래서 그걸 비춰주는 역할을 자임한 그의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서지 않고 묵묵히 예술가들의 못자리가 되어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닌가. 

 

결국 김민기의 생애는 개관 후 33년 간이나 버텨왔지만 재정난으로 지난 3월 폐관한 학전과 거의 닮았다. 건강이 악화됐고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끝까지 학전의 레퍼토리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네 예술계에 영원히 든든한 ‘뒷것’으로 남았다. 

 

올해 4월에 방영됐던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그가 뒷것을 자임하며 남긴 우리네 예술계의 흔적들을 담아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다큐멘터리가 담아낸 내용을 보면 그가 뒷것을 자임한 건 예술인들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피혁공장에서 일하며 만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노동자들을 위로해주는 ‘공장의 불빛’이라는 음악극을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나온 그들에게 야학의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농사꾼이 되겠다고 연천에 내려가서도 그는 농민들의 뒷것을 자처했다. 중간유통업자들 때문에 농민들이 제 값을 못받고 소비자도 비싸게 쌀을 사야하는 현실을 알고는 직거래를 통해 모두가 좋은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료 야간학교를 열었고,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유아원 건립을 위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또 ‘지하철 1호선’이 큰 성공을 거뒀을 때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극에 뛰어들었다. 돈 안되는 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 앞장섰던 거였다. 

 

김민기가 삶 전체로 전하는 메시지

그는 떠났지만 그 삶은 우리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먼저 예술이란 시대와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담아낸 예술은 당대의 대중들과 호흡함으로써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걸 김민기는 보여줬다. 그렇게 세상은 예술을 만들고, 예술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또 모든 것이 자본화되고 상품화되어가는 세상에 ‘돈 안되는 일’이 오히려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줬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뒷것을 자임하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려줬다. 만일 문화예술에 대해 정부 등이 나서 지원을 한다면 든든한 뒷것의 전형을 보여준 김민기의 선택들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앞것을 자임하는 현실들 앞에서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무수한 뒷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김민기는 보여줬다. 가난해도 작품을 통해 세상을 말하는 예술가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돈벌이의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 김민기는 그런 이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걸 삶 전체로 우리에게 전했다. (글:시사저널, 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