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추부자의 한 끼 저녁에 묻어난 뭉클한 속내

 

이토록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부자가 있을까. tvN <아버지와 나>의 추성훈-추계이 부자는 금방이라도 옷이 찢어질 것 같은 근육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러니 살가운 말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글렀다. 본래 과묵하고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추성훈이지만, 그게 똑 아버지를 닮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버지와 나(사진출처:tvN)'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표현이 서툴고 그래서 함께 여행한다는 건 그 자체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이 부자는 오히려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말로 전할 수 없기에 작은 행동들과 침묵으로 전해지는 마음과 마음 같은 것이다. 쉽게 표현되지 못하고 속으로만 맴도는 말들이 작은 손짓이나 일상적인 말들 속에 살짝 스며들어 전해지는 그런 것.

 

바다에 마음이 빼앗겨 사라진 아버지를 찾는 추성훈의 발걸음 속에서, 그렇게 찾다가 저만치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찾아내는 그 시선 속에서, 아버지와의 멋진 저녁을 함께 하며 이것도 드셔보세요.” “아버지 입맛에 딱 맞을 거예요.” 라고 일상적인 말 속에 담아 전해지는 추성훈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속에서, 하다못해 음식에 뿌려주는 후추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특별히 건네는 말은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또 똑바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하는 것이 여전히 어색한 그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먼 곳까지 와서 함께 한 끼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더 많이 다른 곳들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고 말을 건네는 추성훈에게서는 그 어떤 표현보다 더 깊은 아버지에 대한 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고 돌아오는 길, 5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기분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것은 멋진 저녁을 준비한 아들에게 짐짓 고마운 마음을 전한 것이리라.

 

그렇게 일상적인 한 끼의 저녁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남다른 부자의 마음 씀씀이가 숨겨져 있었다. 파이터로서 몸 관리를 하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금하고 있는 추성훈은 아버지가 더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게 기꺼이 금기를 깼고, 평소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버지 역시 아들과의 추억에 남을 저녁을 위해 기꺼이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만이 함께 자유시간을 가진 자리에서 아버지는 어렵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이 쓰러지게 되면 연명 치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어색한 우리말에 존칭까지 섞어가며 하는 그 말에는 자식에게 끝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추성훈은 거기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일부러 건네지 않았다. 그것이 더 마음 아픈 일이 될 것 같아서였기 때문이란다. 그는 그저 아버지의 부탁에 라고 말했지만,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었을까.

 

<아버지와 나>가 왜 하필 아버지들을 여행에 소환했는가는 분명하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통해 <꽃보다 할배>가 어르신들과 현재의 청춘을 소통시켰다면, <꽃보다 청춘>은 청춘으로서 구가해야할 거침없는 도전이 그들의 특권이라는 걸 보여줬다. <아버지와 나>는 아버지 세대와 지금의 청춘들과의 여행을 통한 소통이다. 그들 중에는 물론 바비와 아버지 같은 부자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관계도 있지만, 추성훈 부자 같은 같이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한 관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이 여행이라는 조금은 다른 공간에서의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치를 통해 그 진심이 드러날 때 진정한 소통은 이뤄진다.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추성훈 부자의 여행이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여행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 그것은 어쩌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부자 관계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응답하라>, <시그널>, <또 오해영>까지... tvN 드라마 전성시대

 

최근 tvN은 오는 10월 개국 10주년을 기념해 시상식을 포함한 페스티벌을 연다고 밝혔다. 사실 작년부터 계속 요구되어 왔던 게 tvN 시상식이다. 연말이면 지상파 3사들이 모두 자사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시상식을 하고 있지만 tvN은 그렇게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런 요구의 이유다.

 

'또 오해영(사진출처:SBS)'

이런 요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된 건 작년부터다. 이미 예능 콘텐츠들은 tvN표로 브랜드화될 정도로 다양한 성공들을 거둬왔지만 드라마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게 작년부터이기 때문이다. <미생>의 성공 이후에 tvN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오 나의 귀신님>, <두번째 스무살> 같은 작품들의 성공을 일궜고,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속적인 성공 이후, 금토 시간대에 <시그널>, <기억>,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수작들을 연거푸 내놓으며 본격적인 tvN 드라마 전성시대를 알렸다.

 

금토드라마의 브랜드를 확고히 세운 tvN은 월화 시간대로 영역을 넓혔다. <치즈 인 더 트랩>이 그 가능성을 확인한 드라마였다면, <또 오해영>은 월화에도 tvN 드라마의 자리가 세워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드라마였다. 월화 드라마로 케이블로서는 놀라운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월화 밤 11시가 지상파 예능 시간대였던 것을 tvN의 드라마 시간대로 바꿔놓는 힘을 발휘했다.

 

결국 이렇게 2년여 사이에 예능에 이어 드라마까지 확실한 브랜드 파워가 생기면서 시상식은 보다 현실적인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올해 열리는 10주년 기념 페스티벌은 그래서 누가 상을 받아갈 것인가에 대해 쉽게 점칠 수 없을 정도로 후보군들이 풍성해졌다. <시그널><응답하라1988> 나아가 <또 오해영> 같은 쟁쟁한 작품군들 속에서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tvN 드라마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확고히 브랜드를 갖게 된 건 지상파와는 다른 독자적인 선택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에서 알 수 있듯이 예능과 드라마의 접목은 독특한 tvN만의 드라마 색깔을 만들어냈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그 안에 진중한 당대의 메시지까지를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드는데 있어서 그만큼 유연했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이후 일련의 로맨틱 코미디물들을 계속해서 라인업 했고 그러면서 지상파에서 주로 작업해온 스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조금씩 무게감을 갖게 만들었다.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 김지우 작가의 <기억> 그리고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까지 tvN 드라마들은 지상파에서 보지 못한 완성도로 승부했다. 동시에 <두번째 스무살>, <오 나의 귀신님>, <치즈 인 더 트랩>, <또 오해영> 같은 일련의 로맨틱 코미디에도 완성도와 실험을 더해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tvN 드라마의 선전은 패턴화 되어버린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반작용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지상파 드라마들의 반복되는 소재나 제작관행들 때문에 시청자들도 작가들도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tvN은 제대로 읽어내면서 이탈한 작가와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드라마로 매개하게 했다는 점이다.

 

결국 tvN 드라마의 성공이라는 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를 말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플랫폼의 힘을 누려오며 타성에 젖었던 지상파 드라마들은 이제 tvN 드라마의 선전으로 각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tvN 드라마의 성공은 한 방송사의 드라마 브랜드가 가진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리네 드라마 전체에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또 오해영>, 예지원, 김미경 아니면 안 되는 연기들

 

말 그대로 대체불가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예지원과 김미경이라는 연기자들을 보다보면 과연 이들 없이 이 드라마가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다. 웃다가 짠하다가. 그것이 이 독특한 드라마가 가진 특유의 정서가 아니던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의 웃음 뒤에 남는 현실의 짠 내. 그걸 한 캐릭터 안에서 자유자재로 보여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우리는 지금껏 예지원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과거 시트콤 <골드 미스 다이어리>의 깊은 잔상 때문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던 과장된 불어와 동작들이 자꾸만 어른거려서였을까. <또 오해영>의 박수경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예지원은 그런 모습들이 그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연기의 세계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이사도라라는 별명처럼 회사 내에서 보이는 그녀의 카리스마는 부하직원들을 질식시키는 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처럼 강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들 앞에서 당당하고 거침이 없는 속 시원한 걸 크러시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옛 남자를 잊지 못해 밤마다 술에 취해 머리를 산발한 채 비틀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또 혼자 술집에 앉아 술을 기울이는 모습에서는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드는 멜랑콜리한 면들이 비춰진다.

 

하룻밤의 사고로 이진상(김지석)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그걸 숨겨오던 그녀가 그 사실을 얼핏 눈치 챈 진상에게 그가 꾼 꿈이 태몽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장면은 예지원이 그간 쌓아온 연기공력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건 우스우면서도 짠한, 그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누구도 소화해내기 어려운 연기가 아닐 수 없다. <또 오해영>은 그렇게 특별한 아우라는 스스로 창출해낸 한 연기자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한편 오해영(서현진)의 엄마 연기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김미경 역시 이 드라마가 확인시켜준 대체불가 연기자다. 그녀의 엄마 연기는 너무나 실제 현실의 엄마들을 닮아 있다는 점에서 웃음이 피어나오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집구석에 있을 때는 그토록 구박하다가, 혼자 독립해 나오자 걱정이 되어 그 집을 찾아오는 그 애증이 뒤얽힌 관계.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지만, 또 도경(에릭)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딸 내보낸 게 신의 한수였다 말하는 엄마.

 

사실 모녀 관계에 벌어지는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양가적이다. 너무 애정이 깊어 막 대하다가도 진짜 아파하는 모습에는 마치 자신이 그 일을 당한 것처럼 가슴 아파하고, 저걸 누가 데려가나 싶어 구박하다가도 어떤 남자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같이 눈물을 흘려준다. 상처를 주었던 도경과의 만남을 반대하던 그녀가 마치 체념했다는 듯 쟤 너 가져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웃음이 나오지만 그 이면에 담겨진 많은 감정들을 읽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주목받는 건 주인공들이지만 그 드라마를 지탱해주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내며 어떤 면에서는 그 밑바닥에 깔린 정서 같은 걸 만들어내는 건 예지원이나 김미경 같은 연기자들의 공이 크다. 그러고 보면 <또 오해영>이 가진 웃음과 짠함의 이중주는 이들 같은 연기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야말로 신 스틸러라는 말이 실감나는 연기자들이다.

장근석, 전략 수정이 절실하다

 

종영한 사극 SBS <대박>의 주인공은 단연 장근석이다.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 이야기의 중심은 대길이라는 인물이 겪는 고난과 성장 스토리를 통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가 서 있는 인물들 사이의 위치는 막중하다. 위로는 아버지인 숙종(전광렬)과 연결되고, 옆으로는 형제가 되는 연잉군(여진구)이 있으며 시대의 공적인 이인좌(전광렬)와 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드라마는 온전히 장근석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드라마 초반부터 중반 이후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건 독특한 숙종 역할을 맡은 최민수였고, 드라마가 끝까지 굴러가게 만든 장본인 역시 그가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서 조정을 농단하는 이인좌 역할을 연기한 전광렬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연기 공력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장근석은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아버지인 백만금(이문식)이 죽고(물론 나중에 다시 살아 돌아오지만) 벼랑 끝에서 이인좌의 칼에 맞고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그의 연기와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뱀을 물어뜯는 연기까지 선보였다. 그것은 마치 <레버넌트>로 꽃미남이 아니라 연기자라는 걸 확실히 증명해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보처럼 보였지만, 그런 노력은 그리 큰 효과를 가져 오지는 못했다.

 

장근석이 이처럼 <대박>을 선택하고 지금껏 해오지 않았던 연기에 도전한 건 스스로도 늘 현대극의 허세남 캐릭터에 붙박여 있는 것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현실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2009<미남이시네요>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매리는 외박중><미남이시네요>의 연장처럼 여겨졌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랑비>는 아쉽게도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쁜 남자> 역시 마찬가지. 장근석이 갖고 있는 꽃미남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소비했을 뿐, 이렇다 할 그의 성장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다.

 

배용준 이후 일본 한류의 새로운 물꼬를 튼 장근석이지만 후속작을 내지 못한다는 건 그에게는 커다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아쉽게도 이번 <대박> 역시 대박이 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물론 대본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다거나, 함께 하는 연기자들의 면면이 워낙 강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건 중심에 서 있던 연기자로서 드라마의 실패에 책임이 없다 말하긴 어렵다.

 

이번 <대박>을 경험하면서 장근석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전략의 수정이다. 연기변신이 절실하다고 해도 너무 급작스런 변화는 그에게도 또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연기자라면 이걸 넘어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장근석처럼 너무 강하게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는 연기자라면 적절한 수위 조절을 통한 변신을 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시도와 그 의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방법이 너무 과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갖고 있는 허세 꽃미남의 이미지가 자신의 경쟁력이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대박>은 여러모로 장근석이라는 연기자에게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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