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라스>, 오래돼도 늘 새로운

 

MBC <라디오스타>61480회로 9주년을 맞았다. 9년 동안 힘 빠지지 않는 저력을 보였던 만큼 ‘9주년이라는 의미가 남달랐을 법도 하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거기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 보였다. 젝스키스가 게스트로 초대된 이 날, 프로그램은 그 어떤 호들갑도 없이 늘 하던 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김구라는 은지원을 툭툭 건드리며 늘 하던 대로 미끼를 던지고 윤종신은 시종일관 기회를 엿보며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들어 툭툭 던져 넣는 순발력으로 웃음을 준다. 규현은 한참 후배지만 선배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에게도 거침없이 공격적인 말을 던지고, 맏형 김국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토크를 다시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 때로는 스스로 망가지며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한결같은 모습 속에서 젝스키스의 캐릭터들이 쑥쑥 뽑아 올려진다. <무한도전>에서도 확실한 예능감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재진은 <라디오스타>에서도 타도 HOT”를 외치며 MC들의 칭찬을 받는다. 예능에서 봤던 모습과 달리 팀 리더로서 진중한 모습을 보이는 은지원을 김구라는 구박한다. 그러자 슬쩍 슬쩍 은지원 역시 대체불가 은초딩 캐릭터를 끄집어낸다. 장수원은 로봇 연기 전문가가 되고 김재덕은 영원한 댄싱보이의 면면을 드러낸다.

 

한 때는 5분 방송 혹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시작하자마자 끝나기도 했던 <라디오스타>였다. 하지만 그 짧은 방송 분량으로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전하다보니 일찍이 <라디오스타>는 밀도 높은 토크쇼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셈이 되었다. <무릎팍도사>가 사라지고 대신 본방으로 신분상승을 한 <라디오스타>는 그렇게 늘어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5분 방송의 밀도를 유지했다. 그것이 <라디오스타>만의 정신없이 빵빵 터지는 웃음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웃음의 밀도를 갖고 있으면서 새내기 예능인 사관학교라고 불릴 만큼 새 인물들을 발굴해낸 점은 <라디오스타>가 롱런할 수 있는 힘이었다. 트렌드가 지나버리면서 토크쇼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라디오스타> 혼자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그 새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 스토리 덕분이었다. 늘 봐왔던 틀 안에서 뱅뱅 돌던 토크쇼들과는 달리, <라디오스타>는 그래서 오래된 프로그램이면서도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그것이 9년 장수의 비결이 되었다.

 

<무한도전> 역시 지난 42311주년을 맞았지만 그다지 거기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11주년에 해당하는 방송분에도 토토가2’ 특집으로 젝스키스가 출연했다. 다시 모인 젝스키스 멤버들이 함께 팀을 이뤄 컴백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방송되었다. 거기에서는 11주년이라고 해서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라는 <무한도전>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저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것. 그래서 여전히 새로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무한도전>은 말하고 있었다.

 

흔히들 장수예능을 이야기하면 한결같음을 떠올리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늘 똑같은 모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한결같다는 건 늘 처음 하는 것처럼 새롭다는 의미이고, 그러려고 한결같이 노력해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스타>9년과 <무한도전>11년은 새삼 대단한 기록이라고 여겨진다. 오래돼도 늘 새롭다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운빨로맨스>, 어째서 <또 오해영>이 못되는 걸까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진다. 첫 회는 황정음, 류준열이라는 캐스팅과 동명 원작 웹툰의 기대감 때문에 10.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지만 3회 만에 8%로 떨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맨스가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제대로 인물에 몰입되었다면 시청률이 올라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지금 현재 <운빨로맨스>가 처한 현실이다.

 

'운빨로맨스(사진출처:MBC)'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이나 SBS 주말드라마 <미녀 공심이>가 로맨틱 코미디의 부활을 알리고 있는 요즘 어째서 <운빨로맨스>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걸까.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대가 크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오해영(서현진)이나 공심이(민아)를 떠올려보면 이 인물들이 가진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물과 집안과 스펙으로 비교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캐릭터들. 하지만 <운빨로맨스> 심보늬(황정음)에게서는 그런 현실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처한 현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건 공통점이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동생을 둔 인물이다. 마침 최고의 게임회사인 제제팩토리에서 입사시험을 보던 중에 당한 사고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 회사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고 작은 게임회사인 대박소프트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회사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사실 이러한 심보늬라는 인물의 설정은 그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를 상당 부분 흐트러뜨린다. 즉 마침 제제팩토리 시험 중에 당한 동생의 사고라는 것이 그녀가 그 회사를 저버리는 이유가 될까 싶은 것이다. 현실적이라면 병상에 있는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이유로 제시되고 있는 건 그녀의 캐릭터다. 그녀는 운수에 민감하다. 그녀가 만든 기획안이 제제팩토리 제수호(류준열)의 눈에 들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녀는 여기서도 갈등한다. ‘재수 없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꺼려진다는 이유다. 결국 그녀가 그 회사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되는 건 무속인 아저씨 구신(김종구)의 말 한 마디 때문이다. 거기에 그녀의 액운을 풀어줄 호랑이띠 남자가 있다는 말.

 

물론 운에 이토록 집착하는 캐릭터가 우습긴 하다. 게다가 호랑이띠 남자라면 액운을 풀기 위해 누구든 하룻밤을 불사하려는 심보늬와, 그런 운수 따위는 결코 믿지 않을 이성을 장착한 무성애자 제수호의 조합은 흥미로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웃음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너무 운에 집착하며 그것 때문에 심지어 비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심보늬라는 캐릭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를 제시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심보늬는 이토록 운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한참 능동적인 선택을 해야 할 청춘이 결국은 운빨이라며 일종의 자포자기를 하는 모습은 왜 일어나는 걸까. 지독히 불운한 청춘이 왜 그 불운과 맞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운수에 집착하는 걸까. 물론 이런 질문들은 드라마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이런 질문들에 드라마는 살짝이라도 답해줘야 하지 않을까.

 

황정음과 류준열은 전작에서 그러했듯이 이 작품에서도 열일하는 연기자들이다. 특히 황정음은 어찌 보면 감정 선이 일정하지 않은 이 드라마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몰입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연기자들이 열심히 해도 캐릭터가 그걸 받쳐주지 못하면 그다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는 인물들을 세우는 게 우선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케미는 그 공감대 위에서만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집밥 백선생2>, 요리가 즐길 거리가 되어가는 과정

 

백종원은 확실히 양에 민감해졌다. 설탕 한 스푼을 넣거나 소금을 넣거나 혹은 간장을 넣을 때마다 그는 자기 입맛에 맞게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다. 야외 캠핑을 갈 때 가져가면 스타가 될 수 있다며 만들어낸 스페인 정통 소스 로메스코 소스를 만들 때 소금을 넣으면서도 그는 각자 알아서 적당량을 넣으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이렇게 된 건 그의 요리가 설탕과 소금의 양이 많다는 의견들 때문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설탕 폭포수 CG가 나간 이후 그는 지금까지도 슈가보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내지 못했다. 그러니 맛있게 요리를 만들기 위해 간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항상 조심스럽다.

 

<집밥 백선생>의 고민구 PD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백종원은 과거에 비해서 의기소침해 보일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한 때는 자기 자랑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허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그였다. 그가 자주 했던 그럴싸 하쥬?”라는 말투는 친근하면서도 그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백종원은 그런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먹어봐” “죽어같은 말을 아주 은근하게 건넨다. 대신 요리에 대한 반응들은 제자들이 채워준다. 김국진이 그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웃는 모습은 백종원의 요리에 대한 신뢰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많은 레시피들은 넣는 재료들과 그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그 재료를 하나하나 구입하고 그 양을 맞추는 것이 요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레시피는 말해준다. 물론 일종의 공식 같은 레시피는 중요하다. 하지만 백종원은 그런 레시피를 알려주면서도 없으면 패스라던가, ‘적당히라는 표현으로 그 강박을 없애준다.

 

본인은 양을 얘기할 때 강박이 생겼지만, 그래서 각자 알아서 간은 자기에 맞게 맞추라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는 훨씬 더 요리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무슨 요리를 하려다가도 재료 하나가 비면 그것 때문에 맛이 없을까봐 요리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백종원은 그런 건 과감하게 건너뛰라고 말하고, 원 재료가 없으면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식의 편안한 접근은 요리를 해본 적이 없거나 요리를 하는 것에 어떤 강박 같은 게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것은 <집밥 백선생>이 그저 흔한 쿡방이 아니라 실제로 주방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문턱을 낮춰주는 이 프로그램만의 편안함 때문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요리를 즐기는 모습은 <집밥 백선생>이 요리를 직접 하려는 목적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집밥 백선생>은 요리 레시피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요리를 갖고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양에 대한 분분한 이야기들 때문에 심지어 의기소침해 하기도 하는 백종원이지만, 적어도 이 프로그램이 요리에 대한 편견들, 이를 테면 요리는 어려운 것이라거나, 요리는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식의 생각들을 깨주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법하다. 그런 양에 대한 강박을 벗어내자 오히려 <집밥 백선생>의 요리들을 여유로워졌다는 것도

<또 오해영>, 벌써부터 엔딩 두고 분분한 까닭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18부작이다. 본래 16부작이었지만 2회 연장되었다. 그리고 현재 9회까지 방영되었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셈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엔딩을 두고 얘기가 분분하다. 이렇게 된 건 많은 이들이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또 오해영>에 얽혀있는 관계와 남자주인공 도경(에릭)의 미래를 보는 증상(?)이 새드엔딩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오해영(서현진)과 도경은 사실 악연과 인연이 얽혀있다. 도경은 자신을 떠난 오해영(전혜빈)과 이름을 혼돈해 해영의 남자친구인 태진(이재윤)을 파산하게 만들었다. 태진은 그 사실을 숨긴 채 해영에게 결혼식 취소 통보를 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이다. 하지만 그 악연으로 인해 두 사람은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 해영이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도경은 처음엔 죄책감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가 차츰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이 점점 사랑으로 싹터 오른다.

 

처음 해영과 도경이 옆집에 살면서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해가는 그 과정은 달달했다. 하지만 곧 태진이 출소하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정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결과만을 두고 보면 도경은 해영의 남자친구를 구치소에까지 가게 만들고 그녀를 빼앗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만일 이 사실을 해영이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가. 과연 그간 쌓은 인연으로 과거의 악연을 지워낼 수 있을까. 새드 엔딩을 떠올리게 되는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드엔딩을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이유는 도경이 가진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증상 때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가능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혹자는 지금까지의 이 모든 상황들이 사실 교통사고로 코마 상태에 있는 도경의 회고 속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럴 듯한 추론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실제로 이런 추론의 가능성이 그려지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벌어진 듯 도경이 차를 세우지만 사고 차량은 정작 보이지 않는 장면이나 지금까지 뭐가 보인 건지 알겠다는 의사가 예고편에서 넌 지금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있고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아직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 것이 아니라 확증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도경이 무언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건 분명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써부터 새드엔딩을 얘기하기는 너무 성급하다. 이런 이야기가 후반부에 등장했다면 아마도 새드엔딩쪽에 더 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중반에 도경의 문제나 그와 해영의 얽힌 악연의 이야기들이 나온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남은 후반에 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추론이 맞다고 해도 그것이 새드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반에 벌어지고 있는 이 충격적인 반전이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엔딩에 이토록 목매게 된 건 다름 아닌 도경과 해영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시청자들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많은 악연과 사고들이 벌어졌지만 나 심심하다고 절박하게 외치는 해영의 목소리는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기원하게 만든다. 많은 징후들이 일찍부터 불길한 이야기를 예고하지만 그럴수록 그것이 해결되고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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