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사극보다 현실 같은 사회극

 

<용팔이><미세스캅>은 주중 드라마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월화드라마 <미세스캅>은 심지어 사극인 <화정>을 밀어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고, 수목드라마 <용팔이> 역시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역시 사극인 <밤을 걷는 선비>에 대한 화제조차 덮어버렸다. 전통적으로 사극에 강했던 MBC드라마가 사회극적인 요소가 강한 SBS드라마들에 밀려버렸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그 첫 번째는 MBC 사극이 너무 지나치게 허구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화정>은 초반만 해도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관점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그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정명공주(이연희)를 중심으로 세워 꾸려나가는 이야기에 근본적인 허점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역사의 재해석을 넘어서 버렸다. 심지어 너무 심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사실 사극에서 역사 왜곡의 문제는 이제 사극이 역사보다는 극에 더 중점을 두게 되면서 조금은 지나버린 구닥다리 논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은 다시 역사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지나친 상상력의 개입은 그것이 역사와는 무관한 허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고개를 숙였던 KBS 사극이 <정도전><징비록>을 통해 재조명된 건 이런 허구화되어가는 사극에 대한 반작용을 잘 말해준다.

 

<밤을 걷는 선비>는 아예 판타지다. 웹툰 원작의 이 작품은 사극과 뱀파이어물을 섞어 놓은 작품.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느 정도는 실패요소를 안고 시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사극에 대한 충성도 높은 중장년 시청층과 뱀파이어물이 갖는 젊은 세대의 시청층이 상승효과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집중력을 분산시킨 작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왜 유독 지상파에서 시도된 뱀파이어물들이 모두 실패했는가를 잘 말해준다. 즉 뱀파이어물은 웹툰에는 잘 맞는 장르인지는 몰라도 지상파의 본방 시청 패턴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실성을 벗어나 판타지로 가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이준기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극을 끌고 나가고는 있지만 그 판타지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시청자들은 찾기가 어렵다.

 

반면 SBS<미세스캅><용팔이>를 통해 들고 나온 건 사회극이다. <미세스캅>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조리한 사회에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은 장르적 특성상 잘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이 작품은 최영진(김희애)이라는 아줌마 형사 캐릭터를 중심에 세움으로써 중장년 남녀 시청자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최근 대중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재벌의 문제나, 치안, 불공정한 정의의 문제에 내포된 현실을 상기시키는 정서가 이 드라마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용팔이>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드라마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바탕은 사회극의 정서를 깔고 있다. VIP 병동과 일반 병동 사이에 느껴지는 갑을 정서는 이 드라마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속물 의사처럼 가장된 휴머니스트 김태현(주원)이 이 거대 자본과 맞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공분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물론 <미세스캅>이나 <용팔이>의 스토리가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 역시 판타지를 자극하는 허구적 요소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깔려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정서들이다. 이 정서들은 <미세스캅><용팔이>의 허구적인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을 표징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현실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한 <화정><밤을 걷는 선비>와는 확연한 차이다.

 

한때 잘 나가던 MBC 사극이 SBS 사회극들에 밀려버렸다는 사실은 거꾸로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갈증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팍팍한 삶에 우리와 무관한 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우리 현실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사회극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사회극 속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진짜사나이> 전미라,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의 힘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3 부사관 후보생 면접에서 전미라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결혼 전에는 테니스 선수 전미라로 살았는데 방송하는 신랑을 만나서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 “남편은 도와줄 수 없는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고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혹자는 전미라의 이런 이야기를 두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이야기가 한 줄의 기사로 나갔을 때 비난의 목소리들이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존재감의 문제는 잘 살고 못 살고와 상관없이 생겨난다. 제 아무리 잘 살아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마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이를 여럿 둔 엄마들이 흔히 우울감을 호소하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일까. 전미라가 자청한 <진짜사나이>의 여군 체험은 남다른 진지함이 들어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마치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지칭으로서가 아니라 전미라라는 자신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의지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는 타인이 갖지 못한 그녀만의 능력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났다. 그것은 그녀가 힘겨워했던 그 엄마로서의 삶이 그녀에게 부여한 능력이었다. 모성애라는 힘.

 

운동화에 신발 끈 묶는 거야 테니스 선수로 하며 늘 했던 그 경험치가 발현된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신발 끈을 다 묶어 놓고 다른 동료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건 마치 모성애가 부여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름표 두 개를 10분 만에 달라는 지시에 모두가 쩔쩔 매고 있을 때, 홀로 척척 바느질을 해내고는 동료들을 도와주는 모습도 그렇다.

 

언어 자체가 소통이 되지 않아 도저히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며 퇴소를 생각하는 제시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워주고 하나하나 챙겨주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엄마가 힘겨워하는 딸을 다독이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는 지금 포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선택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다독였고, 금세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제시에게 안 울면 갈 수 있다. 눈물 흘리면 약해지는 것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동료들 챙기기에 바쁜 전미라에게 제작진이 마더 미라사라는 별칭을 붙여준 건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오며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포기한 화생방 훈련에서 홀로 끝까지 참아내는 끈기와 인내 역시 그녀의 그간의 삶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사실 많은 주부들이 전미라 같은 허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의해 자기 자신만의 삶이 없다고 느껴지는 게 허탈한 것이다. 하지만 전미라의 경우처럼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자기 자신의 삶을 더욱 성숙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진짜사나이>가 보여준 전미라의 군대 체험은 그래서 주부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군대에서조차 발휘되는 모성애라니.



1000회 맞은 <그것이 알고 싶다>, 자축보다는 문제제기를 하다

 

1000회를 맞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구치소에서의 특혜를 집중 조명했을까. 1000회라고 하면 무언가 그간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해왔던 일들과 그 성과들을 재조명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런 기념 방송을 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에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편부당한 일들을 알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포착한 건 구치소에서 자행되고 있는 법 정의의 불공정. 누구나 들어서 막연히 알고 있을 만한 이른바 범털개털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자세히 들여다 본 교도소 내 범털들의 수감 생활은 놀라운 각종 특혜들로 거의 수감생활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른바 집사 변호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접견이라는 명목으로 불러내 이들은 대부분의 수감생활을 접견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5시까지 긴 외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하루 두 번꼴로 구치소를 나와 접견실에서 변호사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외부 의료진을 불러 2번이나 치료를 했다고 한 걸로 드러났다. 물론 이러한 변호사 접견과 의료진 치료가 불법은 아니다. 즉 그러한 법적 조항들이 수감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평하게 모두를 위한 법 조항이 되지 못하고 가진 자들만을 위한 특혜로 활용되고 있다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가진 자들은 그 안에서도 가진 자들이었다. 공평한 룰 따위는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도 떠받들어지는 회장님이고 의원님이었고 금지된 외부 음식들을 반입해 먹는가 하면 휴식시간 같은 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들이 구치소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에서 교정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유유자적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그것이 가능했던 건 결국 돈이었다. 돈이 있는 이른바 범털들은 법 조항을 이용해 갖은 특혜를 받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심지어 죽음을 앞둔 고통 앞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래서 구치소에 들어간 이들이 그 시간을 통해 배우는 건 결국 돈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비뚤어진 의식뿐이었다고 한다.

 

사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회항논란으로 들끓는 여론이 그나마 조금 잠잠해졌던 건 그녀가 구치소에 수감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과연 끝이었을까. 그 안은 또 다른 갑질의 현장이었다. 대부분의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재벌가의 사건사고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구치소로 들어갔지만 그 안에서 법정의의 공정함 따위는 없었다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1000회를 자축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치소 안의 문제까지 들춰내 그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공정한 법 집행의 문제제기를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이 그렇게 한가한 자축을 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또 다른 문제제기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현실의 불편부당한 일들을 아는 것. 그래서 그 현실이 바뀌기를 촉구하는 일. 그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금껏 1000회에 걸쳐 해왔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토로 마을 찾은 <무도>, 유재석이 사과한 까닭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우리가.” 유재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참고 참으며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우토로 마을에 1세대로서는 이제 혼자 남은 강경남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는 하하와 유재석에게 오히려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어 이주한 우리네 동포들이 지금껏 살아가는 곳 우토로 마을. 그곳에 따뜻한 한식을 들고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그렇게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한없이 고개를 떨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하하와 유재석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라가 어려워 그렇게 힘겹게 한 세상을 살게 됐던 우리네 동포들이 아닌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고 있었다는 건 크나큰 잘못이었다.

 

우토로 마을이 우리에게 재조명 됐던 건 약 10여 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회원과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여해 했던 애끓는 호소는 여러 민간단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89년 일본정부는 우토로 거주 동포들에게 우토로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 노역을 했던 우리 동포들에게 터전을 주기는커녕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땅을 매각해 이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2004년 이 사실이 알려지고 민간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민간단체와 재단들은 '그까이꺼 사버리자'며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연을 접한 서민들은 꾸깃꾸깃 모아뒀던 쌈짓돈을 모아 성금을 보내왔다. 그리고 여론에 의해 국회에서도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30억 원 지원이 의결되기도 했다. 2011년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우토로 지역의 832평을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또 1152평을 한국정부의 지원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전체 크기의 3분의 1 정도 되는 규모였지만 그렇게라도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토로 마을을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여전히 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그 분들에 대한 우리의 부채감을 마치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분들을 위해 <무한도전>이 정성껏 차려낸 한 끼의 밥상과 사라질 집 앞에서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듯 사진을 찍어두는 장면에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얹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행복해지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하하와 유재석의 마음은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유재석의 이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제 1세대로서는 단 한 분 남아있는 강경남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연세는 91세였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이 곳으로 와서 벌써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래도록 흘렸을 눈물로 더 이상 말라버렸을 것만 같은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라도 찾아준 그들에게 할머니는 연실 고마움을 표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유재석의 사과는 같은 동포로서 아마도 그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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