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tvN 전성시대 케이블 트렌드 만드나

 

이명한 CP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보다 할배>가 펄펄 날더니 이어 <응답하라 1994>는 후속작의 부진 같은 우려는 일찌감치 깨버리고 전작의 아성마저 뛰어넘어버렸다. 그에게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 그리고 이 두 작품에 모두 단단한 밑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이우정 작가 모두 KBS 시절부터 함께 잔뼈가 굵어온 동생들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금 케이블 채널의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2%만 나와도 대박이라 부르던 케이블이 이제 7%는 기본이고 두 자릿수 시청률까지 노리고 있다니.

 

'응답하라 1994(사진출처:tvN)'

오는 29일 밤은 어쩌면 그래서 케이블 채널의 새로운 기록이 달성될 지도 모르는 분위기다. <응답하라 1994><꽃보다 할배>의 후속인 <꽃보다 누나>가 연속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이 형국.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 아니던가. KBS <해피선데이>의 최전성기 시절의 그림이다. 앞에서 신원호 PD<남자의 자격>이 당겨주고 뒤에서 나영석 PD<12>이 밀어주던 그림. 그래서 이명한 CP가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두 자릿수 시청률은 그리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2년 전 이명한 CPCJ로 이적하던 시점만 하더라도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케이블에 대한 인지도가 조금씩 생기고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보편적 시청층을 겨냥하기보다는 여전히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상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른바 케이블 라이크한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기획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현재 상황은 바뀌었다. 이명한 CP여전히 케이블 라이크한 프로그램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보편적 시청층을 함께 가져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tvN으로 대변되는 CJ의 케이블 운영은 그렇게 보면 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에는 일단 채널을 알리기 위해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와 마니아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했지만 어느 정도 채널에 대한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자 노선을 서서히 바꾸어왔던 것. 이른바 이명한 사단으로 불리는 KBS <해피선데이> 출신 제작진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송창의 대표로 상징되는 초창기 PD들이 케이블의 존재를 알렸다면, 이제 그 기반 위에서 이명한 사단이 특유의 보편적 마인드로 폭넓은 시청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

 

tvN의 약진은 또한 KBS 시스템에서는 좀체 시도하기 어려운 참신한 도전들이 일상적으로 시도되는 케이블의 분위기가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12>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KBS의 분위기 속에서 <꽃보다 할배><응답하라> 시리즈는 나오기 어려운 콘텐츠임에 분명하다. 특히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를 떠올려 보라. 과연 KBS에서 예능 PD에게 드라마를 과감하게 맡길 수 있었겠는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지상파만큼 안정적일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려는 젊은 PD들에게는 오히려 안전하다는 것이 고마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물론 이번 tvN의 약진은 그 중심에 심지어 스타 PD와 작가의 반열에 오른 몇몇 제작자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나영석 PD와 신원호 PD 그리고 이우정 작가가 없었다면 이처럼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게다. 이명한 CP는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의 장점이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신원호 PD 같은 경우에는 어떤 장르를 주던 기본 이상을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나영석 PD는 비슷한 분야 안에서 브랜딩 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여기에 예능에 정서적인 살을 붙이고 톡톡 튀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탁월한 이우정 작가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는 드림팀이 구성되었던 것.

 

고무적인 것은 <꽃보다 할배><응답하라> 시리즈가 단순한 콘텐츠의 재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는 뒤늦게 실버 파워 트렌드를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지상파에서 이 트렌드에 뛰어들게 만들었으며, <응답하라> 시리즈는 90년대 복고 트렌드를 전면에서 이끌어냈다. 즉 프로그램을 만든다기보다는 하나의 트렌드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이들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꽃보다 누나><응답하라 1994>의 합동작전은 과연 지상파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요즘은 지상파 예능에서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니 만일 이 괴물 같은 프로그램들이 두 자릿수 시청률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어쩌면 케이블이 지상파를 압도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이 일은 실현 가능한 일이 될 것인가.

여배우 송혜교가 거머쥔 대상의 의미

 

여배우가 되는 길은 얼마나 멀고 험난한 것일까. 사실 스타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된다는 건 다른 얘기다. 특히 외적인 이미지로 먼저 대중들에게 자리매김하기 마련인 여자 연예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스타가 되어 CF 등을 찍으며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하나의 고정된 스타 이미지로 굳어져버리기 시작하면 연기의 길은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에이판 스타 어워즈에서 대상을 탄 송혜교(사진출처:UAA)'

그런 의미에서 지난 16일 열린 대전 ‘2013 에이판 스타 어워즈(APAN STAR AWARDS)’에서 쟁쟁한 후보들 중 대상을 차지한 송혜교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연기력을 중심으로 시상하는 이 시상식에서, 또 올해처럼 유독 여성 연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해에 그 누구도 아닌 송혜교의 대상 수상은 그녀가 오래 전부터 스타의 길이 아닌 여배우의 길을 힘겹게 걸어온 것에 대한 결실이자 보상이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 특히 <내 딸 서영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맹활약한 이보영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송혜교와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 간의 팽팽한 의견이 오갔던 후보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에 대상으로 송혜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이견이 없었다. 화제성이나 드라마의 인기 등을 염두에 둔다면 달랐겠지만, 에이판 스타 어워즈가 오로지 연기력을 중심으로 보는 시상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가 소화해낸 오영이라는 시각 장애인 역할이 쉽지 않은 연기라는 걸 모두가 인정했고, 그녀의 연기가 확실히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은 공감했다. 그녀의 존재감을 처음 보여주었던 <가을동화>나 <풀하우스>가 그녀 연기의 가능성이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부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리고 영화 <오늘>과 <일대종사> 같은 작품은 그녀의 본격적인 연기도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특히 섬세한 내면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드라마였다. 특별한 스펙터클이나 다이내믹한 서사보다는,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작은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었다. 앞을 못 보는 오영(송혜교)과 거짓으로 다가온 오수(조인성)는 모두 겉과 다른 감정의 변화를 미세한 연기를 통해 연기해내야 했다. 어찌 보면 연기자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드라마였다는 것.

 

연기력을 통한 대상 수상으로 완전한 여배우로서 자리매김한 송혜교는 스타에 머무르지 않고 여배우가 되려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송혜교는 먼저 좋은 작가,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작가는 그래서 그저 귀엽고 순수하게만 보였던 송혜교에게서 때론 날카로운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끄집어내주었고, 영화 <오늘>의 이정향 감독은 그녀에게서 딜레마에 빠진 여자로서의 섬세한 내면연기를 발굴해냈다. <일대종사>의 왕가위 감독에 이어 <태평륜>의 오우삼 감독까지 그녀의 여배우로서의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배우의 길. 스타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배우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걸어간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배우의 길은 또한 여자 연예인이 반짝 스타로 젊음의 한 때를 구가하다 사라지는 것보다, 더 오래도록 대중들과 함께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송혜교의 선택과 일련의 과정들은 배우를 꿈꾸는 많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송혜교는 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지난 해 막 추워질 무렵 <그 겨울> 첫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 이 자리에 서니 그 때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고 촬영장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연기를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올 겨울의 초입에 송혜교의 대상 소식은 그 때 불었던 따뜻한 바람의 감회를 다시 느끼게 한다. 송혜교라는 여배우의 앞길에 언제나 훈풍이 불어주기를.

<무도>와 유재석의 낮은 눈높이에 대한 의지 

 

이토록 다양한 아이템들과 기획의도가 어떻게 하나로 묶여질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 ‘관상 특집’은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무한도전>의 자신감과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늘 대중의 눈높이 아래에 자신들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특집이기도 하다. 이 한 편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걸어온 역사가 자연스럽게 묻어있고 그 역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비법 또한 들어가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관상 특집’은 이 놀라운 시도를 통해 <무한도전>이 지금 현재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 세계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무수한 아이템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 관상 전문가를 데려다 놓고 조선시대였다면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놈이며 누가 왕이고 누가 상놈 중의 상놈인 망나니인가를 가려내는 장면은 지금껏 <무한도전>의 확실한 성공아이템으로 자리했던 외모 대결의 진화된 형태다.

 

하지만 ‘관상특집’의 스토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조선시대라는 상황극 속으로 뛰어들더니 지금껏 <무한도전>이 상황극을 통해 현실을 비틀기도 했던 그 풍자정신을 녹여낸다. 왕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향락에만 빠진 폭군이며, 고언을 하는 충신을 말 한 마디로 망나니 신분으로 떨어뜨린다. 떡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 받는 식의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시도되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오가고 게임 결과에 의해 신분이 뒤바뀌면서 권력구도가 재편된다.

 

굳이 <무한도전>이 엄청난 화제와 함께 무수한 말들까지 쏟아냈던 자유로 가요제 이후, 갑자기 ‘관상특집’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의미심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자유로 가요제가 보여준 <무한도전>의 위상은 누구나 주지하듯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높아진 위상은 <무한도전>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관상특집’이 다루는 잘못된 권력의 문제나 권력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건네는 <무한도전> 방식의 대답이 되기도 한다.

 

상황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갑자기 현대로 넘어오는 건 <무한도전>의 이제는 어디로 튀어도 이야기가 가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상황극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었고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무상함이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조선시대 폭군이었던 정형돈은 현재에는 지나는 행인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질 뿐이다. 또 조선시대 망나니로 신분이 하락한 유재석은 한 착한 아줌마에게 계란을 얻어먹고 누군가 먹다 남은 잔반으로 배를 채우며 복수를 꿈꾸지만(신분의 복귀) 그건 현대에는 사실 의미 없는 일이다.

 

여전히 계급 제도의 권력의 틀에 묶여 있는 이들이 그래서 대중들 속으로 들어와 거리를 활보하는 건 <무한도전>이 과거 ‘지못미’ 특집 등으로 선보였던 벌칙 미션의 새로운 형태이면서 동시에 신분과 계급 그리고 권력이 가진 우스꽝스러움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출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건 한 지나는 직장인에게 신분을 묻자 그가 ‘노비’라고 하면서 ‘주인님’한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상황극과 현실이 또 조선시대와 현재가 하나로 묶여지는 이 장면은 계급제도는 없지만 자본이 만들어내는 신분과 권력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신분을 바꾸기 위한 추격전이다. 조선시대에 궁궐에서 벌어졌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과거 <무한도전> 초창기의 게임 형태였다면 현대로 들어온 인물들이 도심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현재 <무한도전>의 진화된 형태의 게임인 셈이다. 그러니 <무한도전> ‘관상특집’은 외모순위 특집이나 상황극, 시민들과 함께 하는 지못미 벌칙에 이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게임의 진화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 많은 성공 아이템들이 무수히 배치되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한도전> 월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무한도전>의 위치를 대변하는 듯 주목되는 인물은 역시 유재석이다. 그는 양반의 위치에서 졸지에 망나니가 되어 현재의 거리로 내던져진다. 이른바 유재석이 가진 막강한 힘은 이미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의 의지는 대중들보다 항상 낮은 눈높이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길바닥에 누군가 버리고 간 이쑤시개를 아무렇게나 쓰고, 심지어 누군가 남긴 잔반을 먹으며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대중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와 진심으로 뒹굴 수 있는 의지. 어쩌면 유재석과 <무한도전>이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위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무한도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권력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힘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밀>, 집착을 버릴 때 더 커지는 것

 

가지려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비밀>의 엔딩은 그 사랑의 진정한 비밀을 알려주면서 마무리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유정(황정음)은 행복을 위해 아들을 놓아주었고, 그토록 조민혁(지성)을 갖기 위해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한 신세연(이다희)은 그를 놓아주었다. 조민혁은 사장직을 버렸고 안도훈(배수빈)도 신세연과 성공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과오를 모두 인정했다.

 

'비밀(사진출처:KBS)'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민혁에 대한 신세연의 집착이 그렇고, 안도훈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으며, 박계옥(양희경)의 아들에 대한 집착 또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집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이 집착의 고리들을 끊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민혁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고, 안도훈에게 정의를 알게 했으며, 박계옥에게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갚으며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강유정이 왜 그토록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는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죄 없는, 아니 그 죄를 비밀로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비밀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을 때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

 

드라마는 강유정이 법정에 선 장면으로 시작해서 안도훈이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끝난다. 억울한 강유정이 차츰 현실을 깨달아가고 그래서 결국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애초에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첫 회에 벌어진 사건에 깔린 숨겨진 이야기들이 마지막 회에 드러날 수 있는 건 이 완결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비밀>은 드라마가 참신해질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통속극에 가까운 평범한 멜로와 복수극이 될 수도 있었던 소재였지만, 그 안에 시청자가 궁금해 할 수 있는 비밀 코드를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었고, 그 비밀 속에 사회와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음으로써 이야기가 통속 치정극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 결국 참신한 드라마란 전혀 새로운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밀하게 다루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로 변주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비밀>은 보여주었다.

 

또한 <비밀>은 드라마의 성패가 단순히 작가의 시청률로 만들어진 지명도나 원고료 액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시청률에 올인하면서 자기복제나 심지어 막장도 서슴지 않는 중견작가들의 세상 속에서, 신인작가의 과감한 발굴이 얼마나 드라마를 참신하게 만들어주는가를 <비밀>의 작가들을 통쾌하게도 알려주었다. 이로써 입증된 단막극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비밀>은 그래서 주제의식이 그러하듯이 가지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만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고, 그 시청률만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으며, 연기가 아닌 스타성만을 앞세운 연기자를 세우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비밀>이 가지려 했던 것은 작품의 완결성이고 그걸 통해 추구하는 대중들과의 공감대였다. 그것은 결국 <비밀>이 시청률에서도, 무명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데도, 또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연기자를 재발견하는데도 성공한 이유가 되었다.

 

이제 <비밀>은 종영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들에게 던진 질문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스타작가와 스타배우에 힘입어 그저 시청률만 나오면 다라는 식의 드라마 제작 패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코드를 계속 복제해 사용하는 퇴행적인 드라마를 반복할 것인가. 몇몇 스타작가와 스타배우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드라마 제작의 양극화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비밀>은 이 많은 질문들에 이미 스스로 답을 보여주었다. 집착이 오히려 비뚤어진 결과만을 가져오듯 놓아야 산다. 이 반복되는 드라마 패턴에 대한 집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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