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 하이틴 로맨스 사극의 탄생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잊어 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랐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왕세자 훤(여진구)이 연우(김유정)에게 애틋한 마음을 고백한다. 10대의 어린 나이지만 어딘지 이 고백에는 절절한 훤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 고백을 듣는 연우의 마음 또한 그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아프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훤의 이복형이자 존재자체가 위협이 되는 라이벌 양명(이민호)이다. 그는 일찍이 "모두가 세자의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했다. 연우만 그의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한편 연회에서 홀로 멈춰선 윤보경(김소현) 역시 끈 떨어진 연처럼 어딘가 사라져버린 훤을 찾는다.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이것은 이 사극의 제목이기도 한 '해를 품은 달'이 가진 스토리의 기본전제이다.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이 갖게 되는 운명적인 사랑. 현대극의 멜로였다면 그저 그런 사각관계에 지나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자 이 네 명의 운명은 진중한 무게를 갖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왕과 왕후가 될 사람들의 멜로가 아닌가. 하늘에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이 공존할 수 없기에 멜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두 사람뿐이다. 멜로의 끝이 생사를 가름하는 이 구조는 드라마에 극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이 엇갈린 운명이라면?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 의해 왕후의 상을 점쳐달라는 명을 받은 성수청 국무 장씨(전미선)는 연우와 윤보경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왕후의 상을 지녔으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수 없고, 왕후의 상은 아니나 교태전의 자리를 가질 운명.' 이 말은 이 멜로가 엇갈린 운명의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연우가 아닌 윤보경이 왕후가 되는 이 예정된 운명이 만들어낼 파국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 것인가. '달을 품은 해'가 아니라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연우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는 훤의 미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이 역사 바깥으로 과감히 뛰쳐나와 멜로 사극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것처럼 '해를 품은 달'은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여자 주인공 연우와 그 주변을 감싸는 훤, 양명, 허염(송재희), 운(송재림)은 저 F4의 사극 버전으로 읽혔던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꽃선비 허염이 지나갈 때마다 과장되게 쓰러지는 궁녀들이나 그에게 빠져 위신이고 뭐고 상관없이 달겨드는 민화공주(진지희), 또 연우의 뇌구조를 그려놓고 7할이 오빠 허염이고 2할이 양명이며 1할이 운이지만 훤은 점에 지나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관 같은 현대적인 설정은 사극이지만 하이틴 로맨스가 갖는 발랄함을 잊지 않는다.

어른들의 정치 세계가 갖는 어둡고도 무거운 기운이 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과 순수함으로 이 어두운 세계와 대적하려 한다. 정치적인 가식과 계급적 주종관계를 떠난 순수한 진심의 대결. 이것은 감히 궁 안에서 벌이는 로맨스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비록 적이라도 입속의 혀처럼 지내거라. 그것이 정치다."라고 말하는 이판 윤대형(김응수)의 조언에 어린 나이에도 가식어린 정치의 행보를 보이는 윤보경과,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연우의 대립구도는 그래서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사극이라는 틀에 박힌 구조를 떠올린다면 '해를 품은 달'의 파격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일단 역사라는 틀거리 자체를 과감하게 무시해버리고 그저 과거라는 그 완벽한 빈 도화지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10대에서 시작해 20대를 넘기지 않는 청춘들의 로맨스가 아닌가.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가슴 설레는 로맨스가 저항하는 것이 저 틀에 박힌 정치판의 이전투구이기 때문이다. 수평적 동무관계인 아이들은 어떻게 계급적 서열과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에 서 있는 어른들에 의해 그 운명이 유린될 것인가. 그 아픔을 바라보는 만큼 그만큼 순수하게 여겨지는 이들의 사랑은 우리네 가슴을 울리게 할 수밖에 없다.


'나가수'와는 또 다른 음악의 세계, '룰루랄라'

'룰루랄라'(사진출처:MBC)

'룰루랄라'에 김건모가 고정 출연하고 있다는 건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건모가 누군가. '나는 가수다'에서 첫 탈락자로 선정되었다가 재도전을 하게 되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결국 담당PD가 교체되었고, 김건모도 자진 하차했다. 그런데 이 김건모의 '재도전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김건모가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태도다. 그는 음악이 즐거운 것이라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광대 분장을 할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것이 '나는 가수다'라는 존재 증명을 묻는 프로그램에 대한 김건모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며 립스틱 퍼포먼스를 한 것이고, 그래서 탈락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나는 가수다'의 그 음악을 벌이는 경쟁적인 무대는 김건모에게는 애초부터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일밤'의 '나는 가수다'와 짝을 이루는 '룰루랄라'에 김건모가 있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와는 다른 음악적 지향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즉 제목처럼 '룰루랄라' 즐길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한다.

'룰루랄라'는 그래서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무대의 정반대에 프로그램을 위치시킨다. 이것은 오프닝 장소에서부터 드러난다. 아예 세트조차 없는 듯한 이 가난한(?) 프로그램은 방송사 음악실이나, 지하 주차장, 심지어 공사 현장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오프닝을 한다. MC도 메인으로 지상렬과 정형돈이 서 있지만 때로는 김용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때론 김건모가 나서기도 하는 등, 과연 그들이 메인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애매하게 흐를 때가 많다. 즉 중심과 변방을 허문 듯한 이 분위기는 '나는 가수다'가 갖고 있는 엄밀함을 해체하고 어딘지 흐트러진 자유분방함을 프로그램에 부여한다.

중요한 건 무대다. '룰루랄라'의 오프닝이 특별한 세트장이 없는 것처럼 이들의 무대도 특정 공간이 없다. 첫 번째 아이템으로 방영된 태교 콘서트는 MBC드림센터의 로비에서 진행됐고,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진행된 캐럴 플래시몹은 도심의 한 쇼핑몰에서 진행됐다. 대신 중요한 것은 콘서트의 콘셉트다. 산모들을 위한 음악회나, 크리스마스의 대중들을 위한 깜짝 퍼포먼스, 또 넥센 히어로즈를 위한 응원가는 이 프로그램의 음악이 불특정 다수에게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타겟팅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의 열창에 불특정 다수로 앉아 있는 청중들 중 몇몇이 눈물을 보인다면, '룰루랄라'는 그 소구층이 정확하기 때문에 모두를 감동에 빠뜨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태교 콘서트는 거기 앉아 있는 산모들의 마음을 건드리면서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따라서 '특정 타깃을 위한 콘서트'라는 '룰루랄라'의 특징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위대한 탄생2'에서 윤일상 멘토가 멘티들의 경연으로 '실연한 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했을 때 그 반응을 떠올려보라. 발라드가 가진 힘은 이런 음악회에서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룰루랄라'가 '일밤'의 '나는 가수다'가 음악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의 또 다른 면을 채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이 어디 그렇게 피 흘리듯 경쟁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저 즐기고, 누군가를 위해 작은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음악이 아닌가. 물론 지상렬이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시력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룰루랄라'가 '나는 가수다'의 반쪽으로 불충분하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지 못했던, 음악이 해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룰루랄라'는 혹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과정이 없는 리얼버라이어티쇼는 없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은 신년 첫 미션으로 '남자, 그리고 식스팩'을 다뤘다. 새해를 맞아 각오도 남달랐을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남격' 아저씨들은 배에 왕(王)자를 새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MBC에서 차승원이 '헬스클럽'을 통해 시도된 소재지만 '몸 만들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신년인데다가 '남격'의 아저씨들이 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이 미션은 프로그램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사실 '남격'이 과거 같지 않다는 비판이 생겼던 것은 바로 진정성 부족을 느끼게 만드는 '날방'의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대표주자는 이경규다. 그는 제빵사 도전에서도 실패했고,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도 실패했다. 물론 실패는 나쁜 게 아니다. '식스팩' 미션 역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어떻게 비춰주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남격'의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소재도 나쁘지 않고 미션을 임하는 멤버들의 자세도 그다지 불량하다 할 수 없지만, 이들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방식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춘합창단'을 기점으로 '남격'에서 몇몇 멤버들은 화면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때 대부분의 멤버들이 그랬지만, 특히 김국진, 이윤석, 윤형빈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저 가끔 이경규와 전현무가 자가 발전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물론 이유는 있다. '청춘합창단'의 주인공은 거기 서 있는 어르신들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살 도려내듯 멤버들의 방송분량을 잘라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청춘합창단'을 지속하면서 김태원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멤버들이 거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건 큰 잘못이다. 최소한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줬어야 '청춘합창단'이 '남격'의 소재로서 하게 되는 명분이 된다. '청춘합창단'은 하모니를 다루는 독립된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특정한 결과를 상정할 때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억지로 결과를 도출하려 하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무리하게 과정을 짜 맞출 수도 있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과정이 과도하게 생략됨으로써 미션 자체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경규가 제빵사 미션에서 연거푸 떨어졌거나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 떨어진 것은 이 과정을 중시했다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왜 그 과정들은 모두 생략되었을까.

1년 동안의 프로젝트였던 '귀농' 미션 역시 과정이 생략되고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 '탭댄스' 미션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지만 과정이 사라진 채 마지막 대회만 보여주었다. 개인 출전권을 갖게 된 이윤석은 정말 노력한 티가 역력했지만 그 땀의 장면들은 편집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는 함께 하기로 했던 탭댄스 미션에서 어느 순간 쑥 빠져버린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을 통해 유추될 수 있다. 이들이 빠진 과정은 생략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 즉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양준혁이 노력하는 과정을 길게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과정을 잡으려면 모두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어야 한다. 빠진 이들은 왜 빠진 것이고 뽑힌 이들은 왜 뽑혔는지를 말이다. '탭댄스' 미션의 이 그림들은 마치 선배들은 빠지고 후배들만 굴리고는 자기들이 빠졌기 때문에 후배들도 빠져야 한다는 볼썽사나운 수직체계의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남격'의 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나오는 상황은 자칫 멤버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나오지 않고, 결과적으로 늘 나오던 얼굴들(대체로 이것도 서열 순이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그 누가 열의를 갖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느낌은 '남격'을 노후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린다. 즉 서열과 라인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팀의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이경규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남격'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수직적인 서열의 느낌과, 과정보다 결과만 드러나는 상황, 그럼으로써 리얼이 아니라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 거기서 생겨나는 데 있다. 이경규처럼 나이든 대선배가 더 돋보이기 위해서는 혼자만 잘나갈 게 아니라, 유재석처럼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다른 멤버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남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무한도전'의 아저씨 버전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남격'은 '무한도전'이 아니라 '라인업'이 되어가고 있다. 팀원들의 수직적인 체계가 가져오는 이 고루함을 없애고 '무한도전'처럼 수평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맨 꼭지점만 드러내는 수직체계로는, 모두를 동등한 눈높이에서 보고 그 각자의 캐릭터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남격'이 신년에 들어와 시도하는 '식스팩' 미션은 소재에 있어 시의적절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미션 자체보다 중요한 그 미션을 수행하고 영상에 담아내는 방식의 변화가 없는 한, 이 미션 역시 그다지 공감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격'이 그들 말대로 "3년을 버텼으니 2년은 더 갈 수" 있으려면 바로 이런 변화가 시급하다. 꼭지점을 없애고 수평화시킨 후, 각각의 캐릭터들이 수행하는 과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정치인의 예능출연 왜 많아질까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작년 '나는 꼼수다'가 보여준 건, 정치와 대중문화가 엮어졌을 때 어떤 파괴력이 생기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인과 언론인이 출연했지만 '나는 꼼수다'는 전형적인 대중문화의 형식과 틀을 유지했다. 이 재미의 차원이 갖는 힘은 정치가 늘상 드리우고 있던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 차버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식상해진)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와 형식이었다.

정치의 전선이 새롭게 꾸며졌다. 과거 보수와 혁신으로 나뉘던 정당 중심의 정치 전선은 극도의 혐오를 일으키는 정치꾼들의 집단과 정치 바깥에 서 있으나 대중들에게 깊은 소통과 공감을 주는 인물들로 나뉘어졌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철수 교수 같은 비정치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가들이 주목받은 건 그 때문이다. 이들이 친 대중문화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는 건 기성정치인들이 그동안 소홀해온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발등의 불'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힐링캠프'라는 예능 토크쇼에 나온 건 이런 의미다. 또 이 프로그램의 다음 출연자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출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방송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작년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강용석 의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케이블 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고발 집착남으로 출연했다. 내용이 선정적이고 논란의 소지도 많지만 어쨌든 그는 방송에 고개를 내밀고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 또한 허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태도와 형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100분토론'이 아니라 '힐링캠프'에 출연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종종 있었다. 주로 '일밤'이나 '느낌표' 같은 공익형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홍준표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 같은 정치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힐링캠프'는 이들 공익형 예능과는 확실히 다르다. 또 박근혜 위원장,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가진 무게감도 다르다. 이들은 차기 여권과 야권의 대선주자로 지목되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연초의 예능 행보는 예사롭게 여겨진다.

이들이 예능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과거처럼 어떤 지도자적인 사회적 지침 같은 것이 아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해 처음으로 한 말은 '공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재미없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었다. 즉 박근혜 위원장의 출연 목적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목적에 걸 맞는 재미를 주기 위함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새우와 고래가 누가 세냐"며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다"라는 준비해온 농담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의미보다는 재미를 먼저 던져줌으로써 대중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려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의 목적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나 지지를 호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중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대중들은 높은 위치에서 가르치려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거꾸로 대중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해주는 이를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달라진 정치 전선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보수 혁신으로 가름하던 정당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다양한 공감할 사안들을 갖고 있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력과 같은 말이다.

한편 정치인들의 이러한 대중들과의 소통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 한편, 대중문화 역시 작년 말부터 지금껏 잘 다루지 않았던 시사, 정치 소재가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최효종을 중심으로 시사풍자 개그가 주목을 끌었고, tvN의 'SNL코리아'는 정치 사안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풍자를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방송 트렌드는 올해 치러질 총선, 대선과 맞물려 더 거세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정치인들의 예능과의 결합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인이 그토록 원하는 '소통과 공감'이 방송 출연을 한다고 그저 얻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출연해서 어떻게 하느냐다. 소통과 공감이란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중대하고 진지한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와 안건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은 그 어떤 거대담론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거대한 틀을 바꿈으로써 그 틀에 일상을 꿰맞추던 시대는 갔다. 이제 작은 일상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변화해나갈 때 큰 것도 바뀌어질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방송만큼 지금껏 갖고 있던 완고한 이미지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매체도 없다. 따라서 잘만 적응한다면 방송 출연은 어떤 선거 유세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방송에서의 가식적인 모습은 금세 들통 나기 마련이다. 진정성은 그래서 이제 방송인은 물론이고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진정성만이 대중들과의 진짜 소통과 공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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