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vs ‘바람의 화원’ vs ‘바람의 나라’

수목드라마 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MBC의 ‘베토벤 바이러스’, 신윤복과 김홍도의 삶과 사랑을 다루는 SBS의 퓨전사극 ‘바람의 화원’, 대무신왕 무휼의 일대기를 그린 KBS의 ‘바람의 나라’가 그것. 모두가 야심찬 기획이 돋보이는 대작드라마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 만한 작품들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드라마들이 각각 음악, 미술,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 그만큼 최근 우리네 드라마들이 소재의 다양화와 함께 전문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역사, 이 팽팽한 수목드라마 학기에 당신이 먼저 보고픈 1교시는 어떤 것인가.

음악시간 - 오케스트라로 표현되는 꿈의 앙상블
음악시간을 맡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그리고 있는 것은 음악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살아온 아줌마 첼리스트 정희연(송옥숙). 술좌석에서나 여흥을 돋우는 연주를 하는 공무원 바이올리니스트 두루미(이지아). 천재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경찰생활을 해온 강건우(장근석).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주기회를 갖지 못하는 오보에 주자 김갑용(이순재). 밤무대 연주자 배용기(박철민).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어 음악공부를 하지 못하는 하이든(쥬니). 모두가 어딘지 하나씩 부족한 인물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모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조련할 지휘자는 완벽주의자 강마에(김명민)다.

이들은 모두 악기를 들고 있지만 그 뒤에 각자의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이것은 부족한 단원들뿐만 아니라 완벽주의자 강마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천재인 정명환(김영민)과의 오랜 경쟁관계를 가져왔다. 단원들이 각자 자신의 사연 속에서 음악을 통해 얻어가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강마에도 천재적인 재능보다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내는 성과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명환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이 이야기들의 앙상블이 그 짧은 시간 속에 하나로 엮이는 과정이다. 이 음악시간이 베토벤과 모차르트, 브람스 같은 클래식 감상 그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시간 - 새로운 고구려 사극, ‘바람의 나라’
역사시간은 그간 꾸준히 관심을 받았던 고구려사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김 진 원작의 ‘바람의 나라’다. 92년도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고구려 열풍의 진원지로 자리한 ‘바람의 나라’는 사실상 ‘주몽’으로 시작된 고구려 사극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작년 드라마화된 ‘태왕사신기’는 ‘바람의 나라’ 원작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또한 그만큼 부담도 크다는 말이다. 드라마화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재해석을 두고 원작과 자꾸 비교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사극으로서의 ‘바람의 나라’는 분명 과거 여타의 고구려 사극과는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역사에서 그다지 조명되지 않았던 대무신왕 무휼을 다루고 있으며, 왕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함께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 같은 것을 사극의 틀 안에 녹여 넣고 있다. ‘연개소문’처럼 고구려가 주는 뉘앙스에 짓눌려 무리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고, ‘주몽’처럼 전쟁에서조차 전투전 규모의 액션을 보여주는 식의 시행착오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안정된 느낌을 주는 이 역사시간을 통해 고구려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역사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바람의 나라’다.

미술시간 - 그림으로 표현되는 섬세한 감정들
미술시간에는 김홍도, 신윤복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관심을 끌만한 두 천재화가의 그림이 있다. 동시대에 같은 도화서에서 활동했던 그들에 대해 이 사극은 도발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신윤복이 여성이었으며,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 실제로 많은 그림들이 그 미묘한 감정들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 사극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그림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마음의 표현, 그것은 어쩌면 한 폭의 그림이 전하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아닐까.

‘바람의 화원’은 사극이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취화선’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네 그림이 갖는 영상미와 그네들의 드라마틱한 삶이 영상물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이산’에서 일부 도화서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부분이었다. ‘바람의 화원’은 바로 그 우리네 그림의 이야기를 김홍도, 신윤복이라는 두 거장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는 사극이다. 대부분 전쟁이나 전투가 벌어지는 남성 중심적인 사극들 사이에서 이 사극은 아마도 가장 여성적인 사극이 되지 않을까. 미술시간이 유독 기대되는 대목이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세 편의 드라마들은 각각의 개성들이 넘치는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수목의 밤을 고민하게 만든다.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까운 작품들. 하지만 IPTV 같은 디지털 방송시대에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1교시 끝나고 2교시, 3교시를 즐기면 그만이니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족 제시한  '엄마가 뿔났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가족에 대한 두 가지 시점이 교차한다. 그 하나는 고전적인 가족드라마 속의 가족으로 드라마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가족관이다. 장남 영일(김정현)은 어느 날 불쑥 자식까지 가진 여자를 집으로 들여 아내로 맞고, 도무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노처녀인 장녀 영수(신은경)는 이혼남을 사랑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지옥엽 키워낸 막내 딸 영미(이유리)는 부잣집 아들과 결혼해 품격 운운하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을 가진 엄마, 김한자(김혜자)의 뿔 이야기는 지금껏 가족드라마들이 늘 다루었던 것들. 하지만 '엄마가 뿔났다'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다.

장남 영일이 들인 며느리, 미연(김나운)은 특유의 붙임성과 선함으로 가족 속으로 쉽게 융화되었고, 영수는 사려 깊은 종원(류진)과 그녀를 이해해주는 백점짜리 시어머니 종원 모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오히려 종원의 이혼으로 해체된 가족을 더욱 강력하게 봉합하는 역할을 해낸다. 영미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점점 이력이 나고, 그러려니 하며 지내게 되면서 오히려 시어머니의 귀여움 같은 것을 발견한다. 김한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났던 뿔은 모두 기우였던 셈이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남을 법한 상황. 그녀가 가족을 벗어나 '1년 간의 휴가'를 선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돌아보다
이 드라마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부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살아왔던 김한자가 프리선언을 하고, 재벌집 며느리와 결혼해 숨죽이며 살아온 김진규(김용건)가 돌연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고 집을 나가며, 집안의 어른으로 품위 있게 마감할 인생만을 생각해왔던 나충복(이순재)이 로맨스그레이에 빠지고, 친엄마라는 가족관계의 틀 속에서 새엄마를 무조건 부정하기만 해왔던 소라가 새엄마가 될 영수를 받아들이는, 지금껏 가족드라마가 그려내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초반부 전형적인 기존 가족드라마 틀 속에서의 이야기는 후반부 달라진 가족의 전제가 되는 셈이다. 초반부에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의 나를 그렸다면, 후반부에는 나를 중심으로 가족을 다시 재편하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제목에서 내세운 '뿔'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김한자는 불쑥불쑥 솟아나는 뿔을 느끼지만 그걸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저 혼자 독백을 통해 속으로 풀어낼 뿐이다. 이것은 김진규가 처한 허수아비 같은 자신의 삶 속에서도 그렇고, 나이 들어 갖는 연애감정을 주책으로 취급받는(심지어 가족에게도) 나충복의 삶에서도 그렇다. 점점 개인주의화되어가는 가족 속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자식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소라 역시 뿔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김수현 작가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낙관
그것은 뿔이기 때문에 드러내는 순간, 그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그러니 과거 가족 드라마들의 미덕은 가족을 위해 그 뿔을 숨기고 혼자 삭이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뿔났다'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다. 그 뿔을 드러내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뿔의 이유를 말하며, 그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이때 가족들이 이 뿔을 대하는 태도다. 김한자가 프리선언을 했을 때, 시아버지인 나충복은 흔쾌히 그것을 허락해주고 남편 나일석(백일섭)은 손수 집을 알아봐주기까지 한다. 김진규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도도하기 그지없던 아내 고은아(장미희)는 무릎까지 꿇으며 그를 잡는다. 나충복의 연애사실이 알려졌을 때, 가족들은 은근히 뒤에서 지원을 해준다. 소라가 엇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새엄마인 영수는 소라를 보듬어준다. 이 드라마가 그간 숨겨 놓았던 가족들의 뿔을 마음껏 끄집어내는 것은 가족에 대한 김수현 작가의 무한한 낙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이것은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생겨난 뿔이기에 가족이 또한 감당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평탄해 보이는 모습들과는 달리, 가족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과거의 가족관계가 만들어낸 뿔들이 존재하기 마련.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때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작은 물방울들도 흐르지 못하고 막히면 둑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그간 숨겨졌던 뿔들을 드러내고 보듬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이 드라마가 어느 때보다 그 울림이 큰 것은 지금 현재 가족 중심주의에서 나 중심주의로, 어느 누구의 희생에서 각자의 행복으로 바뀌어나가는 가족의 가치관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박2일’ 야구장 해프닝이 말해주는 것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TV 세상에서 1등이란 의미는 두 가지다. 그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더불어, 늘 비판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절대 넘보기 힘들었던 드라마 시청률과의 대전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던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최고로 찬양(?)되었지만, 하하가 군복무로 빠지는 시점을 기해 하향곡선을 긋게 되자 가장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식상하다”거나 “이제 한계”라는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외부에 더 노출되는 팀원들의 행동들은 쉽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뭇매는 시청률이 급락해 더 이상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이러한 1등이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지금 ‘1박2일’에서 반복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가 급부상하는 상황에 ‘1박2일’은 1주년 기념으로 간 백두산 여행을 기점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이 겪은 대로 ‘1박2일’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박2일’의 경우 더 불리하게 된 것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무한도전’과의 대결구도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지류로서 청출어람을 해온 ‘1박2일’의 그간의 승승장구는 ‘무한도전’의 하락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했다. ‘1박2일’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1년 전에 갔었던 충북 영동을 다시 갔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태백의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간 ‘1박2일’이 보여준 재미를 거의 재연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시청률 하락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1박2일’의 어떤 노력도 먹히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에 결국 터질 게 또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장에서 촬영을 한 ‘1박2일’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접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1박2일’이 승승장구했던 시기에 톡톡히 재미를 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대민 접촉이었다. 독도 같은 오지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의 대민 접촉은 ‘1박2일’ 멤버들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부각시켰다. 연예인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장면들은, 멤버들의 겸손한 자세로 읽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러한 대민 접촉은 정반대로 읽히게 된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장에 투입된 멤버들에 쏟아지는 비난의 초점은 그 시점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2등이나 3등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던 대중들도 1등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특히 그 1등이 어떤 하락의 기미를 내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상 2등을 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들은 1등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다지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비춰지는 양상은 다르다. 이수근이 방송에서 언급한 “이제 1년 만에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한 시청자게시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동정 어린 응원을 받았지만 이제 막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이 변화는 바로 ‘1박2일’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1등에 오를 리얼 버라이어티가 직면할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다.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하게 될 때, 프로그램의 진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순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언제까지 이 수직적인 순위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1등, 2등이라는 숫자경쟁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다른 형식이나 내용, 아이템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워킹맘은 없고 불량남편만 활약하는 ‘워킹맘’

‘워킹맘’에는 ‘불량남편 길들이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언뜻 보면 이 제목과 부제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진 것인다. 워킹맘, 최가영(염정아)이 불량남편 박재성(봉태규)에 의해 번번이 발목을 잡히는 상황은 실제로 이 상관관계가 더욱 신빙성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가 그려놓은 상관관계일 뿐이다. 현실에서 워킹맘의 문제와 불량한 남편의 문제가 겹쳐지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땅에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고민은 남편이 불량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회적인 시스템의 부재와 아줌마 직장인을 바라보는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워킹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은 기획의도를 들여다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기획의도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총 세 가지. 첫째는 워킹맘의 친정엄마 만들기이고 둘째는 짝퉁 친정엄마의 육아파업 선언, 셋째는 연하남편 인간개조 프로젝트다. 즉 워킹맘의 문제를 친정엄마가 없어서라고 상정하고, 그 친정엄마조차 파업을 선언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이로써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부지 연하남편을 개조한다는 내용을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워킹맘의 문제가 육아문제라는 건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의 해결책이 사회(직장 같은)와의 대결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작가는 육아를 대신해줄 그 누군가를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주제의식에서 한참 멀어져 보이는 ‘워킹맘’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었다는 것은. 그 해답은 바로 코미디에 있다.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워킹맘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불량남편이 길들여지고, 없는 친정엄마가 생기고, 육아파업을 선언하는 친정엄마가 결국에는 자식을 맡게되는 그 복잡다단하지만 얽히고 설키는 코미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주제의식에서 멀어지는 대신, 코미디를 선택하면서 워킹맘 당사자인 최가영보다 더 중심에 서게 된 박재성과 고은지(차예련)는 매번 코믹한 상황 속에 던져져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 이 드라마의 실제적인 주인공이 된다. 여기에 봉태규와 차예련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김현희 작가 특유의 코미디에 제대로 살을 입힌다. 실로 이 작가의 재능은 사회적 문제를 극화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코믹한 상황을 연출해내는데서 반짝반짝 빛난다.

‘워킹맘’은 그다지 심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량남편 길들이기’라는 부제에 해당하는 코미디를 지향하면서 이 드라마는 정작 제목인 ‘워킹맘’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해외출장의 기회 앞에서 서둘러 최가영이 일보다는 가정을 선택하고 불량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워킹맘으로서의 사회적 성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불량남편과의 재결합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최가영에게 육아문제는 어떤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반면, 불량남편은 확실히 길들여졌다. 차라리 워킹맘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이 드라마에 대한 화제성이나 주목도는 그만큼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편하게 웃고 즐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워킹맘’같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시하는 제목을 달고 있는 드라마를 그저 즐기면서만 볼 수 있을까.

세상엔 실제 워킹맘들이 많고 그들은 이 드라마의 제목만 보고도 단박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삶이 피곤한 워킹맘들이니 그저 이 드라마를 보며 실컷 웃고 즐기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컷 웃다가 끝에 가서 남는 어딘지 부족한 씁쓸함은 코미디로 전화하면서 이 사회적 문제가 결국은 내 가족이 감당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로 환원된 그 부분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이 시대 워킹맘들이 원하는 건, 박재성의 개과천선이 아니라, 최가영이 마음놓고 출장을 갈 수 있을 정도로 편견 없는 사회적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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