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굶기의 해학 vs ‘패떴’, 요리의 해학

‘1박2일’이 1주년을 맞아 초심을 되찾기 위해 떠난 충북 영동. 차를 타고 떠나는 출연진들은 시작부터 투덜대기 시작한다. 늘 먹을 것을 안주는 것에 대한 불만토로. 작년에 노홍철이 팬 사인회를 열어 먹을 것을 구걸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승기가 그 미션에 나섰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음식을 차안에 가만히 앉아 갈취(?)하는 다른 팀원들의 모습은 특유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연출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늘 부족한 ‘1박2일’의 밥상, 그 굶기의 해학
충북 영동에 도착한 후, 저녁거리를 찾아 빈 통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면도 작년과 똑같이 연출되었다. 작년 기꺼이 밥통을 열어 밥을 내주고,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내주시던 그 집들을 방문한 ‘1박2일’팀은 은지원과 MC몽, 이수근이 벌인 깜짝 쇼로 고마운 분들을 폭소로 쓰러지게 했다. 그렇게 가가호호 얻어온 밥과 반찬을 한데 넣고 비빈 후, 그들은 역시 1년 전과 똑같이 ‘티스푼으로 밥 떠먹기’게임을 했다. 작은 스푼으로 보다 많은 밥을 퍼먹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네들의 모습은 유아적이지만 본래 현실에서 조금은 붕 뜰 수 있는 여행이라는 아이템과 잘 맞물려 무리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잠자리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 역시 ‘먹는 게임’이다. 매운 불닭 양념을 찍은 고기를 먹고 참지 못하면 평상 위에서 백만 모기떼들에게 뜯겨 자야할 상황. 게임은 불꽃을 튀길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미션 또한 “자급자족으로 아침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심을 되찾기 위해 떠난 ‘1박2일’의 중심 아이템은 ‘먹는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자는 문제가 큰 아이템이지만 이것은 겨울이 되어야 힘을 발하는 것. 역시 여름의 아이템은 먹거리가 중심을 이룬다.

주목해야할 것은 ‘1박2일’이 먹는 문제를 웃음의 코드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1박2일’은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을 굶기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일주일을 굶으면 전봇대도 떡볶이로 보이는 법. 배고픈 이들은 먹기 위해 사생결단의 게임을 벌이며, 먹기 위해 치사해지기도 하는 행동을 보인다. 때로는 먹기 위해 구걸하는 불쌍한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주기도 한다. 먹는 것을 마음껏 제공받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복불복 게임이 그 즐길 틈을 막아선다. 먹거리에 대한 ‘1박2일’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여행 버라이어티가 주는 재미는 부족함, 굶기의 해학에 있다.

풍족한 ‘패밀리가 떴다’의 밥상, 요리의 해학
반면 ‘패밀리가 떴다’의 저녁상은 ‘1박2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패밀리가 떴다’ 역시, 물고기를 잡거나, 야채를 준비하거나, 요리를 하는 등 그 아이템의 중심에 서는 것은 먹거리이다. 하지만 그 먹거리는 부족함보다는 풍족함을 더욱 강조한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물론 저녁 밥상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그 일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 장어를 잡기 위해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 게임에 몰두한다. 그리고 돌아와 많이 잡히면 좋고, 적게 잡히면 아쉬운 정도이다.

하룻밤을 묵을 집에 돌아와 저녁상을 차릴 때 고민이 되는 것은 적은 식재료가 아니라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의 문제다. 그들에게는 이미 집을 봐달라고 떠나면서 그들에게 남겨준 풍족한 재료들이 집 주변에 널려 있다. 토종닭이나 숭어 같은 좋은 식재료가 제공되지만 달콤 살벌한 박예진이 그걸 요리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나, 미식연구가 윤종신이 패밀리의 맛좋은 저녁을 위한다면서 라면 스프나 통조림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1박2일’의 부족함이 갖는 해학은 없다. 오히려 그 즐거운 상황 자체가 웃음의 포인트가 된다.

여행의 먹거리에 있어서 ‘1박2일’이 그 먹느냐 굶느냐는 것 자체에 더 집중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맛있게 먹느냐 맛없게 먹느냐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이 점은 두 여행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야생의 상황에 좀더 치열한 상황이 주는 웃음을 추구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여행이 주는 아기자기함에서 웃음을 찾는다. 두 여행 버라이어티는 여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1박2일’에게 여행은 굶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해야하는 ‘야생’이지만,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은 부족함도 즐거움이 되는 ‘단합대회’의 성격이 짙다. 프로그램의 이미지에 있어서 ‘1박2일’이 리얼의 느낌을 강조한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어떤 로망을 준다.

여행이란 실로 바로 이런 현실과 환타지가 뒤범벅된 것이 아닐까. 떠나기 전의 막연한 기대감이나 여행지에서의 아늑함은 환타지가 되지만, 또한 그 여행에서 만나는 의외의 상황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지금 ‘1박2일’이 독점(?)하던 여행 버라이어티에 ‘패밀리가 떴다’가 뛰어들어 그 영역을 나눠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여행이 가진 두 밥상 중 ‘1박2일’이 갖지 못한 밥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여행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규정짓는 이 서로 다른 두 밥상 사이에서 시청자들의 숟가락은 어디로 향할까. 밥맛이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것이니 어느 한쪽의 쏠림을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밥상이 한동안 주말의 예능을 평정하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식객’의 맛, 그 이유

원작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과연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제대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였다. 원작 만화 ‘식객’의 묘미는 편편이 음식 하나하나로 끊어지는 그 독자적인 에피소드들의 상찬에 있다. 거기에는 고구마, 부대찌개, 김치 하나에도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만화로 ‘식객’을 볼 때 우리는 마치 뷔페식당에 온 듯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이 고기류를 좋아한다면 ‘쇠고기 전쟁’을 골라보면 되고, 토속적인 맛을 즐긴다면 ‘청국장’이나 ‘메생이’같은 음식편을 찾아 읽으면 된다.

‘식객’의 영화화는 왜 실패했나
하지만 이 만화라는 매체만이 갖는 찾아보고, 다시 보고 하는 묘미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그것도 두 시간 내외) 안에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주제를 향한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해진다. 영화‘식객’이 처한 불리함은 오히려 너무나 많은 반찬들 때문에 오히려 주요리가 묻혀질 수도 있는 ‘식객’만의 풍족한 재료에서 비롯된다. 어느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따라가자니 영화 전편으로 꿰뚫기에는 좀 약한 듯 싶고, 그렇다고 몇 개의 에피소드를 가져가자니 얼기설기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아예 형식 자체를 만화가 가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거의 시도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화화된 ‘식객’이 지나친 대결구도에 몰두하면서 오히려 ‘식객’만의 묘미였던 서민적인 밥상이 외면되었던 것은, 사실은 원작 만화의 진짜 맛이었던 이 소소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러모로 ‘식객’의 영화화가 실패한 점은 그 매체의 다른 특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해내기가 쉽지 않은 ‘식객’ 원작 만화가 가진 에피소드별 구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드라마화된 ‘식객’, 어떻게 재료의 균형을 맞췄나
그렇다면 드라마화된 ‘식객’은 어떨까. 같은 영상으로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는 그 매체 특성이 다르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 반면, 드라마는 시간적 흐름(몇 달 동안) 위에 에피소드들을 구성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리메이크의 관건은 따라서 드라마적 특성인 메인 뼈대(이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를 세우고, 그 위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살처럼 붙여놓는 작업에 있었다.

드라마‘식객’이 뼈대로 세운 것은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대결구도다. 드라마 초반부 거의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낸 ‘식객’은 그 위에 하나씩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살이란 성찬과 봉주의 대결 구도 밖에 있는 서민들과 음식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그리워했던 부대찌개에 관한 에피소드,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유순철)의 애끓는 부정(父情)을 얘기해준 게장 에피소드, 직업적인 편견을 넘어선 정형사 강편수(조상구)의 에피소드, 며느리와의 정을 녹차김치에 담아 얘기해준 치매할머니(김지영) 에피소드, 음식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는 걸 말해준 진수(남상미)의 어머니 에피소드 등등. 원작만화 ‘식객’이 가진 진짜 맛은 바로 이 살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내는 깊은 맛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식객’의 첫맛과 중심 그리고 끝맛
너무 흔한 구도라 하여 식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전통적으로 드라마 문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결구도를 뼈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쉬운 구도 덕분에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층의 눈을 일단 잡아끄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통해 ‘식객’ 본연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가지는 첫맛과 중심의 맛, 그리고 여운의 맛을 구성을 통해 연결해낸 것 같다. 첫맛은 대결구도로 강렬하게 잡아끌고 중심의 맛에서는 음식에 대한 성찬의 철학(서민적인 맛을 지키는)과 봉주의 철학(맛의 세계화)의 부딪침을 보여주며, 마지막 여운으로 음식이 가진 삶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것이다.

컨텐츠의 융복합이 문화의 한 경향이 되는 요즘, 이처럼 다른 매체는 거기에 담겨지는 컨텐츠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제목이라도 서로 다른 맛을 우리에게 선사한 ‘식객’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한번쯤 매체가 가진 융합가능성과 그 한계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드라마 가을 시즌, 전설이 될 연기자는?

영화의 여름방학 시즌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가을 시즌이 있다. 작년 가을 시즌에 맞춰 ‘이산’, ‘왕과 나’, ‘로비스트’, ‘태왕사신기’가 방영되었다면 올 가을은 작년보다 풍성할 것 같다. MBC의 ‘에덴의 동쪽’이 이미 방영중이며, ‘베토벤 바이러스’가 수목(9.10일)에 방영될 예정이다. KBS는 ‘바람의 나라’로 수목(9.10)에 정면대결을 벌일 이며, SBS는 ‘바람의 화원’과 ‘타짜’를 가을 드라마 대전에 내세울 예정이다. 대작 드라마만큼 관심을 끄는 건 이 작품들을 연기할 연기자들의 대결. 신들린 연기로 올 가을 드라마의 전설이 될 연기자는 누가 될 것인가.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 액션과 감성의 배우
‘에덴의 동쪽’으로 돌아온 송승헌은 윤석호PD의 드라마 ‘여름향기’의 감성적인 민우 역할에, ‘그 놈은 멋있었다’, ‘숙명’같은 그간 영화에서 쌓아온 액션 연기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모습이다. 시대극 특유의 비장하고 운명적인 주인공의 면면을 때론 섬세하게 때론 폭발적인 액션으로 풀어낼 송승헌에 대한 드라마 복귀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

대부분 복귀한 한류스타들이 모두 실패를 겪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송승헌의 복귀는 남다른 편. 한류스타의 초기 부드러운 이미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거친 카리스마를 덧씌운 점은 똑같은 이미지를 반복해 소비시키려한 여타의 한류스타들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 고집과 집념의 배우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은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연기한 이후, 그만한 캐릭터를 찾지 못했었다. 영화 ‘리턴’의 유재우는 외과의사라는 외피만을 가져왔을 뿐, 그 장준혁이 가진 내면의 끓는 고집과 집념은 가져오지 못했다.

‘무방비도시’의 베테랑 형사 조대영으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그의 신들린 연기는 이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하나에 최고를 고집하는 거의 아집에 가까운 모습을 연기할 김명민의 면면에서 장준혁이 가졌던 그 광기를 엿보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의 나라’의 송일국, 사극의 지존
사극의 지존이 지존을 만났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송일국이 ‘태조 왕건’, ‘해신’을 연출했던 강일수 PD를 만났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둘은 ‘해신’ 이후 다시 만나 하는 작업이며, ‘해신’은 송일국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에게 인지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후 ‘주몽’에서 특유의 카리스마와 함께 천진난만함을 선보였던 송일국은 고구려의 3대 대무신왕 무휼을 연기한다. 이로써 그는 보통 사람은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거대한 영웅 연기에 두 번이나 도전하게 된 셈. 특유의 집중력 강한 연기력이 어떻게 신화적인 영웅의 면면을 재현해 보여줄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람의 화원’의 박신양, 철두철미한 준비된 연기자
송일국이 강일수 PD를 만났다면 박신양은 장태유 PD를 만났다. ‘쩐의 전쟁’에서 특유의 굵직하고 속도감 있는 장태유 PD의 연출력 위에 제 물을 만난 듯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박신양은 ‘바람의 화원’의 김홍도로 그 여세를 몰아갈 예정이다. 이미 사극이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박신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

모든 것을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고 계산해 연기에 들어가는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박신양은 이번에도 그 주도면밀함을 김홍도 역할을 통해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상대역으로 나오는 문근영과 어떤 연기의 합을 보여줄 지도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대작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부담감을 어쩌면 온 몸으로 떠 안고 나가야 하는 배우들은 그러나 특유의 신들린 연기로 심지어 부족한 부분까지 충분히 채워주곤 한다. 풍성한 가을밤, 이미 풍년이 보장된 드라마의 밤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에서 이번 가을 드라마의 전설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그것이 누구든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는 블록버스터의 적이 아니다


흔히들 "재미를 위해 스토리를 단순화시켰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가 주는 재미의 적인가. 작년 '디워'논쟁의 중심에 섰던 것도 바로 이 스토리와 블록버스터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디워'는 블록버스터와 스토리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진 것처럼 논점을 이어갔다. 이른바 "복잡한 스토리는 시각적인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리다.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스토리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다. 김치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발굴해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어낸 '놈놈놈'은 그러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이야기를 최대한 최소화해 캐릭터와 액션 등 다른 영화적 요소들을 더 많이 부각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스토리에 집착하는 평단을 꼬집었다.


둘 다 블록버스터로서 스토리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디워'와 '놈놈놈'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영상의 완성도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디워'는 스토리의 부재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CG 영상 또한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다. CG기술 중 가장 어렵다는 인물 애니메이션을 한 것도 아니고,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려낸(사실 이것은 비교점이 없기에 대체로 그럴 듯해 보인다) CG일 뿐이며, 또한 실사와의 연결 또한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놈놈놈'이 가진 완성도는 남다르다. 만주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 속에 우리가 저 서구 세계의 액션 활극 장면으로만 생각해왔던 웨스턴 스타일을 김지운만의 색깔로 녹여냈다. 이 독특한 퓨전의 맛은 고스란히 세 캐릭터를 연기하는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을 통해 폭발적으로 구현되었고, 말 그대로 '보는 맛'을 선사했다. 그만큼 액션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각각의 액션들을 연결해주는 스토리가 빈약해지면서 눈의 즐거움 이상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여름방학 시장을 겨냥한 영화들에 대한 스토리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아마도 과거에는 할리우드에서만 할 수 있다 생각되었던 블록버스터들이 이제 우리 영화계에도 시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우리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똑같은 말로 비판했었다. "스토리도 의미도 없는 킬링 타임용"이라 비아냥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불가능해 보이는(사실 이건 자본의 문제이지 기술력의 문제는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내놓자, 혼동이 생겼다. 그렇게 스토리 운운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그걸 '우리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에 환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디워'에서부터 비롯된 왜곡된 민족주의가 자리한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칸느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사실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놈놈놈'은 스토리가 약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몇 백만의 관객수로 증명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가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한 감독들의 태도다. 감독들은 이 비판에 대해 마치 "블록버스터는 스토리가 부족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일반인들에게 섣부른 일반화를 강요한다.


이제 "블록버스터 같은 오락영화가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스토리에 의미를 찾느냐"는 말은 가장 흔한 댓글이 되었다. 마치 블록버스터의 재미와 스토리의 재미는 서로 반비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제 우리가 과거에 비아냥대던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전범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치부해온 할리우드 영화는 과연 아직도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머물고 있을까.


많은 국내의 영화감독들이 할리우드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전율은 느낀 이유는 무얼까. 무수히 많은 배트맨 시리즈들이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깊이 있는 탐구가 있으면서도 블록버스터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보고난 후에는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다. '다크 나이트'가 가진 액션의 특징은 수없이 눈만을 현란하게 만들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다르다.


수없이 주먹이 오고 가는 장면들만 모아놓은 것이 다른 롤러코스터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주먹을 주고받는 자들의 내면을 파고듦으로서 그 주먹이 던지는 강도를 더 높인다. 두 척의 배를 그저 폭파시키는 것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머물지만, 한 쪽에는 선량한 시민을 다른 쪽에는 범법자들을 태운 배에 서로 폭파스위치를 넘기고 먼저 누르지 않으면 상대방이 누를 것이라는 갈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순간, 볼거리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질문이 된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볼거리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강도를 강화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된다.


흥행을 위해 스토리나 의미를 배제한다는 논리가 가진 위험성은 현재처럼 영화관이 점점 놀이공원화 되는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영화의 즐거움이었던 두 축인 볼거리와 의미를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영화관은 지금껏 원격현전으로서의 볼거리(스펙타클)의 즐거움과 그 영상들의 연결에 의한 의미구성이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프랜차이즈화되고 대형화되며 비주얼이펙트가 강조되는 사이, 볼거리의 즐거움만을 찾는 곳으로 영화관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영화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즐거움을 더 강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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