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권좌의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원조를 자처하는 ‘무한도전’은 최근 들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이 쇼가 지향하는 무형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번 새로운 포맷과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제작진들의 입장에서 보면 몇 년 간 권좌를 지켜온 ‘무한도전’의 성과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무형식이 ‘무한도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이다. 매번 같은 포맷에 똑같은 캐릭터가 똑같은 상황 속에 던져지는 것은 처음 몇 번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곧 지루해지기 마련. 도전상황도 반복되면 그 강도가 현저히 약해지며 심지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끝없는 탐구는 늘 프로그램에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물론 ‘무한도전’이 아무리 무형식이라고 해도 어떤 소재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명인과의 만남(미셸 위, 효도르, 이영애, 앙리, 김연아 등등), 스포츠(2006 독일 월드컵, 베이징 올림픽), 여행(하와이, 발리, 뉴질랜드, 가을소풍, 농촌체험, 알래스카, 무인도, 일본, 인도, 경주, 태안 등등), 계절 관련(납량, 추석, 수능, 김장, 신년, 가을운동회, 크리스마스, 구정, 어린이날 등등), 도전기(슈퍼모델, 드라마, 서커스, 댄스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혹한기 훈련, 기네스 등등), 컨테스트(무한 미스코리아, 강변북로가요제, 무한창작동요제 등등) 그리고 캐릭터 리얼 스토리(정형돈, 하하 친해지길 바래, 형돈아 놀자, 빨간 하이힐, 뚱보 형돈 이사가다 등등)가 그것이다.

이렇게 늘여놓고 보면 그것이 무슨 패턴인가 생각될 정도로 ‘무한도전’이 취해온 소재의 폭은 넓고 다양하다. 이 패턴들 중 한두 개 정도만 가지고도 하나의 버라이어티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실제로 현재의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탄생에 단초를 제공해준 것이 사실이다. 남들이 한 가지 소재를 이리 저리 우려먹을 동안, 끝없는 소재발굴과 형식실험을 한 ‘무한도전’은 그 행보 자체도 무한도전이었음이 분명하다. 2년 여가 지나면서 ‘무한도전’이 호소하는 당연한 피곤은 영광의 흔적이자 최고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소재발굴의 피곤과 싸우면서 ‘무한도전’이 또한 직면하는 도전은 변하지 않는 캐릭터들에 대한 권태감이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노홍철, 정형돈, 하하의 구성을 고집하는 ‘무한도전’은 특히 캐릭터의 소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금씩 캐릭터를 변주한다 하더라도 2년 동안 같은 캐릭터를 반복해서 보는 것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에서 구축된 캐릭터는 다른 프로그램, 심지어 케이블을 가득 메우는 재방송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소비된다.

여기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특성은 이 ‘무한도전’ 멤버들을 그 캐릭터로 고착시킨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캐릭터를 타 프로그램에서라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따라서 프로그램 밖에서나 안에서나 변함 없는 캐릭터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조건은 ‘무한도전’에도 또 멤버들에게도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똑같은 강도의 헝그리 정신으로는 반복된 캐릭터를 다시 궤도에 올려놓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이 극도의 피곤한 상황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김태호 PD가 변함 없이 소재발굴과 형식실험을 늦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한 ‘좀비 특집’은 ‘무한도전’의 변함 없는 모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가 아니다. 적어도 거기에는 어려움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는 ‘도전의 모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지금 극도로 피곤한 상태다. 하지만 그 피곤의 이유가 지금까지는 없었던 쇼의 어떤 새로운 면을 발견해내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늘 시청자들은 지금 현재의 한 모습을 가지고 평가하지만, ‘무한도전’ 정도는 예외적으로 그 2년 간의 흐름을 감안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지금 ‘무한도전’이 떠올리는 말은 이것일 것이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지금도 ‘무한도전’의 무한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무한도전 2년여 간의 특집>

2006
1,2부. 미셸 위 특집
3부. 우주특집
4부. 웨딩특집
5부-8부. 독일 월드컵 특집
9,10부. 여름방학 특집(하와이, 발리)
11,12부. 신화특집
13,14부. 납량특집
15부-17부. 뉴질랜드 특집 아이스 원정대
18,18부. 효도르 특집
20,21부. 정형돈 & 하하 친해지길 바래! 초등학교 특집
22부. 무한도전 추석특집
23부. 형돈아, 놀자
24부. 무한도전 가을소풍 가다
25부. 무한도전 농촌체험 가다
26부. 김수로 특집
27부. 무한도전 수능특집
28,29부. 무한도전 슈퍼모델 특집
30부. 무한도전 김장특집
31부. 무한소년체전 특집
32,33부. 크리스마스 특집
34부. 연말특집 무한도전 어워드

2007
35부. 신년특집
36부. 무한도전 신년르뽀 추적 빨간 하이힐
37부. 리얼 카메라 신년 토정비결
38부. 7080 복고 특집
39부. 무한도전 어학연수 가다
40부. 알래스카 특집
41부. 설 특집
42부. 무한도전 100분 토론
43부. 무한도전 새학기 특집 선생님 되다
44부-47부. 무한도전 드라마 특집
48,49부. 리얼스토리 : 뚱보 형돈 이사가다
50,51부. 50회 특집
52부. 이영애와 만나다
53부. 봉춘 서커스 쇼
54부. 무한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55부. 행사 하나마나 시즌 2
56부. 비 특집(모내기)
57,58부. 앙리 특집
59,60부. 무인도 특집
61부. 홍철 파마 하는 날
62부. 강변북로 가요제 본선
63부. 방송국에서의 하룻밤
64부. 개그 실미도
65부. 서부 특집
66부. 워터보이즈 특집
67,68부. 서울구경 선착순 한 명 특집
69부-71부. 네 멋대로 해라
72부. 김연아 특집
73부. 일본 가다
74부. 가을 운동회 특집
75부. 환장의 짝꿍
76부. 신입사원 면접 특집
77부. 준하인스워드 특집
78부. 지구특공대 특집
79부. 대체에너지 특집
80부-82부. 댄스스포츠 특집
83부. 달력 만들기 특집
84부. 크리스마스 특집
85부. 연말 특집 고맙습니다

2008
86,87부. 새해특집 가스전 상륙작전
88부. 이산특집
89부. 베이징 올림픽 선전 기원 - 기계체조편
90부. 하하 어머니 떡국 특집
91부. 특전사 혹한기 훈련 특집
92부. 하하 게릴라 콘서트
93부-95부. 인도특집
96,97부. 베이징 올림픽 선전 기원 - 레슬링편
98부. 지구특공대2 식목일 특사
99부. 네 꿈을 펼쳐라
100,101부. 100회 특집
102,103부. 경주 보물찾기 특집
104부. 태안 특집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105부. 어린이날 기념 무한 창작 동요제
106부. 베이징 올림픽 선전 기원 - 핸드볼편
107부. 기네스 기록도전 특집
108부. 무한도전 가족의 탄생
109부. 가정방문 24 특집
110,111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112,113부. 우리 미팅했어요
114부. 대체에너지 특집 2탄
115부. 태리비안의 해적
116부. 좀비 특집

‘전설의 고향’,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

너무 무섭고 엽기적인 것들에 익숙해져서일까. 다시 돌아온 ‘전설의 고향’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 것은. 아마도 수없이 많아진 공포의 코드들에 자극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우리에게 ‘전설의 고향’이 보여주는 전통적인 공포의 이야기 구조는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1편으로 방영된 ‘구미호’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구미호 이야기를 가져온 것은 의미가 있다. 갖은 고생 끝에 사람이 되려는 전통적인 ‘구미호’의 이야기는 억눌린 자의 두 가지 얼굴(아내와 요물)이 공포의 핵심이다. 즉 구미호가 공포의 주인공인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해석된 ‘구미호’에서 공포의 주체는 구미호가 아니다. 물론 꼬리 아홉 달린 기괴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이 사극의 진짜 공포는 인간이다. 구미호의 내단과 피를 먹으면서까지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욕망이 더 공포스럽다는 이 해석은 전통적인 구미호가 주는 공포의 재미는 주지 못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는 잘 부합하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은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공포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2편 ‘아가야 청산가자’는 좀더 정통적인 ‘전설의 고향’ 특유의 공포를 선사했다. 이것은 우리네 귀신만이 가지는 특징을 잘 포착했기에 정통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울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네 귀신의 특징이란 원한이 가족애와 맞닿는 지점에 있다. 자신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기를 죽이는 것이나, 그 죽은 아기 때문에 귀신으로 나타나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것은 모두 어긋난 가족애의 하나다. 이 모성은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아가야 청산가자’는 바로 그 부분을 잘 포착하면서 전통과 현대를 이었다.

반면 3편 ‘사진검의 저주’는 현대적인 해석이 들어있지도 않았고, 또 그렇다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관에 천착하지도 않았다. 만일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 귀신과 그 딸 사이의 절절한 모정을 좀더 부각시켰거나, 아니면 살인사건을 추격하는 별순검류의 접근방식을 통해 미신 앞에 비정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야장들을 좀더 중심에 두고 그렸다면 이야기는 좀더 공포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그저 알 수 없는 살인이 벌어지고, 그걸 누군가 추적하며, 알고 보니 귀신의 짓이었고, 그 추적하는 자가 귀신의 사연을 알게되고, 귀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식을 향한 모정 때문에 복수를 포기하게 되며, “네 아픔, 고통, 한을 이해한다”는 말에 마음을 움직인 귀신이 자신이 갈 자리인 저승으로 떠나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는 지금 시대와는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복수를 하지도 못하며,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어져, 한을 토로하는 소극적인 저항을 하다가 결국에는 저승으로 가게 되는 이 마음 착하고 체제 순응적인  지금 시대에 횡행하는 어떤 얘기도 통하지 않는 괴물 같은 살인자들보다 더 무서울 수 있을까. ‘전설의 고향’이 무섭지 않은 것은 그 이야기 구조가 낡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현실(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적인 해석은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 없는데 왜 코리아를 붙일까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과거 대회가 열리면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름대로의 채점’을 해보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언제 그런 대회가 있었느냐고 할 정도다. 이것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 따라 2002년을 기점으로 공중파 방송이 중단되면서부터이다. 이로써 사실상 연예인 선발대회의 성격을 띄었던 미스코리아 대회와 공중파 방송과의 밀월 관계는 끝난 셈. 2002년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이 별로 없는 것은 이 사실을 방증한다.

미스코리아는 더 이상 연예인의 등용문이 아니다
미스코리아가 연예인의 등용문으로 인식된 것은 80년대 후반 김성령(88 진), 고현정(89 선), 오현경(89 진) 같은 스타들을 쏟아내면서부터다. 이후 염정아(92 미), 이승연(92 미), 김남주(92 경기진), 성현아(94 진), 최윤영(95 선), 권민중(96 한국일보), 김지연(97 진), 김사랑(2000 진), 손태영(2000 미), 박시연(2000 한주여행사)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미스코리아를 통해 배출됐다. 이후에도 몇몇 수상자들은 아나운서로 진출하기도 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그다지 주목되지는 않았다. 분명한 건 이제 미스코리아는 더 이상 연예인이 되는 길을 확실히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시들해진 관심은 또한 달라진 미의 기준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우스웠던 점은 성형외과 의사가 나와서 예를 들면 삼등 분할 같은 완벽한 얼굴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과학적 기준이라는 것이었지만 본래 미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이것은 지금 시대에 와서 더욱 그러하다. 그 만큼 다양한 취향과 개성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1백 명이 뽑으면 1백 가지의 아름다움이 뽑히는 시대다. 따라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의 진선미라는 순위는 납득될 수 없는 것이 된다.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잣대를 통해 진선미를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저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와 포장 사이의 간극
미스코리아 대회를 연예인 선발대회의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건 그걸 바라보는 한국인(이건 그저 미인선발대회가 아니라 코리아가 붙은 국가적인 대회다)과의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내세우는 나라의 홍보대사니 국위선양 같은 홍보문구는 낯간지러운 것이 되고 만다. 실체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 국가적 행사인 양 포장하면서 은근히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가미시켜, 대회의 본질인 ‘여성의 성 상품화’를 가려왔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대회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스코리아 미에 뽑힌 김희경이 과거 성인화보를 찍은 것과 2007년 미스코리아 미의 김주연이 낙태를 한 사실이 불거지자 타이틀을 서둘러 박탈한 것은 아마도 숨겨졌으면 좋았을 국가대표(?)의 결격사유가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스코리아의 수영복 심사와 김희경이 찍은 성인화보는 그 드러나는 형식이 다를 뿐 성 상품화라는 차원에서는 사실상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대회의 심사위원이 품위 운운하며 김희경의 타이틀을 박탈하는 것은 넌센스다. 게다가 이미 미스코리아로 연예계로 뛰어든 몇몇 연예인들이 찍은 성인화보는 되고, 미스코리아가 되기 전에 한 성인화보는 안 된다는 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 대회의 본질로 보면 이미 연예인이 된 미스코리아의 화보촬영은 성공으로 간주되는 것이지만, 미스코리아가 되기 전에 찍은 화보는 대회의 포장을 더럽힌다는 점이다. 김희경의 타이틀 박탈 사건이 보여주는 건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와 그 포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시대에, 획일적인 미의 순위를 가르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미 시대착오가 되었다. 대회의 실체가 언제부턴가 연예인이 되는 길로 바뀌어졌지만 공중파와 고리가 끊어진 지금은 그 길마저 불확실한 상황이다. 어쩌면 공중파들은 이 달라진 시대에 미스코리아 출신이 갖는 무게감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지도 모른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굳이 존재하려 한다면 차라리 대회의 본질에 합당한 새로운 이름을 갖는 편이 그나마 대중들의 공감을 확보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코리아라는 거창한 단어는 빼고 말이다.

올림픽 방송의 메시지,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

올림픽 방송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네 특유의 쏠림 현상의 하나일까. 박태환이 400m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던 지난 10일 뉴스의 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박태환 관련 소식뿐이었다. 그나마 타종목이 소개된 것은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 소식이었고 나머지 올림픽 관련 소식은 묻혀버렸다.

이런 사정은 뉴스뿐만이 아니었다. 방송3사는 경쟁하듯이 박태환 경기를 재차 삼차 방송했고, 올림픽 광고 방송에서도 똑같은 박태환의 ‘금메달 수영’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각종 CF에서도 박태환 영상을 광고로 전환해 보여주는 발빠른 행보를 취하면서 TV는 온통 박태환으로 뒤덮였다.

박태환과 줄을 대려는(?) 마케팅 역시 연예계에서 봇물을 이뤘다. 박태환의 인기를 영화 홍보에 활용하고, 저네들의 음악 홍보에 활용했다.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박태환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응원메시지를 남기고 이상형이라는 투의 글을 남겼다. 연예인도 응원을 할 때는 한 일반인으로 볼 수 있으니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응원 메시지가 대부분 박태환이나 금메달을 딴 선수들 같은 일부에 쏠린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행보는 일반인들의 쏠림을 더욱 가중시킨다.

방송3사가 똑같은 경기를 같은 시간대에 모두 내보내는 것도 지나친 전파 낭비로 보인다. 지난 7월 합의했던 방송3사 간의 순차방송은 깨진 지 오래고, 이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같은 시간대에 어느 방송을 틀어도 같은 스포츠경기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달랑 3개 있는 공중파가 모두 같은 방송을 틀어주는 이 기막힌 상황은 조금만 올림픽과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기사들과 방송들도 모두 올림픽 관련 아이템을 잡아넣어야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포털 사이트의 뉴스들을 클릭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이 올림픽, 그 중에서도 금메달 관련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글조차도 그런 강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박태환 선수 혹은 우리 선수들의 금메달 소식은 물론 충분히 조명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처럼 모든 것을 한 곳으로 경도시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온통 TV가 올림픽으로 가득한 지금, 묻혀지고 있는 민생사안들은 마치 금메달에 경도되어 잘 보여지고 있지 않은 은메달이나 혹은 메달 권 밖의 모습들과 닮은꼴이다.

몇몇 선택된 자들의 금메달 경쟁으로 선택되지 못한 자들의 어려움이 묻혀지고, 또 선택된 자들 중에서도 메달의 색이 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묻혀지는 건 쏠림 현상이 가져온 폐해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것은 매번 올림픽 때마다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교육된다.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 올림픽 방송이 말해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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