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블록버스터의 적이 아니다


흔히들 "재미를 위해 스토리를 단순화시켰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가 주는 재미의 적인가. 작년 '디워'논쟁의 중심에 섰던 것도 바로 이 스토리와 블록버스터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디워'는 블록버스터와 스토리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진 것처럼 논점을 이어갔다. 이른바 "복잡한 스토리는 시각적인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리다.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스토리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다. 김치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발굴해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어낸 '놈놈놈'은 그러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이야기를 최대한 최소화해 캐릭터와 액션 등 다른 영화적 요소들을 더 많이 부각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스토리에 집착하는 평단을 꼬집었다.


둘 다 블록버스터로서 스토리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디워'와 '놈놈놈'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영상의 완성도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디워'는 스토리의 부재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CG 영상 또한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다. CG기술 중 가장 어렵다는 인물 애니메이션을 한 것도 아니고,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려낸(사실 이것은 비교점이 없기에 대체로 그럴 듯해 보인다) CG일 뿐이며, 또한 실사와의 연결 또한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놈놈놈'이 가진 완성도는 남다르다. 만주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 속에 우리가 저 서구 세계의 액션 활극 장면으로만 생각해왔던 웨스턴 스타일을 김지운만의 색깔로 녹여냈다. 이 독특한 퓨전의 맛은 고스란히 세 캐릭터를 연기하는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을 통해 폭발적으로 구현되었고, 말 그대로 '보는 맛'을 선사했다. 그만큼 액션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각각의 액션들을 연결해주는 스토리가 빈약해지면서 눈의 즐거움 이상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여름방학 시장을 겨냥한 영화들에 대한 스토리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아마도 과거에는 할리우드에서만 할 수 있다 생각되었던 블록버스터들이 이제 우리 영화계에도 시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우리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똑같은 말로 비판했었다. "스토리도 의미도 없는 킬링 타임용"이라 비아냥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불가능해 보이는(사실 이건 자본의 문제이지 기술력의 문제는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내놓자, 혼동이 생겼다. 그렇게 스토리 운운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그걸 '우리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에 환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디워'에서부터 비롯된 왜곡된 민족주의가 자리한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칸느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사실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놈놈놈'은 스토리가 약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몇 백만의 관객수로 증명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가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한 감독들의 태도다. 감독들은 이 비판에 대해 마치 "블록버스터는 스토리가 부족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일반인들에게 섣부른 일반화를 강요한다.


이제 "블록버스터 같은 오락영화가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스토리에 의미를 찾느냐"는 말은 가장 흔한 댓글이 되었다. 마치 블록버스터의 재미와 스토리의 재미는 서로 반비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제 우리가 과거에 비아냥대던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전범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치부해온 할리우드 영화는 과연 아직도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머물고 있을까.


많은 국내의 영화감독들이 할리우드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전율은 느낀 이유는 무얼까. 무수히 많은 배트맨 시리즈들이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깊이 있는 탐구가 있으면서도 블록버스터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보고난 후에는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다. '다크 나이트'가 가진 액션의 특징은 수없이 눈만을 현란하게 만들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다르다.


수없이 주먹이 오고 가는 장면들만 모아놓은 것이 다른 롤러코스터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주먹을 주고받는 자들의 내면을 파고듦으로서 그 주먹이 던지는 강도를 더 높인다. 두 척의 배를 그저 폭파시키는 것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머물지만, 한 쪽에는 선량한 시민을 다른 쪽에는 범법자들을 태운 배에 서로 폭파스위치를 넘기고 먼저 누르지 않으면 상대방이 누를 것이라는 갈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순간, 볼거리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질문이 된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볼거리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강도를 강화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된다.


흥행을 위해 스토리나 의미를 배제한다는 논리가 가진 위험성은 현재처럼 영화관이 점점 놀이공원화 되는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영화의 즐거움이었던 두 축인 볼거리와 의미를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영화관은 지금껏 원격현전으로서의 볼거리(스펙타클)의 즐거움과 그 영상들의 연결에 의한 의미구성이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프랜차이즈화되고 대형화되며 비주얼이펙트가 강조되는 사이, 볼거리의 즐거움만을 찾는 곳으로 영화관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영화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즐거움을 더 강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728x90
반응형

유재석과 강호동의 남자 전진, 예능의 조커가 된 이유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는 전진이 아닐까. 물론 과거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능 체육맨으로 종횡무진하던 전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진에게 쏠리는 예능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주목할 점은 그가 국내 최고 예능MC인 유재석과 강호동의 프로그램을 오가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하가 빠진 ‘무한도전’의 공석으로 ‘굴러 들어온’ 전진은 빠르게 ‘박힌 돌’들 사이에서 적응해가고 있으며,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는 고정MC를 맡아 특유의 진지 모드로 남다른 예능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객원MC로 출연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특유의 만능 체육맨으로서 김계모(김수로)와 맞대결을 벌이고, 순위 게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온 놈’설정으로 웃음을 주었다. 도대체 전진이 가진 그 무엇이 이 종횡무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메인과 게스트 사이, 객원의 자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있어서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과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 노출되다보면 지겨워지기 마련.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쇼들이 무한소비로 피곤해진 캐릭터를 다시 세우는 방식은 새로운 캐릭터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거성에서 아버지로 또 ‘하찮은’으로 캐릭터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격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꾸는 식으로 본질적인 해결은 돼지 못한다. 결국 진짜 문제의 해결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출연했을 때 가능해진다. 하하가 군입대로 빠지고 나자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은 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 캐릭터는 다양한 관계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공석은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 7의 멤버, 즉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었지만 반대 또한 만만찮은 상황. 그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위험천만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진출한 전진은 그 자리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전진은 고정도 아니고 게스트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무한도전’에서는 전스틴과 잔진으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게임마왕을 긴장시키는 젊은 피로, ‘야심만만2’에서는 MC몽과 함께 업다운 브라더스로 등장한 그는 ‘객원’의 위치에 서서(그것이 고정이든 게스트든) 프로그램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면서 독자적인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전진이 가진 진지함 속의 허술함
그러나 새로운 캐릭터를 가진 게스트가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기는커녕 기존 고정 출연자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유일하게 게스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가 가진 딜레마이기도 하다. 캐릭터 간에 확실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고정MC들 사이에서 게스트는 때때로 꿔다 논 보리자루가 되기도 한다. 중간에 출연했던 G-드래곤이나 신성록 같은 게스트는 열심히는 했지만 패밀리 속으로 완전히 침투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전진은 출연하자마자 바로 패밀리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김계모와는 묘한 경쟁관계로, 여성 출연자들과는 묘한 애증관계로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가진 객원의 이미지가 그만큼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이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인지되어 있었고, 그것은 지금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보기 드는 독자적인 캐릭터였다.

전진은 그 예명처럼 앞으로만 나갈 것 같은 직선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그것은 모든 엉뚱한 상황 속에서도 늘 진지하며, 누군가를 바라보면 거의 다른 쪽에는 눈을 돌리지 않을 정도로 집착하고, 장난처럼 하는 게임에서도 거의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스포츠맨처럼 과도한 열정을 보인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느슨한 상황(희화화된)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진지함을 유지하는 전진은 늘 깨지고 무너지는 캐릭터들이 이제 조금 물리는 시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늘 도전하지만 지기만 하는 캐릭터도 우습지만, 늘 이기려고 집착하는 캐릭터도 우스운 법이다.

전진이 지금 예능 프로그램의 조커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현재 그가 조금은 지쳐있는 쇼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지금 현재 예능 프로그램 속의 캐릭터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지고 깨지는 희화화된 캐릭터들로 넘쳐난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진은 그 속에서 오히려 거꾸로 진지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그것이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또 그것이 어느 방송사이든 어느 곳에 투입돼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조커 캐릭터가 된다. 늘 쇼의 밖에 존재하지만 어떤 쇼에든 적용 가능한 조커. 지금 전진의 전성기는 이 자신만의 캐릭터와 현재 피곤해진 예능 환경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728x90
반응형

대중들은 신상 캐릭터에 목마르다

윤상현이 ‘겨울새’에 출연했을 때, 그 마마보이 찌질남 역할에 시청자들이 주목할 줄 누가 알았을까. 잘 생기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외모의 윤상현은 오히려 한없이 망가지는 찌질한 역할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고 그 여세를 몰아 MBC 일일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 그 캐릭터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엄마가 뿔났다’에서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는 누굴까. 그건 주인공인 김한자(김혜자)도 아니고, 나일석(백일섭)이나 나이석(강부자)도 아닌 고은아(장미희)다. 이는 현재 광고계에서 타 캐릭터와 비교해 고은아 캐릭터가 더 많이 활용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김수현 작가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장미희의 연기력이 한몫을 차지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도도하면서도 때론 귀엽기까지 한 악역이란 독특한 캐릭터가 가진 힘은 부정하기 힘들다.

드라마의 신상 캐릭터, 윤상현과 장미희
확실히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와 ‘엄마가 뿔났다’의 고은아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이들은 악역은 아니면서 악역과 유사한 역할을 맡는다. 섬에 표류된 상황 속에서도 일 안하고 줄이나 서려 하며 아첨하고 험담하는 윤대리 역할은 함께 있는 타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그 캐릭터가 그저 밉상은 아니다. 이것은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다며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 고은아도 마찬가지다. 악역이면서도 왠지 밉지 않고 때로는 공감까지 가는 캐릭터.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은 캐릭터계에 등장한 신상이다.

드라마의 신상 캐릭터에 대한 요구는 틀에 박힌 캐릭터들에 대한 비호감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한 때 한류바람을 타고 인기몰이를 했던 최지우, 이정재, 김희선 그리고 최근에는 김선아 같은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복귀하면서 새로운 모습보다는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외면 받았던 것은 바로 이 같은 대중들의 신상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복귀와 함께 신비주의를 벗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던 고현정이 그나마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착하고, 영웅적이며, 카리스마 넘치지만 여전히 구태의연함을 못 벗은 캐릭터보다는, 차라리 악하고, 반영웅적이며, 찌질하지만 새로운 캐릭터가 더 환영받는 시대다.

예능의 신상 캐릭터, 서인영, 이효리, 이승기, 대성, 이천희
이러한 신상 캐릭터(?)에 대한 주목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가 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신상 캐릭터들은 확실한 지지도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서인영은 ‘싸가지’와 ‘당당함’을, 이효리는 ‘섹시함’과 ‘털털함’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언뜻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묶는 순간, 캐릭터는 양극단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묘미를 제공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신비화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탈 신비화하려는 복합 캐릭터 전략은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가수, 배우들이 취하고 있는 것. 이승기는 무대에 오르면 누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의 가수지만, ‘1박2일’에서는 엉뚱한 언동을 일삼는 허당이다. 빅뱅의 대성은 노래를 할 때는 아이돌 스타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여지없이 망가지는 덤앤더머 캐릭터로 변신한다.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로 진중한 연기를 보이는 이천희는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엉성하고 구박받는 천데렐라로 변신한다. 이 드라마에서의 모습과 예능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중적인 캐릭터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독특한 신상 캐릭터를 구축한다.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영역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상 캐릭터에 대한 갈증, 캐릭터 소비 빨라진다
대중들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커질 대로 커진 요즘 그만큼 캐릭터의 소비는 더 빨라졌다. 연기자들이 매번 드라마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높아졌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들이 포진한 드라마들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외면 받기 쉬워졌다. 반면 잘 창조된 캐릭터들은 주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조명을 받으며,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 동력이 된다. 종영한 ‘일지매’에서의 쇠돌(이문식)이나 공갈아제(안길상) 같은 캐릭터는 주연 못지 않은 캐릭터의 힘을 과시했다.

한편 예능에서의 캐릭터들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최근 들어 조금씩 시들해지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같은 캐릭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신상 캐릭터 인구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물론 각종 이벤트에 투입되고, 케이블을 통해 무한 재방영되며 심지어 타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캐릭터로 무한소비되는 상황에 피곤해진 캐릭터들이,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생겨나는 캐릭터들의 홍수 속에서 더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1박2일’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디든 눈만 돌리면 넘쳐나는 욕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소비의 시대, 대중들의 TV 속 캐릭터 소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TV 속 캐릭터의 변화 속도가 대중들의 소비 속도를 잘 따라잡고 있느냐는 점이다. 새로운 상품이 그 시대의 기호와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듯이, 새로운 캐릭터 역시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따라서 급속한 소비로 피곤해진 캐릭터들을 어떻게 재빠르게 보완하고 변신시키고 창출하는가는 드라마나 예능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728x90
반응형

달라진 올림픽 중계,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

스포츠 중계만큼 시대에 민감한 것이 있을까. 정확한 분석과 재미있는 해석, 무엇보다 침착한 어조로 시청자들에게 신뢰와 재미를 동시에 주었던 고 송인득 캐스터가 그리웠던 분이라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경기에 대한 정보를 주어야할 캐스터들이 고함과 감탄사만 날리고, 해석의 재미를 제공해야할 해설자는 방송에 부적격한 언변을 쏟아내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를 해주는 TV의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실수와 해프닝들이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TV 뉴스 속의 아나운서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추고 개인기를 보여주는 세상이 아닌가. TV가 보도의 신뢰성보다는 재미있는 방송에 더 치중하고 있는 요즘, 베이징 올림픽이 보여준 스포츠 중계의 비전문화는 어쩌면 이미 예고되었던 일일 것이다.

스포츠 스타의 해설, 방송은 익숙하지 않아도 돼
물론 레슬링 중계 해설에서 막말을 한 심권호처럼 심한 경우는 문제가 되겠지만, 대체로 스포츠 스타의 해설이 갖는 익숙하지 않은 방송멘트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스포츠 스타의 해설에서 어떤 깔끔한 방송을 요구하기보다는, 거칠더라도 그들만의 경험을 통한 실질적인 경기 해설에 더 시청자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지난 월드컵 중계에서 차범근-차두리의 축구중계를 통해 그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공중파 몇 개가 신비적이고 권위적인 지위를 가졌던 과거에는 방송 비전문가(그들이 스포츠 전문가라 해도)의 방송 출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날 것이라도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UCC시대다.

추성훈 유도 해설위원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에도 불구하고 유도 해설에 투입되고, 왕기춘 선수가 결승에서 시작하자마자 한판승으로 졌을 때 어떤 해설을 하기보다는 그 아쉬움을 침묵으로 표현했던 것은 과거라면 방송사고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성을 중심으로 보는 UCC시대에 이런 것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유의 입담으로 경기장에서 보여주었던 빛나는 경기를 해설자로서도 보여주었던 임오경 핸드볼 해설위원이, 여자 핸드볼팀이 노르웨이에 지자 눈물을 흘렸을 때, 그걸 보던 시청자들은 기꺼이 함께 울어주었다. 진정성과 막방송은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이제 TV의 스포츠 중계가 가진 얼굴은 화장 잘먹은 앙상한 방송보다는 화장기 없어도 풍성하고 진실이 있는 방송을 요구하게 되었다.

월드컵 축구의 신문선, 올림픽 야구의 허구연
그렇다면 전문 해설위원들은 어떨까. “골~ 골이예요!”하는 특유의 유행어를 만들어낸 월드컵 축구에 신문선 해설위원이 있었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는 허구연 해설위원이 있었다. 물론 허구연 해설위원의 대만전에 벌어진 방송사고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방송사고 이후 나타난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은 전문 해설위원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을 잘 포착하고 있다. 방송사고를 듣고도 네티즌들은 “허구연 해설위원의 ‘솔직한 해설(?)’이 좋다”며 “실제 방송에서도 반말만 하지말고 그렇게 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던 것.

대중들이 전문 해설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양가적이다. 그 확고한 권위와 신뢰성 있는 해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흥을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벌어진 권위의 해체에 대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방송사고를 ‘솔직한 해설’로 읽는 대중들은 그만큼 전문성 있는 해설자의 통상적인 해설이 아닌 좀더 진솔한 해설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실 소리를 질러대는 SBS 배기완 캐스터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방송사고와 솔직한 해설은 그만큼 가까워져있는 상황이다.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
이것은 지금 TV가 대중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써 ‘방송사고’에 가까운 생방송 연출을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무한도전’팀의 올림픽 보조해설자 투입은 이제 스포츠 중계가 정보 전달을 넘어서 모험적인 도전을 통해 오락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UCC 같은 영상에도 끄떡없이 적응된 지금 세대라면 이러한 스포츠중계의 오락화는 환호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스포츠중계를 하나의 보도로서 받아들이는 세대라면 “방송이 장난이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위 해체의 시대, 이미 뉴스를 꿰차고 있던 TV 속 아나운서들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유연해졌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가 보여준 조금은 정신 없고, 산만한 방송은 지금 TV라는 권위를 가진 매체가 어떻게 하면 지금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올림픽 중계가 깔끔한 방송을 포기하는 대신, 진정성을 담은 중계를 선택한 것은 지금의 TV의 얼굴이 왜 점점 맨 얼굴에 가까워지는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지금도 TV는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