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흡혈형사 나도열’ 그리고 ‘괴물’

올초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스크린쿼터 축소. 그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미국산 수퍼 히어로들이 극장가를 공격했다. 그 장본인은 ‘미션 임파서블3’, ‘다빈치 코드’, ‘엑스맨3’, ‘수퍼맨 리턴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네 왜소한 히어로, ‘흡혈형사 나도열’이 끼어 있었다. 이 상징적인 장면은 저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에서 수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시다바리’ 역이라도 하며 히어로를 꿈꾸는 우리네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 그것은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에 즈음하여 저 덩치 큰 헐리우드 영화 틈바구니에서 가냘프게 서 있는 우리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열 받아야 변신하는 나도열처럼
‘흡혈형사 나도열’은 열 받아야 비로소 변신한다. 우스꽝스럽지만 심지어 PMP에 저장된 포르노를 봐야만 하는 히어로란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결과물이야 좀 떨어지더라도 나도열의 본래 원대한 전략은 스스로 무너져 헐리우드를 대변하는 수퍼히어로라는 허상을 깨는 데 있었다. 홀홀 단신으로 사실 저 세계와 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쿼터 일수가 축소되고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일제히 융단폭격을 준비하던 시기, 나도열이 그 영화판에 알몸으로 서 있었듯이, 거리에는 영화인들의 1인 시위가 잇따랐다.

하지만 1인 시위는 ‘흡혈형사 나도열’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으로 비판에 나섰지만 정작 관객은 별로 없었다. ‘열 받아야 그제서야 힘을 쓰는’ 나도열처럼, 우리네 정서는 아직 열을 받지 않았다. 올 초부터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의 제 밥 그릇 찾기라는 오명이 씌워지면서 그나마 스크린 쿼터 축소발표로 받은 열은 쉬 식어버렸다. 그 서서히 사라지는 열기 속에서 미8군에 의해 무단 방류된 포름알데히드를 먹고 ‘괴물’은 조금씩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영화계 재난에 대응하는 자세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알레고리를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수많은 해석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재난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괴물에 대입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면 영화는 그렇게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 그럼 괴물에 우리네 영화계의 재난으로서 스크린 쿼터라는 키워드를 대입해보자. 갑자기 백주 대낮에 나타난 이 스크린 쿼터라는 괴물에 대해 정부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그걸 보고 그 위험을 실감한 사람들은 격리된다. 여기에 우리네 강두 가족이 괴물과 맞선다. 다행스럽게도(?) 괴물을 죽이지만 우리도 현서를 잃는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올 한해 우리네 영화가 가졌던 위기감과 그걸 헤치고 나올 수 있는 방법론을 모두 제시한다. 괴물 같은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하지만 분명히 있는) 우리네 영화의 위기감을 향해 저 나도열처럼 1인 시위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 대신 우리 식의 전략을 가지고 우리 식의 블록버스터(?)를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결국 저 수퍼히어로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올 한 해 우리 영화의 성적표는 위기감이 무색할 정도로 좋다. 하지만 11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우리 영화의 해외수출량이 떨어진 건 상반기에서부터 드러난 징후지만, 지금은 우리 영화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괴물은 죽었는데 뭐가 걱정이냐 하겠지만, 저 영화 속 강두가 야밤에 어둠을 향해 긴장하듯, 여전히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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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아낸 현대적인 여성상, 황진이라는 시의적절한 소재, 칼 없이도 빛나는 카리스마, 가장 한국적인 풍경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영상미,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잔뜩 잡아끌었던 치열한 대결구도와 멜로라인. ‘황진이’, 종방에 즈음해 떠오르는 문구들이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아쉬움 또한 많이 남는 것이 사실. 마지막 주 방영된 2회분에 이르러 무언가 허전함이 남는 건 왜일까.

사랑의 길vs인간의 길 - 멜로vs성장
24부작.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황진이’의 애초 기획의도를 보면 최종적인 목표로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사랑할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고통받았으며, 잠시 사랑을 얻어 지리한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을 보듯 삶의 희열을 맛보았을 황진이. 오늘 그녀의 삶과 만나 ‘사랑의 길’ 나아가 진정한 ‘인간의 길’을 보고자 한다. ”

여기서 ‘사랑의 길’이란 다름 아닌 드라마 내내 지속된 멜로라인이다. 은호도령, 김정한, 벽계수 그리고 호위무사 이생까지 이 드라마의 골격을 이룬 것은 이들의 밀고당기는 사랑에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기녀 황진이가 예인 황진이를 거쳐 인간 황진이가 되는 성장드라마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황진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인 것은 이 멜로드라마와 성장드라마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있다. 기녀로서의 멜로가 예인의 예술로 승화되고 그러면서 황진이를 성장시킨다는 그 구조가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드라마 속 황진이에서 인간 황진이를 발견한 것은 후반부 몇 회분에 있어서였다. 그것은 마지막 2회분에서 드디어 서화담을 만나며 잠깐 언급되었을 뿐이다. 사실 황진이가 걸어갈 ‘인간의 길’은 마지막회에서 그녀가 서화담 앞에 앉아 나레이션으로 읊조리듯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황진이’의 아쉬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멜로에 너무 많은 힘을 배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전쟁사극보다 더 많은 사상자들(?)
드라마 ‘황진이’의 정서는 눈물이다. 그녀의 삶 자체가 기구한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은호도령의 죽음부터 비롯된 눈물바다는 동기 기녀인 섬섬이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황진이의 스승인 백무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혼절지경에 달했다. 게다가 김정한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려서야 살아났고, 마지막회에서는 황진이의 어

머니인 현금의 죽음으로 눈물을 이어갔다. 중요한 인물들의 죽음으로 치면 전쟁사극보다 더 많은 인물들이 죽은 셈이다. 그 죽음은 모두 황진이의 눈물로 이어졌다. 그녀는 꽤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 셈.

그러나 그렇다고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게 눈물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사실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해도, 겉으로는 예술의 힘으로 그걸 깨치고 일어난 한 예인, 큰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황진이’는 분명 ‘웰 메이드 사극’의 가능성을 가졌지만, 너무 멜로드라마의 눈물쪽으로 흐르면서 그 힘이 약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황진이’에 힘을 부여한 것은 눈물보다는 경연장에서 보여준 그녀의 카리스마가 아니었을까.

너무 울어서 더 이상 울 수만은 없다
끝나기 마지막 몇 개의 시퀀스들은 이 드라마가 보여준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현금의 죽음은 사실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그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경연장의 팽팽한 대결이 무난하게 해결되면서 자칫 벌어질 수 있는 허전한 결말(박수치며 끝나는)을 막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현금의 죽음은 예인으로서의 성공으로 끝나버릴 ‘황진이’가 다시 슬픔에 젖어 서경덕을 찾게 하려 의도했다는 혐의가 짙다. 그리고 황진이는 ‘울기 위해’ 찾아간 서경덕 앞에서 ‘울 수만은 없다’는 그 마지막 대사를 읊게된다.

‘황진이’ 스스로도 이 드라마의 정조를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울지 않는 황진이’의 모습이 아쉽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저자거리에서 활짝 웃으며 서민들과 춤을 추는 황진이의 모습이다. 마지막 한 장면에서야 겨우 기녀에서 예인을 거쳐 성장한 인간 황진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 현금의 죽음이 울던 그녀를 웃게 한 사건이 되었을까. 그건 분명 아니다. 사실은 어머니의 죽음과 저자거리의 ‘황진이’ 사이에는 엄청난 축약이 들어있다. 멜로에 들어갔던 많은 시퀀스들을 줄였다면 그 축약 속에서 비로소 저 물을 먹고 활짝 피어나는 찻잔 속의 꽃처럼, 웃는 인간 황진이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멜로 때문에 축약되어버린 많은 이야기들의 가능성들이 못내 아쉬운 것은 그만큼 이드라마가 많은 기대를 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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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기력을 두고 논란이 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배역과 연기가 따로 노는 데서 비롯한다. 관객 혹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비판받는 연예인들을 우리는 굳이 연기자라 부르기가 꺼려진다. 진정한 연기자라면 자신을 과감히 훌훌 털어 버리고 배역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연기자들이 배역 때문에 수없이 망가지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아름답고 박수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올 한 해도 망가진 만큼 아름다웠던 많은 연기자들이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끼, 류덕환
‘웰컴 투 동막골’에서 동구 역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류덕환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역시 동구 역으로 확고한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했다. 이 나이(1987년생)에 이처럼 깊이 있는 내면연기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영화 속 오동구가 되기 위해 20kg을 찌우는 것은 어쩌면 내면연기보다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마돈나가 되고 싶은 천하장사’. 자칫 잘못하면 코미디에 묻혀 영화가 말하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진정성을 놓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이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된 연기를 류덕환은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진짜 연기자가 아니면 난감할 수 있는 이 오동구라는 역에 기꺼이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는 디렉터스 컷의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광기와 감성을 잡은 김래원
MBC 드라마,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김래원은 늘 하던 그 모습을 연기했다. 도회적이면서 장난기 많은 김래원표 연기.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 개봉했던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살짝 드러냈던 광기를 ‘해바라기’에서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반 이상이 김래원의 공이라 할 정도로 그의 온몸을 던지는 미친 듯한 연기가 한 몫을 해주었다.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죄의식에, 순간 순간 튕겨 나오는 광기가 어루러져 마지막 라스트 신의 폭발력을 갖게 만들었다. 김래원은 이 연기를 통해 액션연기에도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여 년 연기 세월의 내공, 변희봉
영화 ‘괴물’을 통해 비로소 그 진가를 알아보게 된 배우. 그러나 그의 연기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으니 40여 년 조연과 단역으로 잔뼈가 굵은 결과였다. ‘수사반장’이나 ‘113 수사본부’에서 범법자의 역할을 단골로 해오던 그는 차츰차츰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성강한 단역들(점쟁이 같은)을 소화해낸다. 그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기용한 인물은 바로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서부터 ‘괴물’까지 함께 작업을 해오다 드디어 ‘괴물’의 박노인이란 캐릭터로 들어와서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부성 가득한 할아버지면서도 어딘지 기괴하고 괴팍한 구석이 있는 연기를 연기9단답게 소화해냈다.

웃으면서 우는 연기의 달인, 유오성
KBS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로 돌아온 유오성은 영화 ‘친구’에서의 섬뜩한 카리스마는 버렸다. 대신 그가 입은 최장수라는 옷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헌신적인 ‘우리 시대의 아버지’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는 역할을 맡아 진짜 환자 같은 섬뜩한 연기를 보여준 유오성은 특히 웃으면서 우는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웃음 끝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과 오열하며 콧물에 범벅이 되었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그것을 아름답게 느꼈다. 이미 똑같이 최장수가 되어 눈물, 콧물을 같이 흘렸기 때문이다.

솔직 대담해진 연기, 고현정
다시 돌아온 고현정은 과거 청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버렸다.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문숙 역을 맡은 그녀는 그간의 공백기간을 단 몇 마디의 꾸미지 않은 말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채워버렸다. “차가 귀엽네요”라는 말에 “똥차예요”라고 답변하고,  “키가 크다”는 말에 “잘라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신선한 충격마저 느껴졌다. TV 속으로 돌아온 고현정은 ‘여우야 뭐하니’에서 노처녀 고병희 역할을 맡아 어딘지 어리숙하면서도 솔직하고, 내성적이면서도 대담한 연기를 소화해냈다. 그녀의 거침없는 망가짐은 오히려 ‘그 속에서 더 귀여운’ 그녀만의 독특한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변신의 귀재, 김윤석
KBS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 평범해 보이는 남편 역할을 보여준 김윤석. 우리는 그가 ‘타짜’의 아귀로 등장했을 때 동일인물인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범한 얼굴은 순식간에 살 떨리는 카리스마로 변신해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약간 기우뚱한 자세로 노려보는 그는 저 허영만 만화 원작에서 보았던 그 인물, 천상 아귀였다. 사실 만화 속의 아귀는 그 이름에서부터 풍겨나듯 만화적인 인물. 따라서 영화화되면서 그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김윤석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온전히 아귀를 자신의 한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개성으로 승부, 유해진
유해진을 통해 우리는 연기자의 얼굴이 때로는 보통, 아니 보통 이하여야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다 잘생긴 연기자들이 작품 속에 들어오는 경우, 유해진의 얼굴은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그 얼굴을 개성으로 바꿀 수 있어야 된다는 것. 영화 ‘타짜’를 통해 유해진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어설프게 폼잡지 않고 완전 캐릭터에 몰입해 시종일관 입을 가만두지 않는 이 정이 가는 타짜를 보면서 유해진의 연기 공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천의 얼굴, 박용우
13년 동안 그닥 눈에 띄지 않았던 박용우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소심하면서도 우습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눈빛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걸 통해 박용우는 ‘달콤하고 살벌한’ 느낌을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욕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용한 세상’의 김형사는 ‘달콤 살벌’의 대우와는 상반된 캐릭터. 일상에 찌들어 있는 유들유들한 성격의 인물이다. 코믹으로 성공한 그가 다시 코믹이 아닌 장르로 뛰어든다는 것은 모험이지만 그것은 연기자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추자현
영화 ‘사생결단’에서 마약에 취한 추자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불안한 듯 허공을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자신을 버리고 저 바닥에 드러누운 연기자의 그것이었다. 그녀의 역할은 어찌 보면 황정민, 류승범 사이의 대결구도 속에서 그다지 큰 비중의 역할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순간들에 자신을 버리고 혼신을 다해 연기한 그녀는 대종상 신인여우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여우상, 여우조연상에다 올해 감독들이 시상하는 디렉터스 컷의 신인연기상까지 거머쥐었다. 노출연기에서부터 부산사투리까지 소화해낸 그녀는 바닥에서 비로소 연기를 낚은 연기자이다.

망가짐이 아름다운 배우, 예지원
연기자가 망가질수록 더 아름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이가 바로 예지원이다. ‘올드미스다이어리’에서 그녀는 손톱만큼도 ‘예쁜 척’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캐릭터 그대로의 최미자가 된 셈인데,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과하게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려도, 심지어는 심한 키스로 입술이 퉁퉁 불어도 어찌된 일인지 밉지가 않다. 이 정도면 거의 빙의가 된 셈인데, 예지원이 최미자가 된 것인지, 본래 최미자가 예지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망가짐의 미학을 기대할 수 있는 연기자다.

연기자는 매번 망가져야 한다
이밖에도 자신을 충분히 망가뜨려 작품을 살린 배우들은 많다.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박중훈, ‘왕의 남자’의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타짜’의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제대로 연기맛을 보여준 손예진, 드라마 ‘주몽’에서 제대로 악역을 해준 대소 역의 김승수와 굴욕을 보여준 영포 역의 원기준 등등 일일이 거론하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자들은 많다. 반면, 연기변신이나 자신을 철저히 부숴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연기자들도 있다. 대부분 연기력 논란이 되는 이들 배우들이 출연해서 성공한 작품들은 보기가 어렵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심지어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연기자를 통해 작품 속의 인물에 감정이입되고 싶은 것이지, 본래의 연기자 자신에 감정이입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자는 작품을 위해 기꺼이 망가져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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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 밤, KBS에서 특집으로 방영된 ‘효리의 아주 특별한 선물’은 침체된 가요계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될 법하다. 그것은 침체된 가요 프로그램의 어떤 대안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그 프로그램에서 ‘가수들은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처음 출연한 가수는 발라드의 황태자, 신승훈과 발라드의 왕자, 성시경. 성대모사에서부터 서로의 창법 흉내내기까지 그들은 서로의 가창력을 뽐내며 노래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억지웃음이나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가수로서의 진지함이 그 자리를 즐거움으로 채워주었다. 이어지는 개그콘서트, ‘뮤지컬’코너 팀들은 웃음과 뮤지컬이 얽혀진 무대를 선사했다. 그리고 이어진 SG워너비의 무대. 특유의 열창에 이어 다시 인순이라는 열정 가득한 가수로 인해 무대는 풍성해졌다. 프로그램은 그걸로 끝. 어찌 보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충분한 만족감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에는 ‘가수들이 노래를 한다’는 단순함이 주는 감동 때문이었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가수들은 노래를 할 때 가수다. 가수들이 노래를 하지 않고 연기를 하고, 개그를 할 때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이 간단한 이야기가 간단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지난 MBC 생방송 100분 토론에서 제기된 ‘위기의 가요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 음원이 그 문제의 바탕을 제공했고, 여기에 가수들의 엔터테이너화는 노래의 쇠퇴, 음악영역의 획일화 등으로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총체적인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대중음악의 질적 하락, 그로 인한 시장 침체가 반복되었다.

가수 탓, 디지털 음원을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 유통사 탓, 상업적으로만 무장한 제작자 탓하며 ‘누구 탓’으로 돌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음반계가 불황이라고 해도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몇몇 순위 프로그램들이 생겼다가는 없어지고 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가 전부이며, 라이브 형식의 가요프로그램으로 ‘윤도현의 러브레터’, ‘콘서트 7080’, ‘김동률의 포유’정도가 있다. 순위 프로그램은 공정성과 권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라 가수 홍보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래보다는 볼거리에 더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가수들은 오히려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가 아닌 입담으로 승부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라이브 형식의 가요 프로그램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순위 프로그램과 달리 이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노래하는 가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성공작으로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KBS2 TV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될 것이다. 가수들의 열창과 거기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이러한 라이브 프로그램들은 실제로 음악을 음악으로 온전히 돌려주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가요계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순위 프로그램이 아닌 순수 라이브형 가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시간대. 대부분의 이들 라이브 무대는 새벽에 열린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밤 12시15분, 배철수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 12시30분, ‘김동률의 포유’ 12시30분. 노래하는 가수들은 전부 이 새벽 시간에만 볼 수 있는 것일까. 이 시간대를 저녁시간대 정도로 당길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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