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페이소스 담은 김광규의 '나 혼자 산다'

 

"될 수 있는 대로 멀쩡한 척 하고 살아야 돼... 그래야 섭외가 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오랜만에 김광규를 만난 김태원은 무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김태원 특유의 농담 섞인 말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섭외가 들어와도 앉아 있기 힘들고, 누워 있으면 몸이 아프고, 서면 어지럽다는 김태원. 웃음이 나오는데 어딘지 짠한 김태원 특유의 농담.

 

하지만 언제 힘이 나냐는 육중완의 물음에 김태원은 기타리스트다운 답변을 내놨다. "기타를 메면 힘이 나고 무대 올라가면 날아다니지."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무대가 그에게는 비타민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때문에 그런 무대가 없어졌다 말하는 김태원의 목소리에는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잠깐 만나 저녁을 같이 하면서 김광규는 김태원과 육중완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눌 때 홀로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 다 가정을 꾸렸지만 김광규는 아직 혼자. 혼자 사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이 들어서 그래도 남는 허전함은 자식이 아닐까. 멀쩡한 척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김광규에게서 그런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났다.

 

일찍 먼저 김태원이 귀가하고, 잠깐 김광규의 집에 들렀던 육중완도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준비해간 선물을 건네주고는 일어선다. 그들이 일찍 귀가하는 건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서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후, 혼자 남은 김광규의 텅 빈 집이 전보다 더 비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김광규가 "아 보람찬 하루였어요"라고 하는 말은 그 날의 쓸쓸한 풍경과 엇박자를 이뤄 웃음을 줬지만 역시 페이소스 가득한 여운을 남긴다.

 

그 말 한 마디에 그 날 김광규가 보낸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을의 색을 온전히 입기 시작한 계절을 느끼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선 길. 공원에서 예쁘게 색을 바꿔 마지막을 뽐내는 가을 나무들을 쳐다보며 걷고, 생각하다가 괜스레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보고, 탁구레슨을 받으러 가서 동호회분들과 탁구를 치고... 아마도 평상시였다면 혼자 저녁을 먹고 귀가했을 테지만 그 날은 그래도 김태원과 육중완과 함께 저녁을 했다는 것에 김광규는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나 혼자 산다>의 시조새로 남은 김광규다. 한 때는 육중완도 또 기러기 아빠로 홀로 살았던 김태원도 이제 모두 가족의 품으로 떠나갔다. 물론 김광규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깊은 여운 같은 게 꼬리처럼 남는다. 게다가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그 모습에서는 절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쓸쓸해도 멀쩡한 척' 하는 삶은 그래서 마치 힘겨움이나 어려움을 비틀었을 때 나오는 웃음을 닮았다. 늘 즐거워야 웃음이 나는 건 아니다. 힘들어도 웃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웃음으로 바꾸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그래서 <나 혼자 산다>가 보여주는 김광규의 나홀로 삶은 간만에 구수하고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의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다양한 취미를 하는 이유를 묻자 "오죽하면 찾아가겠냐"며 허허 웃는 김광규. 그는 체력적으로 40대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에 지지 않겠다며 운동을 할 때마다 그런 활력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나 혼자 산다>가 보여준 김광규의 이 하루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지만 그래서 많은 중년들의(혼자 산다면 더더욱)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사진:MBC)

배성우, 자신이 아닌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

 

개천에서 용 났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용이었다. 배성우는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연기를 해온 배우다. 여러 단역을 거쳐 영화 <오피스>에서 김병국 과장 역할로 섬뜩한 카리스마로 드디어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왔지 했을 정도였다. 그 후 <더킹>에서 권력 앞에 순종하는 검사 양동철로 주목받았고 <안시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같은 작품에서 제 역할을 해냈다. 그만큼 배성우는 자신보다는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였다.

 

워낙 배역에 충실한 배우인데다 주인공보다는 주변 인물 역할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줬던지라,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에 오양촌 경위로 등장했을 때 그가 준 인상은 강렬했다. 드라마의 특성상 인물이 더 잘 보이고,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역시 그 결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배성우는 오양촌 경위의 불같은 성격과 그러면서도 동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정도로 뜨거운 형사의 면면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랬던 그가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으로 돌아왔다. 박삼수라는 기자 역할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삼수 기자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쓴 작품이라 훨씬 더 리얼리티에 바탕을 둘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 작품은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SBS 금토드라마가 갖는 색깔인 다소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날아라 개천용>은 조금은 과장되고 극화된 작품으로 그려졌다.

 

박삼수 기자라는 인물은 그래서 치열한 현실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거기서 매몰되지 않고 낙천적으로 진실을 향해 나간다. 기자지만 펜을 굴리기보다는 발을 더 재게 놀리는 인물이고, 약자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진 건 없지만 기자라는 자존심만큼은 확실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지만, 동시에 당장의 생활비에 쪼들리며 현실적으로 잘 살기 위해 강철우(김응수) 시장의 수발을 들기도 하는 짠한 직장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배성우가 연기로 채워낸 박삼수 기자는 인물이 입체적이다. 자신을 천거해준 회사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강철우 시장과 결탁해 돈을 벌려고 진실을 가리는 행위에는 대놓고 반발한다. 박태용 변호사(권상우)를 슬쩍 끌어들여 돈 안 되는 변호를 시키지만, 그 과정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더 박 변호사에게 빠져드는 걸 인정한다. 동거하는 이진실(김혜화) 앞에서 사랑꾼의 모습이면서도 얹혀사는 삶의 찌질함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배성우라는 배우가 주목되는 건 역할에 200% 몰입한 모습을 늘 보여준다는 점이다. 등장부터 땀에 절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박태용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와 털썩 소파에 앉을 때 그는 영락없는 현장 체질 기자의 모습이다. 인터넷 등에서 이 캐릭터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어딘지 극중 인물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는 걸 느낄게다.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박태용 변호사와 술 한 잔에 의기투합하고 "다 죽었어!"라고 외치는 자신만만한 박삼수 기자의 모습은 서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런데 이런 가진 건 없어도 직업정신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은 배성우라는 배우와도 잘 어우러진다. 그에게서도 자신을 지워내고 배역을 대신 끄집어내는 배우라는 직업의 자신감 같은 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개천용? 그는 본래 용이었다. 다만 개천에 가려져 있었을 뿐. 보이지 않지만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많은 직업인들이 그러하듯이.(사진:SBS)

'나는 살아있다'의 취지 살리는 박은하 교관의 따뜻한 배려

 

김민경은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화재 상황을 예비해 베란다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에서 그는 쉽게 난간에 서지 못했다. 사실 낮아 보이는 높이지만 막상 서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그 높이의 베란다에서 줄 하나에 의지한다는 건 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옆에서 이 훈련을 지도하는 박은하 교관을 비롯한 다른 교관들은 스스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완강기를 타기까지 기다려주었다.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면서.

 

tvN <나는 살아있다>에서 눈에 띄는 건 박은하를 비롯한 교관들의 남다른 배려다. 보통의 훈련과정에서(특히 군대훈련에서는) 항상 등장하는 건 강압적인 분위기다. 응원을 해주기보다는 하지 못한다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래서 공포증이 있다고 해도 억지로 그걸 감행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은하 교관은 달랐다. 그는 억지로 하게 되면 오히려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 물론 해내기를 응원하면서.

 

결국 그 응원에 힘입어 김민경은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완강기를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첫 발을 내딛기가 어렵지 막상 타고 내려오면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었다. 그래서 역시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이시영은 이 훈련을 해보고 나니 다시 올라가서 타라고 해도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에 빠진 차 안에서 탈출하는 훈련에서도 박은하 교관은 다그치기보다는 지켜봐주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기와 오정연이 함께 들어갔지만 물이 차오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헤드레스트를 활용해 차창을 깨야 하는데 물기 때문에 번번이 미끄러졌다. 정해진 3분 안에 탈출하는 미션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걸 옆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시영이 나섰다. 자신이 차 천정을 밟고 차 안으로 들어가 탈출을 시도해보겠다고 했던 것.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 위로 올라선 후, 차 안으로 들어간 이시영은 결국 차창을 깨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미션은 실패였지만 박은하 교관은 그 협동심을 칭찬했다. 그래서 그 보상으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이튿날 마주하게 된 수중 생존훈련은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군대에서 이런 수중 훈련을 할 때는 거의 얼차려에 가까운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차라리 수중 훈련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시 박은하 교관도 체력훈련을 먼저 시켰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몸의 근육들을 다 하나하나 풀어주고 깨워주는 과정이라는 걸 인지시켰다. 교육생들이 기꺼이 체력훈련에 임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역시 물 공포증 또한 갖고 있던 김민경이 처음엔 페트병을 이용하고 다음에는 비닐봉지를 이용해 물속에서 홀로 떠있는 것을 성공하는 과정은 교관들의 너무나 친절한 도움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겼던 김민경은 결국 성공한 후 교관님들과 동료들의 응원이 있어 그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은하 교관의 따뜻한 배려는 <나는 살아있다>가 그저 힘든 훈련을 받는 과정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 생존하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김민경이 고소공포증과 물 공포증을 하나하나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박은하 교관의 배려 가득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배려는 생존 상황에서 서로가 함께 도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사진:tvN)

'유퀴즈'가 담은 우리 시대의 진짜 영웅, 소방관들

 

"제가 슈퍼맨이었으면 살릴 수 있겠죠. 그런 거에서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혹시라도 내가 지금 남들보다 빨리 가긴 했는데 이거보다 1분이든 5분이든 더 빨리 갔었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마련한 소방관 특집에 출연한 김진선 소방관은 자신의 노력이나 고생보다 혹여나 자신이 더 빨리 갔으면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무려 15kg에 달하는 배낭을 매고 보통 사람들이 두 시간 걸릴 거리를 40분만에 거의 뛰다시피 올라간다는 119 산악구조대. 김진선 소방관은 '산신령'이라는 말이 그저 허명이 아닌 분이었다. 매일 같이 산을 오르며 구조를 하고 또 체력을 키워놓는다는 그에게서 혹여나 산에서 사고를 당해 구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한 마음이 묻어났다. 무려 100킬로에 가까운 거구를 어쩔 도리가 없어 혼자 들쳐 업고 세 시간에 걸쳐 내려오기도 했었다는 그는 이미 슈퍼맨이었다.

 

2019년 최악의 산불을 진압하는데 투입되었던 박치우 소방관은 당시 상황을 '지옥불'이 있다면 이럴 것이라는 말로 그 참혹함을 전했다. 바람이 너무 강해 진화가 아닌 방어에 필사적이었다는 대원들은 불이 도시가스와 LPG충전소에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도저히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화마 속에서도 박치우 소방관이 희망을 갖게 된 건 전국에서 몰려온 소방차들의 행렬을 본 순간이었다고 한다. 소방차 867대에 소방헬기 7대 그리고 소방대원 3251명이 투입되었고 13시간 만에 큰불은 모두 진화됐다.

 

항상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픈 마음이라는 그는 자신이 소방공무원으로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지만 그 마음이 생기고 점점 커져가더라고 했다. "현장에 가면 불이 막 타오르고 있는데 저기 안에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마치 제가 슈퍼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소방관을 한 마디로 뭐라 정의할 수 있겠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그는 "쓸쓸한 슈퍼맨"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모두가 슈퍼맨이 되지만, 어떤 현장도 돌아가신 분을 안볼 수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 동료의 죽음 또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 들어갔다는 김명배 소방관이 거의 습관처럼 한 말은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불이 무섭지만 동료와 수관이 있어 어디든 먼저 뛰어 들어간다는 그는 "머뭇거려선 게임이 승부가 안난다"고 했다. 위험하고 그래서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듣지만 현장은 희생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불과의 싸움은 이길 수 없다는 거였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 소방관들도 그가 항상 맨 앞에 서서 먼저 뛰어 들어간다고 말했다. "현장 나가시면 젊은 대원들보다 더 적극적이시고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진입을 해라. 그렇게 늘 말씀하시는데 당신은 물불 안 가리시고 막 들어가시니까 되게 걱정스럽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물불 안 가리시는 선배님이십니다. 저도 특히 지하층 화재 현장을 새벽에 들어갈 때는 항상 들어가기 전에 멈칫 하거든요. 선배님은 멈칫하는 것 없이 들어가는 동시에 상황 판단하시고 그러면 저희는 뒤따라서 들어가고..." 동료들의 말에는 김명배 소방관에 대한 존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슈퍼맨이라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안해하고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 속으로 뛰어들고 머뭇거리는 일 없이 맨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소방관들. 그들은 이미 슈퍼맨이었다.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 간절한 구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기꺼이 헌신한다는 것만으로도.(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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