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로맨스, 무얼 말하는 걸까

 

한때는 tvN <시그널> 같은 스릴러 장르가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뤘다면 KBS <태양의 후예> 이후로 현재의 tvN <또 오해영>에 이르기까지 달달한 로맨스 장르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미녀 공심이>MBC <운빨로맨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방영될 KBS <함부로 애틋하게>,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SBS <보보경심려>도 결국 로맨스물이다. 김우빈과 수지, 박보검과 김유정 그리고 이준기와 아이유. 그 캐스팅만 봐도 달달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스릴러물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우리네 사회 현실과 법 정의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시그널>은 여러 미제사건들을 건드렸지만 마지막에 가면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가진 자들은 위법한 행위를 하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못 가진 자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진실조차 규명 받지 못한다. 끝까지 진실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에 대한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스릴러물이 끄집어내는 현실이란 제 아무리 판타지적인 해결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제시되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현실이 견딜 수 없도록 갑갑해지는 상황이라면 굳이 그런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서 또 확인하는 것이 못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들에 대한 갈증이다. 물론 사이다 드라마라고 해서 판타지만 나오는 게 아니다. 거기에도 현실이 들어가지만(또 꼭 그래야 공감대를 가져간다) 그 고구마 현실의 답답함의 분량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그걸 통쾌하게 해결하는 사이다 판타지 분량이 늘어나는 게 요즘 드라마의 추세다.

 

과거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린 tvN <미생>이 큰 화제가 되었지만, 어언 1년이 지난 후 그 직장의 문제를 다룬 JTBC <욱씨남정기>가 이것을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걸 상기해보라. 현실적인 문제들은 두 드라마가 모두 진중하게 소재로서 다루었지만 지나친 무거움보다는 시원스런 판타지가 <욱씨남정기>에 보다 전면에 깔려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청자들의 달라진 요구사항에 따라 최근 주목받는 로맨틱 코미디들은 과거와 어떤 다른 점들을 보이고 있을까. 그것은 <욱씨남정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판타지와 현실을 섞고 있다. 즉 최근 방영되고 있는 <미녀 공심이>는 정반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지만 그 안에 현실적인 코드들을 집어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심이(민아)는 단태(남궁민)와 준수(온주완)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달달한 멜로를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 하다가 갑질 하는 사모님에게 구타당하기도 하고, 비서로 채용됐다가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단태를 찾아와 그가 주었던 씨앗에 자신이 그토록 물을 열심히 주는데도 왜 자라지 않냐고 토로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미녀 공심이>의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든든히 안아주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로맨스를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또 오해영>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사회생활에서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비교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그냥 오해영(서현진)은 도경(에릭)을 통해 이해받는다.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과 엮어지며 만들어낸 이러한 새로운 드라마 공식은 결국 현실과 싸우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일종의 사적인 사랑으로의 도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달달함의 연속이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현실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유지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지독한 현실이든 사랑이든 어떤 식으로도 판타지를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녀 공심이>의 공심이나 <또 오해영>의 오해영은 모두 어차피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강변한다. 심지어 오해영은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심심하다!”고 외쳐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제 사랑과 성공을 모두 쟁취하는 신데렐라 따위는 더 이상 공감 받지 못하는 시대다. 그러니 성공은 저만치 제쳐두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랑으로 위안 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사랑이라는 것도 성공만큼이나 현실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그알>, 강남역 살인사건을 검거된 미제사건으로 부르는 까닭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심층보도하면서 길거리나 심지어 집안으로까지 들어와 성추행과 폭력을 당한 네 명의 사례를 인터뷰했다. 얼굴이 흐릿하게 처리된 채 흘러나온 그 사례 인터뷰에 의외로 두 명은 그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길거리에서 여자 셋에게 성추행을 당한 남성이 한 명이었고, 화장실까지 도망쳤지만 그 안까지 따라온 여자에게 당한 남성이 또 한 명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하지만 방송은 곧바로 이것이 일종의 실험방송이라는 걸 밝혔다. 즉 그들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의 사례를 남성인 것처럼 연출해서 보여준 것이라는 것. 그리고 MC인 김상중이 물었다. 그들이 남성이라고 내보낸 방송에 시청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냐고.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그럴 법 하다고 여겼는지. 아마도 대부분의 남성 시청자들은 그 방송내용을 보며 남성의 피해사례가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방송은 이 실험을 통해 남성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또 한 여성이 하루 종일 길거리를 다니는 장면을 실험카메라로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자 충격적인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남성들은 다반사였고 밤이 되자 다가와 작업을 거는 남자들, 심지어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스킨십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처럼 실험까지 해가며 보여주려 한 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를 남성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그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하필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여성들의 억압된 감정들을 폭발시켰다. ‘여성 혐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러자 남성 혐오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사안은 이로써 마치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는 구도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가 심층취재를 통해 찾아낸 건 혐오가 아니라 공포라는 단어였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밝힌 것처럼 혐오공포는 그 의미 자체가 다르다. ‘혐오가 가해자의 공격적인 모습을 그려낸다면, ‘공포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의 참극을 혐오의 대결이 아니라 공포의 이해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사회적인 사안으로 끄집어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거나, 잘못된 편견 같은 걸 문화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남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바꿔나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결국 이 사안이 여성들만의 싸움으로 바꿔지기 어려운 일이고 남성들이 함께 동참해야 바뀔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혐오의 관점으로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건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고 또한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야 할 치안 같은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닌 것처럼, 여성들도 잠재적 피해자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공포를 남성들도 동참해 함께 이해해나가야 하고 암묵적으로 잘못된 남성들의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여성들에게는 크디 큰 공포가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실험까지 강행하며 이해시키려 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범인은 검거되었지만 여전히 미제사건이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결국 이 사건은 여성들에게 일상화되어버린 이 사회적 공포가 사라져야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첫 걸음은 여성들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멀티플렉스 시대, 무주 산골영화제의 특별한 체험

 

무주 산골의 어둠과 정적은 더 깊었다. 그래서 불을 끄면 마치 영화관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영화관은 바람에 묻어나는 나무와 풀 냄새가 났고 간간이 반딧불이가 날아와 은은한 빛을 점멸하며 지나가곤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답답한 건물 천정 대신 확 트인 또 다른 스크린이 펼쳐졌다. 밤하늘이 펼쳐내는 스크린 위에는 도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그 이상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진출처: 무주 산골영화제

올해로 4회를 맞은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식장 풍경. 내외빈들은 풀밭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어둠 저편 무대에서 펼쳐지는 개막작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작은 영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종합 영화 공연이 특징이다. 작년 개막작 <어느 여름밤의 꿈, 찰리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마임으로 새롭게 덧칠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바 있다. 올해 개막작인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1961년 방영된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출연의 <성춘향>에 음악감독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의 판소리가 엮어져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그 오래된 춘향전을 영화로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작품을 현재화시켰던 것처럼,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은 이제는 과거가 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재즈와 판소리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화시켰다. 낡은 필름이 보여주는 거친 질감과 후시녹음으로 어색한 발성들이 만들어내는 오래된 영화가 관객을 과거의 시간여행으로 이끌고 들어간다면,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이 눈앞에서 영화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게 펼치는 퍼포먼스는 그 과거를 다시 현재로 소환시킨다. 영화 공연은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직선적인 시간을 다시 현재에서 과거로 연결시켜 시간의 고리를 체감하게 해준다.

 

문득 그 오래된 영화가 새롭게 보인다. 낡은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진 신상옥 감독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들이 보이고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 연기에 담은 최은희, 김진규의 열정이 느껴진다. 왜 하필 무주 산골영화제의 개막작들은 이처럼 옛 영화들을 가져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거기에 현재적인 시선을 담아 다시 들여다보자 현재의 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진짜 영화 체험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우리네 춘향전이 저렇게 멋스러운 이야기였었나.

 

이른바 멀티플렉스 시대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쾌적하고 의자도 편리하며 좌석도 많고 넓은데다 음향은 실감날 정도로 짱짱하고 시각체험은 진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구획된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아 보는 그 영화들이 어떤 쾌감을 주긴 하지만, 때로는 옛 영화들이 주었던 어떤 정서와 감성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편안한 멀티플렉스가 제공하는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주는 쾌감들 속에서 우리가 점점 둔해지고 잊고 있던 정서와 감성들.

 

무주에는 멀티플렉스가 없다. 무주에 있는 영화관은 그 이름이 산골영화관이다. 과거 소극장 정도의 규모지만 영화제가 있는 기간에는 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로 붐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멀티플렉스가 주지 못하는 감성과 정서가 느껴진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밤이 되면 산골 곳곳이 영화관이 된다. 이른바 찾아가는 영화관이다. 멀티플렉스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상업적인 공간으로서 영화관을 상정한다면, 찾아가는 영화관은 이처럼 상업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버린 영화관을 온전히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되돌려준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타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화제들과 달리 소박하다. 거기에는 화려함보다는 부족하고 퇴색하여 오히려 영화가 갖는 진짜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때로는 영화도 공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영화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 너무나 상업적으로 경도되어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관 체험에 어떤 피로를 느꼈다면 무주 산골영화제는 그 피로와 자극을 덜어내 온전한 영화적 체험으로 우리를 되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힐링이 따로 있나. 이것이 힐링이다

<사도><동주>, 이준익 감독이 그린 청춘의 자화상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는 송몽규와 같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아름다운 청년들처럼 지금 이 시대의 송몽규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동주>가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백상예술대상(사진출처:JTBC)'

52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준익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밝혔다. 올해는 <암살><베테랑>이 쌍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여름 시장과 <내부자들>까지 겹쳐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한 해였다. 백상은 그 중 <사도><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도>6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고, <동주> 역시 저예산 영화에도 불구하고 116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하지만 두 작품 다 관객 수로는 여타의 영화들에 밀렸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이 백상의 주인이 된 까닭은 두 작품 다 상업적으로도 또 작품으로도 의미 있는 성취를 거뒀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모두 청춘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었다. <사도>는 우리네 역사의 가장 큰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영조(송강호)가 사도세자(유아인)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사안을 소재로 삼고 있다. 여러 차례 사극을 통해 방영되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여기에 현재의 청춘들과 어른들의 관계를 투영시켰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만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 처해 있는 청춘들이 공감 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되었다. 갑갑한 관 같은 궁궐에 갇혀 산 송장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사도세자의 울분과 광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서로 대립하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 세태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었다.

 

한편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진 <동주>는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라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바라던 청년들은 시대의 아픔 앞에 쓰러졌고 그러면서도 꿋꿋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

 

사실 이 작은 흑백영화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 속에 담아낸 치열했던 청춘들의 이야기에서 지금의 청춘들 역시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저예산 흑백영화가 거대자본의 상업영화들 속에서 이만큼 선전했다는 것은 마치 지금의 현실 속에서 소외된 청춘들의 목소리에 대중들이 귀 기울여줬다는 희망과 위로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동주>를 통해 지금의 청춘들을 지지했다. 그리고 백상은 그런 이준익 감독의 지지에 화답했다. 두 영화는 말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청춘들은 치열하고, 치열한 만큼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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