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의 초심이 느껴지는 <신서유기>

 

워밍업은 끝났다. 이미 작년에 인터넷을 통해 방영됐던 <신서유기>. 당시 이 프로그램은 꽤 큰 화제를 만들었다. 일단 나영석 PD가 만든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고, 그와 함께 했던 <12> 초창기 멤버들인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가 출연한다는 게 그 두 번째였으며, 이들이 국내가 아닌 중국에 간다는 것이 세 번째고, 그들이 거기서 <서유기>의 캐릭터로 버라이어티를 보여준다는 게 네 번째였으며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이 인터넷으로 방영된다는 게 다섯 번째였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신서유기>는 이처럼 흥미를 끄는 기획 포인트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즉 이 다섯 가지 포인트(물론 더 따지고 들어가면 할 이야기들은 더 많지만)의 어느 쪽을 주안점으로 들여다봐도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거의 저인망식(?) 예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 아이템이 인터넷에서만 방영되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짧게 끊어지는 호흡은 그 나름의 재미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너무 소품처럼 이 아이템을 여겨지게 만든 건 아쉬운 대목이었다.

 

<신서유기>가 케이블 버전으로 시즌2를 찍는다고 했을 때 특히 기대감이 컸던 건 그래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프로그램으로 묶여진 <신서유기> 시즌2는 확실히 이 아이템의 크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2회 분량에 걸쳐서 인터넷에서 방영됐던 <신서유기> 시즌1이 재편집되어 보여졌다. 인터넷과 케이블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지워졌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웃음으로 바꾸는 나영석 PD의 능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즌1에서 느껴지는 건 이들이 <12> 시절의 그들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이다. ‘옛날 거라고 놀림을 받으며 중국에 오면서도 입수준비를 하고 온 강호동은 어딘지 짠한 느낌을 주었고, 이수근은 여전히 깨알 같은 개그 욕심들을 드러내며 쉴 틈 없는 웃음을 만들었지만 어딘지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12>에서는 막내로서 강철 체력이었으나 이제는 숨을 헐떡이는 이승기나, 여전히 악동 같지만 이제는 강호동의 잔꾀에 당하기도 하는 지니어스 은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시즌1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간 <12> 이후 저마다 여러 일들을 겪어오며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그들의 모습들을 한편으론 짠하고 한편으론 웃기는 것으로 드러내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 이건 어찌 보면 시즌2부터 본격화될 이야기의 전제 정도가 될 것이다. <서유기>란 결국 요괴들이 여정을 거쳐 인간이 되어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신서유기>는 어쩌다 예전 같지 못하게 되어버린 출연자들이 그 본래의 색깔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어딘지 예전 <12>의 느낌이 나는 갖가지 미션들과 복불복이 이어지고 나영석 PD와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등장한다. 기상미션에 꼴찌를 해 1위안밖에 받지 못한 은지원 앞에서 굳이 맛난 음식들을 가져와 먹으며 그를 놀리는 표정을 짓는 나영석 PD의 모습은 <12> 시절 출연자들에게 탈락을 외치며 즐거워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출연자들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 나영석 PD 역시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곤욕을 치렀다. 논란도 논란이지만 그가 가장 뼈아픈 건 <꽃보다 청춘>의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신서유기> 시즌2는 어찌 보면 나영석 PD 역시 그 본래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나영석 PD의 초심이 느껴지는 <신서유기> 시즌2에 특히 관심이 가는 이유다

<기억>, 알츠하이머 소재를 이렇게 다루다니

 

기억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흔하디흔했던 과거 신파극의 설정 중 하나가 기억 상실이고, 이런 전통은 최근 막장드라마들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최근 기억의 문제는 알츠하이머라는 구체적의 질환의 문제로 다뤄진다. ‘기억 상실의 문제에 불치병이라는 소재가 얹어지기 마련이다.

 


'기억(사진출처:tvN)'

JTBC <기억>이라는 드라마도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기억 상실의 소재가 갖고 있는 극적 장치에 기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가져오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징하고 있다는 데서 놀라운 이 드라마의 무게감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드라마는 기억 상실이 갖는 그런 속물적이고 식상하기까지 한 극적 장치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이 드라마는 고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있다는 것을.

 

박태석(이성민)이라는 성공한 로펌 변호사는 비로소 알츠하이머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짓들을 해왔는가를 각성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이제 기억을 곧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기억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태석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건 우리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고 덮어버리며 심지어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치부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 많은 사건들과 사고들을 덮어버리는 장본인들은 돈을 받고 뒤처리를 해주는 변호사들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죄를 덮기 위해 법을 이용한다. 갖가지 구실을 만들고, 그것이 안 되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협박을 일삼는다. 그래서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건들을 유야무야 흐릿하게 만들어버린다. 또 한 편에서는 하루하루 밥벌이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생존환경을 만들어낸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사건들이지만 이 알츠하이머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은 자꾸만 잊혀져 간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했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으며, 청소년 수련시설인 씨랜드에 벌어진 화재로 무고한 아이들 23명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대구 지하철에서는 방화로 인해 무려 34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2년 전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에서 침몰해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었다.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지만 그 때만 반짝 피눈물을 흘리고 나서는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마치 그런 일들이 없었다는 듯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건 마치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회 같다.

 

사회는 그 많은 잊지 말아야 될 기억들을 기억하기보다는 덮어버리고 앞으로 달려가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조장된 빨리 빨리는 뒤돌아보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또 다른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각성한 태석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건 여러모로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 끄트머리에 죽은 태석의 아이의 문제를 세워두는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실로 기가 막힌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토록 확장해 우리 사회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표징 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건 머리로 쓴 드라마가 아니다. 가슴으로 쓴 드라마다. 그 많은 아픔들을 가슴 깊이 새긴 채 피눈물을 토하며 쓴 드라마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에 대한 이만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섬뜩하게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회라니

<태후>의 비현실적 판타지, 그 어려운 걸 해낸 원동력은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지 말입니다.” 사지에서 돌아온 유시진(송중기)의 대사처럼 KBS <태양의 후예>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많은 드라마적 난점들을 신기하게도 봉합시켜나가는 일들을 해냈다. 죽을 위기를 그토록 겪으면서도 죽지 않는 인물들이나, 우르크라는 가상의 분쟁지구에서 벌어졌던 전투상황과 재난, 사고, 전염병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과한 설정들. 종영한 후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현실성이나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부족함들이 드러날 때마다 마치 마법처럼 그걸 덮어버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이 등장했다. 사지에서 1년 만에 포로로 있다 탈출해 나온 유시진(송중기)을 본 강모연(송혜교)말도 안돼라고 말하고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잠시 후 강모연이 유시진에게 토라지고 짐짓 헤어지겠다고 말하다가 다시 사랑한다고 껴안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그럴 듯한 이야기처럼 봉합된다. 사실 그건 개연성 같은 합리적인 판단을 유예시켜버리는 두 사람의 강력한 판타지 멜로의 중독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건 연기자들이다. 그걸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담은 연기로 보여줄 것인가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일정한 현실성과는 거리를 둔 농담 같은 설정이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 선마저 농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감정은 살리되 자칫 실소가 나올 수 있는 과도한 진지함은 오히려 살짝 덜어내야 시청자들과 모종의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도 원하고 시청자들도 원하는 해피엔딩. 그 강력한 판타지 앞에 드라마의 비현실성은 살짝 덮여버릴 수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그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능숙한 연기라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태양의 후예>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가장 큰 원동력은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 같은 연기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남자의 면면에 특유의 여유 있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유시진 캐릭터는 사실 세상 어디에도 없는이상적인 남성상이지만 송중기가 있어 그걸 가능하게 했고, 때론 귀엽고 때론 사랑스러우며 한없는 상심에 눈물을 뚝뚝 흘릴 때는 보는 이들마저 마음이 아프게 해준 강모연이란 캐릭터 역시 송혜교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 무뚝뚝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서대영(진구) 상사나 사랑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윤명주(김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송중기나 송혜교, 진구나 김지원 같은 기꺼이 몰입하고 싶은 연기자들의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그대로 무너져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 드라마의 성공은 적당한 코미디적인 가벼움을 유지하면서도 순간 순간 진지해지는 상황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연기자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수훈 갑은 역시 김은숙 작가다. 황당한 이야기 설정이나 급 전개가 가진 무리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김은숙 작가는 놀라운 대사의 힘으로 이 많은 난점들을 돌파해냈다. 사지에서 돌아온 유시진과 강모연이 마지막회에서 보여주는 폭풍 멜로의 향연은 그것이 너무 달달해 모든 드라마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유예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머나먼 길을 돌아와 이제 남은 해피엔딩의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게 함으로써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그것이 김은숙 작가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멜로의 대가라는 그 지칭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태양의 후예>는 무려 38.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아마도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많은 것들이 불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난점들도 또 지상파 드라마가 늘 고민하던 시청률과 화제성의 문제도 시청자들의 시선과 연기자를 포함한 제작진의 최선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태후>, 새드엔딩 싫지만 그래도 불사신 주인공이라니

 

불멸의 유시진’, ‘좀비 유시진’, ‘불사조 유시진’. KBS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유시진은 이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고 있다. 교전 중 총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원대복귀 하지 못했으며 사망 통지까지 날아온 그지만 1년 후 알바니아에 의료봉사를 간 강모연(송혜교) 앞에 그는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그렇게 돌아온 유시진에게 강모연이 말도 안돼라고 말하는 대목은 아마도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이미 죽은 줄 알고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년을 지낸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 앞에 다시 돌아온 유시진은 그녀에게 그 어려운 걸 또 내가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였다.

 

사실 유시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강모연에게 전해지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도 그가 진짜로 죽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 모두 바라는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껏 수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르크에서 강모연이 납치되었을 때도 그녀를 구하다 총에 맞은 바 있고, 국내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도 총에 맞았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툭툭 털고 돌아와 여전히 농담을 날렸다. 그러니 그가 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만일 살아 돌아오지 않고 끝난다면 그건 지금껏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유시진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유시진이 이렇게 죽을 고비를 끝없이 겪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이 이 달달한 멜로드라마에 긴장감을 유발하고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삼각, 사각의 멜로 구도를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멜로드라마에서 삼각, 사각 구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긴장감을 만들기 위함이지만, 이 드라마는 대신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것들이 사랑의 장애물로 활용된다. 따라서 유시진이나 강모연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긴장감은 높아진다.

 

특히 유시진이 불사조가 된 까닭은 그가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다. 강모연이 일하는 병원이라는 공간보다 유시진이 뛰어들어야 하는 전장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니 멜로의 장애로서 그가 끝없이 위험 속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긴다. 삼각, 사각 멜로의 장애라고 해봐야 남녀의 마음이 돌아섰다 다시 돌아오는 정도로 그럴 듯한 이야기의 개연성이 만들어지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는 장애라면 계속 해서 살아 돌아온다는 것이 그럴 듯한 개연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알바니아의 어느 풍광 좋은 곳에서 추모의 꽃다발을 내려놓는 강모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유시진의 몰골은 방금 어딘가에서 탈출해 돌아온 듯 초췌해 있었다. 아무리 극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지만 바로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달려온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판타지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하지만 판타지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갖춰져야 공감이 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새드엔딩을 바라지 않지만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자칫 지금껏 잘 달려온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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